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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된 헨리. 그는 아버지 헨리 7세의 계승자로, 헨리 8세가 되었다. 핍박받던 아라곤의 캐서린도 기사님이 제발 자기를 구원해주기만을 바랄 수밖에... 그러나 일의 순서가 있었다.

 

왕이 미혼이다. 그리고 젊다. 유럽 여기저기서 영국에 혼담이 왔다. 청년왕은 어찌 된 일인지 혼담을 모조리 거절했다. 당연히 캐서린 때문이었고, 이 사실을 아는 캐서린의 가슴도 애가 타는 건 인지상정. 드디어 새로운 국왕을 모시게 된 신하들은 눈치를 챈다.

 

"폐하의 마음은 혀, 형수님에게...?"

 

왜 눈치를 채게 됐을까.

 

그야 눈치를 봤기 때문이다.

 

왜 눈치를 봤을까.

 

헨리 8세가 기대만큼 순한 어린애가 아니어서다.

 

부왕 헨리 7세는 두 명의 얍삽이 캐릭터를 휘하에 두고 있었다. 아더왕에게 원탁의 기사가 있다면 헨리 7세에게는 돈 잘 세는 놈들이 있었다.

 

에드먼드 더들리와 리처드 앰프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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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7세와  리처드 엠프슨 ,에드먼드 더들리
Henry VII along with Richard Empson(minister) and Edmund Dudley(minister)
 

두 사람은 악명높은 세금 징수관이었다. 수전노 왕인 헨리 7세에게는 그야말로 좌의정과 우의정이었다. 가혹하게 세금을 짜내는 데 전문가다 보니 백성들에게 인기가 형편없었다. 자기들도 개인적으로 배가 터지게 해 먹었음은 당연지사다.

 

이게 헨리 7세가 사람을 쓰는 방식이었다. 충성의 대가로 이익을 공유하게끔 눈을 감아준다. 그러면 더욱 충성하게 되고, 나중에는 임금을 사랑하게 된다. 이해는 가지만 음습하고 끈적하다. 신왕 헨리 8세는 이런 이미지를 탈피하는 걸 넘어, 처단하고 싶었다.

 

젊은 임금은 더들리와 앰프슨을 체포했다.

 

"네 이놈들 썩 물렀거라! 내가! 임금님의! 충신인데!"

 

"새 임금님이 아니라는데요. 그리고 투어를 시켜드린답니다."

 

"... 웬 투어?"

 

"런던 시내 투어요."

 

헨리 8세는 두 사람을 런던 시내에 조리돌림 했다. 시민들에게야 신나는 이벤트였다. 그리고 화끈하게 공개 처형해 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가 총애하던 사람들인데... 쓸모가 전혀 없었을까? 괜찮은 실무능력과 지식이 있었고, 당장 대체할 사람도 없었다.

 

이때 신중한 왕이라면 적당한 취조와 압박으로 비리로 축재한 재산을 환수하고 당분간은 일을 시켰을 것이다. 적어도 인수인계가 완전히 이루어질 때까지는 살려두는 편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신나고 스펙터클하지 않다.

 

헨리 8세는 기질 자체가 연예인이었다. 탐관오리의 목이 떨어지는 시원한 쇼의 흥행력을 외면할 성격이 못됐다. 그는 화려한 치장을 하고 백성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백성들은 드디어 왕 다운 왕이 나셨다고 좋아했다. 이제는 궁정 문화의 시대, 가십과 스캔들의 시대가 영국에서도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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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하들은 깨달았다.

 

이 왕은, 사람의 목을 얼마든지 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서 기어야 하는 녀석이었던 거다.

 

헨리 8세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날라리 왕이었다. 백성들은 열광했다. 왕이면 왕 답게 호방해야지 말야!

 

"왜 그 선왕께서는 맨날 밤새워서 돈만 세는 게 참... 쪼잔해 보이고 외국 보기에는 좀 쪽팔리긴 했어 그치?"

 

"마! 유럽 대륙 놈들 보이나! 우리 잉글리시도 놀 때는 뻑적지근하게 놀 줄 안다 이 말이야! 대륙 느그들만 궁정 문화 있고 유행 있나. 우리 헨리 임금님아 화끈하게 노는 거 안 보이나?"

 

"마 이게 영국 싸나 아이가!"

 

헨리 8세는 건장한 체격에 놀 줄 아는 사내였다. 너무 잘 놀아서 탈이지... 얼마나 사냥을 좋아했는지, 하루에 열 필의 말을 갈아탈 정도였다. 본인도 이걸 자랑스러워했다. 거꾸로 말하면, 사냥하는 날엔 정무를 보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헨리 8세의 신체는 근육이 잘 잡혀있었다. 베네치아 대사는 헨리 8세의 다리 근육이 프랑스 왕인 프랑수아 1세보다 잘 잡혀있다는 아첨을 했다. 이 말에 헨리는 대만족해서 일기에 쓸 정도였다.

 

"베네치아 대사가 그러는데 내 다리가 프랑수아 띱대보다 더 딴딴하다고 해따... 헤헤..."

 

물론 무역 국가인 베네치아의 프랑스 대사는 프랑수아의 다리가 헨리보다 땡땡하다고 했다. 프랑수아도 입이 귀에 걸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라몽 그렇지와 어드 스왐나라 추왕넘이...

 

당연히 베네치아 정부는 두 젊은 왕의 정체를 쉽게 정리했다.

 

"얘네... 걍 둘 다 애들이다."

 

헨리 8세는 매일 파뤼피플~!을 외치며 놀아제꼈다. 파티의 주인공은 당연히 왕 자신이었다. 왕이 연극 연기나 총쏘기라도 할라치면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지는, 한마디로 자의식 충만 페스티벌이었다. 등장할 때도 천장에서 내려오면서 나타나질 않나, 평민으로 분장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내가 잉글랜드의 왕이다! 하면서 등장하질 않나...

 

물론 사람들은 처음부터 헨리인 줄 다 알고 있었지만 속아줘야지 어쩌겠는가?

 

"이렇게 잘생긴 평민이 있었다니... 아아 그대는 누구인가?"

 

“그렇게 감쪽같이 연기를 하시다니 폐하 미워!”

 

사람들이 속는 척 속아준 줄 몰랐던 유일한 인물, 그는 바로 헨리 8세였다. 그리고 그는 이제 캐서린과 결혼을 해야 했다. 그러나 과부가 된 형수와 결혼하고 싶다고 먼저 말할 수 있겠는가?

 

영국 싸나가 쪽팔리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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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추노>에 보면 좌의정이 이런 말을 한다.

 

"어명이 아니라 어심을 읽으시게."

 

헨리의 욕망을 알게 된 신하들은 알아서 이쁜 짓을 했다.

 

"영국의 국익... 그러니까 스페인과의 동맹 말입니다... 왕께서 국익을 위해 과부가 된 캐서린 전 왕비님과 제발 결혼을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무울론! 선량하고 양심적인 전하께서는! 돌아가신 형님에 대해 양심의 가책이 있을 수도 있으시겠지마는! 백성을 사랑하신다면 보다 대국적인 선택을 하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헨리의 반응은?

 

"뭐... 국익을 위해서라면..."

 

판은 깔렸다. 여기서 그 유명한 20주 논쟁이 벌어진다. 헨리의 형 아서는 몸이 약해서 평소에 골골댔다. 아서와 캐서린의 결혼생활은 총 20주인데, 이 20주 동안 아서와 캐서린이 성관계를 했느냐, 안 했느냐가 유럽의 이슈였다.

 

왜? 당시 가톨릭 교리에서는 결혼식을 치르더라도 부부가 육체관계를 맺지 않으면 완전히 혼인하지 않은 것으로 쳤다. 왜냐하면 혼례와 같은 예식은 인간들끼리의 예의이고, 부부관계는 2세를 생산하기 위한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20주 동안 관계를 했는가, 아닌가? 아무도 본 사람은 없다. 캐서린은 당연히 자신은 육체적으로 처녀라고 주장했다. 스페인에서도 우리 캐서린 공주님은 쳐녀라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과연 부부가 20주 동안 한 번도 관계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을까?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 결론은 캐서린과 결혼할 헨리 8세가 첫날밤을 치르고 나서

 

'순결했던 거 맞던데?'

 

라고 증언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말하지 않을 가능성은 없었다. 자기가 원하는 결혼인데 뭐.

 

그러나 입증 절차는 있어야 했다. 왜냐하면 결국 둘의 결혼을 허락하는 것은 교황청의 몫이 되었기에. 결국은 여성 인력들이 캐서린의 몸을 검사해서 공식적으로 처녀임을 확인한 보고서가 교황청에 가야 하는데, 글세. 영국 땅에서 이뤄진 검사가 영국 왕의 뜻을 거스를 수 있었을까?

 

캐서린이 동정이길 바라는 쪽은 교황도 마찬가지였다. 이걸로 신임 영국 왕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었다. 미리 빚을 지워둬서 나쁠 게 뭐 있는가. 교황도 정치적으로는 세속 군주다. 정치란 빚을 지우는 작업이다.

 

교황은 헨리 8세의 결혼을 공식적으로 허가했다, 헨리 8세는 교황님께 충성을 맹세했다. 물론 이 시점에는 진심이기도 했다. 헨리는 처음에는 교황청과 사이가 좋았고 교황 성하를 진심으로 숭앙했다. 이 사람과 마르틴 루터의 생애가 시대적으로 겹친다. 마르틴 루터가 그 유명한 95개조 반박문을 쓰고 우리 교황님이 곤란해졌을 때, 헨리는 직접 루터에 대한 재반박문을 써 자랑스럽게 공표하기도 했다.

 

반박문의 수준은... 음...

 

전문 신학자이자 위대한 종교혁명가인 마르틴 루터에게 한 입 거리 간식 수준이었다. 루터는 '키배'에서 헨리를 처참하게 박살 냈다. 말문이 막힌 헨리는 몸만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교황님은 헨리를 좋아하셨다. 그래서 훗날, 1521년에는 ‘신앙의 옹호자’라는 칭호까지 하사했으니 말이다.

 

사악한 용으로부터, 운명의 불행으로부터 미녀를 구원하는 게르만 기사. 헨리 8세는 형수에게도 스스로에게도 도취했다. 그런 그에게 형수와의 결혼은 판타지의 실현이자 젊음의 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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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년, 캐서린은 24살의 나이로 18살의 헨리 8세와 결혼식을 올리고 명실상부한 영국의 여왕이 되었다. 스페인에서도 축제가 벌어졌다.

 

“아들은 애비와 달리 개념이 있구만!”

 

영국의 대소신료들도 웃음꽃이 피었다.

 

"허허 이제 젊은 임금님한테 목 날아갈 걱정은 당분간 안 해도 되겠구먼~"

 

백성들도 잔칫날이긴 마찬가지.

 

"와 이제 스페인이랑 전쟁 안 해도 된대!"

 

"프랑스놈들이 덤비면 스페인이 육지에서 때려줄 거라구!:"

 

"그뿐이야? 캐서린 여왕님한테 딸려 온 지참금을 안 갚아도 되니깐 추가로 세금폭탄을 맞을 일도 없어졌다구!"

 

가장 행복하고 감격한 건 캐서린이었다.

 

나의 구원자, 헨리 8세. 그와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그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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