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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척 매뉴얼]플로베르 보바리 부인


2009.7.2.목요일



 취지


본 기사는 각종 매체에서 이루어졌던 광고 아닌 척 책 소개하기식의 서적 광고도 아니고 필자의 개성과 취향에 따라 그 평가가 천차만별인 니맘대로 서적 리뷰도 아니다.


제목에서 이미 눈치 챌 수 있듯 본 기사는 한 해 평균 독서량이 짐승만도 못한 독자라 할지라도 각종 서적에 대해 누구 앞에서건 아무 거리낌 없이 읽은 척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시키는 데 그 총체적 목적이 있는 공리주의적 텍스트라 할 수 있으며, 일종의 인문학적 데자뷰 현상을 도모하는 학구적 심령기사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생업에 지친 나머지 읽고 싶어도 책 읽을 기력과 의욕을 상실한 독자들에게, 설령 의욕이 있다 하더라도 직장 내 오랜 눈칫밥 습관으로 한 곳에 1분 이상 눈동자를 모으기 힘든 독자들에게, 그리고 어디 가서 모르는 책 얘기만 나오면 자아 한 곳에 치명상을 입는 가녀린 영혼을 소유한 독자들에게 조그마한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들어가며


채털리 부인을 시작으로 자유부인, 엠마누엘 부인, 애마부인 등을 거쳐 젖소부인에 이르기까지. 각종 서적이나 영화에 ‘부인’이라는 이름만 들어가면 마치 파블로프의 개가 침을 흘리듯 반사적으로 움찔하는 독자들 있을 줄로 안다.


그리고 문제의 보바리 부인.


어린 시절. 아무도 읽지 않는 세계문학전집이 왜 집집마다 한질씩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의아해 하던 차에 우연찮게 『채털리 부인』을 접하고서는 그제야 그 이유를 깨달은 후, 뭐 또 다른 거 없나 눈에 불을 키고 뒤졌을 때 발견하게 되는 것이 불행하게도 바로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이라 할 것이다.


아아, 보바리 부인. 제목에서부터 왠지 채털리 부인의 속편쯤은 될 것 같고, 어감 상으로는 맨 몸에 오직 바바리만을 걸친 귀부인이 거친 사내들을 상대로 종횡무진 불륜활극을 펼칠 것만 같은 강력한 예감이 든다 하겠으나 그것이 바로 비극의 시작이라 될 줄이야.


떨리는 손길로 한장 한장 넘겨가며 정독을 하는 와중에 어느새 책의 반절이 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웬일. 나올 듯 벗을 듯 하다가도 결정적 순간에는 무슨 벌새떼가 날아올랐다느니, 햇빛이 눈부셔서 차마 눈을 뜰 수 없었다느니 그야말로 남의 옆구리 위에서 널뛰기를 하는 형국의 문학적 염장질만 계속되는 것 아닌가.


그래도. 언젠가는 나오겠지, 그래도 한 번은 나와 주겠지 하며, 거의 부두교의 주술에 가까운 주문과 함께 그간의 초인적 인내와 근성을 보상받을만한 결정적 베드씬이 마지막에 한 번쯤은 장대히 펼쳐지기만을 학수고대하던 중, 끝내 주인공 보바리 부인이 죽어버리고 마는 그야말로 비극적 결말을 목도, 경험했을 때의 그 슬픔과 허무함이란.


아마 그녀의 갑작스런 죽음이 독자에게 가져다주는 배신감과 좌절감은 아내를 잃은 남편 샤를르의 절망을 넘어서면 넘어섰지 결코 부족하지는 않았으리라.


고로 내용 한 줄에 대한 학습 없이도 당 서적에 대해 충분히 읽은 척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당시의 그 아픈 상처를 떠올리며 부르르 진저리를 쳐준다거나, 증오에 찬 눈빛으로 플로베르에 대해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는 식의 트라우마적 읽은 척이라 할 것이다.


게다가 약간의 눈물을 글썽이며 그 사고 이후로 각종 고전을 기피할 수밖에 없었다는 최초의 심경고백을 덧붙일 경우, 웬만큼 독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거개는 고개를 주억거릴만한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할 것이니, 여타 다른 서적에 대한 주위의 읽은 척 요구에 대해서도 미리 원천봉쇄 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묘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순간의 위기를 모면할 수는 있겠으나 주위 사람들과의 지적 교류를 지속함에 있어서는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겠으니 웬만큼 급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시전을 삼가야 할 것이다.



 


  읽은 척 매뉴얼


1)등장인물


-엠마 보바리 : 보바리 부인. 별 생각 없이 결혼했다가 결국 파국을 맞는 비운의 여주인공.


-샤를르 보바리 : 엠마의 남편. 성실한 의사지만 그의 아내로 파멸의 덤탱이를 뒤집어쓰는 인물.


-베르트 : 보바리 부부의 딸.


-로돌프 : 보바리 부인의 첫 번째 정부. 부유한 플레이보이.


-레옹 : 보바리 부인의 두 번째 정부이자 소심남. 하지만 레옹과 보바리 부인은 로돌프가 나타나기 전에 이미 정서적으로는 서로 사랑을 느낀 사이다.


-뢰르 : 보바리 부인이 결국 파산하면서 자살까지 하는데 직접적인 원인 제공을 한 상인. 


2)내용요약


당 서적의 내용은 간단하다.


한 여성이 결혼 후, 자신의 남편으로는 채울 수 없었던 삶의 욕망들을 다른 남자를 통해 메우려다가 결국 돈도 잃고 사랑도 잃은 후 자살을 택하게 된다는 흔한 내용인 것이다. 이는 통속 소설이나 안방 드라마를 통해 빈번히 접했던 진부한 내용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좀 더 세밀한 줄거리를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중학교쯤의 교실에서 소개되는 전학생. 그는 샤를르 보바리로 성실하고 온순해 보이기는 하나 어딘가 좀 둔하고 멍청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럭저럭 학교에 적응하고 다니던 중 그는 부모의 강권에 의해 의학을 공부하게 되고, 의사면허시험에 한 번 고배를 마신 후 어렵게 합격을 함으로써 조그만 지방의 의사가 된다.


이후 또 역시 부모의 강권으로 나이도 많고 돈도 많은 과부와 첫 결혼을 하지만 그녀는 사실 나이만 많고 돈은 없는 과부라는 사실이 밝혀진 후 급작스럽게 사망한다. 그 후 다리를 다친 한 노인을 치료하기 위해 멀리 왕진을 나갔던 샤를르는 그 집 외동딸인 엠마를 사모하게 되고, 결국 그녀의 아버지에게 결혼 승낙을 얻으면서 입이 귀에 걸린다.


갈색 머리에 파란 눈의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는 엠마는 비록 소박한 농부의 딸이었지만 부르주아 가문의 자제들이 다니는 수녀원에서 자란 덕에 나름 꿈도 많고, 아는 것도 많고, 행동도 우아한 숙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는 당시 또래 소녀들이 흔히 갖는 사랑에 대한 CG적 환상을 품고 있던 터, 얼떨결에 이뤄진 샤를르와의 결혼은 그 환상이 무참하게 깨지는 계기가 되고 만다.


그는 돈 많은 귀족이 아닌 관계로 화려한 귀부인의 삶을 보장해주지도 못하고, 또한 그는 사람의 의중을 간파하여 자유자재로 농을 부릴 수 있는 재담가도 아니어서 정신적 충만감을 느끼게 할 재주도 없었으며, 그렇다고 의술이 탁월하여 적어도 그 분야에서는 인정과 존경을 받음으로써 명예욕을 대리만족시켜줄 만한 재능도 없었던 것. 그저 아주 착하고 지루한 시골의사였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치 않게 고관대작의 집에 초대를 받아 그들의 화려한 일상을 확인하고는, 자신한텐 이미 깨져버린 환상이 다른 여인들에게는 여전히 실재하는 현실임을 기막혀 하다가 마침내 그녀의 남편에 대한 실망을 넘어선 증오와, 자기 신세에 대한 불만을 넘어선 굴욕감이 그녀를 정숙한 숙녀에서 사악한 요부로의 동전 뒤집기적 변신을 일으킨다.


이후 보바리 부인은 평소 자신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던 동네 플레이보이 지주, 로돌프와의 운명을 가장한 기획 불륜에 빠지고 만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인지, 그냥 단순한 육체적 접선인지 그녀 스스로도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남편에 대한 실망이 정부에 대한 그리움을 낳고, 정부에 대한 애정이 다시 남편과 가정에 대한 염증을 가중시키는 패가망신의 무한루프에 빠져 마침내 가정을 버리고 둘이 멀리 떠나자고 로돌프에게 조르지만 애초부터 그녀를 엔조이 상대로 생각했을 뿐, 그 엔조이가 더욱 즐거울 수 있도록 사랑을 들먹였던 로돌프는 마치 답안을 밀려 쓰는 바람에 시험을 망쳤다고 거짓말을 하는 학생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구라를 편지로 전하고는 너무 슬퍼 어딘가로 떠나야겠다며 룰루랄라 놀러 가버린다.


이에 충격을 먹은, 혹은 예상했던 배신이 결국 찾아왔지만 그것이 결코 내 탓은 아니었기를 바라며 진짜보다 더욱 리얼하게 충격 먹은 척을 하던 엠마는 한동안은 마치 영화 <밀양>의 전도연처럼 종교에 귀의하여 갑자기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부르짖기도 하고 남편과 딸에게 밀린 급여라도 지급하듯 현모양처로 돌변해 가정에 충실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허나 이것도 잠시. 전부터 엠마를 짝사랑하던 순진한 청년, 레옹을 3년여 만에 도시의 한 극장에서 만난 남편 샤를르는 뭣도 모른 채 부랴부랴 엠마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결국 눈치 없는 남편에 의해 이루어진 그와의 재회는 보바리 부인의 불륜행각 2회전 종소리에 다름 아닌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게다가 노련한 선수, 로돌프와의 첫 번째 불륜의 후유증에서 겨우 벗어났던 보바리 부인은 다시 한 번 가족을 배신한다는 죄의식에 될 대로 되라는 심산에서였는지, 아니면 저번처럼 자기가 먼저 버림받는 일은 되풀이 될 수 없다는 불안에서였는지 청년 레옹과는 몸과 마음으로만 간음하는데 그치지 않고, 상인 뢰르를 통해 각종 어음을 남발하며 호화판 불륜을 벌임으로써 남편의 전 재산까지 조금씩 바닥을 내기 시작하는 인생막장의 전형적 코스로 직행한다.
 
결국, 그녀의 거짓말과 어음 돌려막기는 한계에 봉착하고, 내일 당장 차압이 들어오는 것이라도 막아보고자 지금의 연인 레옹에게, 또 과거의 연인 로돌프에게 차례로 손을 벌리지만 철저히 외면을 당하고는 마침내 보바리 부인은 독약을 먹고 자살한다.


이후 그녀의 남편은 딸과 함께 어떻게든 살아보려 노력했으나 아무리 노력해도 빚은 줄지 않고, 죽음 후 발견한 불륜의 증거를 통해 위태롭게 보존했던 그녀에 대한 사랑의 추억도 증발하면서 샤를르 역시 처량했던 삶을 마감한다.
 


3)읽은 척 세부스킬



원조 된장녀, 마담 보바리



당 작품 내에서 그려지는 보바리 부인의 정체성은 실로 다양하다 하겠다. 별 필요도 없는 물건을 사들이느라 어음을 남발하는 캐릭터는 쇼핑 중독에 빠진 근대 최초의 여성이라는 평가도 가능하고, 자기망상에 빠져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 결국 자살을 선택한 모습은 조울증이 죽음으로까지 번진 문학적 사례라는 진단도 가능할 것이다. 또 어떻게 보면 그녀는 대충 결혼했다가 몇 년 살아보고 애까지 낳은 후에야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깨닫는 결혼재난 이재민의 전형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 전체에 걸쳐 가장 뚜렷하게 형성된 보바리 부인의 정체성은 자신의 속물적 예민함을 지적 감수성인 것처럼 포장하고 싶었던 일종의 ‘원조 된장녀’라 할 수 있다.


스타벅스의 커피를 맛있어서 먹는다기보다 있어 보이기 위해서 먹고, 아름다운 사랑이란 곧 아름다운 명품을 사주는 것에 다름 아니라 생각하는 여성을 소위 ‘된장녀’라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바리 부인은 늘 상류층 사교계의 춤판에서만 낭만이 보이고, 쌍두마차의 주인에게서만 품위가 보이며, 대지주의 넓은 장원에서만 진정한 사랑이 보이는 전형적 속물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남들로부터 무조건적인 존경과 사랑을 받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데, 그 존경과 사랑의 획득가능성 역시 자신에게 최신 유행하는 옷가지와 값비싼 명품이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등 그야말로 된장 퍼 담는 깔때기적 행복관의 소유자라 할만하다. 즉, 보바리 부인의 행복이란 그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 전적으로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내맡겨진 대리운전적 행복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작가가 작품 말미에 그녀를 허무한 자살로 몰아간 것은 어쩌면, 지나친 된장질은 정신건강에도 안 좋을 뿐만 아니라, 몸에도 해롭다고 하는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참고로, 필자가 예전에 된장질에 몰두 중이던 한 친구에게 화를 참지 못하고 그만 ‘너, 꼭 보바리 부인 같아.’라며 해서는 안 될 막말을 뱉은 적이 있었는데, 그녀의 반응은 의외였다. 마치 예뻐 보인다는 칭찬이라도 들은 것 마냥 방긋 웃으며 ‘고마워.’라는 인사까지 남기는, 그야말로 똥과 된장을 구분 못하는 서커스를 연출했던 것이다. 아마도 ‘보바리 부인’이라고 하는 어감이 왠지 서구적이고 아름다운 무엇처럼 들렸기 때문인 듯하다.


고로, 향후 누군가 자신에게 ‘보바리 부인 같다’라는 표현을 쓴다면 일단은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이 적절한 자기방어임과 동시에 읽은 척의 간접적 표출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외로운 여인, 마담 보바리



하지만 소위 ‘된장녀’라고 하는 것은 타인을 된장 가스로 질식사 시키려는 불순한 음모의 사람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마음 속 고독이 유통기한을 지나 너무 오래 삭혀지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외로움의 악취를 풍기게 된 사람을 뜻할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그렇듯, 자기 안에는 자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의 눈을 의식하는 또 다른 자기가 공존, 혹은 분열되어 있다 할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병립을 선과 악이라 부르기도 하고, 신과 악마, 진짜와 가짜라고 하기도 한다. 인간이 막대 사탕에 작대기 몇 개만 추가하면 그만인 명랑만화의 졸라맨과 같은 형상이 아니듯, 아무리 단순한 인간이라도 그 내면에는 사랑과 증오, 희망과 불안, 쾌락과 죄의식 등이 늘 크로스 오버를 한 채 얽혀있다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태양 아래 실체와 그림자는 늘 함께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게다가 정작 중요한 문제는 이처럼 쌍으로 구성된 실체와 그림자가 복잡함을 만드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체 무엇이 실체이고 무엇이 그림자인지도 확신할 수 없게 만드는 불가지론적 미궁에 인간을 빠뜨려, 필연적으로 인간을 ‘외로움’이라는 괴물과 평생 동반케 만든다는 것이다.


이에 보바리 부인의 허영심은 어쩌면 외로움의 발로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외로우니까 잠시나마 연애와 쇼핑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것이고, 외로우니까 스스로 된장을 발라놓고 금테를 둘렀다고 우기는 된장녀가 되는 것이며, 외로운 현실이 너무도 고통스러우니까 망상을 실재라 믿고 싶은 정신질환자까지 되는 것 아니겠는가.


고로 당 서적을 읽은 척하는 가장 바람직한 전술 중 하나는 사시사철, 시종일관, 맨날 맨날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있는 바로 자기 자신의 가슴을 쾅쾅 두드리며 ‘그 여자가 바로 나야!’라며 외마디 비명을 내뱉는 것이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플로베르도 ‘엠마 보바리는 바로 나 자신이다.’라고 말한 바 있는 만큼 보바리 부인과 자기 자신을 동격화 시키는 것은 단순히 속물이라 외롭고, 외로워서 속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과의 일체감을 고백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은근슬쩍 세계적 작가인 플로베르와 자신 사이에 뭔가 공통적 감수성이 있다는 식의 자기자랑이 될 수도 있다 할 것이다. 물론 아무도 그것이 자랑인지는 몰라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참고로 외로워서 사고치는 여성에 대한 얘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라 할 수 있지만 특히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의 여주인공은 보바리 부인의 21세기적 환생이라 할만하다.


무시받기 싫어 복부인이라도 되는 냥 허세를 부린 이유로 하나 뿐인 아이를 잃은 후 종교를 통해 그 슬픔을 극복하는 척하고, 이도 여의치 않자 신에게 복수를 하겠답시고 유부남과 통정하는 등 결국 자신의 상처만 더욱 악화시킨 채 남 좋은 일만 한다는 그 스토리는 『보바리 부인』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하겠으니, 혹시라도 영화 <밀양>을 본 독자라면 당 서적의 읽은 척에 테크니컬 포인트를 가산 받을 수 있는 유리한 고지에 있다 할 것이다. 




보바리 부인의 명장면(문학작품 최초의 카섹스)


『까마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은 사람이라면 대심문관과 그리스도와의 대화 장면을 읽은 척 소재로 사용하지 않을 리 없듯, 이 책을 실제로 읽은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언급하고 넘어갈 만한 명장면이 있다. 그것은 바로 보바리 부인이 레옹과 재회 후에, 둘 사이의 첫 섹스가 이루어지는 대목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섹스 장면이라 해서 무슨 점액질이 미끈덩거리고, 숨넘어갈 듯 호흡이 가빠지는 그런 베드신을 연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숨이 넘어가긴 넘어간다. 마부와 말들이.


이게 대체 무슨 얘기냐. 첫 번째 정부였던 로돌프에게 당한 실연의 상처로 마치 이 세상 모든 남자들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듯 레옹과 함께 있을 때면 유독 창 너머 먼 눈길의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가뜩이나 소심한 그의 애간장을 녹즙기로 짜내듯 하던 보바리 부인이었으나, 결국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던 레옹의 갑작스런 박력에 이끌려 함께 마차에 올라타게 되는데…….


여러 페이지에 걸쳐 묘사되는 그 장면의 전문을 실을 수는 없는 관계로 필자가 시나리오의 형식으로 간략하게 재구성을 해보았다.


#1. 서울의 한 마차 정류장

마부 : 어이구, 손님들. 어서 오십쇼.
레옹 : (마차 문을 거칠게 닫으며) 출발 합시다.
마부 : 저, 그런데 손님. 어디로 모실깝쇼.
레옹 : 대전으로! 대신 절대 멈추지 말고 뒤도 돌아보지 말아야 하오! 알겠소?
마부 : 아, 예. 그……, 그럽지요.


#2. 대전

서울에서 대전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터라 마부와 말은 몹시 지쳐있다. 하지만 마부는 장거리를 뛴 만큼 두둑한 보수를 기대하는 터라 아직 표정은 밝다.

마부 : 손님, 이제 대전에 다 왔…….
레옹 : (버럭) 대구로 갑시다!
다시 대구까지 가자는 말에 어안이 벙벙한 마부. 그래도 손님의 요구이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말에게 채찍을 가한다.


#3. 대구

끼니까지 거른 채 하루 종일 마차를 끈 마부와 말은 이제 거의 초주검 상태이다.

마부 : 헉헉, 손님. 이제 대구에 다 왔습니다.
레옹 : 헉헉, 수고했소. 그럼 이제, 허억, 부, 부인. 이러시면……, 다시 서울로!


이 정도면 대략 어떤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간혹 양식 없는 커플들이 좌석버스 뒷좌석이나, 더욱 과감하게는 택시 뒷좌석에서 공중도덕을 무시한 채 진풍경을 연출하는 경우가 있듯, 3년 만에 다시 만난 보바리 부인과 레옹은 그들에게는 사랑이요 열정이겠지만 마부와 말들에게는 영문도 모를 철인 3종 경기 같은 일을 벌였던 것이다. 따라서 바로 이 점을 들어, 이 책이 문학사상 처음으로 카섹스를 묘사한 선구적 작품이라 호들갑을 떠는 것도 가능하다 할 것이다.


참고로 플로베르가 1857년에 『보바리 부인』으로 공중도덕 및 종교적 미풍양속을 해쳤다는 이유로 피소되었던 주된 근거가 바로 이 대목 때문이다. 이는 현재와 150년 전의 성윤리의 격차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 볼 수도 있으니 관심 있는 독자께서는 원문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보바리 부인의 교훈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을 읽은 척 함에 있어 무슨 자연주의 문학의 원류라느니, 프랑스 누보로망의 탄생을 예고한 걸작이라느니, 후두부에 경련을 일으킬만한 문학사적 찬사가 즐비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당 서적이 갖는 작품상의 가장 큰 미덕이자, 문학사적 의의는 바로 이미 150여 년 전에 별 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혹은 의무감으로 행한 결혼이 그 당사자들을 얼마나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가를 실감나게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그것도 굉장히 해학적으로.


잘못된 결혼의 폐해는 샤를르 보바리와 엠마 보바리 사이에서만 묘사되는 것은 아니다. 샤를르 보바리의 아버지 역시 그 어머니를 만날 때 오직 재산을 보고 호의호식하려던 놈팽이에 불과했으며, 어머니 역시 그 아버지에게 홀딱 반했던 이유는 단지 그의 외모 때문이었다. 게다가 전술한 내용요약에 언급되었듯 샤를르와 사십대 과부사이에 이루어진 첫 번째 결혼 역시 그의 부모들이 돈 때문에 성사를 시켰다가 과부의 거짓이 들통 난데다가 그녀가 맥없이 죽어버리면서 끝나고 마는 사이비 결혼이었던 셈이다. 그 후 두 번째로 이루어진 샤를르와 엠마의 결혼은 이미 읽은 척했다 시피 끔찍하기까지 한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즉,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은 2대에 걸친 사랑도 없고, 생각도 없는 결혼의 가족사적 비극이라 할 수 있으며, 당시 프랑스의 속물적 결혼 풍속에 대한 문화사적 풍자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백 오십 년 전의 그 얘기는 21세기인 지금의 결혼 풍속과도 별반 차이가 없다 할 것이다.


신분에 대한 허영심과 돈에 대한 집착만이 꼭 닮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서로 사랑한다고 착각한 채, 사실 내가 사랑하고 싶은 상대는 어떤 사람인지도 잘 알지 못한 채, 그리고 바로 그 주된 이유가 자기도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임을 알지 못한 채 섣불리 결혼하는 모습들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모습이라 할 것이다.


고로, 당 서적이 보들레르의 『악의 꽃』과 함께 근대 문학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기 때문에 당연히 읽었어야 하는 것 아니겠냐는 식의 공치사적 읽은 척 보다는 현명한 연애행각과 결혼생활을 위한 일종의 실용지침서로써 당 서적을 읽은 척 하는 것도, 마치 가난해서 로또를 사는 것이 아니라 마침 슈퍼에 잔돈이 떨어져 어쩔 수 없이 구입했다 하는 것처럼 나름 세련된 구라가 될 수 있다 할 것이다.


그밖에


워낙 유명한 작가의 유명 작품이기 때문에 몇 가지 알아두면 유용할 주변 지식을 소개한다.


『보바리 부인』외에 플로베르의 작품 중 특이한 것은 『통상관념 사전』이라는 것이다. 그의 뛰어난 통찰과 유머감각을 느낄 수 있는 서적으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백과사전』의 원조쯤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몇 개의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바보 : 당신처럼 생각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
-책 : 어떤 책이든 언제나 너무 길다!
-학위 : 학식의 표시. 아무것도 증명해주지는 않는다.
-노인 : 홍수, 폭풍 등을 이야기할 때마다 늘 더 심한 경우는 본적이 없다고 한다.
-섹스 : 피해야 할 단어. 대신 ‘내밀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밖에 채털리 부인의 실재 모델이 존재했듯, 보바리 부인 역시 실재 인물을 모티브로 한 소설로 알려져 있다.


그 여성은 델핀느 드라마르라는 여성으로, 의사인 남편을 두고 바람을 피다가 결국 파산하여 자살한 여인으로, 당시에는 꽤나 이슈가 되었던 스캔들이라 한다. 그렇다고 당 작품이 드라마르 부인의 평전쯤이라 생각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플로베르는 그 사건의 결과만을 차용했을 뿐(그것도 자신의 선택이 아닌 친구의 강권으로), 그 과정은 온전히 작가의 상상력에서 일궈진 것이므로 <보바리 부인>은 사실 드라마르 부인의 드라마적 일대기에 불과하다는 식의 뭔가 진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선무당적 읽은 척은 절대 금물이라 하겠다.




끝으로 플로베르를 누구보다 사랑한 유명 작가 중 하나로 알랭 드 보통을 들 수 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불안>, <여행의 기술>을 비롯하여 그의 거의 모든 서적에는 <보바리 부인>이나 작가 플로베르에 대한 얘기가 인용, 언급된다.


특히 <여행의 기술>의 경우, 제목의 어감 상 마치 팁 안주는 법, 패키지 옵션에 휘둘리지 않는 법 등이 수록된 여행 가이드 북 같은 느낌을 준다 하겠으나 사실 플로베르를 비롯한 몇몇 작가들에 대한 헌사에 가깝다.


고로 <보바리 부인>을 읽은 척 할 때는 알랭 드 보통의 얘기를, 알랭 드 보통의 작품을 읽은 척할 때는 <보바리 부인>을 적절히 언급함으로써 어느 정도는 일거양득의 쌍방향 읽은 척이 가능함을 참고하시라.


 








이상이다.



늘 강조하건데, 본 읽은 척 매뉴얼은 누군가에게 잘 알지 못하는 책 얘기로 불의의 일격을 당했을 때 자신의 자아를 방어하기 위한 호신용 매뉴얼일 뿐이다. 결코 자신보다 더 책을 읽지 않는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한 나쁜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읽은 척 매뉴얼 저자 너부리(newtoil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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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질병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반론]니들은 디씨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독자투고] 그것은 기부가 아니다
-[불만제곱]생리대에 대하여
-[관전평]외수의 외통수
-위구르는 왜 피를 흘리는가
-가카의 정신세계와 대한민국의 미래
-故 노무현 前 대통령 미공개 동영상
-[공지] 딴지일보 마빡게시판 오픈!

총수 틈새논평

-이명박이 당했다
-송지헌의 커밍아웃
-오바마 시국선언 사건
-거짓말은 청와대가 했다
-사과 따위 필요 없다

노무현 추모기사

-그래, 난 삼년상 치를 거다. 이 씹새끼들아!
-나는 한나라당 부대변인이었다
-[명문감상]천국서 보내는 두 번째 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