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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자역학이란 무엇인가?

 

양자역학은 원자나 분자 혹은 그보다 작은 쿼크(quark), 전자(electron) 등 미시 세계의 운동 법칙을 다루는 체계이다.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은 매우 작은 근본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환원주의 관점에서 보자면, 근본 입자들을 이해하는 것은 곧 자연을 이해하는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다. 환원주의에서는 근본 입자를 이해하면 그것들이 구성하는 원자, 분자, 나노 세계, 마이크로 세계에서부터 지구, 달, 행성계, 은하계 그리고 결국 우주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컴퓨터, 스마트폰 등 거의 모든 전자 장치에는 양자역학이 사용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00년 12월 독일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Max Planck, 1858-1947)에 의해 시작된 양자역학은 그 역사가 100년이 훌쩍 넘는다. 이렇게 긴 역사와 폭넓은 쓰임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반인들에게 양자역학은 그저 어려운 과목, 이해하기 어려운 물리학 정도로만 알려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무리 복잡한 이론이나 학문도 그 유래와 역사를 알면 한결 이해하기 수월해진다. 물론 물리이론이라는 특성상 양자역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벡터와 미분방정식 등 수학적 지식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양자(quantum)가 무엇인지, 또 양자역학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고전물리학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그 유래와 기본적인 개념만 살펴봐도 기본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이 글에서는 크게 네 가지의 발견을 통해 양자의 개념이 무엇이고, 양자역학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리고 초기 양자역학(Old Quantum Mechanics)이 어떻게 정립되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2. 양자역학은 어떻게 발견되었나?

 

우리가 F=ma라는 공식으로 배우는 뉴턴의 고전역학은 대략 1665~1680년에 정립되었다고 한다. 특히, 뉴턴(1642-1727)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미적분의 발견과 중력의 발견은 그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졸업한 이듬해인 1665년, 흑사병이 창궐하여 자신의 고향인 울스토프(Woolsthorpe)에 머물면서 연구하던 2년에 걸쳐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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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울스토프 지역에 있는 뉴턴의 생가(Woolsthorpe Manor)

 

기원전 5~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사람들은 이 세상의 물질이 더 이상 쪼개어지지 않는 작은 입자(atom)로 이루어져 있다는 관점을 가져왔고, 과학의 발전은 이를 뒷받침했다. 19세기 말까지 물리학자는 물질을 이루는 근본 입자들도 모두 뉴턴의 운동 법칙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론적 법칙과 실험 결과 사이에서 모순점들이 발견되었고, 그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양자역학이 정립되었다. 여기에 기여한 대표적인 발견으로는

 

(1) 1900년 막스 플랑크의 흑체 복사 (Max Planck's blackbody radiation)

 

(2) 1905년 아인슈타인의 광전 효과 (Einstein's photoelectric effect)

 

(3) 1913년 보어의 원자 모형 (Niels Bohr's atomic model)

 

(4) 1923년 콤프턴 효과 (Compton effect)

 

가 있다. 이 네 가지 발견이 이루어지기까지 물리학 이론 내의 모순은 무엇이고, 양자역학의 발전과 함께 그 모순점들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살펴보자.

 

(1) 1900년 막스 플랑크의 흑체 복사(Max Planck's blackbody radiation, 1900)

 

19세기 말 물리학의 주된 연구 주제는 전자기학(Electromagnetism)과 열역학(Thermodynamics)이었다. 특히 각기 다른 현상으로 여겨진 전기(electricity)와 자기(magnetics)가 1820년 프랑스 물리학자 암페어(André-Marie Ampère, 1775-1836), 이듬해인 1821년 영국 물리학자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에 의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1861년에 이르러 스코틀랜드 물리학자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은 이 둘을 하나의 이론 체계로 묶어 전자기학을 완성해낸다. 맥스웰의 전자기학은 뉴턴의 역학(Mechanics)과 더불어 고전물리학을 이루는 두 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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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페어(Andre-Marie Ampere, 1775-1836, 왼쪽),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 중앙),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 오른쪽)

 

19세기 물리학의 또 다른 주된 주제는 열역학이었는데, 압력, 온도, 부피의 관계와 엔트로피, 열엔진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었다. 그중 19세기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흑체의 복사(blackbody radiation) 문제가 이론물리학자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흑체(blackbody)란 빛을 접할 때 반사하지 않고 100% 흡수하는 물체다. 당시 이 흑체 복사에 대한 실험 결과를 설명해내는 이론적 근거가 부족했다. 1893년 발표된 빈 변위 법칙(Wien's displacement law)은 주파수가 높은 영역만 설명할 수 있었고, 1900년에 그 모습을 드러낸 레일리-진스 복사 법칙(Rayleigh-Jeans radiation law)은 주파수가 낮은 영역만을 설명할 수 있었다. 즉, 낮은 주파수에서부터 높은 주파수까지 스펙트럼 전체를 아우르는 이론적 설명이 부재한 상황이었다. 특히 레일리-진스 복사 법칙은 에너지가 무한대로 발산하는 '자외선 파탄(Ultraviolet catastrophe)'이라 불리는 예측을 내놓음으로써 이론적 한계를 드러냈다.

 

1894년부터 흑체 복사 (blackbody radiation) 연구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독일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Max Planck, 1858-1947)는 1900년 겨울에 이르러 에너지가 연속적이지 않고 일정한 단위의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으면 흑체 복사 실험과 일치하는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인다. 에너지를 연속체로 바라본 기존의 관점이나 우리의 직관에 비추어 봤을 때, 마치 모래사장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모래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듯이 에너지 역시 자세히 보면 작은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라는 이 제안은 가히 혁명적인 시선의 전환이었다.

 

이 작은 에너지 덩어리를 가리켜 '에너지 양자(quantum of energy)'라고 불렀으며 이 아이디어는 양자역학의 시초가 된다. 이 발견으로 막스 플랑크는 1918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되는데, 막스 플랑크 자신도 기존에 믿었던 연속성과 판이하게 다른 자신의 법칙을 몇 년 동안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는 훗날 아인슈타인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만큼 양자역학은 그 법칙을 발견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생소하고 때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성질을 지닌다는 점을 보여준다.

 

막스 플랑크와 관련된 또 다른 흥미 있는 이야기 하나는 1874년 막스 플랑크가 박사 학위를 시작하고자 Philipp von Jolly 교수를 찾아간 에피소드다. 물리학 연구에 뜻을 보인 플랑크를 보고 von Jolly 교수는 도리어 '물리학에서는 이미 거의 모든 것이 발견되었고, 앞으로 남은 것은 몇 개의 빈틈을 채우는 것뿐이다'라며 물리학 공부를 말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그만큼 당시 뉴턴의 역학(Newtonian mechanics)과 맥스웰의 전자기학(Maxwellian electromagnetism)에 기반한 고전물리학의 위상이 높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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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양자역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독일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Max Planck, 1858-1947)

 

실제로 당시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앞으로 남은 문제들은 고전물리학이 모두 풀어줄 것으로 믿고 그저 시간문제로 여겼다고 한다. 물론 1900년대에 이르러 뉴턴의 역학을 대체할 상대성 이론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1911년에 이르러 원자 체계 내에서 고전물리학은 자기모순의 치명적 한계를 드러내며 양자역학에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이는 보어의 모형 편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2) 1905년 아인슈타인의 광전 효과 (Einstein’s photoelectric effect, 1905)

 

플랑크의 양자 개념 도입 후 빛의 입자성을 보여주며 초기 양자역학에 또 다른 획을 그은 것은 아인슈타인의 1905년 광전효과(Photoelectric effect) 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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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과 광전효과(Photoelectric effect)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잠시 파동설을 살펴보자. '빛은 파동'이라는 가설에 기초한 파동설(Wave theory)에 의하면 빛이 가진 에너지는 빛의 세기에 비례한다. 다시 말해서 강하게 쬐는 빛은 에너지가 강하고, 약하게 쬐는 빛은 에너지가 약하다는 의미인데, 이는 직관적으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1887년 독일 물리학자 헤르츠(Heinrich Hertz, 1857 - 1894)의 실험과 1900년 독일 물리학자 레너드(Philipp Lenard, 1862 - 1947)의 실험에서 빛의 세기는 동일하지만 빛의 색깔(주파수)에 따라 에너지가 달라지는 현상이 관찰된다. '광전효과'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기존의 파동설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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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을 통해 광전효과를 발견한 두 독일 물리학자 헤르츠(Heinrich Hertz, 1857-1894)와 레너드(Philipp Lenard, 1862-1947)

 

광전효과가 물리학자들을 괴롭히던 1905년 3월의 어느 날, 26살의 아인슈타인은 플랑크가 소개한 개념과 유사한 '빛 덩어리'라는 가설로 광전효과를 설명해낸다. 플랑크가 연속체로 보이는 에너지를 자세히 보면 작은 에너지 알갱이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처럼, 아인슈타인은 연속체로 보이는 빛도 자세히 보면 작은 빛 알갱이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가설 속의 빛 덩어리를 '빛의 양자' 혹은 '광량자(light quantum)'라고 불렀고, 오늘날 이 광량자는 주로 포톤(photon)이라고 불린다. 참고로 포톤(photon)은 1920년대부터 미국 물리학자 콤프턴(Arthur Compton, 1892-1962), 미국 물리화학자 루이스(Gilbert Lewis, 1875-1946) 등의 학자들에 의해 사용되기 시작하여 점차 널리 통용된 명칭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아인슈타인이 사용한 양자(quantum)의 개념도 플랑크의 흑체 복사 이론에서처럼 '작은 덩어리'를 뜻한다.

 

아인슈타인에게 있어서 1905년은 '기적의 해(annus mirabilis)'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 이유는

 

(a) 광전효과

 

(b) 브라운 운동

 

(c) 특수상대성이론

 

(d) 질량-에너지 등가성(E=mc^2)

 

등 20세기 물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논문 네 편을 모두 한 해에 발표하는 기염을 토했기 때문이다. 광전효과 논문 3월 18일 제출, 브라운 운동 논문 5월 11일 제출, 특수상대성이론 논문 6월 30일 제출, 질량-에너지 등가성 논문 9월 28일 제출로 기록되고 있다.

 

그중 상대성이론이 그에게 노벨상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아인슈타인은 광전효과에 대한 기여로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는다. '당시 상대성이론을 이해하는 학자들이 많지 않아서'라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이미 1915-1919년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입증하기 위한 이론적 연구와 실험이 활발히 진행된 것으로 보아 이는 농담 섞인 루머이고, 당시 유대인에 적대적인 유럽의 분위기와 1차 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정치적 상황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3) 1923년 콤프턴 효과 (Compton effect, 1923)

 

플랑크와 아인슈타인의 발견 이후 양자가설은 힘을 얻지만 완전한 이론으로 자리를 잡는 데에는 시간과 검증이 더 필요했다. 그런 와중 1923년에 이르러 미국 물리학자 콤프턴은 빛을 입자로 간주하여 마치 당구공 두 개가 부딪히듯이 빛과 전자가 충돌하는 콤프턴 효과(Compton effect)를 보인다. 이를 통해 다시 한번 광량자(light quantum/photon)의 존재가 입증되며 초기 양자이론이 정착되는 단계에 이른다. 콤프턴은 이 연구 공로로 1927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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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프턴 효과를 통해 빛의 입자성을 보인 미국 물리학자 콤프턴(Arthur Compton, 1892-1962)

 

잠시 복습하자면 플랑크의 흑체 복사 이론,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에 이어 콤프턴 효과에서도 양자(quantum)는 '작은 덩어리'라는 의미를 지닌다.

 

(4) 1913년 보어의 원자 모형 (Niels Bohr’s atomic model, 1913)

 

초기 양자역학에 있어 보어의 원자 모형은 플랑크의 발견 못지않게 중요한 발견이다. 역사적인 순서로는 1913년에 발표된 보어의 발견이 콤프턴의 발견을 앞서지만, 보어의 이론에서 양자(quantum)은 불연속적(discrete)이라는 보다 일반화된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작은 덩어리(lump/packet)라는 의미를 지니는 세 가지 발견을 먼저 살펴보았다.

 

보어의 이론을 보기에 앞서 당시 물리학의 상황을 잠시 살펴보자.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믿어 온 원자론(기원전 460년경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Democritus)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역사는 기록한다)은 19세기에 이르러 보다 체계적인 '돌턴의 원자설'(John Dalton, 1766-1844)로 자리를 잡게 된다. 나아가 1897년 영국 물리학자 톰슨(Joseph John Thomson, 1856-1940)에 의한 전자(electron)의 발견과 1909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연구하던 뉴질랜드 물리학자 러더포드(Ernest Rutherford, 1871-1937)의 원자핵 발견으로 20세기 초 물리학의 관심사는 원자의 구조를 밝히는 데 집중된다. 전자의 발견에 대한 공로로 톰슨은 1906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고, 러더포드는 1908년 방사능 연구로 노벨화학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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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를 발견한 영국 물리학자 톰슨(Joseph John Thomson, 1856-1940)과 원자핵을 발견한 뉴질랜드 물리학자 러더포드(Ernest Rutherford, 1871-1937), 그리고 러더포드의 원자 모형(Rutherford's atomic model)

 

원자핵과 전자의 존재가 밝혀졌지만, 원자핵과 전자가 어떻게 배열되어야 실험 결과와 부합하는지는 2년이 넘도록 커다란 수수께끼로 남아있었다. 그러던 1911년, 러더포드는 원자 가운데 양(+)전기를 띤 원자핵이 있고, 그 주변을 음(-)전기를 띤 전자들이 돌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를 '러더포드의 원자 모형(Rutherford's atomic model)'이라고 부른다.

 

이 모형은 실험 결과와는 부합했지만 고전물리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모순점 또한 안고 있었기에, 물리학자들은 또다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골머리를 앓게 된다. 동시에 이 모순점은 ‘양자역학의 필요성’을 직접적으로 가리킨 힌트가 되어, 역사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원자 모형에서의 고전물리학의 모순과 보어 모델에 대한 이해를 위해 원운동과 전자기학에 대한 사실 한 가지씩만 짚어보자.

 

첫째, 뉴턴의 역학에 따르면 원운동은 가속 운동으로, 어떤 물체가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것은 마치 누군가 원의 중심을 향해 그 물체를 잡아당기는 것과 같은 가속운동 상태이다.

 

둘째, 맥스웰의 전자기학에 따르면 전기를 띤 물체가 가속 운동을 하면 그 물체는 에너지를 잃는다(전자기학에서는 이를 제동복사(bremsstrahlung)라고 한다).

 

이 두 가지 사실과 함께 러더포드의 원자 모형을 다시 들여다보자.

 

* 양(+)전기를 띤 원자핵이 가운데 있고,

 

* 그 주변을 음(-)전기를 띤 전자가 원운동을 한다면

 

결국 전자는 전기적 성질을 가진 채 가속운동을 하기 때문에 제동복사를 통해 차츰 에너지를 잃고 원자핵에 점점 가까워지다가 결국 원자핵과 하나가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런데 전자가 원자핵과 하나가 되는 현상은 자연에서 관찰된 적도 없고, 우리 주변에 있는 물질들이 그 형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 전자가 원자핵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전자가 원자핵으로 빨려 들어갔다면 모든 원자들은 이미 붕괴되고, 세상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다소 복잡한 내용이 등장했으니 그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러더포드가 실험한 결과는 러더포드의 원자 모형을 가리키지만 고전물리학으로 이 모형을 설명하려고 하면 도리어 '원자는 존재할 수 없다'며 원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결론에 이른다.

 

러더포드의 원자 모형 발표 후 2년이 지났지만 그 누구도 이 모순을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던 1913년,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Niels Bohr, 1885-1962)는 32살의 나이로 다음과 같은 사뭇 새로운 개념의 양자 가설(quantum postulate)을 소개하며 이 문제를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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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어의 원자 모형(Rutherford's atomic model, 1913)

 

보어는 전자가 아무 원 궤적을 그리며 원자핵 주변을 도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궤도만을 선택하고, 그 궤도 위에서는 에너지를 잃지 않는다는 가설을 세웠다. 즉, 전자의 파동의 정수배(integer multiple)가 원과 맞아떨어지는 궤적은 선택하지만 그렇지 않은 궤적은 선택하지 않는다는 가설이다. 다시 말해서 전자가 지나갈 수 있는 궤도들이 공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위의 그림에서처럼 전자의 파동이 1개 들어가는 궤도, 2개 들어가는 궤도 순으로 띄엄띄엄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한 궤도 위에 있는 전자를 '정상상태(stationary state)에 있다'고 표현한다. 'Stationary'는 변화가 없다는 뜻인데, 이 문맥에서는 전자의 에너지에 변화가 없다, 즉 궤도 위의 전자가 에너지를 잃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것이 역사상 최초로 밝혀진 원자의 양자 구조(quantum structure)이다. 플랑크, 아인슈타인, 콤프턴의 양자는 '작은 덩어리'를 의미했지만, 보어의 양자는 '궤도의 불연속성(discrete)'을 의미한다. 그리고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궤도들 사이를 전자가 이동하기 위해서는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점프를 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양자도약/퀀텀점프(quantum jump)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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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상태(Stationary state) 가설로 원자의 양자구조(quantum structure)를 처음 밝혀낸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Niels Bohr, 1885-1962)

 

이 연구에 대한 공로로 닐스 보어는 1922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다. 보어의 이론은 수소 원자의 스펙트럼을 설명하는 라이드버그 공식(Rydberg formula)을 이론적으로 완벽하게 유도해내며 양자역학 시대의 서막을 알린다.

 

이렇게 초기 양자역학(Old quantum mechanics)은 1900~1923년에 걸쳐 기존의 이론이 해결하지 못하던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가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 2편 예고

 

초기(Old)라는 단어가 제시하듯 초기 양자역학은 수소 원자의 구조를 밝혀내는 데 성공하지만 그다음 원자인 헬륨에는 적용될 수 없다는 한계를 드러내며 새로운 양자역학(New quantum mechanics)의 도래를 예기한다.

 

바통을 이어받아 1923~1926년에 걸쳐 드브로이(De Brodlie), 하이젠베르크(Heisenberg), 슈뢰딩거(Schrodinger), 디렉(Dirac) 등 양자역학 2세대는 물질파, 행렬역학, 파동역학 등 새로운 아이디어와 함께 양자역학의 혁명기(Quantum revolution)를 이끌며 오늘날 우리가 아는 양자역학으로 그 체계를 갖추어 나간다.

 

다음 편에서는 1923 - 1926년에 일어난 '양자혁명기(Quantum revolution)'를 다루려고 합니다. 피드백을 남겨주시면 2편을 만들 때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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