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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왜 북드인가! 

 

최근 탈북한 새터민들은 심심찮게 남한 드라마를 보고 내려왔다고 말한다. 남한엔 김수현, 권상우처럼 생긴 사람들이 사는 줄 알고 내려왔는데 실상은... (이하 생략). 일단 그 점에 대해선 대승적으로다가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다.

 

여하튼 포인트는 남한 드라마가 북한에 꽤나 퍼졌다는 것인데, 정작 우리는 북한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장마당이 활성화됐고, 스마트폰이 보급됐다는 사실조차 최근에서야 알려졌을 정도로. 그러니 북한 드라마는 말해 무엇하랴.

 

하여 본지가 남한 최초, 북드 리뷰라는 미개척 분야에 발을 내딛었다. 하루 이틀 만에 다 볼 수 없는 드라마 전편 감상 잉여짓을 그 누가 하겠는가. 잉여가 해야지 뭐. 

 

제목: <임진년의 심마니들>

장르: 역사 드라마

분량: 8부작. 회당 40여 분

 

'임진왜란'과 '심마니'라는 단어에서부터 벌써 어떤 내용일지 감이 싸악 오지 않는가? 그렇다. 때는 임진왜란. 한 뿌리를 먹으면 백 년을 산다는 조선의 인삼을 노리는 일본군과 그에 맞서는 심마니들의 대활약을 그리는 북한 최신 텔레비죤 련속극이 본 작품 되시겠다.

 

8부작 드라마를 한 편의 글에 다 담는 담대한 시도이니, 잘 따라오시면 당신의 시간을 완벽하게 아낄 수 있다. 

 

 

1.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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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팽이

 

주인공이다. 너팽이지만, 어쩐지 발음은 놈팽이에 가깝다. 졸라 짱짱 세다. 왜군 한 파티 정도는 거뜬하게 혼자 때려 부수는 강골이다. 불의를 마주하면 홀로 사또와 맞다이를 신청하는 정의롭고 용감한 불꽃 남자이다. 툭하면 공물 털리는 심마니의 삶을 회의하지만, 결국 아빠의 가르침을 따라 진성 심마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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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호조좌랑, 방어사)

 

근엄갑. 진중하고 사려 깊으며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아는 양반의 롤모델로 그려진다. 게다가 무관 출신으로 쩌는 무예 실력도 가지고 있다. 국가의 부조리함을 직면했을 때 외면하거나 편승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개혁을 해내려는 인물. 그러나 개인의 입신양명에 대한 열망도 강해서 때론 다소 부조리한 짓을 벌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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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

 

전형적인 탐관오리. 너팽이와는 어릴 때 같은 동네서 자랐지만, 너팽이를 주워 온 자식이라 놀리며 출생의 비밀을 까발린다. 과거 급제를 통해 사또로 고향에 부임한 뒤, 인삼 공물을 착취하는 데 열을 올리고 배임 횡령까지 시도한다. 끝날 때까지 너팽이와 대립하며 너팽이를 위기에 몰아넣는 계획을 꾸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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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아장수(방물장수)

 

중년의 여성. 첫 화부터 무언가 사연이 가득한 눈빛으로 너팽이를 숨어서 바라본다. 드라마 내내 숨어있는 포지션으로 사건이 생길 때마다 울거나, 호소하거나, 조력한다. 나름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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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또

 

일본인이 된 조선인. 역시 너팽이와는 어릴 때 심마니 공동체에 속했던 친구다. 모종의 이유로 가문이 한 다이묘 밑에서 충성하게 되고, 이후 조선의 인삼씨와 인삼재배 기술을 빼 오기 위해 산업스파이 겸 특수부대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처음엔 길 안내꾼이었지만, 나중엔 나름 장군까지 해 먹는 입지전적인 인물.

 

그 외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요 다섯 사람만 알면 대강의 스토리는 이해 가능하다.

 

 

2. 줄거리

 

분량이 다소 기니까 주인공인 너팽이의 대모험을 중심으로만 디벼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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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좌랑 김진수는 시장에서 시비 붙은 행인들을 때려눕히는 너팽이를 보고 반해 서울 스카웃을 제의한다. 너팽이는 이를 거절하고, ‘평범한 백성’으로 살기를 희망한다. 황아장수는 구석에서 이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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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팽이는 시도 때도 없는 관과의 공물 요구 때문에 항상 약간 빡쳐있는 상태다. 말이 요구지, 사실상 수탈인 셈이다. 오늘도 빡쳐 있는 너팽이 앞에 사또의 지시를 받은 포졸들이 나타난다. 인삼을 삥 뜯기 위해서다. 그러나 불꽃남자 너팽이, 포졸들을 털어버린다. 이렇게 사또와 너팽이의 대립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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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에게 산삼과 인삼 비법을 전수받던 너팽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야마모또가 안내한 왜군은 너팽이의 아빠를 습격해 인삼을 탈취한다. 돌아온 너팽이는 또 딥빡하게 되고, 눈치도 없이 다시 찾아온 포졸들을 또 후두려 패며 화풀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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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원을 때린 죄로 검거된 너팽이. 아빠의 장례를 치르고 형을 받겠다고 말하지만, 사또는 “응, 안 돼“ 라며 참수형을 결정한다. 남한 드라마라면 이쯤에서 죽은 후 타임리프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탈출시킬까 궁금했었는데, 뜬금없이 사형 집행인이 너팽이를 풀어주고 관군들과 대신 싸우는 스펙타클한 전개가 펄쳐진다.

 

탈출한 너팽이와 너팽이의 약혼자는 심마니 공동체를 운영하는 오랜 친구를 만나고, 둘은 심마니 공동체에 가입한다.

 

‘인삼제’를 지내는 심마니 공동체. 발리우드는 북한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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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가 백성들에게서 털어 온 인삼을 왜군과 사적으로 거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너팽이는 (또) 딥빡하고, 심마니 공동체와 함께 사또를 털기로 결정한다. 유인계를 써서 관군을 끌어내려는 너팽이와 그 유인계를 유인계로 맞받아 너팽이 일당을 포위한 사또. 반전의 반전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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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러. 나. 너팽이의 무쌍 앞에서 관졸들은 추풍낙엽. 모든 인삼을 회수한 채 유유히 본진으로 돌아온다. 낙심한 사또는 ‘이렇게 된 이상, 한 몫 땡겨야 겠다‘며 파직을 감수하고 공물로 보낼 인삼을 왜군과 거래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정의로운 심마니 공동체는 떠나려는 왜군을 습격해 인삼을 되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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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인삼 공물 사태와 너팽이의 무용담은 조정에까지 전해지고, 김진수는 사태 수습을 위해 절도사로 파견된다. 김진수의 인품이 남다르다는 것을 눈치챈 너팽이는 모두의 만류를 뿌리치고 김진수와의 쇼부를 위해 홀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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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사또의 비리와 그간의 사정을 소상히 고한 너팽이. 그러나 김진수는 너팽이의 말을 믿지 않고 둘의 사이는 갑분핫. 갑자기 격투씬이 펼쳐진다.

 

 

정통 사극에서 갑자기 홍콩 액션 영화로 확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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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디선가 또 지켜보고 있던 황아장수가 결투장에 난입하고 눈물을 흘리며 ‘출생의 비밀’을 밝힌다. 그렇다. 두 사람은 사실 친형제였던 것! 게다가 두 사람의 아버지는 그놈의 인삼 때문에 역적으로 몰려 억울하게 죽었던 것! 역적의 자식이란 꼬리표를 떼기 위해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집안에 보내져 자라났던 것!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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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의 자식임이 밝혀지면 자신의 입신양명에 큰 장애가 될 것을 직감한 김진수는 너팽이를 죽이려 하지면 너팽이는 도주에 성공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불안했던 김진수는 유언비어를 퍼뜨린 죄목으로 황아장수를 고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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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사건들은 급속도로 전개된다. 역적의 자식임을 밝혀 자식의 장래를 위태롭게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황아장수는 폭포에 몸을 던지지만 스님들에게 구출되어 절에서 치료를 받고, 이후 머리를 깎고 출가한다. 모든 것을 부정했던 김진수는 호방을 털어 전임 사또의 비리를 알아내고, 너팽이의 말이 사실이었음을 깨닫고 갈등하기 시작한다. 너팽이 부부는 독단적 행동으로 인해 심마니 공동체에서 추방당하지만, 곧 두 사람은 첫아이를 얻으며 달콤한 신혼 심마니 라이프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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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잠시, 임진왜란이 터지고 부부의 신혼 생활도 금방 끝난다. 조선의 인삼을 가져오라는 히데요시의 특명을 받은 왜군 특수 부대는 너팽이의 집을 습격한다. 집을 떠나있던 너팽이는 돌아와 왜군을 모두 후려 패지만, 왜군은 너팽이 가족의 집에 불을 질렀고, 갓난 아들은 불길 속에서 사망한다. 개빡친 너팽이는 인삼씨와 비법서를 땅에 묻고 왜군과의 싸움을 위한 분노의 다짐을 한다.

 

 

임진왜란의 소식을 전하면서 추가한 전투씬은 옛 영화의 영상을 가져와 편집하는 패기를 보여준다.

북한 영화에 저작권의 개념이 있을 리 만무하고, 있어도 어차피 조선 중앙 티비 거니까.

사람과 말이 그냥 굴러다니는 전투씬에서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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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저차 끝에 다시 결성된 파티. 야마모또가 이끄는 왜군은 심마니 파티를 습격해 본국으로 끌고 가기로 한다. 그동안 방어사로 파견된 김진수는 왜군에게 처맞거나 왜군의 뒤꽁무니만 쫓는 신세가 된다. 야마모또는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해 너팽이를 조선인 포로로 쓰기로 하고 끊임없이 협박과 회유를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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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개죽음 당하는 상황을 우려해 협력하는 척했던 너팽이는, 결정적인 순간이 오자 감시병을 때려잡고 족쇄의 열쇠를 탈취한다. 너팽이의 주도로 일어난 선상반란으로 왜군은 무참히 깨지고, 너팽이 일당은 배에 있던 인삼과 보물을 수거해 육지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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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팽이 일당의 대모험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들은 과거 심마니 공동체 사람들이 꾸린 의병대와 합류하게 된다. 이들에게 포로로 붙잡혀 있던 야마모또는 탈출에 성공, 또다시 자신만의 부대를 만든다. 야마모또는 너팽이를 잡기 위해 사또에게 접근하여 정보를 거래하고, 의병대를 습격해 큰 피해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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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개빡친 너팽이는 정보를 팔아넘긴 사또를 찾아가지만 도리어 포박당하고 역적의 자식임이 폭로 당한다. 이번엔 진짜로 댕강 크리가 뜨나 싶었지만, 김진수가 급등장해 사또의 비리를 고발하고 자신도 역적의 자신임을 밝히며 스스로 죄인의 자리에 나란히 선다. 사또가 김진수와 너팽이 모두 죄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 때, 사또와 야마모또가 내통하는 회담을 목격한 증인 덕분에 두 사람은 풀려나고 사또는 죄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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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팽이의 의병대와 김진수가 이끄는 관군은 힘을 합쳐 왜군과 최후의 일전을 벌인다. 너팽이는 결국 야마모또를 죽이는 데 성공했지만, 김진수는 전사한다. 죽어가는 김진수와 너팽이는 드디어 처음 서로에게 호형호제를 하며 마음을 나눈다.

 

 

최후의 전투씬은 너팽이와 김진수 연합군의 활약과 인삼을 지키려는 심마니들의 싸움이 교차 편집되며 보여준다. 무어라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대환장쇼 편집 기술을 보여주며 도대체 이게 전투씬인지 인물 묘사씬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몰아가고, 모든 떡밥을 급하게 회수하며 드라마의 마지막다운 깔끔한(?) 정리로 끝난다.

 

모든 것이 끝난 후 조정은 너팽이에게 관직과 상을 주려 하지만, 너팽이는 이를 거부하고 평범한 심마니로서 살기로 결심한다.

 

 

절벽에 올라 최후의 표효를 하는 넘팽이가 페이드 아웃되고, 그 자리에 뜬금없이 인삼의 그림이 겹쳐지며 조선의 인삼을 홍보하는 영상으로 드라마는 끝난다. 이런 식의 ppl이라니... 정말 상상도 못 했다.

 

 

3. 그리하여,

 

ㄱ. 심금을 울리고 민족 정서를 자극하는 웅장한 각본

 

솔직히 국보법만 아니었으면 벌써 유튜브 백만 찍었다. 일단 8부작 드라마가 러닝 타임 40분의 영화가 8부 시리즈로 나온 듯한 느낌이 든다. 즉, 드라마 작법이 아니라 영화 작법을 드라마에 갖다 붙인 듯한 스멜이 난다는 말씀. 영화와 드라마는 그 호흡이 확연히 다른데, 호흡 조절이 안 되다 보니 중요하지 않은 씬이 10분 이상 흐른다던가, 김진수의 전사씬은 단 몇 초로 처리되는 안습의 장면 배치가 계속해서 나온다. 영화의 우람한 스케일을 320여 분가량 느낄 수 있으니, 개이득인 부분이랄까.

 

드라마의 백미란 무엇인가. 바로 '출생의 비밀'과 '사망 위기'가 아니겠는가. 1화부터 시원하게 출생의 비밀을 거진 까놓고 시작하는 패기를 보여 주면서도, 이미 밝혀진 떡밥인데 계속 끌고 가다 보니 황아장수는 계속 울어야 하는 역할로 남는다.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마법의 캐릭터랄까. 또한 댕겅 위기를 맞은 너팽이가 탈출하는 두 차례의 씬에선 모두의 예상을 깬 반전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형 집행인이 죄수를 풀어주고 대신 관군과 맞다이를 뜬다던가, 양반이 갑자기 자신이 역적의 아들임을 밝히며 무릎을 꿇는 장면이라니... 정말 참신하지 않은가?

 

여기에 북한 사극 특유의 문제의식까지 집어넣는 센스는 당연히 빠지질 않는다. 양반과 상놈의 계급 투쟁을 집어넣고, 양반은 언제나 부패하거나 혹은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상놈과 손을 잡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핵심적인 인물을 제외하면 모든 캐릭터가 신분적 평면성을 지니고 있어 마치 중학교 학예회 연극을 보는 듯한 깔끔한 이해가 가능하다. 또한 북한의 역사 인식, 일본을 천하의 개새끼들이라 비하하는 그 인식은 드라마에도 그대로 녹아들어 왜놈, 쪽바리 등의 표현이 가감 없이 삽입되고, 그들 역시 낫닝겐처럼 묘사된다. 

 

단 하나 살짝, 아주 사알짝 아쉬운 것이 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개연성을 국밥에 냠냠 말아 꺼어억한 전개랄까? 뭐, 개연성 따위야 한국의 아침 드라마도 같이 말아 잡수시는 거니 또이또이일 것이다.

 

ㄴ. 비용 대비 ㅅㅅㅌㅊ를 치는 연출 퀄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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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장이 없는 것 같다. 모든 씬이 인물의 얼굴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집이나 방 안, 마당 같은 곳에서의 앵글은 어딘지 보기 어렵다. 인물의 풀샷을 볼 수 있는 건 산속에서 찍은 씬이 거의 전부. 드라마 시작부터 끝까지 심각하게 억울하며 빡쳐있는 듯한 너팽이의 얼굴을 줌인하는 샷이 러닝타임 절반을 차지한다.

 

뭔가 박진감 넘치는 씬을 찍고 싶을 땐 현란히 움직이는 발을 찍는다. 아마도 한 씬을 찍기 위해 여러 각도에서 여러 인물 중심으로 나눠 찍는 한국의 드라마와는 달리, 거의 원투 테이크로 처리해야 하는 작업 환경 때문인지, 편집에 손이 많이 안 가면서도 박진감은 건지고 싶은 고육지책인 것 같다. 비록 남성들의 발이 대부분이지만 좌우간 발은 신나게 볼 수 있으니 발 페티쉬가 있는 사람이라면 꼭 정주행을 권한다.

 

왜군의 말단 병사인 야리 아시가루가 죽창을 들고 있는 신선한 고증도 북한 사극에서는 가능하다. 안 될 게 뭐가 있나. <태왕사신기>에선 광개토 대왕이 플레이트 메일을 입고 있는 모습도 나왔는데. 너덜너덜한 깃발과 다 떨어져 가는 갑옷, 어색한 일본어 등은 오히려 그때 그 사람들의 모습을 리얼리티 높게 담아내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ㄷ. CG와 와이어 따윈 없는 액션과 로맨스 따위 없는 호쾌한 줄거리

 

압권은 전투씬이다. 뭐 원래 사극에서 CG와 와이어를 잘 쓰진 않지만, 그렇다고 태권도에 기반한 정통 무술을 선보이는 것도 흔치 않다. 보통 대역을 쓸 땐 컷신을 마구 잘라서 잘 이어 붙이는 것이 포인트지만, 북조선의 드라마는 그 딴 거 없다. 한 3~4초의 테이크 동안 대역이 폭풍 무술을 펼친다. 심지어 키나 몸집도 차이가 나서 누가 봐도 대역인 것이 확연히 보인다. 어차피 대역을 쓸 거 구질구질하게 욱여넣지 않겠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솔직 담백한 액션이랄까.

 

그래서일까. 칼을 들고 싸우면서 정권 찌르기를, 조총을 들고 온 왜군 앞에서 돌려차기를 시전하는 주인공들의 무술은 순간순간 주성치 영화를 보는 듯한 괴랄한 액션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러니까 우리는 북한 드라마를 보면서 주성치 영화까지 살짝 맛볼 수 있는 작품을 무료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한중 합작 드라마도 이 정도의 콜라보레이션 퀄리티는 뽑아낼 수 없을 것이다.

 

남한에서도 정통 사극에서 로맨스가 펼쳐지는 것은 흔치 않지만, <심마니들>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드라마다. 일지매나 홍길동의 삶을 그려가는 드라마와 약간 비슷한데, 이 정도 무게감이라면 당연히 로맨스는 필수. 그러나 <심마니들>에선 그딴 거 없다. 어디 감히 민족의 한이 서려 있는 사극에 로맨스가 낄쏘냐. 단 한 번, 너팽이가 혼례를 올리는 씬에서 약간 달달한 느낌이 나오긴 하는데, 그마저도 거칠고 짖궃은 동료 심마니들의 어색한 농담에 갑분싸된다. 그 소중한 인삼이 지금 왜놈들 손에 넘어가게 생겼는데 연애질을 할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개연성은 꺼억했지만, 삼천포로는 절대 빠지지 않는 스토리 텔링에는 굳센 정기가 담겨 있다.

 

ㄹ. 자유 분방한 후시 녹음과 편집 기술, 그리고 자유분방한 엑스트라

 

역시 제작 환경의 한계 때문인지 인물들의 목소리는 다 후시 녹음이다. 후시 녹음할 때 중요한 건, 씽크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목소리 연기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것임을 넉넉히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임진년의 심마니들>이다. 후시 녹음을 했음에도 이상하게 음질이 좋지 않아 대사가 잘 안 들리는데, 이것은 녹음이 후진 것이 아니라 그저 안습의 환경 때문이라고 믿어주자.

 

김진수가 전사하는 중요한 장면 따위는 대충 씬 몇 개로 처리하면서, 심마니들이 강가에서 목욕하는 씬은 쓸데없이 길게 배치한 작품의 편집도 드라마라는 장르가 가지는 고정적인 형식을 깨는 새로운 기술적 진보로 볼만하다. 그러나 완전한 파괴는 작품이 될 수 없는 법. 감질맛을 주며 다음 회차로 넘기는 순간만큼은 고전적인 방식을 따랐다.

 

드라마 핵심 인물들의 연기는 우리나라 정통 사극의 연기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눈에 띄는 것은 엑스트라나 조연들의 연기. 이들의 연기가 얼마나 생동감 넘치는지, 길가는 중학생을 데려다가 카메라 앞에서 대본을 읽게 해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만큼 현실감 높은 연기를 선보인다.

 

ㅁ. 병맛의 향연

 

여리여리한 너팽이의 부인이 왜군이 습격하자 갑자기 뒤돌려차기, 날라차기, 후려차기를 시전하며 숨겨왔던 흑염룡을 발산한다. 길을 가다 산적의 습격을 받았으나 알고 보니 어릴 때 친구, 늙은 노스님이 왜군의 공격을 받자 또 갑자기 고급 무술을 모여주며 분투한다던가... 그런 예상치 못한 병맛의 향연이 펼쳐진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니 1분 1초 눈을 뗄 수가 없다.

 

ㅂ. 결말과 함께 터지는 드라마의 주제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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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드라마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야마모또를 죽이는 너팽이의 입에서 나온다.

 

“우리의 것을 티끌만큼이라도 건드리는 자는 절대로,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울분과 국뽕에 차오르는 듯한 목소리로 내뱉는 주체적 대사는, "아아... 고레와... 북드데스까?"라고 외치던 내가 "아아... 이것이... 북조선의 드라마입네까?"로 냉큼 바꿔 말하게 하는 신묘한 울림을 주었다.

 

다행인 것은 언어나 톤이 생각보다 차이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사극보다 현대물에서 차이가 더 심할 것이다. 2007년 남북 합작 드라마 <사육신>이 처참한 시청률을 극복하지 못하고 폭망한 사례가 있다. 위에서 열거한 북드의 장점들을 잘 개선... 아니, 잘 수용한다면 머지않아 다시 등장할 남북 합작 드라마는 <사육신>보다, <임진년의 심마니들>보다 훨씬 더 나은 퀄리티로 뽑아낼 수 있지 않을까?

 

통일을 위해선 문화 교류가 필수라는 이야기가 많다. 여러분들도 <임진년의 심마니들>을 보면서 귀중한 시간을 통일을 위해 투자해 보시는 건 어떨까. 아참, 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모종의 빠알간 법적 문제는 이 작품을 본인에게 추천한 딴지일보의 코코아 기자에게 물으시면 된다.

 

끄읏.

 

 

 

Profile
조선사 교양서를 쓰고 있는, 딴지가 배출한 또 하나의 잉여 작가
딴지의 조선사, 문화재, 불교, 축구 파트를 맡고 있슴다.
이 네 개 파트의 미래가 어둡다는 거지요.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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