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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상] What is the Matrix? - (3)

2003.7.4.금요일
딴지 편집국


2편에 이은 매트릭스 갖고 주절거리기 3편이다. 매트릭스 3부작에 걸맞게 애초부터 본 우원도 삼부작(trilogy)으로 준비했던 얘기라 마무리는 지어야 할 것 같아서 쓴다. 역시 부담 없이 읽어주시길...






지난호 보기


What is the Matrix? -(1)


What is the Matrix? -(2)


참, 지난 편 읽고 아키텍쳐(Architecture)가 아니라 아키텍(Architect)이라 지적해주신 분들, 지적 잘 받았다. 아키텍 맞다. 앞으로 그렇게 읽어주시라. 그리고 아키텍과 네오의 대화록에서 숫자가 틀렸다고 하던 분들, 내가 찾은 원문에 23이라고 씌여 있어서 그냥 번역한 건데, 편한 대로 숫자 고쳐서 읽으시라.


덧붙여, 아키텍과 오라클의 차이를 공자와 노자에 비유하는 리플 남기셨던 시스템 님은 언제 함 메일 주시라. 어떤 분인지 궁금하다. 혹시 함께 노가리 깔 시간 있으시면 백골난망이겠다.








  왜 매트릭스의 치트키는 믿음일까?


이 영화를 보면서 첨 들었던 의문은 왜 하필 믿음이란 걸 들고 나왔을까? 하는 것이었다.









네오 어서 와줘... 아니 네오는 반드시 올꺼야!


이 영화를 무슨 종교영화처럼 보이게 하는 이유는 SF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믿음에 대한 강조 때문이다. 빌딩사이를 건너뛸 수 있다고 믿으면 너는 건너뛸 수 있다. 만약 그렇게 못한다면 그건... 네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란 거다...


이런 부분만 보자면, 무슨 사이비 종교집단의 교리와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이 믿음을 위의 해커 해석과 연결시키면 결국 매트릭스 세계에서의 치트키는 바로 믿음이라는 결론이 된다.


웬 난데없는 믿음? 그보다 훨씬 쿨~한 소재들이 널려 있는데, 왜 믿음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걸까? 트레이닝 프로그램에서 온갖 무술을 다 배우듯이, 오퍼레이터가 그저 강력한 아바타를 만들어내면 요원들 따위는 쉽게 이길 수 있다고 해도 충분할 텐데, 무슨 자다 봉창 두드리는 믿음?


여기에 그(the one) 개념까지 연결시키면 이건 완전한 신약성경 인용이다. 성경에 나오는, 너에게 겨자씨 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능히 이 산을 옮길 수 있으리라는 말하고 일맥상통하는 얘기니 뭐 할말 다 했지...


하지만, 믿음이란 거는 꼭 종교에만 관련된 거는 아니다. 우리의 일상도 온갖 믿음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말이다.






Spoon boy: Do not try and bend the spoon. Thats impossible. Instead only try to realize the truth.


숟가락꼬마 : 숟가락을 구부리려고 하지 말아요. 그건 불가능해요. 그 대신에 진실을 인식하려고 해봐요.


Neo : What truth?


네오 : 무슨 진실?


Spoon boy : There is no spoon.


숟가락꼬마 : 숟가락은 없다는 진실 말예요.


Neo : There is no spoon?


네오 : 숟가락이 없다고?


Spoon boy : Then youll see that it is not the spoon that bends, it is only yourself.


숟가락꼬마 : 그걸 깨닫고 나면 구부러지는 것은 숟가락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될 거예요.


숟가락은 없다. 이 말은 네오가 나중에 한번 더 주절거린다(2편에서는 없다던 숟가락이 난데없이 등장하던데, 뭐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여튼, 숟가락이 없다는 말은 꽤 재미있다. 하지만 이걸 "눈에 보이는 것이 실제가 아니다 라는 뜻만으로 해석하기는 조금 허전하다. 그래서 이 말을 다른데다 함 써보겠다. 


이 세상에 왕족 혹은 귀족은 존재할까 안 할까?


아직도 왕족이 존재하는 나라는 몇 군데 있다. 대한제국시대까지였다면 울 나라에서도 그 대답은 그렇다였을 것이다. 그럼, 다시 함 물어보자. 이 왕족/귀족이 존재하는지 안 하는 지의 여부는 어디에 달려있을까? 제도나 국가의 헌법이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제도나 헌법 같은 거는 결국 이 나라는 어떤 존재이다 라는 사람들의 믿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까놓고 말하자면, 사실상 왕족이라는 인간 종족이 따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어떤 사람에게 어떤 기준을 정해서 왕족이라고 믿어주고 그들에게 어떤 대우를 해줄지를 정했다면 왕족은 있다.


1편에서 말했듯, 우리가 다루는 사실들 중에는 이렇게 실체보다는 공유하는 믿음이 더 중요한 것들이 많다.


돈을 예로 들어볼까? 여기 만 원짜리 지폐가 있다. 그럼 이게 만원의 가치를 지닌다는 건 이 지폐가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거냐? 사실 본질만 따지자면 이건 종이쪼가리에 불과하지 않나? 그럼 본질적으로는 종이쪼가리에 불과한 돈을 왜들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거냐? 왜냐하면 모든 한국 사람들이 이 종이는 만 원짜리라고 믿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근거에는 이 돈을 한국은행에 가져가면 언제든 만원으로 인정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즉, 화폐의 가치는 한국은행에 대한 믿음에 근거한다.


다시 말해서 이건 한국은행과 그 이용자들이 합의한 것이다. 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곳에서라면 이건 종이쪼가리에 불과하다. 외국 중에는 한국 돈을 환전해주지 않는 나라들이 몇 군데 있다. 이런 나라 시장에 가서 만 원짜리 수 십장을 내밀며 이게 꽤 큰 돈이라고 아무리 우겨 바라. 미친놈 취급밖에 더 받겠냐?


1편에서 인용되었던 진실이 뭔데? 라는 대사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모피어스의 논리에 의하면 내가 아무리 경험 뒤에 숨겨진 진실을 파고 또 파내도 그게 진짜 진실인지 아닌지는 결국 모른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이 말은 궁극적인 진실이나 사물의 본질이 뭔지는 아무도 모르고, 이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짓이라는 뜻이 된다.









구부러지는 것은 숟가락이 아니라 숟가락을 보는 니 자신이다.


숟가락 얘기로 치자면, 숟가락이 없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구부러지는 것은 숟가락이 아니라 숟가락을 보는 당신 자신이라는 게 중요한 말씀되겠다. 이건 결국 세상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다르게 만든다는 얘기와도 연결된다.


이런 경우를 해커나 이단자들, 범죄자들에 대해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세종대왕도 비슷한 양반이었다. 그 양반은 한자로 작동하는 국가 시스템의 수장이었으면서도 한자가 아닌 다른 공용문자를 만들 생각을 한, 그 시대의 네오였다.


물론 그 뒤에는 집현전의 여러 오퍼레이터들이 받쳐주고 있었지만 말이다. 당시 한자 시스템을 유지하던 양반들 눈에 세종대왕과 한글은 아키텍이 말하는 변이의 총체처럼 보였을 거다. 만약 그 양반들이 한글이 한자를 몰아내고 이 나라의 의사소통수단이 된 작금의 상황을 미리 알 수 있었다면, 한글의 창제를 막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했을 거다.


세종대왕이야 왕이었으니까 그럴 수 있었겠지만, 그게 아무나 되는 일은 아니라고? 꼭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들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선택이다.



  운명이란 뭘까?


운명이란 뭘까? 그것은 미리 정해진 프로그램일까? 이건 내 인생이 인과론에 의해서 움직이는지, 아니면 내 선택에 의해서 움직이는지에 대한 얘기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인과론에 맞추어 인생을 산다. 다시 말해서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는 거고, 결국 어떤 결과가 있다면 거기엔 뭔가 원인(혹은 이유)이 있을 거라는 식이다. 이것은 결국 인과응보의 규칙이다.


인생도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 나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태어났다는 말은 바로 이런 인생살이 방식의 전형이다. 보면 스미스 요원이 딱 그 짝이지, 내 존재의미는 너를 잡으라고 있으니 난 널 잡을 꼬야 라고 하며 줄줄 쫒아다니쟎나(2편에서는 수 백 명까지 말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그냥 모든 일에는 뭔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그건 원래 정해진 것이긴 하지만, 처음에는 알 수가 없고 알아야 할 때가 되면 알게 된다. 오라클 아지매가 종종 말했듯이 말이다. 이런 얘기는 예전부터 있었다. <새 할배의 말 이야기(새옹지마)>가 바로 그런 이야기의 전형이다.   


인과론에 맞추어진 영화들은 엄청 많다. 이게 보통 우리가 말하는 논리적인 사고에 가깝거든... 예를 들어, 주인공이 악당을 잡는다. 악당은 복수를 하고, 주인공은 더 큰 복수를 한다 (어떤 경우에는 다시 악당이 더 큰 복수를 하고, 주인공은 더더욱 큰 복수를 하기도 한다).


혹은 지난번 성배 찾기 이야기의 예(요기를 누질르시라)처럼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죽자 사자 고생한다든지... 여튼 여기서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의 연쇄작용이다.


반면 새옹지마에 걸 맞는 이야기라면 최근 개봉했던 <싸인>을 들 수 있겠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아재(멜 깁슨)의 생활은 매우 암담하다. 마누라는 교통사고로 엄청 비참하게 죽은 데다, 죽을 때 중얼거린 말의 뜻도 도무지 알 수 없고, 아들 네미 천식이고, 딸 네미는 미쳤는지 온 집안에 물 컵이나 갖다 놓고, 동생은 야구방망이 휘두를 줄만 알지 도무지 쓸데가 없다...


근데 결정적 순간에 보니까 이게 모두 다 이유가 있고 가치가 있었던 거다. 그래서 주인공은 하나님을 부정하던 맘을 버리고 다시 신부가 된다. 즉, 이 영화에서 <싸인>은 외계인이 남겨둔 신호를 뜻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뜻하기도 한다. 합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하나님 말이다.



근데, 우리 삶에 인터넷이 들어서면서부터는 인과응보의 규칙보다는 새옹지마의 규칙이 더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것은 결국 선택과 운명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선택이 운명을 만든다.


독자 열분들 웹 서핑(Web surfing)이나 채널 서핑(Channel surfing) 이라는 말 많이 들어 봤을 거다. 근데 왜 이런 걸 서핑이라고 할까? 웹이나 채널이 파도란 말이냐?


나도 그 이유는 잘 모른다. 하지만 실제 파도타기를 하는 넘들과 웹 서핑을 하는 인간들의 공통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웹 서핑이랑 실제 파도타기랑 모가 같다는거야?


웹 서핑 할 때 특별한 목표나 목적으로 가지고 하나? 가끔 무슨 물건을 싸게 산다거나 하는 목적으로 돌아다닐 때라면 그렇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웹 서핑은 그냥 돌아다니는 거다.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재미있는 걸 만나면 리플을 달거나 어디다 퍼 나른다. 그리고는 내가 퍼 나른 글이나 내가 쓴 리플에 또 어떤 리플이 달리는지를 구경한다.


이유는 없다. 그냥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다. 다시 말해서 웹 서핑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기보다는 각각의 상황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들을 구경하고 탐색한다는 쪽이 더 가깝다.


이런 면에서 웹 서핑 하는 방식은 파도타기 하는 애들하고 비슷하다. 파도타기를 할 때 어떤 목표나 방향을 갖고 하는 거 봤냐? 파도타기는 그냥 움직이는 파도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 자체가 목표다.


그리고 실제 파도 타는 애들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 중에 하나는 어떤 파도가 좋은 파도가 될지를 미리 보고 선택하는 능력이라고 한다(그게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근데 이건 웹 서핑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대강 사이트의 분위기를 보고 여기서 더 개길 지 아니면 다른 게시물이나 사이트로 옮겨갈지를 선택해야 하는 거 아니냐.


채널 서핑도 그렇다. 채널서핑 그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채널을 돌리는 채널서핑을 할 때, 각 채널을 훑어보는 짧은 시간에 그 중에서 어떤 채널이 더 재미있을지를 골라내는 능력이 필요한 거 아니냐. 숙련된 채널 서퍼들은 그래서 한 몇 초만 보고서도 지금 이 채널에서 무슨 영화를 하고 있는지 알아 맞추는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연구에 매진하는 본 우원이 그렇단 얘기는 절대 아니다. 흠흠..


이렇게 애초부터 목적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산다고 창피해할 것 없다. 웹 서퍼들이 하는 퍼 나르기와 리플 달기는 때론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니까 말이다.


예를 들어, 울나라 젊은 층의 미국에 대한 태도는 2년 전에 비해 거의 180도로 바뀌었다고들 한다. 그런데 그 변화가 시작된 사건은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안톤 오노의 오버액션이었다. 그 다음에 유승준의 병역기피와 미국국적 취득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월드컵과 미군궤도차량 사고가 있었다.











언젠가는 기필코 일어났을 일들...


이 모든 사건이 따로따로 발생했다면 그 결과는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어찌 보면 사소하고 표면적인 이런 사건들 때문에 혈맹인 미국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일어났다. 그 와중에 한 대통령 후보는 미국에서 손녀딸을 출산시키는 바람에 이미지 구겼고, (예전 같았으면 분명히 정치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을) 북한에 대한 입장이 미국 대통령과 같다는 점 때문에 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소파개정 촛불시위와 거의 당선이 확실시되었던 대통령후보의 낙선이라는 이 엄청난 일이 오노의 오버액션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이 이해가 되는가?


인과론의 논리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만약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세상이 비논리적으로 돌아간다는 얘기일 뿐이다. 그래서 배후조종설도 나오고 보이지 않는 손 이야기도 나왔다. 인터넷의 폐해도 지적되었고, 촛불시위의 배후로 어떤 인터넷 신문이 지적되자 그것이 설득력을 얻었다.


그러나 2002년 우리에게 일어났던 그 일들은 특정한 세력의 조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젠가는 기필코 일어날 일이었고, 단지 2002년에 우연적 사건들이 뒤섞이면서 결국 일어나고 말았을 뿐이다.


9.11 테러는 중동지역에 대한 미국의 편파적 개입이 근본적인 원인으로, 결국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 물론 이번이 아니었다면 다른 방식으로 일어났을 것이다. 해방이후부터 계속되어온 우리나라와 미국과의 불평등한 관계로 인한 불만 역시 우리 사회가 80년대의 모습에서 벗어난 이상 언젠가는 터져 나올 문제였다.


몸은 대한민국의 지도층이면서 마음은 미국숭배 종교에 빠져있던 지도층의 행태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언젠가는 크게 타격을 입을 것이었다. 그런데 단지 이 모든 것들이 2001년과 2002년에 걸쳐 연달아 일어났을 뿐이다.


고장날 가능성이 있는 물건은 언젠가는 반드시 고장나고야 만다는 머피의 제1 법칙은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물론 그 고장을 앞당긴 것은 빛의 속도로 피드백이 이루어지는 인터넷이 우리 생활 속에 파고들었고, 그 곳을 기반으로 서식하면서 재밌는 기사 퍼 나르기와 리플 달기를 계속했던 웹 서퍼들이 있었기 때문이겠다.


운명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영화는 영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금까지 이 장황한 썰 풀기 읽어주시느라 수고 많으셨다. 조금 싱거운 얘기로 끝내볼까 한다.


한때 울나라 영화관련 기자들이 감독과 인터뷰할 때 꼭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가 하나 있었다. 그건 이 영화의 메시지는 뭐죠? 라는 말이었다.


당시엔 그게 유행이었다고 쳐주자. 하지만, 지금도 이딴 질문을 하는 기자 넘이 있다면, 그 넘은 닭대가리이거나, 파시스트이거나 공산주의자임에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 넘은 영화를 보고서 스스로 생각해서 메시지를 만들어낼 능력이 없거나(그래서 닭), 아니면 나치나 공산당의 선전영화처럼 영화에는 반드시 어떤 명백히 정해진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그러니까 파시스트 아님 공산주의자) 놈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무슨 불조심 포스터냐? 메시지를 따지게? 그리고 만약에 감독이 이 영화의 메시지는 이겁니다 하면 그걸 그대로 믿겠단 말이냐? 왜 영화를 보고서도 그 뜻을 감독에게, 그 영화를 만든 사람에게 물어봐야 하나? 관객은 영화를 보고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면 되는 건데 말이다. 뭐 영화보고 시험 볼 일이라도 있냐?


글은 일단 씌여져서 독자들에게 읽히고 나면 더 이상 저자만의 것이 아니다. 그 글은 독자들 각자의 마음 속에서 새로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말 들어본 적 없냐? 이건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냥 각자 느끼고 생각하는 게 제일 중요하단 말이다.


워쇼스키 형제(조만간에 남매가 된다지만)가 매트릭스 3부작을 만들면서 무슨 심오한 철학을 설파할 의도를 갖고 있었을까? 아닐걸... 걔네들이 현상학과 기호학 그리고 실존철학 등의 책을 읽은 건 맞고, 그게 이 영화 속에 인용되는 것도 맞다.









<매트릭스> 시리즈의 감독 워쇼스키 형제... 워쇼스키 남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얘네들은 그걸 읽으면서 야...이거 영화에 사용하면 재미있겠는데? 라는 생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을 거다. 그런 철학들이 심오하고 의미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재미있어 보이니까 쓴 거란 말이다.


매트릭스 1편에서 본 우원이 제일 재미있었던 대화 중 하나는 마우스란 넘이 개 죽 먹으면서 네오한테 수다떠는 장면이었다.






Tank : Here you go, buddy. Breakfast of champions.


탱크 : 자, 챔피언을 위한 아침이야. (개죽을 준다)


Mouse : If you close your eyes it almost feels like youre eating runny eggs.


마우스 : 눈을 감고 먹으면 무슨 계란 풀은 거 먹는 거 같단 말야.


Apoc : Yeah, or a bowl of snot


에이팍 : 그래, 콧물 한사발 먹는 거 같지.


Mouse : Do you know what it really reminds me of? Tasty Wheat. Did you ever eat Tasty Wheat?


마우스 : 근데 이게 정말 무슨 맛 같은지 알아? (매트릭스 속에서 먹었던) Tasty Wheat (켈로그 같은 시리얼종류 중 하나인 듯) 같단 말야. Tasty Wheat 먹어봤어?


Switch : No, but technically, neither did you.


스위치 : 아니, 하지만 기술적으로 보자면 너도 못 먹어 봤쟎아.


Mouse : Thats exactly my point. Exactly. Because you have to wonder now. How did the machines really know what Tasty Wheat tasted like. huh?. Maybe they got it wrong.


Maybe what I think Tasty Wheat tasted like actually tasted like oatmeal or tuna fish. That makes you wonder about a lot of things. You take chicken for example, maybe they couldnt figure out what to make chicken taste like, which is why chicken tastes like everything. Maybe they couldnt figure out...


마우스 : 내가 말하려는 게 바로 그거야. 신기하쟎아. Tasty Wheat이 어떤 맛인지 기계가 어떻게 알았을까, 응? 어쩌면 걔네들이 잘못 알았을지도 몰라. 그럼 어쩜 내가 Tasty Wheat 맛이라고 알고 있는 게 사실은 오트밀이나 참치 맛일지도 모른다구.


이렇게 생각하면 궁금증이 덩달아 꼬리를 물기 시작하지. 예를 들어 네가 (매트릭스 속에서) 치킨을 먹는다고 치자. 기계들은 아마 치킨 맛이 어떤지 몰랐을지도 몰라. 그래서 치킨 맛이 다른 모든 음식 맛하고 비슷한지도 모르지. 어쩌면 걔네들은...


Apoc : Shut up, Mouse.


에이팍 : 닥치고 밥이나 먹어.


이 장면은 진실이 뭐냐, 꿈이 뭐냐는 주제를 아주 진지하고 심각한 얘기로만 풀 필요가 없다는 걸 잘 보여준다. 심오한 인식론을 먹는 거에다가 대입하니까 이게 또 재미있는 얘기가 되는 거다.


그리고 이렇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만들다 보면 그게 오히려 심각한 이야기 보다 더 의미가 있어지기도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우리 일상의 얘기로 전환 될 수 있거든.


예를 들어, 우리가 먹는 카레를 생각해 바라. 인도카레라는 상표도 있더만, 그게 진짜 인도의 카레일까? 사실 우리가 먹는 카레는 인도 전통 요리라기 보다는 영국과 일본을 거쳐서 들어온 새로운 음식이다.


인도카레라고 이름 붙은 것도 사실은 인도카레가 아니거든... 그러니 일본식 카레를 인도 카렌 줄 알고 먹는 우리나, 기계가 만들어준 치킨 맛을 진짜 치킨인줄 알았던 마우스나 뭐가 다른가?


따져보면 매트릭스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늘 경험하고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문화적인 것들에 다 붙일 수 있다. 문화는 매트릭스이기 때문이지.







여튼.... 본 우원은 매트릭스라는 영화 자체를 해설해주려고 여기에 글을 쓴 게 아니다. 해설에 해당하는 얘기는 딱 하나 있었다. 매트릭스는 그냥 해커들이 난장질치는 영화라고....


그 다음 얘기들은 전부 내가 공부하고 있는 분야의 이야기를 매트릭스를 이용해 설명하면 좀 쉽고 재미있을 거 같아서 썼을 뿐이다. 아니 그냥 매트릭스를 보고는 필이 꽂혀서 썼다는 게 더 정확하다. 영화가 재미있으니까 덩달아 좀 재미있는 생각이 났고 그걸 딴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어서 쓴 거란 말이지...


본 우원 지도교수님이 경험한 이야기 하나 해 주까.


교수님 대학원생 시절에 어떤 유명한 학자의 새로운 이론에 심취했었단다. 아주 대단해 보였거든... 그런데 나중에 유학을 가서 그 학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단다. 그래서 당연히 물어봤지. 어떻게 그런 이론을 만들게 되셨느냐고... 그랬더니 그 사람 하는 말,


"어...그거? 동료 교수들이랑 밥 먹고 차 마시면서 수다떨다가 내가 이런 얘기는 어떨까? 라고 물어봤더니 다들 재미있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그때 죽이 맞은 애들 몇이랑 같이 책으로 쓴 거지 뭐..."


따지고 보면 영화도 학술적 이론도 방법이 약간 다를 뿐, 결국 같은 활동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이미 경험하면서 궁금해하거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현상들을 찾아내고, 거기에 그럴듯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붙여주는 작업이란 면에서 말이다.


어쨌거나, 뭐든 어깨와 머리에 힘 빼고 편안히 보고 즐기다 보면 재미있는 생각도 날거고, 그런 생각을 남들과 공유하다 보면 또 재미있는 뭔가가 만들어질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영화란 원래 그러라고 있는 거 아닌가?



 
매트릭스란 무엇인가 ?
삼부작 완성했따!
짱가 (jnga@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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