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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1909년 10월 26일, 항일의병장이자 사상가인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 하얼빈 의거를 성공시킵니다.  

 

사용된 권총은 벨기에 FN사가 제작한 "브라우닝 M1900"으로 이 총은 일본으로 넘겨져 법정에 증거로 제출되었으나, 이후 그 행방을 알 수 없어 실물이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본 시리즈는 안중근 의사 서거 110주년을 맞아, 그 총의 행방 및 복원을 위해 고군부투한 이야기를 담은 프로젝트로 매주 연재 예정입니다.       

 

 

 

“쓸데없는 고퀄리티.”

 

내가 지켜본 이 ‘바닥’ 사람들의 디폴트 값이다. 분야가 어떻든 간에 내가 ‘이쪽 사람들’이라고 판단내린 사람들이 보여준 모습들이 그러했다. 지난 1년 반 동안 이들을 지켜보면서 느낀 한 가지는, 

 

“나는 일반인이라 다행이다.”

 

였다. 이 프로젝트 기간 동안 주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그 단편만 말해보겠다.  

 

“1900년 당시의 기술력으로 지금처럼 블루잉 처리를 하지 않았어.”

 

“요즘 총들은 대부분 세라코트(Cerakote)잖아?”

 

“그렇지. 도료 뿌린 다음에 구워버리지. 옛날 총 재현하겠다고 블루잉 하는데, 요즘 복각하거나 모델건에서 사용하는 블루잉 하고는 달라.”

 

“1900년에 FN 社에서는 어떤 방식을 썼는데?”

 

“러스트(RUST) 블루잉!”

 

“100년 전 쓰던 방식인데 재현 가능해?”

 

“자료 찾았어.”

 

“약품은?”

 

“이번에 200만원어치 주문했어.”

 

“필요한 건?”

 

“없어. 스틸 종류별로 맞춰서 시험해 봐야지.”

 

일반인들이라면,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를 거다. 쉽게 설명하자면, 총은 쇠로 만든다. 쇠는 녹이 슬기 마련이다. 이 녹이 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먼저 녹슬게 하는 게 블루잉(Bluing)이다. 요즘에 나오는 총들은 세라코트라고 해서 도료를 뿌린 뒤에 ‘구워’ 버린다. 오븐에 넣고 돌린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거다. 

 

그럼 블루잉은 어떻게 하는 건가? 간단히 말해서 화학약품에 넣어서 사화피막을 강제적으로 만들어 주는 거다. 총을 보면, 은은한 푸른빛이 감도는 검은색이 이렇게 만들어 지는 거다. 이걸 ‘건 블루’라고 부른다(총에 관심이 있다면 ‘건 블루’란 말을 들어봤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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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우리 팀의 환장 형은 1900년에 FN社 가 쓴 러스트 블루잉 방식을 찾아내서 이 방식으로 블루잉을 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했다(본인이 블루잉 담당이기도 하다).

 

“기왕 복각하는 건데, 최대한 똑같이 하자.”

 

...쓸데없는 고퀄리티다. 지난 1년 반이 그러했다. 

 

 

0.

 

결론부터 말하고 시작하겠다. 

 

“FN 社 가 생산한 실총 M1900을 구했다.”

 

별로 감흥은 없었다. 이 문제로 속 끓인 시간 때문인지,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다. 환장형은 털썩 주저 앉아 긴 한숨을 뿜어내더니 ‘담배 있냐?’라는 말로 에둘러 그 동안의 속내를 내비쳤고, 우리 대표는 ‘통관! 배송!’을 외치면서 다음 단계를 말했다. 기쁨은 오히려 주변인들에게서 나왔다.  

 

노스캐롤라이나 州 그린즈버러에서 총기상을 하고 있는 딜러에게 ‘딜러 확인증’을 받을 때 딜러의 반응이 가장 드라마틱했다. 

 

“이제까지 총포상(건샾)을 하면서 M1900을 실제로 만져 본 건 처음이다. 게다가 상태가 너무 좋다.

실사격을 해도 전혀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런 영광을 줘서 고맙다.”

 

(‘영광honor’란 단어가 미국에선 일상적인 단어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이 총의 행선지가 대한민국이란 말에, 총기 딜러는 더 놀라워했다.

 

“나도 한국에서 근무했었다.”

 

주한미군이었다. 내친 김에 한국 전쟁기념관에 이 총이 들어갈 것이라 말하자 더 놀라워했다.

 

“전쟁기념관을 가봤다. 거기에 기증하는 건가?”

 

영광이란 말이 길게 이어졌다. 

 

 

1.

 

FN 社의 M1900을 구하자는 말이 나왔을 때 우리 팀의 머리 속은 복잡하게 굴러갔다. 

 

“생산량이 70만 정이 넘어가니까 작정하고 찾아보면 나올 거야.”

 

“총기 옥션에서 간간히 등장하던데?”

 

“문제는 관리상태지.”

 

110년이나 된 총이다. 그 관리 상태가 어떨지에 대해 장담할 수 없다. 아니, 관리상태가 좋아도 문제였다. 그 가격을 어떻게 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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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위키피디아

 

이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돈’이었다. 총 값, 복각 비용, 행정비용, 다큐 촬영 비용 등등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고 해야 할까? 

 

여기에 생각지도 못한 미국 실사격 촬영까지 결정되면서 우리가 처음 책정했던 예산은 ‘상상속의 문서’가 됐다. 프로젝트 초반에는 돈 걱정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이쪽 바닥에서의 ‘짬밥’들이 있어서 2~3군데의 스폰서를 타전했고, 실제로 두 군데 정도에서 스폰서 제안이 들어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폰서는 성사 직전에 부결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진핑 개새끼!!”

 

미중 무역 분쟁 덕분에 마케팅 프로젝트가 올 스톱이 됐고, 그 결과 미국 본사에서 마케팅을 포함한 모든 홍보 및 사회공헌 사업을 정지시켜 버렸던 거다(구체적인 업체명은 언급하지 않겠다). 

 

재미난 건 스폰서가 나가떨어지고, 우리 자체 예산으로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팀원들의 반응이었다. 

 

“해야지”

 

언제고 술자리에서 팀원들에게 물어봤다. 

 

“우리 이거 왜 하지?”

 

우문이라고 해야 할까?  너무 교과서적인 답변들이 튀어나왔다.

 

“재밌잖아.”

 

“우리가 처음이잖아.”

 

(민간인이 총을 들여와 기증을 한다는 것. M1900을 가지고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재현한다는 것. 이 총을 가지고 CNC로 복각해서 기증한다는 것. 이 모든 건 대한민국에서 처음 시도하는 일이다. 처음 시도이기에 어려웠던 건지, 아니면 우리가 방법을 몰라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개인적으로 다시 하라면 못할 거 같다)

 

그 말 그대로였다. 재미있었고, 처음 시도하는 일이기에 힘닿는 데까지 가보자란 생각을 했다. 나중에 우리를 촬영하던 감독이 한 마디를 던졌다.

 

“돈 벌어다 총기 들여오고 복각하는데 쏟아 붓는 게 아니라, 쏟아 붓기 위해 돈을 버는 거 같다.”

 

그때도 똑같은 말을 했다.

 

“재밌잖아.”

 

“우리가 처음이잖아.”

 

 

2.

 

총기 옥션을 뒤지고, 건 브로커와 접촉하는 3개월 동안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제 눈 감고도 분해결합을 할 수 있을 거 같다.”

 

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환장 형이 내게 한 말이다. 복각을 위해 설계도를 보고, M1900과 관련된 자료와 영상을 확인하고, 총기 옥션을 뒤지는 게 일상이었다. 최소한의 생계 활동. 아니, 총을 사고, 복각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총은 넘쳐 났다. 블랙 프라이데이 때에 어지간한 권총은 300~700백 달러 수준에 팔리는 걸 봤다(우리나라 K-5의 민수용 버전인 라이온 하트도 상당히 ‘싼’ 가격에 팔리는 것도 봤다). 신품 총기는 차고 넘쳤지만, M1900은 보이지 않았다. 

 

국내 모형총기 유통사에서 건 브로커를 통해 총기를 구해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일을 훨씬 수월하게 진행 되지만, 문제는 가격대였다. 

 

“상태 좋은 녀석을 구하려면, 1만 달러부터 시작해야 할 겁니다.”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 걸 보면 지금도 신기하다. 나만 빼고 다들 부자인 거 같았다(그건 아니지만). 

 

당시 우리가 구할 수 있고, 만날 수 있고, 접촉할 수 있는 모든 루트의 업체와 사람들을 만났다. 한국을 대표하는 모형업체 쪽부터 시작해서, 민간의 실총 사격장, 건 브로커, 방산지정업체는 물론 미국에 살고 있는 대학교 시절의 동창들까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끌어왔다. 

 

M1900은 어떻게든 작정하면 더 ‘쉽게’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M1900 앞에 붙은 문구였다.

 

“상태가 괜찮은 M1900"

 

이때쯤 우리들은 내심 말은 안했지만, M1900을 확보한다면 ‘하얼빈’을 재현하겠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다. 이제 거의 포기할까를 생각하던 그때, 미국에서 연락이 왔다.

 

“그 총 구했다.”

 

프로젝트 ‘잃어버린 총을 찾아서’의 퇴로가 차단되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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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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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를 다큐멘터리로 제작중입니다. 2020년 3월 공개 예정입니다. 펀딩 목표 금액 1천만원으로 다큐멘터리 ‘잃어버린 총을 찾아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하얼빈 의거 장면을 촬영하려 합니다. 

 

프로젝트 잃어버린 총을 찾아서 펀딩(링크) 

 

안중근 의사의 사격장면 재현을 위한 물적 토대는 크게 3가지로, M1900 권총과 32ACP 탄, 그리고 발리스틱 젤라틴입니다. 총은 미국 총기 옥션에서 낙찰받아 현재 배송 프로세스를 밟는 중입니다. 펀딩은 32ACP 탄과 당시 안중근 의사가 사용한 ‘십자가 흠집’이 있는 탄의 위력 실험을 위한 발리스틱 젤라틴 구매 비용, 그리고 촬영에 들어갈 기자재 대여와 인건비로 사용 예정입니다.

 

총기 사격 실험에 고속촬영 장비와 인력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아울러 고속촬영을 위한 조명 세팅에도 비용이 들어갑니다.

 

110년 전 하얼빈 의거 당시 안중근 의사가 어떤 악조건 속에서 의거에 성공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했는지를 실물 총을 가지고 실험할 예정입니다.

 

현재 군부대의 협조를 얻어 국내 재현 사격을 추진중이며, 만약 국내사격이 여건상 어렵다면 미국 현지에 섭외한 사격장에서 촬영을 진행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