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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장 일들이 들쭉날쭉하다. 업계특성상 비수기에 접어들어 일감이 더 적어들기도 했다. 식당에 공문이 붙었다. ‘6월 0일은 전 직원 연차 휴무입니다. 연차가 없는 분은 내년 연차발생분에서 차감합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사람은 목적이 아니라 비용이다.


인건비 절감차원에서 내년 발생 연차를 소진하자고 한다. 인심 쓰는 김에 한 주를 쉬기로 했다. 관리자가 잠시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처갓집을 다녀오기로 했다. 해마다 이맘 때면 아내가 마음이 불편하다. 양파농사를 짓는 장인내외가 가장 고된 노동을 하는 시기다.


만 사람을 기쁘고 행복하게 해줄 능력은 없지만 가끔이라도 곁에 있는 사람이라도 기쁘게 해줄 수 있다는 게 어디냐 싶다. 좋은 마음으로 막상 가려니까 옥상 화분이 걸린다. 무릎으로 고생하던 동안 화분에 물을 주지 못했다. 작은 관목들마저 죽어버렸다. 그리고 지난 해 까지 옥상에 있는 화분을 잊고 살았다.


마음에 여유가 다시 조금 생겼다. 다시 옥상 화분을 가꾸기로 했다. 잊고 지낸 동안에도 풀은 자라고 씨앗을 뿌리고 흔적을 남겼다. 사람의 손을 탄 작물과는 다르다. 그 잔해를 치우고 깨진 화분들을 정리했다. 그러고도 물 한 동이 분량의 화분이 남았다. 퇴비 한 포대를 나누어 붓고 아내가 좋아하는 쌈 채소를 심었다. 남은자리에 파프리카와 방울토마토 그리고 고추를 심었다.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고 풀을 뽑아주며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로컬 푸드를 사먹는 게 지역경제에 도움이 훨씬 되겠지만 직접 물을 주며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자유를 위한 무소유도 좋지만 좌표가 고정되지 않은 현실을 살려면 이정도의 얽매임이 필요하기도 하다. 언젠가 좀 더 여유가 주어지면 감자를 키워보고 싶다. 폐 타이어에 흙을 채우고 줄기가 자라는 만큼 타이어를 올리며 흙을 채워주는 방식으로 키우면 굉장한 수확이 가능하다던데 공동주택 옥상에서 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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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상추 잎을 따는 방법을 모른다. 줄기에서 잎이 나오는 부분을 살짝 눌러 따면 되는데 손 잡히는 대로 쥐어뜯는다. 그러다 아직 자리를 덜 잡은 뿌리 하나가 들썩였다. 더 이상 자라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몇 주째 겉잎은 시들거리고 속 심지만 살아있었다. 생장점이 다친 건지 뿌리와 공생하는 균류의 균형이 깨어진 건지 알 수는 없다. 죽지는 않았으니 물을 준다. 그 놈이 지난주부터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그게 기분이 좋았다.


열매를 맺은 고추와 파프리카, 방울토마토 화분에 비료를 추가로 주었다. 어차피 가축분 퇴비도 순수한 자연이라 하기는 어려운 공장 생산물이다. 가축은 사료와 항생제로 키운다. 식물이 뿌리에 공생하는 균류의 도움을 얻어 양분과 미네랄을 섭취하는 것처럼 동물은 장내 미생물의 도움을 받는다. 정확히 어떤 박테리아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른지만 항생제를 먹어 장내 미생물 군집에 변동이 생긴 가축은 같은 양의 사료를 먹고도 살이 빨리 오른다. 항생제 처방은 열악한 환경이 초래하는 전염병 예방이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로 경제적이기도 하다. 경제활동은 중첩되어 확산된다. 한도이상의 축적은 역반응을 불러온다. 먹는 것이 육신을 구성한다. 먹는 것이 어디서 오는지 궁금해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알기 위함이다.


앞집에서 화분을 돌봐주기로 했다. 물 조리개와 대야에 물을 담아 화분 곁에 두었다. 시골생활에서 필요하고 좋아하실 만한 소소한 물건들을 준비하고 동틀녁에 출발했다. 금방 날이 밝아진다. 운전하며 내려가는 길에 몇 번의 스키드 마크와 로드킬의 흔적을 본다. 스키드 마크는 중앙 분리대나 갓길로 이어졌다. 타이어 파손이거나 졸음 운전이다. 로드킬의 흔적에서 시간의 흐름이 보인다. 핏물이 번진 농도가 옅거나 짙거나 선명하다. 갓길로 이어진 스키드마크의 끝에 가지런히 놓아진 안전화가 있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상상하면서 스쳐 지나간다.


뿌리가 얕은 아카시아 나무가 노랗게 탈색된 잎을 떨군다. 참나무는 뿌리가 깊어 가뭄에 강하다. 비가 적었으니 올 가을엔 도토리가 많이 열릴 것이다. 작은 저수지들은 바닥을 드러냈다. 창밖으로 뽑아놓은 양파들은 물을 먹지 못해 알이 작다.


양파수확을 도와주러간다는 말을 아내가 미리 했다. 장인내외는 이틀에 걸쳐 양파를 모두 뽑아 놓았다. 준비해간 작업복을 입고 밀짚모자를 썼다. 꼬박 이틀간은 뽑아놓은 양파 꼭지를 잘랐다. 직사하는 태양 때문인지 머리가 조금 지끈거렸다. 직사광선의 타격 후유증으로 빛이 입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건 타박상이다. 수건에 물을 적셔 모자 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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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를 망에 담는 일은 사람을 사기로 했다. 아마도 더는 품앗이를 나눌 사람이 없지 싶다. 장인이 돌아가신 친구 분 아드님이 한다는 인력사무소에 사람을 부탁했다. 손 야무진 사람, 망 작업해 본 사람으로 두 번 세 번 부탁하는 소리를 했는데도 사람이 없었지 싶다. 일 시작한 지 한참 만에 도착한 사람들은 한국말이 짧은 베트남 사람들이었다. 손짓을 섞어 말을 나눴다. 망 작업을 할 줄 모르고 하지도 못한다. 꼭지를 자르는 일로 알고 왔다. 어쩔 수 없이 돌려보냈다.


기왕 이리 된 거 하루 더 묵어가기로 했다. 장모는 인건비도 아끼고, 딸도 하루 더 묵고 내심 좋은 눈치다. 장인이 일하는 모습이 예전 같지 않다. 양파 망을 수매지역으로 운반하는 운임료를 아끼려고 작년에 무리를 하고 호되게 몸살을 앓았다. 후유증이지 싶었다. 점심 참에 운이 좋게 망띠기로 작업하는 사람들이 연결 되었다.


인건비를 일당으로 정산하지 않고 일한 양만큼 주면 된다. 망 당 900원이다. 한철 빡세게 벌고 놀러 다닌다고 한다. 정말 그런지는 알 수 없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필사적으로 일한다. 세 명이 반나절 조금 못 되게 일한 대가로 25만원을 지불했다. 돈을 드리면서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일이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감사인사를 했다. 장모님은 그마저도 아까워 하는 것 같지만 돈을 주고 시간을 샀다. 덕분에 장모님은 생일날 미역국을 받아먹고 읍내 병원에 물리치료를 받으러 갔다.


장모님이 말을 해서 알았다. 장인어른이 탈장이 생겼다. 어린 시절 친구아버님이 화장실에서 힘을 주다 창자가 일 미터가 쏟아져 대야에 담고 병원에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탈장에 대해 무서운 이미지가 있었다. 항문이 빠지는 탈항과 복막을 뚫고 나오는 탈장은 다르다.


별소리를 다 한다 타박을 듣는 장모님 편을 들어 주었다. 조금 무리를 하면 하복부 쪽에 꾸룩거리는 느낌이 오고 장이 삐져나온다. 그러면 그 자리를 주물 주물 눌러 장을 밀어 넣는단다. 수술을 하자니 그냥 살다 죽는단다. “운이 없으면 장이 고무줄에 묶인 손가락처럼 피가 안 통해 괴사할 수 있답니다. 그러면 위험합니다. 아는 사람 보니 복강경으로 배를 째지 않고 수술하니 돈은 얼마 안 듭니다.” 위험할 수 있다는 공갈과 배를 가르지 않는다는 말에 완강하던 반대가 수그러들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수술을 하기로 약속을 받았다.


여전히 익숙치 않은 노동이다. 익숙한 노동이라고 그 힘겨움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나 내성과 요령은 생긴다. 몸이 받는 부하와는 별도로 일을 끝낸 마음이 편안하다. 사람은 각자 삶을 바라보는 시점이 다르고 행복을 느끼는 요건이 다르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기여를 할 수 있었다는 충족감이 느껴진다.


전리품처럼 양파 세 망을 싣고 돌아왔다. 내려오면서 보았던 것 만큼의 스키드 마크와 로드킬 흔적을 본다. 문명에 적응한 까마귀는 가드레일에 앉아 차량이동을 주시하다 바닥에 붙은 살점을 주워 먹는다. 깃이 짧은 편이 지속적인 생존에 유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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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