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신가 잊을 만하면 출몰하여 대중음악 관련 글을 올리는 슈하 되시겠다.
지난번 디지털 시대 음반 1편에 딴지 독자여러분들이 보여주신 열화와 같은 성원에 깊은 감동과 감사(귀찮)의 시간을 보냈더랬다. 대부분 읽을 만하니까 글이 끝난다는 분노의 의견이 많았는데, 그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 자른 것이니 독자 여러분들의 뱃살과 같은 넉넉한 아량을 부탁드리며 2편 시작하겠다.
2편을 시작하기에 앞서, 지난 1편의 오류를 고백하자면 마지막 문단 CD를 설명하면서 삽입했던 사진,
요런, 이미지 였는데, 실은 CD가 아니라 블루레이 오디오였다는 무시무시한 실수가 있었다.
카라얀의 베토벤 9번 교향곡 CD는 요렇게 생겼다.
많고 많은 음반 중에 하필 요 음반이 CD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빠지지 않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CD의 용량, 수록시간을 결정할 때 카라얀의 베토벤 9번 교향곡 연주 시간이 66분 정도 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기준으로 CD의 수록 시간이 74분으로 정해졌다는 루머(?)가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요 발언을 한 사람은 필립스와 함께 CD를 개발했던 소니의 부사장 오가 노리오(大賀典雄). 이었는데, 본래 성악가이기도 했던 그는 카라얀과도 친한 사이였다고)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 CD가 개발된 시기는 1979년으로 개발 당시에 비해 현재의 CD 수록시간은 80분으로 확장 되었으나 LP, MC에서 CD로 변경되는 극적인 매체의 변화가 40여년이란 세월이 지나도록 없었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은가? (아니면 말고)
그 이유는 다름 아닌 LP와 MC와 같은 매체들이 ‘아날로그’ 매체의 특성을 지니고 있었던데 반해 CD가 개발되면서 비로소 ‘디지털’의 시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를 언급하자면 이 한 편의 글만으로 충분치 않겠지만 핵심적인 부분만 짚고 넘어간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데이터의 ‘열화’가 생기는 아날로그에 비해 디지털은 기본적으로 ‘반영구적’이라는 차이가 있다.
LP를 통해 제대로 된 소리를 듣기 위해선 진공관 오디오와 스피커를 포함한 고가의 장비들이 필수적이지만, CD는 LP에 비해 재생 매체에 따른 소리의 편차가 작은 편이라는 이야기 이다.
생산 초기만 해도 큰 제작비가 필요했던 CD는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기술자의 노하우가 중요했던 LP와 달리, 한 번에 균등한 완성도의 제품을 대량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날로그 매체들을 순식간에 잠식할 수 있었다.
테이프의 2배에 가까운 가격에도 불구하고 CD의 탁월한 음질은 감상자들을 매표시키기에 충분했으며 그 결과 카세트테이프의 희망과도 같았던 소니와 아이와의 워크맨 역시 포터블 CD 플레이어로 비중을 옮기기 시작했다.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세계 음반시장을 석권하던 CD는 기껏 해야 56kbps에 불과했던 모뎀의 전송속도를 아득하게 뛰어넘는 인터넷 전용선의 발전과 함께 CD에 수록된 음원을 디지털 파일화 시킨 mp3의 등장으로 그 왕좌를 위협받게 되었다.
세계 최초로 개발된 mp3 플레이어 세한의 mp맨
CD의 음원을 추출, 디지털 파일로 만들어내는 시도는 Mp3 이전에도 wav가 존재했으나, wav는 당시 시대가 감당하기에 파일의 크기가 너무 크다는 시대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보통 3분 여의 wav 파일 하나가 10~15 메가 정도 되던 시대에 128k, 256k 음질의 mp3는 2, 3메가 크기에 불과했다.)
wav도 모자라 Flac 같은 초 고음질 매체를 찾는 요즘과 같은 시대를 생각하면 웃음이 날 일이지만, 몇 번을 복사해도 음질의 열화가 일어나지 않는 mp3는 일일이 음반을 교체해야 하는 CD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편리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즈음 CD의 개선점을 감안한 새로운 매체 MD(Mini disc)가 소니에서 개발되기도 했지만, 저작권의 위협을 느낀 음반 회사들의 비협조와 녹음시간 = 재생시간 이라는 한계 때문에 CD와 같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데 실패하게 된다.
소니의 공 MD.
CD를 플로피 디스크처럼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씌워 데이터를 보호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음반 시장이 CD에서 mp3로 변화함에 따라 음반 제작사들 역시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되는데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를 꼽자면, 그렇게 긴 세월동안 수많은 관계자들이 목 놓아 주장했던 ‘앨범’ 중심의 시장에서 ‘싱글’ 중심의 시장으로 변화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 음반의 종류는 크게 10여곡을 담은 정규 앨범, 4~6곡을 담은 EP(미니 앨범이라고도 부른다), 시장성이 기대되는 대표곡만을 뽑아 발매하는 싱글로 구분되는데, 한국에서는 제작자들의 욕심과 소매상들의 비협조적인 관행으로 인해 비교적 적은 제작비로 발매할 수 있는 싱글이 자리 잡지 못했다.
멜론 등을 위시한 각종 디지털 음원 사이트를 통해 음반 아니, 음원이 거래되는 가운데 음반 제작자들은 CD를 대체할 새로운 매체를 찾아 다양한 시도(삽질)를 하게 되는데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여러분 대부분 이글을 통해 처음 보는 매체가 많을 것이다.(그렇다고 말해줘)
디지털 디스크
트로트 플레이어 아니다 디스크도 아니다
2006년 이지맥스와 세도나미디어가 공동 개발한 디지털 디스크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재생 기능만을 갖춘 mp3 플레이어라 할 수 있다. AA건전지 1개를 통해 작동하는 디지털 디스크는 야심차게 출발하였으나 모두가 예상한 바와 같이 싸늘한 반응을 얻으며 사라졌다.
디지털 디스크가 실패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라면 기존 포터블 mp3 플레이어를 통해 들을 수 있는 디지털 음원을 디지털 디스크를 통해 들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애초에 디지털 음원의 특성인 ‘내가 좋아하는 곡을 모아서 들을 수 있다’라는 강점을 포기하고 ‘하나의 음반’ 이라는 한계에 갇혀 있었다는 점에서 실패가 예견 되어 있었다.
키노
키노로 발매된 효민과 Vixx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매체로 지쥬래건의 USB와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으나 이쪽은 가온차트를 비롯한 음반 판매량에 포함된다는 차이가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종이로 만들어진 카드에 NFC 방식으로 음악이나 사진, 영상 등을 볼 수 있는 코드가 새겨져 있고, 종이 카드 외에 기존 음반의 부클릿 역할을 하는 사진집이 포함된 패키지인데 영리하게도 팬 층이 두터운 아이돌을 대상으로 한정 발매 하는 방식을 택해 수집욕구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현재 글을 작성하고 있는 본인을 포함한 다수의 독자(아재) 들에겐 낯선 매체이나 냉정하게 말해서 ‘음악’ 보다는 ‘사진집’ 등의 굿즈가 우선되는 느낌이 강하다.
USB
온 더 스팟, 노이지의 USB
김장훈의 USB
정확히 말하자면 USB가 아니라 USB 메모리로 발매된 음반으로 기념품, 사은품으로 다량 제작되는 USB 메모리에 음악과 뮤직비디오 등을 담아 발매된 형태이다. 사실 CD로 발매되었던 음원을 USB에 파일 형태로 넣었다는 의미 외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매체의 형태가 CD와 같은 디지털-아날로그 형태에서 ‘음원’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사실 온라인 음원 유통 사이트에서 다운로드 받는 음원과 무슨 차이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뭔가 유형의 매체를 손에 넣고 싶어 하는 팬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독특한 시도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그리고 지 드래곤(쥬래건)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지 드래곤이다. 사실 길고도 장황했던 이 글은 지 드래곤의 USB 발매가 어떤 의미가 있고, 지 드래곤 이전에는 이런 형태의 음반을 발매했던 뮤지션이 없는지 돌아보자 하는 목적에서 출발하였으나, 기왕 글을 쓰는 김에 음반의 역사가 어떠했는지 돌아보는 글이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많은 언론(언플)을 통해 보도된 바와 달리 지 드래곤의 이번 USB 발매는 독특한 시도라거나 최초의 도전 같은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지 드래곤 이전에 USB 라는 매체로 음반을 발매한 뮤지션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 행위 자체에 어떤 문화적,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 음반이 가온차트에서 제외되는 상황을 두고 보수적인 해석이라느니, 지 드래곤에 대한 차별이라느니 하는 해석을 덧붙이는 것 또한 무리가 있는 이야기인 게,
앞서 살펴본 것처럼 USB라는 매체가 가온차트로 부터 배척 받는 것이 아니라 USB라는 형태로 음반을 발매 함에도 불구하고 USB 안에 음원이 담겨 있지 않고 동봉된 링크 주소를 통해 음원을 다운 받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음악이 담겨있지 않은 매체를 ‘음반’으로 볼 수 없다는 이야기 인데 그렇다면 키노와 같은 NFC 링크를 통해 음원을 다운 받는 매체는 왜 ‘음반’으로 해석하는가 하는 의문이 따라붙는다.
종합하여 말하자면 YG 엔터테인먼트의 ‘언플’ 과 가온차트의 보수적인 ‘관행’이 빚어낸 이 촌극은 과연 사람들에게 있어 음악이란 어떤 의미인가, 음악을 담은 음반이란 어떤 의미인가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음반이 ‘음악을 담은 매체’에서 ‘애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변화하는 요즈음, 이러한 분위기가 일반화 될수록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들의 설 자리가 더 좁아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모든 홍보에는 ‘돈’이 들기 때문이니까.
지난 기사 |
슈하님
편집 : 꾸물
추천
[취재]국민의당 제보 조작 사건: 조직적 개입은 없었나 cocoa추천
[기획]나는 조금 특별한, 교도소에서 일합니다6 : 박근혜의 올림머리, 그리고 욕망의 화신들 Boss추천
[수기]나는 초보 대리운전 기사입니다3 : 대리기사들이 만나고 싶지 않은 고객들 달팽이대리운전추천
[사회]나는 오늘도 기자와 협상한다 18 : 기자와 싸우는 팀장 빨간두건추천
[좌린스케치]6월 30일 사회적 총파업 풍경 좌린추천
[과학]유전자 분석 서비스 2 : 유전자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CZT추천
[분석]알쓸신잡 어벤져스 비긴즈 : 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정재승, 그리고 나영석 근육병아리추천
[딴지만평]국민의당은 고민중(feat.가위) zziziree추천
[의학]자궁경부암 백신은 누가, 언제, 어떻게 맞아야 하나: 남자가 맞아도 된다 raksumi추천
[감정]권력워치 : 문재인 대통령 시계도 곧 나온다는데, 역대 대통령 기념 시계는 얼마에 살 수 있... 빵꾼검색어 제한 안내
입력하신 검색어는 검색이 금지된 단어입니다.
딴지 내 게시판은 아래 법령 및 내부 규정에 따라 검색기능을 제한하고 있어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전기통신사업법 제 22조의 5제1항에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삭제, 접속차단 등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치가 취해집니다.
2.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청소년성처벌법 제11조에 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제작·배포 소지한 자는 법적인 처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4.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 따라 청소년 보호 조치를 취합니다.
5. 저작권법 제103조에 따라 권리주장자의 요구가 있을 시 복제·전송의 중단 조치가 취해집니다.
6. 내부 규정에 따라 제한 조치를 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