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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rne_COL_Chabrieres.JPG제 2외인보병연대 샤브리에 대령 병영 정문

 

외인부대의 휴가는 첫 해, 2주부터 시작한다. 주말은 포함하지 않고 정확하게 휴가를 계산하여 귀대날짜를 정해준다. 겨울휴가까지 포함하여 연 15일의 휴가를 받았다. 근속년수가 늘어날수록 휴가 날짜도 일주일씩 늘어났다. 해외파병이나 해외 기지 2년 근무 후, 프랑스 본토로 돌아오면 자대배치를 받기 전까지 40, 거의 2개월 휴가를 받았다.

 

예기치 않았던 파리로의 휴가를 받고 오바뉴 사령부로 돌아왔지만, 오랫동안 운동을 하지 못했던 탓에 체력도 엄청 떨어져 있었고 긴장도 많이 풀려 있었다. 낯설었던 환경이 눈에 익고 시스템이 조금씩 몸에 배긴 했지만 아직 자대배치를 받지 못한 신병에게 개인행동과 자유라니,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부대는 명확하게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고 맡기는 모양이었다.

 

연대 복귀 후, 자대배치를 받기 위해 오는 신병교육대에서 동료들을 기다리는 중대 숙소엔 도둑들이 들끓었다그 중대는 제대를 하거나새롭게 연대배치를 받기 위해 항상 머물러야 하는 허브 같은 곳이라 좀도둑이 많았다. 귀중품을 넣어둔 관물함은 다음 날이 되면 뜯겨져있었고, 귀한 물품은 모조리 사라져있었다. 하루 이틀 왔다가 스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물건이 없어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제대를 하거나, 병가를 보내는 와중에, 혹은 불명예 제대를 하는 와중이라 훔쳐 가는 모양이었다.

 

신병교육대에서 훈련을 마치고 온 새로운 신병들에 섞여 나는 제2보병연대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신병교육대에서 3지망까지 원했던 부대로 보내주는 과정이었다. 가끔씩 공병이나 기갑에서 공수부대로 가는 경우가 있기는 했어도 공수부대 출신들은 대부분 보병연대로 왔다. 대개는 나처럼 부상을 당하고 공수부적격자로 낙인 찍힌 경우였다.

 

보병연대가 있는 님므로 향하는 버스, 3개월 동안 공수부대에서 생긴 불상사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원체 낙천적인 성격이라 걱정이나 근심을 하지 않았지만 몸 하나 밖에 없는 사람이 다리를 마음대로 쓰지 못하니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원인도 찾을 수 없었고 공수 열외로 취한 휴식으로 인해 나았다고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스치는 창 밖의 풍경이 근심으로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버스는 님므 시내로 들어섰다.

 

조금 더 가니, 로마에서 본 듯한 원형 경기장의 위용이 드러났다. 님므의 상징인, 로마 경기장 양식을 그대로 본 딴 원형 경기장을 한 바퀴 돌았다. 10여 분 정도 더 가니 병영이었다. 산 속에 숨어 있는 듯한 병영과 비교되었다. 뿐만 아니라 요새나 성처럼 견고했고 고풍스러웠다.

 

주말의 보병연대 연병장은 아무 것도 없이 황량했다. 거의 외출을 나가 연병장은 텅 비어 있었다. 신병들은 주말을 보낼 임시 숙소를 배정받았다. 연대 내에서는 자유였지만 외출이 불가능해서 주말은 따분하고 지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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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 비해 작지만, 원형 경기장 중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님므 원형 경기장과 투우사 동상

 

신병들은 연대장 사열을 받았다. 새롭게 배치 받은 병장이나 하사관 등의 사열도 동시에 받았다.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절차. 그리고 중대를 배정받았다. 한 개 중대로 모든 동료가 배치 받는 공수부대와는 달리, 보병연대는 소대 보충병으로 들어가는 모양인지 모두 흩어졌다. 아는 사람 하나 없었으니 상관 없었다. 동료들 몇을 나중에 만났을 뿐.

 

일과가 거의 끝나갈 무렵, 2외인보병연대 3중대, 1소대, 1팀에 배치 받았다어차피 계급장이 붙어 있어 실수할 일은 없었지만, 모두 같은 훈련과 같은 정보를 거쳐 도착해 있던 친구들이라 누가 고참이고 신병인지 티가 났다. 부대의 당번 하사관이 신참들을 각 소대에 인계하여 소대장 면담에 들어갔다가 숙소 및 팀 배치를 받고 곧장 중대장 일대일 면담에 들어갔다. 소대장으로부터 칼비에서의 일에 대한 보고서와 교육대 평가서를 보고 받은 중대장은 같은 내용을 물었다. 공수부대를 실패하고 이렇게 보병으로 오게된 내 기분을 이해하는 듯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자대배치를 받은 세 명의 신병은 내무반에 올라온 소대 보좌관 로랑 상사에게 신고식을 치렀다.

 

"외인부대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되었나?"

 

"...어 ...... , 셰프!"

 

얼떨결에 버벅거리며 대답을 하자 상사가 흉내를 내며 비웃었다.

 

"프랑스어를 배워!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 !"

 

맥주 한 박스를 사서 열중 쉬엇 자세로 한 병을 비우게 했다. 신병 세 명 모두 한 소대, 다른 팀에 배치 받았다. 그것으로 신고식은 끝났고 자유로운 대화가 이뤄졌다. 군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본격적인 소대 생활이 시작되었다자대배치, 소대와 팀 배정까지 받은 성인으로서의 자유가 주어졌다. 일과가 끝나면 자유였고 다른 중대의 아는 동생들을 찾으러 다녀도 괜찮았다. 복지 시설이 훌륭한 피엑스에 가서 술을 마셔도 좋았고 운동을 하거나 시내 외출을 해도 괜찮았다

 

3중대엔 한국인이 셋이나 있었고 연대 전체엔 20여 명에 가까운 한국인들이 있어 공수연대와 더불어 가장 많았다. 또한 한국에서 장교 생활을 했던 선배도 중사 교육을 마치고 저격수 교관이 되어 있었다. 모두의 구심점이 되었지만 나와는 맞지 않았다. 사령부 선별 중대에서 탈락한 나를 자기가 합격시켰다고 소문을 낸 탓이었다그래도 선배이니 찾아가서 인사를 했다

 

그곳에 같이 훈련 받던 후배들이 모여 있었다. 3중대 다른 소대에는 교육대에서 같이 훈련을 받던 후배 하나와 한국에서 조폭을 했다는 ‘백’이라 불리는 나이 어린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선배의 오른팔이 되어 있었다모두 싹싹하고 붙임성이 있었지만 은 계속 시비를 걸었다. 나를 합격시켜 준 선배한테 너무 불충한 게 아니냐는 이유였다.

 

그 선배가 탈락한 나를 합격시켜 주었다는 소문을 듣고 어이가 없었는데, 눈 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자 황당했다. 그 얘기는 '일개 병장이 이미 탈락이 결정된 신병을 합격 시키기 위해 게쉬타포에 전화를 걸었고 괜찮은 재목이니 합격시켜 달라'고 했다는 얘기였다. 그 얘기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따져 물었더니, "아니면 아닌거지..." 하면서 아쉬워했다. 그러나 ‘은 끝까지 시비를 걸었고 나는 피했다. 얼마 후 그는 루마니아 레슬링 선수 출신으로부터 혼쭐이 나고서야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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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외인보병연대의 마스코트 '타파나 하사'

마굿간을 치우러 간 병사들을 자주 물어 상처를 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보병연대는 칼비의 공수연대와 너무나 비교되는 분위기였다. 부대원들의 체형이나 눈빛도 확연히 달랐다. 그래도 파병은 항상 같이 다녔다2외인공수연대는 제11공수여단 소속의 보병이고 외인부대 중에서는 독립되어 있지만, 2외인보병연대는 제6경기갑사단의 보병으로 1공병외인연대와 1기갑외인연대를 포함하고 있어서였다. 2보병연대가 공수연대를 교대해 들어갔고 공군전투기까지 포함해서 여단 병력이 작전을 수행했다.

 

공수연대와 보병연대 병력은 비슷했지만 연대는 공수부대가 낙하 지역을 제외하고도 훨씬 넓었다. 보병연대는 제6경기계화여단장 병영도 꼭 같은 크기로 옆 건물에 자리하고 있었다. 부대 정문 앞, 장갑차량과 트럭, 보병의 마스코트인 뚱뚱이 말 ‘타파나(Tapanar)’가 있는 부속 건물을 합해도 공수부대보단 작았다. 역사와 전통에서는 1841년부터 시작한 보병이 1948년에 창단한 공수부대보다 깊었다.

 

무기 체계와 편대는 공수부대와 똑같았다. 생화학, 핵무기로부터 방어가 가능하고 수륙양용, 헬기, 항공 수송에 낙하산으로도 보급이 가능한 경장갑차(VBL)는 정찰이 주임무로 7.62mm, 12.6mm, 밀란 미사일까지 장착할 수 있었다. 그 위로 운송 수단 겸 중무장 전투가 가능한 공격용 장갑차(VAB), 개인 화기로는 800M 정밀 저격 FR F2(7.62mm), 2KM 스나이퍼 용 PGM(12.7mm), 유탄발사기, 경기관총, 개인 유탄발사기, 대전차 에릭스와 밀란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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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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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mm Browning M2 를 장착한 V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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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mm Browning M2 사격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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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mm 박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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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mm 박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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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저격수

위가 7,62mm FR-F2, 800M, 아래, 12.7mm PGM, 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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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I

 

칼비에서 공수부대 부적격자로 낙인 찍혔지만 보병에서는 도착하자마자 정상적인 훈련 일과에 돌입했다. 오랫동안 운동을 못했던 탓에 배도 살짝 나와 있었고 무릎에 대한 공포는 여전했다. 의지 탓일 수도 있었다.

 

문제는 유격 훈련을 하면서 금방 드러났다. 주베르 하사가 재빠르지 못한 나를 두고 비아냥거리며 놀렸다.

 

"고작 그 따위로 공수 지원했냐?"

 

"교육대에서 최고였답니다."

 

투자니 병장이 그렇게 변호를 해주니 위안이 되었다. 투자니는 모로코 출신이었다. 소대에는 또 다른 모로코 출신 께발리라는 동료가 있었는데 성격이 맞지 않고 말이 느릿느릿하고 비아냥거리는 투라 친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투자니는 남자답고 호기로운 성격이었다. 나의 교육대 생활에 대해 께발리에게 들었는지, 나의 아픔에 대해 편견 없이 바라봐주었다.

 

이들 말고도 다양한 출신의 동료들이 있었다(동유럽 친구들이 가장 많았지만). 아베라는 일본인 병장도 있었고, 스웨덴 출신의 룬스트롬 병장, 포르투갈 출신의 당타스, 나중에 베프가 되는 폴란드의 두비쳅스키 등이 있었다. 팀장인 보르작 중사도 폴란드 출신이었는데 상사라기 보다 친구 같은 편안함을 주었다

 

 

 

Vigipirate 대 테러 경비

 

3중대는 대테러 경비를 서기 위해 트럭을 타고 마르세유로 향했. 아를르와 액상프로방스를 지나는 1시간 30 여정이었다.

 

마르세유 역 근처, 군 병영에 터를 잡고 월드컵이 열리는 마르세유 경기장과 역, 주요 관광지, 변전소 경비를 서고 대테러 예방을 하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 낮에는 역과 경기장, 대성당, 밤에는 역 주변을 위주로 경비를 나섰다. 방탄복이 주어졌고 탄창을 다 채우면서도 실탄은 한 탄창에만 채웠다. 파마스 소총엔 빈 탄창을 끼웠다. 군모는 후크에 채우고 그린베레를 썼다. 경찰이 주요 관찰 지점과 포인트를 집었다. 쓰레기통, 버려진 가방 등 일상스럽지 않은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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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경비

 

역 경비를 설 때였다.

 

기차에서 여행객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우리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고 그룹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주목했다. 긴 플랫폼을 따라 사방경계를 하던 중 홀로 남겨진 여행용 캐리어를 발견했고 비상이 걸렸다. 경찰이 무전으로 폭발물 제거반을 호출했고, 대원들은 가방을 둘러싸고 여행객들이 빨리 플랫폼을 벗어날 수 있게 조치를 취했다. 경찰견과 X레이 수하물 스캐너 장비를 가진 제거반이 도착했다제거반은 주변을 안전하게 소개하고 스캔을 실시했다. 다행히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마르세유는 5월인데도 무더웠다. 장비를 착용하면 후덥지근한 무더위가 찾아 왔으나 지중해성 기온은 덥기만 할 뿐 땀은 흐르지 않았다. 역에서 천장에 달아놓은 조그만 수도 배관에 뚫어놓은 조그만 구멍을 통해 안개 같은 물을 뿌려주어, 더위에 헐떡거리는 여행객들에게 시원함을 전해주었다. 안개처럼 내려오는 수증기는 아주 시원했다.

 

날이 저물고 역 주변을 관찰하던 우리는 으슥한 곳에 세워진 한 승용차 앞에 멈춰섰다. 경찰이 차 문을 두드리고 두 사람을 내리게 했다. 덩치가 엄청 큰 여자가 우리 대원들을 한 번 스윽 훑더니 경찰과 대화를 시작했다. 남자 목소리였다. 여장남자였던 것이다.

 

"이곳에서 성매매는 불법입니다. 무슈"

 

금방 갈 거라는 말에 경찰은 당장 자리에서 떠날 것을 요구했고, 그들은 차를 타고 떠났다. 경찰은 여기가 성매매 하는 장소라고 설명해주었다. 사실 역 주변은 불빛도 음침했고 분위기도 음산했다역에서 구 항구까지 내려가는 길도 위험해 보였고, 미성년, 성인 할 것 없이 수시로 시비를 걸었다그들의 언행은 위협스러웠고 눈빛만 보기에도 도발적이었다. 그런 이들이 득실거리는 이 거리의 밤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우리는 아침 구보를 위해 마르세유 외인부대 휴양소 겸 병가 회복 센터가 있는 말무스크까지 트럭을 타고 이동했다소대장까지 포함한 전 소대원이 참여했다. 아침 8케네디 대통령 해안로를 따라 4km 구보가 시작되었다해안로를 따라 달리는 기분이 최고였다. 지중해 연안을 따라 프라도 해수욕장까지 그 환상적인 길은 구보라기 보다 산책이라 할 만큼 환상적이었다. 짧은 조깅이 끝나고 해변에 도착한 우리는 가지고 온 축구공으로 한 시간 가량 더 운동을 했다소대장 델라와르드 중위는 몸을 풀더니 그 자리에서 엉덩이를 까고 옷을 갈아 입었다. 촌놈 눈에는 모든 것이 이상했다.

 

마르세유 노트르담 드라 가르드 성당 경비를 끝낸 우리 소대는 변전소 경비 소대와 교대했다. 첩첩산중에 있는 듯, 바람 밖에 없는 변전소 경비는 지루하고 따분했다. 교대 근무를 설 때, 당직 병장이 교대 대원들을 인솔해서 위치를 지정해주면 혼자 덩그러니 남아 보초를 섰다. 햇빛에 두 시간 동안 속절 없이 노출되면 다시 교대되었다. 3주 동안 주말 없이 경비를 섰고, 나중에 훈련 수당으로 돌아왔다.

 

본대 복귀 후 의무대 호출을 받았다. 병원에서도 무릎 통증의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의무대 대위에게 어쩌면 동양의 침이 해결책을 마련해줄 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냈는데, 개인병원이라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한다고 했다. 의무대에서는 무릎에 주사를 놓아주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걷다 쓰러질 정도로 휘청거렸다. 프랑스 월드컵이 다가오는 기간에, 마르세유 라베랑군병원에 입원해 2주일간 물리치료를 받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외인부대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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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므의 그리스 신전 '메종 꺄레', 원형경기장

'Arena', 'Megane Tower', 'Pont de la Gare',

그림, Hubert Robert

 

5월 초인데도 여름처럼 햇빛이 찬란했다습도가 낮아서인지 뜨겁긴 해도 상큼한 분위기였다님므는 축제 분위기에 물들었다로마 유적지 아레나에서 투우 경기가 열리고 밤이 되면 축제가 열린다고 부대마저 축제에 물들었다군대에 온 것인지 관광을 온 것인지 마음이 들떴다

 

연대와 시내는 가까웠다. 나는 한국에서 공수 출신이었던 유일이와 축제를 즐기러 나섰다미국에서 공부한 유일이는 영어를 잘했다성격도 밝고 붙임성도 많아 주변에 친구들도 많았는데 지식마저 뛰어났다. 왜인지 나와 죽이 잘 맞았다.

 

님므는 고대 유물이 많았지만 오래되었다는 것 외에는 마음을 유혹하지 못했다. 한 번 스윽 둘러보고 시내 한가운데 자리잡은 아레나 원형 경기장으로 갔다. 로마에 비하면 작았지만 원형은 로마보다 잘 보존되어 있었다. 평소 같으면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인데 축제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구 교황청과 수도교가 있는 근처 아비뇽의 ‘세계 연극제 아비뇽 페스티발’의 축제에는 비길만 못했지만, 나 같은 촌놈에게 로마 유적지와 외국 사람들로 발디딜 틈 없는 거리는, 여행자로서의 여유와 행복은, 모든 고통을 잊게 만들었다.

 

유일이와 카페 테라스에 앉았다. 아직 낮 시간이라 인생의 즐거움인 알코올을 즐기기에 일러 프랑스식 아메리카노인 '카페 알롱제'를 시켰다. 님므에는 호텔 경영대님므 대학과 간호대학꺄흐므 대학까지 있어서 세계 각국의 학생들이 많아 북적거리는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우리는 원형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 투우 축제의 개막을 알리는 공연을 관람한 뒤, 바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처럼 한 곳에서 거나하게 마시고 가는 것이 아니고 여러 바를 돌아다니며 한 잔씩 마셨다. 맥주 한 잔 마시는 것이고 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취할 일이 없을 텐데도, 밤이 깊어지자 취한 애들 몇 명이 사고를 쳤다. 몇 명은 벌써 헌병대에게 끌려가 영창으로 직행한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부대원들은 주말 외출을 나오면 기차를 타고 몽뺄리에로 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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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망중한, 몽뻴리에

 

유일이와 목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가라오케 바에 들어갔다. 탁 트인 무대 위에 올라가 한 명이든 그룹이든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이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이들은 노래를 잘 부르는 것에 개의치 않고 즐겼다.

 

칼비 공수 연대의 한국인들이 일과 시간 후나 주말에 고공낙하를 즐기며 알차게 시간을 보내는 것에 영감을 받아, 나는 일과 후에 부대에서 실시하는 무료 잠수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불어 공부를 위해 샹송을 연습했었다. 혼자 있을 때면 샹송을 흥얼거리며 좋은 문장을 외웠다. 그렇게 몇 곡 부를 줄 알았다.

 

이왕에 배운 거, 사람들 앞에서 불러보지 못하면 아무 의미 없을 터! 용기를 얻어 샹송 가수 Florent Pagny 'Bienvenu chez moi(우리 집에 온 것을 환영해)' 조지 마이클의 ‘Faith’를 불렀다축제 분위기 탓인지정말 잘한 것인지, 샹송과 팝송 두 곡을 실수 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 노래가 끝났을 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어색하던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고 주변의 일반인들이 아는 체를 해왔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금방 친해졌다.

 

"외인부대원이 여기서 유니폼 입고 노래 부른 건 네가 처음이야!"

 

자주 오는지 젊은 친구 하나가 엄지를 치켜 세웠다. 환호에 괜히 우쭐해지면서도 머쓱해졌다.

 

"선배 오지랖이 대단하네. 졌다 졌어!"

 

유일이 혀를 내둘렀다. 조용하던 내가 그렇게 끼를 발산할 거라곤 생각못한 눈치였다.

 

자리에서 벗어나 부대로 복귀하다가 은근히 분위기 있는 바를 발견했다. 길가에 있었기 때문에 눈에 잘 띄었지만 간판이 작았던 탓에 보지 못했던 것이, 대부분 불이 꺼진 덕에 금방 눈에 띄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에 들어섰다다른 외인부대원들이 있어서 오래 머무르지 않고 나왔지만 다른 곳과는 분위기가 달랐. 이런 곳을 아메리칸 바라고 불렀고 맥주 값은 다를 바 없었지만 샴페인을 개인 룸 같은 곳에서 마실 수 있었다. 가격은 6만원 정도로 비싸지 않아서, 다음에 한 번 와 봐야지 생각하며 부대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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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애묘, 40대를 위한 딴지미팅 목적으로 가입! 2018년 초 2개월간 탈퇴 후 재가입. 딴지 뇐네.
파뤼 거주
북아프리카 자주 출몰.
50 넘겨 꿈과 희망 잃은 독거노인!
잘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