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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자. 교육 문제는 이미 교육계의 손을 떠났다. 문제의 근원인 자본소득-노동소득 혹은 노동소득-노동소득 간 격차가 개선되지 않는 한, 교육은 단 1cm도 나아질 수 없다. 그럼에도 교육 정책이 중요한 이유는 더 망하지 않기 위해서, 혹은 천천히 망하기 위해서다.


  

1. 여론은 수능 절대평가를 반대한다



 “저는 정치는 진보인데, 교육은 보수적이에요.”

 

최근 여러 채널을 통해 들은 말이다. 학부모, 학생, 회사원, 교사 등 다양한 직업과 나이의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교육 정책에 동의할 수 없다고. (여기서 ‘교육은 보수적'이란 말은 정교한 개념이라기보단 문재인 정부의 정책, 진보 교육감의 정책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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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경험뿐 아니라,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도 그러하다

출처 - 유웨이

 


주장을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수능이 절대평가가 되면 변별력이 없어질 것이고, 학생부 종합전형의 비중이 증가할 것이다. 그런데 학생부 종합전형은 금수저 전형이다. 결국 정당한 노력은 인정받지 못하고 돈 있는 사람들만 좋은 대학에 가는 불평등 사회가 된다.’’


결국, 수능 절대평가에 대한 거부감은 '불평등한'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출발한다. 해서 수능 절대평가 자체를 논하기에 앞서 그 배경이 되는 수능과 학생부 종합전형(이하 학종)을 중심으로 입시와 사교육 문제를 접근해볼까 한다.


우선 위 주장에 대한 내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맞다. 있는 집 자식들이 더 쉽게 대학에 갈 것이고, 불평등은 점점 깊어질 거다. 부정할 수 없이 학생부 종합전형은 금수저 전형이다. 다만, 이 말을 덧붙여야겠다. 학종이 금수저 전형이라면, 수능은 다이아 전형이라고.


인정하자. 어떤 전형이든 가정 배경과 돈의 힘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아주 비교육적인 말이지만 '최고의 교육은 1:1 과외'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돈을 바르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높은 성적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전제에서 밝혔듯, 이 불평등은 수능을 이러쿵 저러쿵 해서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다만 어느 것이 덜 나쁜지,  문제를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는 것인지 고를 수 있을 뿐이다.


딱 그 정도에서, 나는 학종이 수능보다 '덜 나쁜' 제도라고 생각한다.



2. 학종은 사교육을 부추기는가?


2016년, 국회입법조사처에서 재밌는 논문을 발표했다. C 대학교 1~4학년 770명을 대상으로 입시 전형별 사교육 실태를 조사한 것이다(대입전형에서의 사교육 영향평가 연구- C대학을 중심으로. 류영철, 2016.).


설문 결과, 전체 학생 중 83.5%가 사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전형별로 보자면, 정시(수능)으로 입학한 학생 중 90.8%가 사교육 경험이 있는 반면, 논술 전형은 88.2%, 학종은 77.6%로 나타났다. 사교육을 받지 않고 입학한 학생 비율이 수능보다 학종이 높다. 학종의 사교육 밀착도가 낮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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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경향은 사교육 지출 비용에서도 나타나는데, 수능과 내신을 위해 과반수가 2년 이상 50만 원 내외의 비용을 지출했으나, 학종 서류제출의 경우 과반수가 3개월 미만에 50만 원 이하로 지출했다.


주목할 점은, 학생부 종합전형 중 어떤 요소가 사교육을 유발하느냐는 질문이다. 자기네 학원에서 컨설팅과 자소서 첨삭을 받지 않으면 대학에 못 갈 것처럼 떠드는 입시학원의 언플과는 달리,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소서 작성 과정에서 사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자기소개서 9.8%). 오히려 학종 입학생의 74%가 교과 성적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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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학생부 종합전형 역시 사교육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나, 수능에 비하면 사교육 유발 효과가 낮다는 것이다. 이는 C대학 연구뿐 아니라 6개 대학(건국대 대진대 동국대 서울시립대 전북대 한림대) 사교육 실태조사(2016)에서도 드러났다(논술 입학생 중 91.4%, 정시 86.1%, 교과 75%, 학종 72.7%가 사교육 경험).


이와 같은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실제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사교육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실은 수능 성적은 돈으로 쉽고 빠르게 올릴 수 있다. 그러나 학종은 교과 내신뿐 아니라 교내 수상내역, 동아리 활동, 독서, 봉사 등 '교육 과정'을 복합적으로 평가한다. 컨설팅 업체에서 뻔지르르한 포트폴리오와 자소서를 가져간다 한들, 본인 것이 아니면 소용없다. 페이퍼를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페이퍼 참고해 면접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니. 


(여담이지만 사교육 업계는 학종을 좋아하지 않는다. 수많은 대형학원들이 학종 확대에 맞춰 수능 중심에서 입시 컨설팅 중심으로 전환했으나, 수입에 직접적인 타격이 갔다고.



3. 누가 학종의 수혜자인가?


2008년 학생부 종합전형이 시행된 이래 학종은 '금수저 전형'이라는 프레임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실제로 학종 시행 초기에는 그런 우려를 낳을 만한 구멍이 많았다. 그러나 10년, 무려 10년이 지났다. 그간 학교 교사도, 대학도 데이터를 쌓았고, 교내활동만 반영하고 수상 내역도 상세화하는 등 제도적 개선도 있었다. 그때의 기준, 프레임으로 지금의 학종을 판단하면 곤란하다(물론 예나 지금이나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 이 부분은 추후에 다시 다루는 것으로).


학종을 불신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국 등수까지 공개되는 수능에 비해 학종은 불투명하다. 어떻게 선발하겠다는 건지, 떨어졌다면 왜 떨어진 건지, 나는 몇 등인지 시원하게 알 수 없다. 여기에 어느 학교에서 4등급이 학종으로 서울대에 갔다더라, 누구는 1등급인데 떨어졌다더라~ 하는 소문까지 더해지면, 학종 불신은 겉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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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유웨이



안타깝게도 학종에 모두가 만족하는 '객관적 기준'은 없을지도 모른다. 이 제도가 애초에 학습의 결과뿐 아니라 과정을 평가하겠다는 취지에서 도입됐기 때문이다.


똑같이 2등급을 받은 두 학생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어려서부터 교사가 꿈이었던 A는 매주 저소득층 아이들을 공부방에서 가르쳐 왔고, 교육 문제 토론 동아리에서도 활동했다. 반면 B는 교내 논술대회 입상 외 특별한 활동이 없다. 두 학생이 사범대에 지원한다 했을 때 누구를 뽑는 게 '보다 나은' 예비교사를 선발하는 것인가? 단연 A다. 수능만으로는 드러나지 않았던 활동을 평가요소로 적극 반영하는 것이다.


물론 앞서 살펴봤다 시피 학종 또한 사교육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학종에 가해지는 다양한 비판 중 하나가 저소득층 아이들은 다양한 체험을 할 기회를 갖기 힘들다는 것이다. 사실이다. 교내 활동만으로 평가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한 학부모의 정보력이 영향을 미친다. 다만 내가 학종이 '덜 나쁜' 제도라 말하는 이유는 그 영향력이 수능이 비하면 낮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잘 드러내 주는 것이 경희대 조사결과이다. 2016년, 경희대가 국가장학금 수혜율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학종으로 들어온 학생들의 국가장학금 비율이(45%) 수능(21%)에 비해 2배가량 높았다. 수능, 논술보다 학종이 저소득층에게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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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종이 금수저 전형이라는 통념과 배치되는 결과다. 2016년 한국일보 조사또한 마찬가지다. 가구 소득별 대입 전형을 살펴봤더니, 소득이 높을수록 학종(구 입학사정관)으로 입학하는 비율이 낮았고, 수능은 높았다. 이 역시 학종이 수능보다는 가정 배경에서 자유로운 '덜 나쁜' 제도라는 데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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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일보>



최근에는 학생부 종합전형을 까는 대열에 합류한 것 같지만, 중앙일보 역시 재미난 데이터를 근거로 학종 확대를 주장했었다. 2017년 3월, '리셋 코리아'라는 주제로 특별취재팀을 꾸려 교육 정책 전반을 점검했다. 그 일환으로 현재 29%인 서울대 정시 비중을 50%로 확대한 결과를 시뮬레이션해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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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수능을 확대하면 일반고 합격생은 줄고, 자사고와 외고, 강남 학교의 합격자수가 대폭 증가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 자사고가 그토록 학종을 싫어하고, 학종 때문에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위 결과들이 보여주듯 나는 학종이 가파르게 비탈길을 내려가고 있는 교육의 그나마 ((((((최소한)))))의 브레이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해서 조금만 '정교하게 고쳐 쓰면 수능보다 낫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실은 지금까지 제시한 데이터는 교육의 '계층이동 기능'의 측면에서 학종을 살펴본 것이다. 나는 이것보다 '교육의 목적' 측면에서 학종이 교육 현장에 기여하는 바가 크고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고 쓰고 보니, 글이 너무 길어졌다. 아무래도 그 부분과 학종 개선점은 무책임하게 다음 편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후.. 이래서 본론인 수능 절대평가 이야기는 언제 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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