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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우리 동네 코스닭 이야기


2000.6.07.수요일
딴지 편집장 김도균

  
우리 동네에 첨 양계 농장이 들어 선 건 88년도의 일이었다. 그 당시 울 동네의 일반적인 농장형태는 소농장이었는데, 그런 통념을 깨고 대신 양계농장이 들어선 건 동네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충분한 사건이었다. 대마불사를 신조로 삼는 농장업계에선 무조건 덩치가 큰 가축을 기르는 걸 당연히 여기고 있었던 때에, 주먹만한 병아리을 모아 양계 농장을 만든다는 건 획기적인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닭 농장은 예전의 재래종 닭 대신 새로운 품종의 닭을 들여와 기르기 시작했는데 이를 코스닭이라 불렀다. 코스닭은 최첨단 바이오 유전공학과 최고의 컴퓨터 기술로 만들어진 인공생산 품종으로, 미국산 나스닭의 변형품종이었다. 

첨단기술로 만들어진 코스닭은 90년 후반에 들면서 한강 이남 태해란지역을 중심으로 대량사육되었는데, 독수리 같은 날개, 매의 부리, 칠면조의 가슴살을 가진 뛰어난 종자로 알려져 높은 호평을 받았다. 






 내가 그 유명한 코스닭이란 말이쥐..


코스닭은 아직 채 다 크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 울면 멀리 부산 앞바다까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목청이 우렁찼다. 또한 다른 닭들은 하루에 겨우 8시간 정도를 울어대고 닭장에서 편히 자는 데 비해, 코스닭은 굳이 옥상에 야전침대를 놓고 자면서 하루에 16시간 이상씩 울어대는 비상한 체력을 보유한 슈퍼치킨이었다. 

거기다 바다 건너 일본의 대표적인 양계업자인 재일동포 손정이와 미국의 통닭집 전화번호 안내업을 하던 아후가 떼돈을 벌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너도나도 대박을 꿈꾸며 코스닭 사육에 뛰어 들게 되었다. 

이러한 열풍에다 코스닭의 원조격인 미국의 나스닭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도매업자들은 코스닭을 입도선매하기 위해 돈다발을 들고 닭장 앞에서 밤샘을 하면서 사재기에 나섰다. 특히나 코스닭 중에서도 넷, 텔, 통 자 돌림의 닭들은 제대루 보지도 않고 무조건 사고 보는 이른바 묻지마 구매까지 성행했으니 가히 코스닭 전성시대라 불릴 만했다. 

허나, 햇볕이 강하면 그만큼 그늘도 깊은 법..

코스닭의 가격이 치솟으면서, 우리 동네 축산업을 이끌던 소들은 헐값으로 취급당했고, 생후 1-2년밖에 되지 않은 영계들이 웬만한 소값을 뛰어 넘는 사태가 이어지자 소농장엔 밤마다 한숨에 방바닥 주저앉는 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소농장측은 자신들이 기르는 대표적인 소품종인 거래소는 지금까지 동네 목장의 대표적인 가축으로 인정받아 왔고, 덩치로만 봐도 코스닭에 결코 떨어질 까닭이 없는데도 닭값에 비해 낮은 가격을 받는 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거래소`중 덩치가 큰 헤비급 황소인 삼숑이나 표철 등이 자신보다 무게가 1/100도 안되는 걸드뱅꾸`나 `새룸같은 쬐금만 영계들에 가격이 밀리는 건 똥솟음칠 일이었으리라..

허나 거래소 가격폭락은 코스닭 가격상승에 따른 역작용에 의한 건 아니었다. 자신들 스스로 저지른 잘못된 행동때문에 일어난 사태였다는 게 좀 더 정확한 얘기였다.

지금까지 거래소농장주들은 거래소들의 커다란 덩치만 믿고 무리한 새끼치기와 몸통 불리기에만 열중했고, 이에 따라 거래소들의 정력과 건강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어 갔다. 새끼를 늘리기 위해 알토란같은 정액을 다 뽑아내고, 다른 소들보다 더 빨리 큰 몸집을 갖기 위해 허구헌날 수돗물만 빨아 댔으니 몸이 성할 리 만무할 일이었다. 








무리한 덩치불리기로  
휴유증에 시달리는
대오 소..


결국 이러한 덩치불리기를 견디다 못한 끼아 소와 대오 소등이 무릎연골 이상으로 폐사상태에 몰리게 되었고, 전반적으로 헤비급 재벌소들이 영양부실 상태에 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소농장이 사태업자 암에푸에 넘어가는 치욕적인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이런 일들이 터지자 도매업자들은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거래소의 구매를 꺼리게 되었고, 이들은 발길은 돌려 작지만 알찬 코스닭 구매에 나서게 된 것이었다. 다 자업자득인 셈이었다. 

허나, 2000년에 들어 서면서, 코스닭 가격도 거래소와 비슷한 가격 폭락사태을 맞게 되었다. 자고 일어나면 닭값이 반쪽이 되 버리는 사태가 이어지면서 닭농장도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거다. 

이러한 가격폭락은 원품종인 미국의 나스닭이 성장 홀몬의 과다 투입에 따른 부작용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아울러 코스닭 중 우량종은 극히 적고, 대부분 성장가능성이 불투명한 신세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발생했다. 또 아직 병아리 상태인 코스닭들 중 70-80% 이상이 올해 안에 폐사할 것이라는 불길한 소문과 더불어, 그간 우량닭과 불량닭을 구별할 줄 모르는 무조건 뎀볐던 거래소 출신 도매업자들의 사재기 사태가 가격폭락을 부채질한 것이었다. 







이런 자세로 코스닭은 
허구헌날 철야을 했으니..


더구나 코스닭은 수톡옵순이라는 고영양의 식물성 사료를 섭취함으로써 장시간 노동이 가능했으나, 실제로 수톡옵순이 별 영양가가 없다는 소문이 나면서 코스닭의 체력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었다. 또한 코스닭은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날개쭉지와 허리뼈가 부실해져 밤일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고, 몇몇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대표 코스닭들조차 이들이 낳은 알에 노른자가 없는 경우가 속출하는 심각한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자고 일어나면 닭값이 반토막이 되 버리는 사태가 계속되자, 코스닭의 주서식지인 태해란에는 비명횡사하는 닭들의 꼬꼬댁 곡소리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태를 지켜본 양계전문가나 도매업자들 사이엔 "코스닭은 곧 폐계의 운명을 다다를 것"이라며 부정적 의견이 속출했으나 ,  양계 정론지 <닭지일보>는 "코스닭의 가격폭락은 도매업자의 무분별한 닭 매입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이나 오히려 이번 사태는 무엇이 우량 닭인지를 판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내놓았다. 

어린 병아리들은 희망을 안고 쑤쎠대는 날개쭉지를 길게 펴며 목청껏 울어 되건만, 누가 최고의 닭으로 살아남을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는 코스닭의 주서식지 테헤란 계곡...  

어둠을 제끼고 새로운 해가 떠올라 누가 알을 쫙쫙 뽑는 튼실한 닭인지 알 수 있을 때가 오기 전까지, 병아리들은 그저 신새벽을 일깨우며 목청껏 우는 수밖에 없다.  

그저 우렁차게 우는 수 밖에.. 
꼬~~~끼오!!!  





간만에 엽기경제부로 나선 닭서리 무형문화재 33호


딴지 편집장 김도균 
(ddanziedit@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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