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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터키탕에 열광했다. 도심의 상업지구부터 시작해서 관광호텔에까지 진출했다. 분명 '목욕탕'이란 간판을 내걸었지만, 그 안에서 행해지는 일들은 성매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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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변종'이 가지는 파괴력이다. 사창가나 유흥가는 경찰이나 행정관청이 단속하기 용이하다. 실제로 업소와 행정관청 사이에서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고, 적당한 경계선을 그어놓고 서로의 존재를 인지했다. 적당한 선에서 국가가 개입하고, 일정 수준 이상 넘는 걸 국가가 통제할 수 있었다. ‘관리와 통제’가 가능했다는 거다. (소위 말하는 ‘관 작업’이 들어간 결과라 말할 수도 있겠다)

 

또 사창가의 경우에는 단속 지역을 한정할 수 있다. 한 군데 모여 있기에 관리 혹은 검거가 쉬운 편이지만 터키탕이나 퇴폐 이발소와 같이 변형된 형태의 성매매는 사창가가 아니라 유흥가, 심지어 주택가에도 퍼져있다. 단속하기가 상당히 힘들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 터키탕이 등장한 거다. 

 

 

이름만 바뀐 터키탕

 

일본이 '도루코탕'을 버리고, '소프란도'란 이름을 쓴 지 10여 년. 한국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업주들에게는 처음 받아들인 이름이 ‘터키탕’이었기에 터키탕을 계속 사용했다. 이름이 가지는 장점도 포기할 수 없었다. ‘목욕탕’을 빙자한 성매매 형태였기에 변명거리를 만들 수 있었다. (터키탕은 1996년까지 '유흥업태'로 분류됐다. 유흥업소였다는 소리다)

 

이 터키탕의 이름이 바뀌게 된 이유는 뭘까? 일본과 마찬가지로 ‘외교적 압박’이었다. 일본의 경우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가 진정을 넣기 전후로 터키 외교관들의 압박이 있었다. ‘소프란도’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개명이 된 상황에서도 아직 간판을 바꾸지 않았거나 계속 ‘도루코탕’이란 이름을 고집하던 업소를 접한 터키 외교관들이 일본 정부에 공식으로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일본 보건후생성은 외교마찰을 겪는 걸 피하길 원했고, 일본에선 도루코탕이란 게 사라졌다.

 

‘도루코탕’이란 이름이 일본에서 없어지던 순간, 한국에는 본격적으로 ‘터키탕’이란 이름이 퍼져나갔다. 터키 외교가의 최고 현안은 동북아시아의 두 나라에서 ‘터키탕’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게 하는 게 돼버렸다.

 

터키의 최대 외교현안이 사라진 건 1996년이었다. 주한 터키대사였던 데리야 딩겔테페가 국무총리였던 이수성에게 강력히 항의했다.

 

“한국의 터키탕은 사실상 매춘행위를 하는 장소인데, 이런 목욕탕은 터키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만약 한국식 목욕탕이 터키에 있고 그곳이 ‘한국의 집’으로 불린다면 한국인들은 대단히 실망할 것이다.”

 

데리야 딩겔테페 대사는 격정적으로 불만을 토해냈다(한국의 ‘터키탕’이란 곳이 매춘행위를 하는 곳이란 걸 터키 국민이 알면 많이 섭섭할 거라는 발언도 곁들였다). 맞는 말이다. 외국의 어딘가에서 매춘을 하는 목욕탕을 ‘한국탕’이라 부른다면 우리는 분노할 것이다. 

 

1996년 8월 18일, 이수성 총리는 터키 대사의 요구를 수용해 보건복지부에 명칭 변경을 지시했다. 1951년 4월 탄생한 ‘터키탕’이란 이름이 공식적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보건복지부는 터키탕이란 이름을 ‘증기탕’이란 이름으로 바꾸고, 증기탕 내에 이성(異性) 입욕보조자를 둘 수 없도록 공중위생법 시행규칙을 개정한다. 그리고 2년이 경과된 1998년, ‘증기탕’을 유흥업태에서 퇴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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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불법이 된 이후였다. 이성 입욕보조자를 두는 것이 불법이 됐으니 정부는 불법행위를 막고, 불법을 저지른 이는 단속하고 처벌하면 되었다. 아마 정부에게 강력한 ‘단속의지’가 있었다면 없앨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증기탕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부에게 단속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단속의지 이전에 정부 부처 내에서부터 다른 의견을 내놨다.

 

주무부처였던 보건복지부는 1998년부터 단속의지를 보였지만, 문화관광부는 아니었다.

 

“국가 행사를 치르기 위해서는 숙박 시설이 필요하다. 당장 증기탕을 없애면 호텔들 보고 다 죽으란 소리가 아닌가? 잠깐 단속을 유예하든가... 아니, 증기탕을 허용하면 안 되겠는가?”

 

증기탕은 전국 관광호텔 120여 곳의 주요수입원이었다. '호텔'이란 이름을 붙이고 있지만 시설 면에 있어서는 최신 모텔보다 좋지 않은 관광호텔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카지노 영업권과 증기탕이 있어서였다. ‘숙박업소’로서의 경쟁력이 없는 관광호텔은 카지노 영업권과 증기탕 영업을 할 수 없게 되자 운영이 어려워졌다.

 

2000년 10월의 아셈(ASEM :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과 2002년 월드컵이 목전이었다. 정부는 숙박업소를 확보해야 했다. 이렇게 정부부처가 의견충돌을 벌이는 동안 증기탕은 ‘마사지 업소’란 탈을 쓰고 불법영업을 계속해나갔다.

 

증기탕은 ‘스포츠 마사지 업소’라는 새로운 간판을 달기 시작했다. 단속에 대비해 입구에 CCTV를 설치하고, 정문을 두꺼운 철문이나 밖이 보이지 않는 시트지로 막아놓았다.

 

거리에 ‘안마방’, ‘건전마사지방’ 같은 이름의 터키탕의 자손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맹인 안마사를 고용해 ‘마사지 업소’란 탈을 쓰고 영업을 계속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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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특별법의 탄생

 

2000년 9월 19일 군산 대명동

2002년 1월 19일 군산 개복동

 

군산 대명동은 ‘쉬파리 골목’이라 불리던 집창촌이였다.

 

2000년, 이곳에 불이 나 여성 5명이 사망했다. 피해자들은 모두 10대에 가출 했다가 포주에게 납치 돼 성매매를 강요받았다.

 

충격적인 것은 화재가 발생한 곳에서 100미터 거리에 파출소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경찰이 ‘원칙대로’ 출동했다면 이들은 구출될 수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포주에게 뇌물을 받고 묵인했다.

 

대명동 화재 참사 이후 2년 후, 이번에는 대명동 인근에 있는 개복동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유흥주점에서 불이 나 14명의 여성이 사망했다. 이들 역시 인신매매 피해자였고, 성매매를 강요받았다.

 

경찰과의 관계도 대명동 화재 참사와 너무도 비슷했다. 아니, 더 심했다. 유흥주점에서 30미터 거리에 파출소가 있었지만 경찰들은 외면했다. 포주들의 뇌물을 받았던 거다.

 

군산에서 있던 두 번의 참사에 이어 미 국무부의 인신매매 보고서가 나왔다. 이 보고서에서 따르면 한국은 인신매매가 가장 심한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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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론이 들끓었다. 유명무실했던 ‘윤락행위등방지법’을 대체할 새로운 성매매 규제 법안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그 결과로 나온 게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특별법’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다(이를 묶어서 '성매매특별법'이라 한다).

 

윤락행위등방지법과 성매매특별법의 가장 큰 차이점은 두 가지다.

 

성행위의 범위 / 성매매의 알선 범위

 

윤락행위등방지법에서 규정하는 ‘윤락행위’는 오로지 성행위만을 의미했지만, 성매매특별법은 유사 성행위도 대상으로 삼았다. '대딸방' '키스방' 같은 변종 성매매 업소를 단속할 근거가 생겼다.

 

성매매 알선의 범위도 확대됐다. 성매매 알선, 권유 뿐만 아니라 성매매를 하는 장소와 건물 및 토지를 제공하는 행위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된다. 성매매에 연관된 모든 행위가 불법이 된 것이다.

 

이 성매매특별법에 대해서는 지금도 뜨거운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찬성론자: 성매매는 돈을 매개로 한 지배관계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는 성적 자기결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성판매자의 인격적 자율성을 침해하는 문제다.

 

반대론자: 착취나 강요가 없는 성인들 간의 성매매는 사생활 영역이다. 국가가 개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거다.

 

명분으로 보자면 당연히 성매매를 금지하는 게 옳다. 사회의 가치판단도 '필요악'에서 '절대악'으로 무게중심이 옮아가는 중이다. 

 

다만 아쉬운 건 애초 취지와는 반대로 성매매특별법 도입 이후 성매매 규제와 단속이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성매매에 대한 집중적인 단속이 이루어지자 업소들은 다른 형태(변종 성매매 업소)로 진화했다. 이에 따라 단속과 규제는 더 어려워졌고, 성구매자들은 더 쉽게 성을 살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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