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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아내를 데리고 근처 정형외과병원에 갔다. 한동안 갱년기 증상 때문에 산부인과를 다녔는데 그게 괜찮아지더니 요즘엔 팔꿈치 통증을 호소한다. 연골 재생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받고 돌아온다. 접수하고 대기한다. 대기석이 한 방향으로 설치되어 있고 벽면에 벽걸이 티비가 걸려 있다. 30명 가까운 사람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티비를 시청한다. 알쓸신잡이라는 예능 프로다.


경주편이라 성덕대왕신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인신공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유시민 작가의 질문이 있었다. 아마도 인간의 문명과 역사는 무엇을 지향하는가 혹은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오랜 물음이 무의식 중에 튀어나온 것 같았다.


소설가 김영하의 답은 이야기를 통한 공감능력의 확장이었다. 부족원 외에 모두가 적인 원시사회에서부터 이야기를 통해 공감하는 대상을 확장시켜 왔다는 주장이었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부족사회를 벗어나 인식을 군장사회로 확장시킨 것이 종교라고 생각하는데 종교를 구성하는 신화도 결국 이야기인 것은 맞다.


이야기의 힘은 위대하다. 물건이고 사람이고 이야기가 뒷받침 돼야 팔리는 법이다. 역으로 팔아먹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가 높은 것도 감정이입할 수 있는 이야기가 충만하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방식이기도 한 직업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다. 요리사라면 불의 발견으로 소화력을 높이고 그전에 먹지 못하던 것들을 먹을 수 있게 되면서 기아의 시기에 무리 중에 약자를 잡아먹던 관습을 버릴 수 있던 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포만감은 여유를 준다. 여유에서 포용이 나온다.


인간은 먹을 수 있는 것을 넓혀가면서 기존에 먹던 가까운 것들을 먹지 않게 되었다. 굳이 개를 먹지 않아도 생존이 가능하기에 동물보호법이 만들어 질 수 있는 심정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음식의 발전이 곧 문명의 발전이고 여유와 인식의 확장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듯하다.


바다에서 태어난 생명이 육지로 오르고 다시 몇 번의 시도로 하늘을 날았다. 화석으로 익룡과 새의 날개 구조는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곤충의 날개와 박쥐의 날개도 다르다. 각기 다른 시도를 통해 하늘에 닿았다. 도마뱀과 뱀, 개구리도 열대우림에서 하늘을 날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단풍나무 씨앗이나 민들레 씨앗을 보면 식물도 각자의 방법으로 시도를 한다. 공기 중에서 수분과 양분을 섭취하는 식물도 있으니 동물과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육지에 올랐다가 다시 바다로 돌아간 동물과 식물도 있다. 생명은 빈자리를 찾아 생존 영역을 확장하려 한다. 신체적 능력을 발달시킨 다른 동, 식물과는 다르게 인간을 하늘에 날게 한 비행기는 지성의 발달이다. 인간의 기술은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로 향한다. 인간보다 먼저 포자 형태로 대기권을 벗어난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있을 법도 하지만 지속적인 생존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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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진화에는 방향성이 있다.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생존 가능한 영역을 확장해 간다. 인간의 공감능력이 확장하는 것과 궤를 같이 하는 것도 같다. 확신할 수는 없다. 확신하는 순간 생각의 틀이 고정된다. 고정된 틀은 완고해진다. 시대를 뛰어넘는 천재들의 생각은 고정이 되어 어느 시점까지는 따라갈 이정표가 된다. 그 시기가 지나면 밟고 지날 디딤돌이 된다.


남극지역의 범고래는 같은 지역에 아홉 종류의 아종이 산다. 제노사이드를 벌이는 인간보다 공존 능력에 있어서 우월하다. 그러나 지구는 범고래의 별이 아니라 인간의 별이 되었다. 범고래는 아종과 먹이가 겹치지 않으니 싸우지 않을 뿐이다.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는 인간은 다르다. 육식동물들이 경쟁동물의 새끼를 죽이는 것처럼 경쟁자를 대했다. 그 흔적이 제노사이드로 현대에 발현하는 것 같다.


동물과 식물뿐 아니라 병원균까지도 인간과 관계를 맺어야 번성한다. 지질학자들은 지금 시대를 인류세라고 한다. 훗날 지금 시대에 생성된 지층에서 발견되는 화석들은 인류 문명의 잔재가 대부분일 것이다. 지금까지는 인간이 태양계의 경계를 벗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다. 특권층에게도 더 많은 기회가 생기겠지만 그 이상의 기회가 장내 미생물에게도 주어졌다.


지구를 인간의 별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인간 개인은 미미하고 나약하다. 약간의 결핍으로도 육체와 정신의 조화가 무너진다. 풍요의 환경에서는 중독으로 망가지기도 한다. 수 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이뤄낸 문명과 지식은 찬란하다.


자아를 탐구하고 타자를 더듬어가는 지성은 위대하다. 지성이 머무는 뇌가 성숙하는 데, 수 십년의 세월이 걸리는 데도 고장나고 퇴행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나약한 개인들이 모여서 만든 집단의 역사는 지구의 생태를 바꿨다. 개개인의 선악과 품성과는 별도로 집단의 의식이 있다.


성실하고 선한 사람이 타 집단에게 악랄하고 잔혹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악의 평범성을 언급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흔히 보는 사람들의 한 부분이다. 자연인으로서의 개인과 집단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은 역할과 성격이 다르다. 마치 다른 인격인 것 같다. 원자가 분자의 일부분이 될 때와 같다.


산소원자 둘이 모여 산소가 될 때와 셋이 모여 오존이 되면 전혀 다른 물질이 된다. 산소원자는 변하지 않아도 물질의 기본 단위인 분자로 표현되는 물리 화학적 특성은 전혀 다르다. 산소는 호흡하고 오존은 성층권에서 자외선을 막아주지만 먹으면 죽는다. 수소원자 둘과 결합하면 물이 된다. 지구 생명의 근원인 물은 고체상태보다 액체 상태일 때 부피가 작다.


개인, 가족, 지역집단, 국가, 인류, 지구 생태등 인지하고 공감하는 집단의 크기가 다르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생존을 위한 이익을 분배하는 부분에서 더욱 그렇다. 한정된 자원이기에 분배는 생존을 결정한다. 보통은 같은 집단으로 인지해야 분배한다. 인지는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감정적이거나 충동적으로도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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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역사는 멸종의 역사이기도 하다. 한때 번성하던 생물들이 화석으로만 발견되는 것처럼 인간이 발전시킨 문명도 몇 번의 종말을 맞았다. 문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부족단위를 넘어서는 군집 활동이 필요하다. 위대하지만 연약하고 섬세한 인간의 지성의 산물들은 전승자를 만나야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한 배에 젖꼭지가 12개씩 달린 돼지와 달리 인간은 번식률이 낮다. 급진적으로 문명이 발전된 시기에는 집단 간의 결합이 있었다. 방법이야 어찌 됐든 통합되고 커진 인간의 군체는 번영했다. 인구는 양날의 검이다. 문명이 붕괴했던 이유를 멜서스의 인구론에서 찾을 수도 있다. 지나친 인구가 주변 자원을 소진한 흔적으로 남은 문명이 있다. 내부갈등으로 인한 내전으로 무너졌을 수도 있다. 내부 갈등이 커지는 건 결국 한정된 자원을 탐하는 인구수가 늘어났다는 말이다.


통합과 분열을 반복하면서 통합을 이루는 단위는 커졌다. 경험과 지식이 축적되고 역량도 증가하는 것 같다. 그만큼 문명발달은 가속도가 붙었고 분열로 일어나는 참상도 더 커졌다.


기왕이면 인류에게 희망적인 미래가 존재하길 바란다. 배제와 차별로 구분지어 분열하는 역사의 반복이 아니라 번영하고 발전해서 지성의 한계를 넘었으면 좋겠다. 수요와 이익이 있겠지만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인터넷과 페이스북으로 사람들을 연결한다.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집단지성도 학습을 통해서 성장을 한다. 다만 생존을 위해 진화해온 욕망과 쾌락은 스스로 변화시킨 환경에서 또 다른 병증으로 발현된다.


원시부족상태의 노인 한 명의 지식을 도서관에 비유 한다면 지금 인류가 축적한 지식은 한 사람이 평생 추구해도 만분의 일에 도달하기도 어렵다. 본 것을 믿는 인간은 각자가 속한 격벽 너머를 상상이나 할 뿐이다. 인간 수명의 한계도 명확하다.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연결할 존재는 도약을 위해 절실하다.


사람들이 인터넷에 토해 놓은 감정의 배설들과 지식들은 필연적으로 출현할 인공지능의 자양분이 된다. 전통적 의미에서의 노동이 사라진 시대가 온다.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이 결합된 시대의 아이들은 신화시대의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보살핌을 받는 선민의 삶을 살 수 도 있겠다. 쓰다 보니 아시모프 최후의 질문의 질 낮은 프리퀄처럼 되어 버렸다. 천재들의 상상력은 시대를 뛰어넘는다.


삶을 둘러싼 울타리는 작지만, 가끔씩 넓은 시야로 생각을 펼쳐가는 것도 좋다. 권위에 굴종하는 무의식적인 비굴함을 보상받기 위한 현실도피와는 조금 다르지 싶다. 다시 삶의 현실을 바라보면 도토리 키 재기를 하는 군상들이 보인다. 어쩌면 착시효과에 불과할지라도 삶을 대하는 태도를 좀 더 의연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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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그날 이야기에서 에밀레종에 마음이 더 갔다. 왕도의 신민들에게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는 종소리를 만들기 위해 구릿물에 녹아들어간 아이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던 건 이명박 사위가 경영하는 타이어공장에서 사망자들이 십 수명 발생했던 해였다.


도로를 만들다 죽어간 사람들, 배와 자동차를 만들다 죽어간 사람들, 아파트 단지 마다 만들다 죽어간 사람들이 에밀레종에 녹아들었다는 아이와 같아보였다. 마냥 평화롭고 행복한 사람들은 종소리를 듣고 부처와 왕의 가호를 찬미하는 서라벌의 신민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한 방향으로 앉아서 티비를 보는 사람들의 풍경이 평화를 기원하는 범종의 종소리가 유발하는 맥놀이 현상에 감동하는 예전의 사람들과 겹쳐보였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매번 같은 결과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반복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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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