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은 있어야 한다... 졸라 욕먹을 각오하며
세상의 모든 갈등이 적대적, 전면적 대결로만 간다면, 인류는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적어도 최선의 합의점을 찾아낼 줄 아는 지혜와 인내가 갈등의 두 당사자에게 인식될 때 그나마 평화와 진보가 깃들겁니다.
전 믿습니다. 공존의 정의를....^^
전형적인 국가주의 국가,미국의 생존의지는 순전히 자국 이기주의입니다. 미국 국적의 시민들만 호사한다면 이 세상 어떤 정의도 진리도 다 개무시합니다. 개무시정도가 아니라 학살조차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 지랄을 그들은 생존철학이랍시고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의지의 심리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던진 문화코드는 역시 미국적이고 살인자본적입니다. 아마도 전세계인류 문화를 미국수준의 천박함으로 하향평준화가 목적인 모양입니다(여기서 참고로 새로나온 책하나 소개하죠. 아리엘 도르프만과 아르망 마텔라르가 공저한 "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 란 책입니다).
미국은 그들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악행을 다 자행해서라도 공존을 파괴하고 독선을 주장합니다.
오늘 딴지의 본 기사는 근래 화두가 된 스크린쿼터로 넘어 미국의 침략적 경제정책의 한 단면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스크린쿼터가 대중에게 주는 인식은 불쾌감입니다. 하긴 우린, 보이지도 않는 국익이라는 걸 위해, 전혀 이해관게도 없는 다른 나라 국민을 학살하는 학살전에 우리군인들을 파병하는 정부를 추인한 추악한 국민입니다.
그런데 그 위대한 국익을 위해 스크린 쿼터쯤이야... 당근 사라져도 되겠죠? 그런 겁니까?
제가 좀 흥분했습니다.
외제차 끌고 온 잘난 영화인들을 보면 저도 배알이 꼴립니다. 좃같은 새끼들이라고 입에서 욕이 나옵니다. 제발 좀 꺼져줬슴하더라구요.
그런데 그들이 스크린쿼터 사수를 입에 담았다고 스크린쿼터의 존재가치가 악화되는 건 아닙니다.
스크린쿼터는 우리의 무기입니다.
설령, 그 죠다같은 경제협상을 위해 내어 놓아야 하더라도 그 최후의 선까지 지니고 있어야 할 무기를 우리나라의 더 죠다같은 관료들은 알아서 가져다 바치려고 합니다.
협상의 기본도 안된 자들입니다. 이런것들이 국익을 수호한다고요?
이글을 읽는 많은 딴지 독자분들에게 제가 이야기하고픈 건, 스크린쿼터의 독소와 장점을 한번쯤 각각 이해해 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에 재수없는 재벌영화인들의 추악한 탐욕과 관계없는 그 자체의 장점가 존재의의를 무시해선 안된다는 겁니다.
아래 영화사에서 일하신 분도 글을 올렸습니다. 스태프 임금부터 제대로 주고 스크린쿼터사수니 뭐니 나서라란 말씀. 천번백번 옳습니다.
그 죠다같은 배때지터지는 영화인들은 그런 말 할 자격없습니다.
그러나, 그건 그 더러븐 영화인들에게 해야 할 말이지, 스크린쿼터자체가 없어져야 한다는 말은 아닐겁니다. 만약 스크린 쿼터가 사라지면 그 부자 영화인들이 밥이나 굶을 것 같습니까? 아니죠. 도리어 그놈들이 나서서 외화수입한다고 법석을 떨 것 들입니다.
스크린쿼터 없어지면 그나마 죽어나는 1만명의 밑바당 영화스탶이고, 엑스트라고, 소형독립영화인들입니다.
지금, 감정만 가지고 이 건을 바라봐서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시절 스크린쿼터 날려버린 수많은 다른 나라의 영화산업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야말로 개박살 났습니다.
이전의 영화강국인 스페인나 이태리. 남름대로 적지않은 영화를 만들어내던 멕시코,브라질이나 동국권국가들. 모두 어찌 되었습니까?
게다가 요즘은, 그 나라에서 똘똘한 영화작가라도 나올라치면 금새 허리우드에서 채어갑니다. 당연하죠. 자기나라에서 자기가 하고픈 작품도 못하고 늘 배고프니깐요. 그리곤 그 천재들은 어느새 서러져갑니다.
그래도 미국에 맞서 대들던 프랑스나 인도 정도가 자국 영화를 문화산업수준으로까지 육성했습니다.
평등위에 경쟁까지 자본사회에서 거부할 수 없습니다. 그것까지 거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미국의 영화산업은 그 경제상대가 아닙니다.
지금같은 무차별 경제경쟁에 비교우위를 통한 경제균형은 없습니다. 단 1원이라도 이익이 나면 공격입니다. 따라서 비교우위가 떨어지는 산업은 국가가 무조건 보호해야하는 겁니다. 도대체 국가라는 왜 있는 겁니까? 남에게 우리 재산을 합법적으로 퍼주라고 있는 겁니까?
그런식의 단순유치한 경쟁만을 부르짖으신다면 미국과 중국쌀에 우리의 농가도 다 죽어 나자빠져도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게 속국이고, 현대의 식민국가아닙니까.
민족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온몸을 떨면 투지를 불태우는 우리민족이 어찌 우리 문화를 지키자는 말에는 이렇게 외면하시는 지 앞뒤가 참 안맞습니다.
한족규니 임권태구니 그치들 관심없습니다. 우리 선량하고 순심어린 영화에술인들을 위해서도 스크린쿼터는 존손해야 합니다.
재정부가 부르짖는 국가이익, 그 분명하지도 근거도 불확실한 경제적이익..그거 좋습니다. 그걸 제대로 얻어내기위해서도 스크린쿼터는 끝까지 지켜내야합니다.
21세기는 컨텐츠입니다. 나이키 한컬레 안 만들어도 미국은 그 나이키로 상표소유권과 이미지작업으로 일년에 수억달러씩 앉자서 벌고 있습니다.
햐아오, 디지몽으로 일컬어지는 비롯한 일본 애니컨덴츠산업이 이제 겨우 경쟁력있는 자리매김을 했습니다. 그간 여기에 얼마나 많은 정부지원과 보호가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건 앞으로 적어도 수십년간 수십억달러를 안자서 벌게 해주며, 향후 더 일본의 재산을 만들 밑바탕의 종자돈이 될 겁니다.
안철수씨가 아이티산업에 대해 방해나 하지말라고 현 정부에 일갈했듯이, 정부가 지금있는 문화산업을 나서서 보호는 해주지 못할 망정 갈아먹으려고만 한다면 이게 제대로 된 정부입니까?
미국측 협상가(거기엔 미정부관료들 뿐만이 아니라, 그런 일만 수백년씩 해온 로펌의 변호사들을 함께 들어와 있습니다.)들이 우리나라 관료들을 얼마나 우습게 볼지 눈에 뻔합니다.
스크린 쿼터... 진짜 경제가 중요하다면 경제적으로 봅시다. 우리모두 경제동물이 되어 감각적으로 배후까지 파 보자구요.
스크린쿼터. 이렇게 단번에 날아가면, 얼마 안있어, 쿼터 전부 사라집니다. 그럼 어느 극장업자도 부담없이 갑싼 외화부터 수입하려고하지 우리영화 안 겁니다. 국내영화사들 리스크안고 우리영화 만들이유 절대 없습니다.
어느 60년대 또라이 영화광이 집안 풍비박산내면서 투자하기만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야 합니까?
경제논리만 봐선 우리영화만들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70,80년대 우리영화 망가져 있을때, 스크린쿼터나 방화제작병행 외화수입허가같은 전 근대적 방책이나마 있어 우리영화가 지켜왔길래 8월의 크리스마스도 나오고, 복수는 나의 것도 나오고, 살인의 추억도 나왔습니다.
이거 그냥 나온 거 아닙니다. 그간의 초라하고 유치뽕한 우리영화가 그나마 살아서 숨쉬어기에 이렇게 된 겁니다. 프란다스의 개같은 영화를 만들 경제의 틈새가 있었기에 살인의 추억이 나온겁니다.
지켜야 합니다. 우리말로 된 우리영화 지켜야 합니다. 그게 우리입에 들어가는 쌀이 우리몸을 지켜주듯 우리영화가 우리정신을 지키고,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해대는 바보짓을 그치게 만들어주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덧붙혀, 왜 영화만이냐고 묻습니다. 맞습니다.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지켜야 겠죠. 굳이 영화냐면 영화의 상징이고 현대 문화장르의 총제적 성질이 있기때문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만, 그런 걸 떠나서 어느 문화나 어느 산업도 그냥 날로 먹으라고 내어 놓아선 안된다는 걸 이야기 합니다.
그게 자동차건, 반도체건, 영화건, 쌀이건...
영화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거 아닙니다. 다만 지금 이순간 영화가 특정되었질 뿐입니다. 다음에는 또 다른 걸 달라고 할 겁니다. 그럼 우리는 또 그때 왜 그것만 지켜야하냐고 되묻는 바보짓을 또 해야 합니까?
by 참새연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