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출마가 확실시 되고 있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하 반 전 총장). 그가 한국으로 귀국함과 동시에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노출되고 있다. 생수 한 병을 사는 것, 주민센터에 주소를 등록하고 은행계좌를 개설하는 것 등, 그의 일상이 사진으로, 기사로 보도되고 있다. 그런데, 그가 보이는 행보들이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은 것 같다. 시시때때로 국내 정세에 따라 바뀌는 반 전 총장의 발언들을 보면서, 과연 그의 진짜 가치관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민생행보와 의전
반 전총장은 입국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인천 공항에 대통령에 준하는 ‘3부요인급’ 의전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는 보도와 함께 말이다. 아래 기사 보도를 보면, 한 관계자는 “구체적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반 전 총장 쪽으로부터 의전과 관련해 요청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규정에 맞지 않아 원칙대로 처리했다” 고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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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공항 의전과 관련된 기사가 보도되기 전, 반 전 총장은 시민들과 함께 한다는 의미로 공항철도를 이용할 것이라는 귀국 일정을 미리 알렸었다. 그런데, 민생 행보와 관련된 기사가 나간 뒤, 공항에 의전을 요청했다 퇴짜를 맞았다는 소식을 들으니 헛헛한 실소가 나왔다.
‘퇴짜 의전’ 후, 인천 공항에 도착한 반 전총장은 공항철도를 이용해 서울역까지 이동, 자가 차량으로 귀가를 했다. 아래의 기사는 그가 어떻게 공항철도를 이용하게 됐는지에 대한 과정이 잘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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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본인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해 혹여 시민들이 불편을 겪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래 기사에 따르면, 반 전총장이 도착하기 2시간 전부터 서울역은 청소작업(?)에 들어갔었다고 한다. 이 작업으로 사회적으로 가장 약자이며 보호 받아야 할 노숙자분들이 영하 4도의 야외로 내몰렸다고 한다. 누군가의 화려한 귀환을 위해 서울역 한 켠에 늘 자리잡고 있던 누군가는 밖으로 쫓겨난 셈이다. 인류의 평화와 약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 왔다는 귀국 연설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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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서울역사는 일대가 마비되었다고 한다. 반 전총장 주위로 300명이 넘는 지지자들과 참모진, 기자들로 인산 인해를 이뤘다고 하니, 동 시간대에 대중교통을 이용한 시민들만 괜한 불편을 겪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동 간에 벌어진 작은 사건(?)들, 가령 철도 이용권을 직접 구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든지, 생수를 구매하면서 프랑스 산 ‘에비앙’을 골라 보좌진으로부터 국산으로 교체하도록 조언을 듣는 장면들은 애교로 봐 준다. 지하철을 타는 이벤트가 언제부터 한국 정치권에서 대표적인 민생 행보로 여겨지게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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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현충원 핫팩과 팽목항 사전답사 사건도 안 비밀이다. 그 중에서 팽목항 건은 눈여겨 볼 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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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반 전 총장 일행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혹시 세월호 문제를 챙기고 있다는 상징적인 ‘그림’ 하나를 잘 그려 보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도 했다.
민생 행보 전략, 그의 보좌진은 누구?
이렇게 과도한 의전과 민생행보라는 모순된 반 전 총장의 모습이 화제가 되는 가운데, 그의 민생 행보 홍보전략,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얘기들이 전해진다. 잠시 시간을 과거로 돌려 2007년 대통령 선거 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정답을 찾을 수 있다.
https://youtu.be/m80AudtmR2Q
위 동영상은 한 때 화제를 모았던 이명박 후보의 선거 캠프에서 제작한 대선 광고 동영상이다. 유난히 ‘서민’과 ‘민생’을 강조한 홍보전략으로 대통령 선거 승리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한 이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의 반 전총장의 모습이 ‘오버랩’(Overlap) 된다. 뭔가 인위적인 듯한 연출, 인공조미료가 과다 투입된 듯한 이 홍보스타일은 어쩐지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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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일치였을까? 현재 반기문 전 총장의 예비 대권캠프에는 이명박 정권의 인맥이 많이 포진되어 있다. 김숙(MB정부 국정원 1차장), 곽승준 (MB정부 정책통 선대위정책기획팀장 국정기획수석), 이동관 (MB정부 청와대 홍보수석), 임태희 (MB정부 청와대 비서실장), 유종하 (MB정부 외교부장관), 김종현 (MB정부호주대사), 김현일 (MB언론특보), 이상일 (MB계 전 국회의원) 그리고 나경원.
그렇다. 홍보 전략은 민생 행보, 정책은 기득권 층에 더 한 기득권을 선물한 이명박 정권의 보좌진들이 기획했던 프로젝트였고, 그들이 현재 반 전 총장의 보좌진들이다. 반 전 총장의 행보가 언행이 불일치 하는 듯한 모순을 보이고 ‘눈 가리고 아웅’하는 코미디적인 요소가 있는 건 이 때문인 듯 하다.
하지만,
‘민생’이라는 단어는 개인의 야망을 이루고자 이용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는 그 단어 안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다. 우리네의 고단한 삶과 생존을 위한 치열한 사투, ‘을’로서 매일을 버텨야 하는 굴욕도 그 일부이다. 오 천만 한국인의 각기 다른 이야기가 담겨진 ‘민생’이라는 단어의 그 무거운 의미가 화려하고 작위적인 이벤트와 얼마나 어울릴 수 있을까. 그는 ‘민생’의 무게와 깊이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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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불필요한 의전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출/귀국 일정을 잘 공개하지 않고 늘 조용히 일정을 진행했고, 각국에서 지출한 기금을 함부로 쓸 수 없다며 비지니스 석을 고집했던 고 이종욱 WHO 전 사무총장이 떠오른다. 한 평생을 병들고 고단한 이들을 위해 살았던 그였지만, 단 한번도 그에게서 ‘생색내기’용 연설은 들어볼 수 없었다. 표현은 거칠었지만, 그가 얼마나 환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위해 헌신했는지는 발자취를 통해 알 수 있다. 그가 살아온 행적들,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WHO의 예산을 쓰는 자세, 직원들을 격려하고 이끄는 모습, 정책의 방향성은 그의 인류에 대한 깊은 애정과 헌신을 여실히 보여줬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헌신은 말로 하는 게 아니다. 물론, 이벤트도 아니다.
‘외교관’이라는 이름으로
스위스 제네바의 UN에서 근무했던 한 지인의 얘기가 떠오른다. 반 전 총장이 스위스를 자주 찾았다는 그는, 반 전총장의 방문기를 이렇게 기억했다.
“반기문 총장이 스위스에 자주 왔었는데 기자회견이나 기타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국인 인턴들을 병풍으로 세워둔 적이 많았다. 그런데 그렇게 병풍으로 세워두고 정작 한국에서 파견 나온 외교 직원들만 끼고 챙기더라. 한국인 현지직원들에게는 무심했다.”
반 전 총장은 외교관 출신이다. 필자가 지근 거리에서 봐온 외교관들은,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해 보였다.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스스로를 엘리트라 여기는 자부심도 강하다. 그래서 내 가족, 내 동료를 챙기는 것 그리고 내 경력을 쌓는 것 외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타 부처 사람들로부터 ‘이중적이다’, 혹은 ‘가식적이다’라는 평가를 많이 받기도 한다. 물론 주변에서 그렇게 평가하는지, 그들 스스로는 잘 모른다. 사실, 관심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해찬 의원(전 국무총리)의 인터뷰 내용은 새겨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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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원은, 외교관은 외교관계 이외의 분야에 대해서는 인식의 깊이가 얕다고 평가했다. 또한 돌파구를 찾아내야 하는 정치권에서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도 건너지 않는 게 외교관’이라는 이 의원의 말에는 오랜 정치 경력과 정부 주요직을 거친데 대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단순히, 반 전 총장을 부정적으로 보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한국은 일제강점기, 6.25 전쟁 그리고 민주화를 겪은 각각의 세대가 공존하는 매우 복잡한 정치적 구조를 갖다. 때문에 때로는 직선적이여야 하고 첨예한 갈등 속에서도 치열하게 투쟁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나라의 권익을 위한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오랜 시간동안 다른 사람을 설득도 해야 한다. 외교관이라는 직업의 특성이 이렇게 변화무쌍한 한국 정치에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이해찬 의원의 말을 인용한다.
"외교관이라는 직업이 국내정치를 하는 데 과연 적합한지는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정치를 오래 했지만 외교관은 정치와 캐릭터가 맞지 않는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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