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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이야기 - 대리기사들이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고객들


술을 마시는 분들 중에 출퇴근하며 차를 가지고 다니는 분들은, 아마도 상당수가 대리운전 서비스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겁니다. 물론 저도 그렇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대리기사들에게 불쾌함을 느껴보신 적이 있나요? 어떤가요? 있었다면 이번 기회(?)에 댓글로 달아주셔도 좋겠습니다. 기사분들도 고객들이 어떤 점들에 불만이 있는지 알게 된다면,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조심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부터 먼저 이야기해볼까요? 아무래도 그게 편하겠지요? 15년쯤 전부터? 술을 자주 마시다보니 매달 한두 번씩은 대리운전을 통해 귀가하곤 합니다. 저는 크게는 아니지만 몇 차례 불쾌했던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덕분에, 대리기사 일을 시작할 때 나는 저러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고객과 기분 좋게 헤어지자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겪었던 기사분들 중 어떤 이들은, 운행이 끝난 뒤 제가 내미는 요금을 한손으로 휙 낚아채가는 식으로 받아가며, 그대로 등을 돌리고 가버리더군요. 제가 건네는 고맙다는 인사에 대꾸도 안 한 채일 때도 많았습니다. 찬바람이 휙 부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면 기분이 싸아 하더군요. ‘내가 뭘 기분 나쁘게 했나?’ 하는 생각도 들지요.


또 한 가지는, 요금 지불할 때인데요. 요금이 2만 원이나 3만 원으로 딱 떨어지는 금액인 경우는 상관없는데, 그렇지 않을 때 자주 벌어졌던 일입니다. 무엇인가 하면, 요금을 내밀며 거스름돈을 요구할 때 잔돈이 없다고 하는 분들이 꽤나 많은 겁니다. 15,000원, 18,000원, 22000원, 25,000원, 28,000원, 35,000원... 모두 마찬가집니다. 만 원짜리들을 내밀면 잔돈이 없다며 가만히 쳐다만 봅니다.


처음 서너 번은, 알겠다고 잔돈은 안 주셔도 된다고 그냥 헤어졌습니다. 팁 준 셈 치자 생각했습니다. 서너 번 당하고(?)나니 불쾌하더군요. 그 뒤론 제가 잔돈을 준비해 줄 때가 많았습니다. 아니면 어쩌나 보자는 심정으로 기어이 잔돈을 받아내고(결국 주머니에서 꺼내 주더군요), 그마저도 신경 쓰이는 게 싫어, 1년 전부터는 속 편하게 카카오만 이용합니다. 어쩌면 지금 이야기한 부분 때문에 앞의 결과가 발생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를 먼저 꺼낸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은 원래 예고했던 카카오드라이버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어제 저녁에 대리일을 나가 겪은 경험 때문에, 이 이야기부터 먼저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또한 현장에서 자주 발생되는 고객과 기사들의 갈등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분들이 계셔서, 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원래 계획했던 글들은 이후에 계속 쓰겠습니다.


대리기사들이 기피하는, 아니 솔직히 말해 싫어하는 고객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제가 경험하고 주위의 기사분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런저런 흉을 보는 이야기 같아 마음은 편치 않지만, 꼭 하고 싶었던 이야깁니다. 이 글을 시작하게 된 이유도 상당 부분 포함돼 있습니다. 대리운전을 이용하시는 고객분들이 많이 보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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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말씀드리지만 대부분의 고객분들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모두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예의를 아시는 분들입니다. 다만 일부 아주 일~~~~~부의 경우만 여기에 밝혀 봅니다. 그분들, 술이 웬수일까요? 그럴까요? 욕을 좀 먹더라도 이 얘긴 해야겠습니다. 대리기사들 사이에서 진상손이나 양아손으로 불리는 분들의 이야깁니다.


1. 대리요금에 민감한 스타일 대리기사들은 보통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운행을 합니다. 그런데 운행을 하는 내내, 왜 길을 돌아가느냐, 이 길 말고 저 길로 가라는 식으로 계속해서 태클을 거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요금 때문입니다. 애초부터 나를 불신하고 그 불신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상대에게 기분 좋을 사람은 없겠지요.


또 한 가지는, 미터기 방식으로 올라가는 요금을 보면서 계속 로지보다 비싸다고 투덜대는 스타일이 있습니다. 카카오 중에서도 미터기 요금으로 가는 경우만 해당됩니다. (로지나 카카오 확정요금은 상관 없습니다) 기분이 좋지는 않아도 알고 보면 사실 이 정도는 애교 수준입니다. 툭툭 털 수 있습니다.


2. 목적지에 도착해 돈이 없다고 하는 경우 – 흔하게 볼 수 없는 케이스지만 또한 아주 드물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보통은 다음날 계좌로 꼭 보내준다고 약속하고 집에 가는데, 실제 입금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전화를 수십 번씩 해도 알겠다고만 하고, 입을 닦는 일이 많다고 하는 걸 보면, 상습과 계획의 혐의가 농후합니다.


이런 건 케이스 바이 케이스지요. 기사들에 따라, 끝까지 닦달해서 편의점으로 데려가 카드로 돈을 뽑게 하거나, 돈 대신 담배 몇 갑으로 받기도 한다더군요. 이도 저도 없다고 해 마지막 수단으로 경찰을 부르기도 한다는데, 그쯤 되면 보통 마지못해 해결해준다 더군요. 출동 나온 경찰은 양쪽 모두에게 짜증을 내고, 기사는 한참 일할 시간을 공치게 되지요. (카드 앱으로 결제하는 카카오는 해당사항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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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만취해 깨어나지 않는 고객(특히 여성) - 이거 진상입니다. 환장할 일이지요. 얼른 끝내고 다음 콜을 잡으러 가야 하는데, 아무리 깨워도 고객이 인사불성 상태로 깨어나지 않으면 깝깝합니다. 이런 때 고객을 그냥 두고 현장을 떠나면 절대 안 된다고 합니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큰일이 난다네요. 이런 때는 경찰을 부르거나 인근 파출소에 차를 끌고 가라고 대리회사들은 조언합니다.


특히 여자고객의 경우에는, 옷깃 하나 털끝 하나도 건들면 안 된다는 건 철칙입니다. 괜히 잘못하다간 제대로 엮인다고 합니다. 이래저래 또 시간만 공치는 거지요. 경찰아저씨들도 성가실 테구요. (대리운전 앱으로 대리를 부르는 카카오보다 전화로 부르는 로지가, 상대적으로 만취고객이 많다고 합니다)


4. 매너가 좋지 않은 고객 – 점잖게 표현해 매너지요. 4가지에 대한 얘깁니다. 반말이나 하대를 한다거나 심하게는 폭력을 쓰는 사람들이 드물게 있다고 합니다. 요즘처럼 무서운(?) 세상에 흔하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말을 함부로 하는 분들이 가장 거슬리더군요. 반말도 아니고 욕설도 하대도 분명 아니지만, 듣는 사람이 대단히 불쾌하게 느끼게끔 말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저는 그럴 때면 모욕을 당한다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그 느낌의 핵심은 아마도 ‘하찮음’이 아닐까 합니다. ‘저 사람이 나를 하찮게 보고 있고, 하찮게 대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 미묘하지만 분명하게 느껴지는 이 감정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더군요. ‘내 자격지심이겠거니’ 하고 넘어가지만, 또한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긴 하지만, 그때마다 서글퍼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팁을 준다고 하거나 줄 것처럼 하며, 사람을 갖고 노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팁을 달라고 해본 적이 없습니다. 고객이 줄 것처럼 저를 떠볼 때도 대답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팁을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제가 보기에 나쁜 이들입니다.


팁을 주고 싶으면, 차키를 돌려받을 때, 그냥 조용히 건네면 될 일입니다. 실제 그런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사님 하는 거 봐서 내가 팁을...” 이런 거 좋지 않습니다. 하면 안 됩니다. 더구나 그래놓고 도착해서는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차키만 받아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뒷모습을 볼 때면 뭔가가 울컥합니다. 그래도 참아야지요. 네, 참아야 합니다.


제가 사용하는 선진(?) 대리프로그램인 카카오에는, 운행이 끝난 뒤 고객이 기사를 평가하는 항목이 있습니다. A/S센터의 기사들처럼 말입니다. 매번의 운행이 끝날 때마다 고객은 기사를 평가합니다. 그것은 기사의 앱에도 표시됩니다. 일정 수준 이하로 평점이 낮으면 해당 기사에게 불이익이 있거나 일을 그만두게 한다더군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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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목적지가 산꼭대기(?)인 고객 – 오해의 소지가 있어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입니다. 서울에는 이전에 비해 수많은 달동네가 있습니다. 가난한 동네를 뜻하는 게 아니라 높은 동네를 말합니다. 서울에는 오래 전부터 우리들의 눈에 저 멀리 보이던 중간 크기의 뒷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도봉산이나 관악산처럼 폼나는 이름은 없어도 서울 시내와 변두리 지역에 수없이 많이 존재했던 산들 말입니다.


신림동 뒷산, 봉천동 뒷산, 정릉 뒷산, 성북동 뒷산, 창신동 뒷산, 홍제동 뒷산, 수유리 뒷산, 화곡동 뒷산, 삼양동 뒷산, 장위동 뒷산 같은 곳들 말입니다. 그 대부분의 산들에는 오늘날 꼭대기 부근까지 빌라나 다가구주택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습니다. 이제는 산이 아닌 마을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당연히 사람들이 살고 있지요. 많이 삽니다.


대리기사들은 그런 동네에 가기를 몹시 꺼려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다음 일을 하는 데 있어 이만저만 차질이 생기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험이 많은 고수가 아닌 다음에야, 순간적으로 콜을 잡으며 목적지의 지리적인 실체(?)를 알아채기는 어렵습니다. 일단 가는 거죠. 그리고 도착한 후에야 땅을 치며 후회하고 일할 의욕을 잃게 됩니다.


대리운전이라는 일이 그렇습니다. 고객의 목적지에 도착한 후 차키를 건네면, 얼른 잰걸음으로 다음 콜을 잡기 위해 이동해야 합니다. 콜이 나올 만한 동네인 유흥가나 먹자골목으로 빨리 가야 합니다. 카카오의 경우 적어도 한 시간 안에 다음 콜을 잡아야 유리합니다. 앞의 콜 종료 후, 우선배차시간이라 부르는 한 시간이 지나면, 콜을 잡을 가능성이 한층 적어집니다. 얼른 가서 콜을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새벽시간에 산꼭대기 동네에 가서 콜을 끝내고 나면 골치 아픈 상황이 됩니다. 콜이 나올 만한 도심으로 접근하기에 그곳의 동네들은 너무나 멉니다. 새벽시간 대리기사들의 주요 이동수단인 심야버스들이 다니는 큰길과 무척 거리가 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마을버스는 일찌감치 끊겼습니다. 감히 택시를 탈 엄두는 아예 못 내지요. 가까운 출발지로의 다급한 이동이 아닌 다음에야 택시 못 탑니다.


결국 도보로 이동해야 합니다. 산꼭대기에서 아랫마을까지 내려오는 데 2~30분. 다시 심야버스가 다니는 큰길까지 나가는 데 2~30분. 그런 다음에야 콜밭으로 이동할 수 있는 거지요. 그 시간이 무려 한 시간에 가깝습니다. 결국 그대로 일이 끝나버릴 가능성이 많다는 이야깁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대리기사들의 영업에 크게 지장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그런 상황에서, 일을 포기한 채 심야버스를 타고, 집으로 방향을 잡은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솔직히 짜증이 많이 납니다. 뒤도 안 본 채 나 몰라라 하고 자기 집으로 쏙 들어가버린, 고객에 대한 원망이 몹시 커지는 순간이죠. 욕 나올 때가 많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음 콜을 잡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까지는, 꽤나 많은 시간과 엄청난 다리품과 다소의 비용과 질긴 인내심이 요구됩니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욕먹을 소린지 모르겠지만, 그런 상황에서 고객분들이 알아서 기사분들에게 조금(3,000~5,000)이라도 팁을 챙겨주신다면, 그날의 잠자리가 편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산동네를 내려가는 내내 혼잣말로 고객을 원망하고 악담(?)을 퍼붓는 기사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해주십사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희망입니다. 말이 안 된다고 비판하셔도 어쩔 수 없지요. 제 바람은 그렇다는 겁니다. 비판은 감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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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콜을 잡고 출발지로 갔는데 그때서야 콜을 취소하겠다고 하는 이들 – 콜을 잡으면 많은 경우 서둘러 갑니다. 빨리 걷거나 혹은 뛰거나 경우에 따라 택시를 탈 때도 있습니다. 빨리 가야지요. 그게 고객에 대한 예의지요. 술에 취했으니 마음이 바뀔 수도 있고요. 그런데 도착지에서 만난 고객이 태연한 얼굴로 그냥 가시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혹은 아예 얼굴은 안 비친 채 전화상으로만 그냥 취소하겠다고 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저는 입을 못 열겠더군요. 솔직히 쌍욕이 나올까봐서요. 열? 받지요. 많이 받습니다.


어떤 기사분들은 그럴 땐 취소비를 얼마라도 요구하라고 하더군요. 한번 해봤는데 결과가 대단히 비참했습니다. 죽어라 달려가 만난 20대 중반쯤의 젊은 커플이었는데, 2차를 가기로 마음이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남자분이 하도 당당하게 취소비를 거절하는 바람에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언쟁을 하다 너무나 분한 나머지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곳의 답변에 더 기가 막혔습니다. 고객의 권리라더군요.


결국 돈은 포기하고 욕이라도 한바탕 퍼붓고 끝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상대가 갑자기 제 눈앞에 스마트폰을 내밀더군요. 전화기에서는 그와 내가 10분여 동안 했던 말다툼이 고스란히 녹음돼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소름이 끼치더군요. 인천이었는데, 그 길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와, 거칠고 급하게 술을 마시고 잠을 청했습니다. 택시비가 7만 원쯤 나오더군요.


대리일을 그만두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더는 못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어디 얼마나 갈지 한번 더 겪어보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그날 화가 끝까지 치밀은 가장 큰 이유는, 저랑 싸운 그 친구가 단 한 번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게 미칠 것 같았습니다. 분하더군요.


“아저씨, 그냥 우리 2차 갈래요. 다음에 다시 부를게요. 오늘은 그냥 가세요” 라고 한 게 그 친구의 첫마디였습니다. 그리고 끝내 미안하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그 XX가 그 말만 했었어도...


7. 카카오대리의 확정요금 시스템을 이용해 기사들을 우롱하는 고객 - 다음에 언급할 카카오의 요금체계에서 다룰 이야기입니다. 카카오의 기사분들이 공히 가장 큰 불만을 갖고 있는 부분입니다. 곧 다루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8. 단체 손님 – 기사들 사이에서 ‘경유’라고 부르는 콜입니다. 복수의 고객이 타고, 목적지로 가는 길에 한 명은 어디에 다른 한 명을 어디에 하는 식으로, 여러 장소를 들렀다 가자고 하는 콜이지요. ‘경유’는 고객과의 입장 차이가 가장 큰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재미있는 건, 고객분들의 입장에서 대다수가 ‘가는 길에 한번 세워달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그걸 뭘 요금을 더 받냐는 거지요.


기사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기피하고 싶은 콜입니다. 당연하지요. 얼른 콜을 처리하고 또 다른 콜을 잡아야 하는데, 이 경우에 한 콜을 수행하는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경유콜은 한창 바쁘게 돈을 벌 피크타임(22시~01시)에 집중됩니다.


대부분의 경유가 시내나 번화가를 거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도 기사들은 싫어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올림픽대로나 내부순환로, 강변북로 등을 통해 신속하게 갈 수 있는 목적지를, 동대문이나 신촌로터리를 지나서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우실 겁니다. 경유지 때문에 요금이 더 올라가는 건 솔직히 미미한 수준입니다. 자연히 매출에 지장이 크지요.


알아서 추가로 얼마쯤 더 주면 좋으련만 그런 고객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기사들은 노골적으로 회피하거나 추가요금을 요구하거나 합니다. 보통 5천 원씩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카카오의 경우 미터기(예상요금)으로 가면 추가요금을 절대 요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눈치 빠른 사람들은 경유가 있을 때, 카카오를 불러서 갑니다. 평상시에는 요금이 조금 더 싼 로지를 이용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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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호출한 장소에 고객이 없고 전화도 받지 않는 경우 – 앞의 6번과 비슷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질이 나쁜 고객들이라고 봅니다. 이건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거라 저는 생각합니다. 서두에 얘기한, 이 부분의 글을 서둘러 쓰게 된 가장 큰 이유입니다. 간단히 어제 일을 얘기해볼까요?


어제밤에 있었던 일입니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종로를 향하는 버스에서 운 좋게 콜을 잡았습니다. 인천 가는 콜입니다. 예상요금 30,000원이면 제법 큰 콜입니다. 출발지가 안국동 현대 건물 뒤 삼청공원 근처랍니다.


출발지로 이동을 해야 하는데, 내려보니 어느새 꽤 먼 거립니다. (버스는 아무 곳에나 내려주지 않으니까요) 교통도 애매한 곳이고, 시간상 버스도 타기 애매한 곳입니다. 거리는 약 1.4km. 냅다 달리기 시작합니다. 달리다 힘들면 걷고 숨 좀 돌리고나면 다시 달립니다. 은근 오르막길입니다. 고객들은 10분 넘어가면 짜증내고 콜을 취소하기도 합니다. 빨리 가야 합니다. 13분쯤 후 출발지에 도착했습니다.


숨이 턱에 차 헉헉대면서 고객에게 전화를 하니 수십 번이 울리는 동안 받지 않습니다. 경험상 이건 불길합니다. 다시 겁니다. 또다시 또다시 겁니다. 스무 번쯤? 안 받습니다. 또 걸어봅니다. 당연히 안 받습니다. 10여 분 정도를 멍하니 서 있다, 잦아든 숨을 고르며 서서히 큰길을 향해 종로쪽을 향해 걸어갑니다. 이마와 등에서는 땀이 줄줄 흐르고 입에서는 중얼중얼 욕설만 나옵니다. 이런 때 누가 건들면 안 됩니다. 누구 하나 시비라도 붙으면, 정말 큰일 납니다.


무슨 일일까요? 왜 전화를 안 받는 걸까요? 대부분 이유는 둘 중 하나입니다. 한 가지는, 고객이 술을 더 마시겠다는 겁니다. 귀찮고 미안하니까 그냥 안 받는 거지요. 그래서 6번과 비슷하다고 한 겁니다. 나쁘지요. 그런데 진짜 더 나쁜 건 이겁니다.


고객(?)은 아마 집으로 가고 있을 겁니다. 물론 대리운전 차로 말입니다. 무슨 이야기일까요. 그 고객은 대리를 두 군데 혹은 그 이상 부른 겁니다. 그리고 먼저 도착한 기사가 그를 태우고 이미 출발한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제 전화를 받을 필요가 없는 거죠. 자기는 집에 잘 가고 있으니. 만약 그 사람이 제 입장이라면 기분이 어떨까요?


적어도 이런 짓은 사람이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최소한 말입니다. 아무리 상대가 눈에 보이지 않는 익명의 서비스 제공자라고 해도, 이건 아니지요. 전화라도 받고 싫은 소리라도 좀 들으면 안 될까요? 미안하다고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도 싫다는 거 아닙니까. 기사들이 그 당시에 느끼는 지독한 분노는 누구를 향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런 경우를 두 번 겪었습니다. 유치하지만 솔직히 그 두 사람이 지옥에 가길 빕니다.


10. 열 번째는... 안 하겠습니다. 기분이 좋지 못한 이야기들을 굳이 열 개를 채우고 싶지 않습니다. 이쯤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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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하고 싶은 얘기를 했지만, 솔직히 가장 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꼭 하고 싶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제 스스로가 비루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당시의 상황들을 되짚고 복기해보는 일이 서글프고 자존심 상하기 때문이지요.


제가 고작(?) 이런 일 때문에 힘들어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게, 자존심 상하고 인정하기 싫기 때문이지요. 까짓 대리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큰일이 날 만큼 힘겨운 삶은 아닌데 말입니다. 그냥저냥 살아도 굶지는 않는데 말입니다. 이까짓 이유들로 쓸쓸해지기 싫은데 말입니다.


오늘 새벽처럼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여행을 끝내고 귀가하는 길은, 유난히 더 힘들고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가족들도 눈치를 봅니다. 그래도 집에 가 씻고 한숨 자고나면 기분이 좀 나아지겠지요. 일 주일에 삼 일 정도 맘에 내키는 날만 일을 하는 것도 이렇게 쉽지 않은데, 전업 기사분들은 얼마나 고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히 드는 생각입니다. 전업으로 하는 분들은 정말 힘들겠구나 하는 것입니다. 저 같은 투잡들이야 좀 덜 벌 수도 있고 일하기 싫은 날은 집에서 쉬기도 하지만, 그분들은 좋으나 싫으나 매일처럼 일을 해야하니 말입니다. 대리운전 말고는 마땅히 직업을 갖기 힘들어 일하는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의 아침 귀가길 발걸음이 늘 가볍기는 힘들겠지만 크게 무겁지는 않기를 빕니다. 진심으로.


험담이 길어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습니다. 대리운전 이야기를 하는 게, 결국 사람 이야기를 하는 거라 생각하고 글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제가 거칠게 한 이야기들이 읽으시는 분들께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들려지길 소망합니다.


오해는 없으시길. 이리 휘둘리고 저리 치이며 앵벌이(?) 하는 대리기사들을 불쌍하게 보아달란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못돼 먹은 기사들도 분명 많습니다. 저는 다만 대리서비스 이용자와 제공자로서의 어떤 선을 인식하고, 서로 조심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무심코 행해지는 실례들, 아무렇지도 않게 마구잡이로 무시하는 상대방의 감정들. 사람 대 사람으로 지켜야 할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저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할 부분입니다. 다음에는 본격적으로 카카오대리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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