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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나도 노동자다!!!

2003.7.4.금요일
딴지 노동부


정말로다가 처음에는 조용조용 가벼운 얘기하려고 했다. 근데 그게 아니더라구. 아~주 한놈씩 잡고서 패대기치는 이놈의 정권과 언론을 보고 있노라니, 정말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지더라구.


노동자들이 이땅에 무슨 해충이라도 되는 건가? 그놈의 입에 발린 국민이란 거, 알고보면 거의 다 노동자들이잖아. 근데 이거 왜 이러는 거야? 법에 딱 박혀 있는 단체행동권, 소위 파업이라는 거. 그거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잖아. 이렇게 저렇게 가져다 붙이고는 걍 불법이래. 이거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도대체 어떻게 해야 불법파업이 아니고, 어떻게 해야 시민불편 없는 파업이 되는 거야? 불법행위가 있으면 그것 따로 관리하면 되고, 공공사업의 노조가 파업하는데 잠시 불편한 거 당연한 거 아냐?



사진출처 참세상 방송국


법에는 단체행동 가능하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할 수가 없어. 언제나 장난질이야. 잘난 언론사 놈들이 한번 해봐. 시민 불편없는 파업한번 해보라구.


노조시대? 노조 박살시대는 아니고? 인권변호사출신 대통령이라고? 참내 기가 막힌다. 이쯤되면 뭐가 인권인지 의아해져.


그래서, 본 우원 뭐가 진짠지 한번 훑어볼라고 맘 먹었다. 노동자라는 게 도대체 우리에게 어떤 건지 한번 차근차근 생각해 볼 필요가 충분히 있다는 거다.
 



좀 다른 얘기부터 들어가볼까? "나"는 대체 뭘까? 좀 철학적인가? 맞다. 철학적이긴 하다. 근데 요즘 하도 세상이 복잡다단해서 쌩기초밑바닥부터 다시 고민해야 되겠드라. 그리고 그 쌩기초밑바닥의 고민은 바로 "나"에 대한 고민이구. 자, 생각해보자. "나"는 대체 뭘까?


나 스스로에게 내가 누구인지를 설명하는 건 뭐 그다지 어렵지 않겠지. 그러나 다른 이에게 내가 누구인지를 설명하는 거 쬐금 복잡할 것 같아. 듣는 이가 누구인지, 어느 장소인지, 어느 때인지에 따라 날 설명하는 건 달라질 수 있으니까 말야. 그러나 가장 기초적이고 본질적이며, 쉽사리 바꿀 수 없는 본래적 존재스타일의 나에 대해선 좀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지 않겠어? 간단히 말해서, 때와 장소를 안가리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나의 존재형식은 무어냐는 거야.


뭐? 그런 거 별로 상관없다구? 그냥 맛난 거 먹고, 편히 자고, 재밌게 놀면 그걸로 땡이라구? 맞는 말 같긴 해. 근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건 그냥 동물들의 존재형식일 뿐이야. 하물며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동물들의 철학으로 한 평생 살아서야 되겠어? 단순한 동물들의 형식 이상의 무엇이 있지 않겠냔 말야.


그래서 지나간 짧지 않은 삶을 반추하면서 본 우원 고민했지. 그리고 결론내렸어. 그래서 얻은 나의 존재형식은 무엇인가란 만만찮은 고민에 대한 답은 바로... 노동자라는 거야.


본 우원 생활자의 꿈과는 별로 관계없는 쌈쭝 캐피탈의 채무자이기 전에, 노동자의 삶을 사는 노동자란 말이지. 바로 이 단어가 성인이 된 이후에 본 우원의 사회경제문화정치적 존재형식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가 되더라구.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을 알게 될수록 내 자신이 노동자임을 자랑스레 생각하게 되었어. 나라고 왜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봄직한 재벌집 외아들이나, 고관대작의 자식을 꿈꾸며, 현실의 비루함을 탓하지 않았겠어. 그러나 적어도 지금 서른 중반의 나이에서, 지난 시절 내 어린 욕망이라는 게 얼마나 추악하고 잔인한 삶을 담보해야만 하는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면, 비록 하루하루 위태하고 걱정스럽지만 부끄럽지않고 당당해.


"세상을 겁없이 사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노동자이기에 세상에 대한 부채가 없을 뿐이다."


생각해봐. 내가 재벌이 되고, 고관대작이 되기 위해 짓이겨야 할 수 많은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뭔가 말이야?  희생양 ? 세상이 나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건, 오류를 넘어 비극이야.   


그래서, 난 노동자이고, 그것이 세상에서 날 표현하는 가장 타당한 존재형식인 동시에, 나름대로 자랑스럽기까지 하더란 말이야. 그럼 본 우원이 이렇게 자기자랑에 열을 내면서도 쪽팔리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그것은 이 세상의 대부분이 노동자이기 때문이야. 내 주위를 둘러있는 대부분의 지인들이 노동자이고, 내가 살고, 거닐고, 생활하는 곳에서 어울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자들이었지. 따라서 본 우원의 자화자찬은 세상의 모든 노동자들에 대한 경외와 찬사인 거야.
 



그럼 노동자는 무엇인가.


우선, 이 화두에 얽매어 궁싯거리고 있는 머리가 큰 가방끈들에게 경의를 보낸다. 그러나 더 열심히 머리들 굴려야 할 거야. 그렇게라도 무언가 생산을 한다면 노동라고 할 수 있으니깐.


아무튼 함 곰곰 살펴보자구. 노동자, 과연 그들은 누구인가. 노동자는 일하는 사말들이야. 일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자들이라구.


그들은 단지 자신의 몸을 움직여 인간 삶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지. 그들의 대척점에 서있는 종족들을 자본가라 부르는데, 자본가들은 그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소유의 생산수단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부려 이익을 창출해 낸대. 뭐 다 아는 이야긴가?


공장이나 논밭에서 노동하는 이들뿐 아니라, 특정 때와 장소에서 다른이들에게 만족을 서비스하는 이들도 노동자들이야. 때론 간단한 도구나, 자본이라고 할 수도 없는 적은 비용(이것도 대부분은 금융자본으로부터 대출된 자금)을 투입해 사업장을 열고 자영을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노동이 투입되지 않으면 결코 생존과 생활을 해결할 수 없는 자들도 당연히 노동자라 하겠어.


안산과 반월, 마산과 창원의 공장노동자들 뿐아니라, 전남과 경남의 농업노동자들, 쌈중과 횬대의 대기업 사무직, 롱때호텔 도어맨과 종은은행의 창구직원들도 노동자일뿐 아니라, 트럭 한 대 몰고 이리저리 온 나라를 뛰어다니는 화물운송자들과 사거리 수퍼마켓 주인아저씨, 주말마다 고아원을 찾는 동네 홍콩반점의 사장아저씨, 학교앞 고모분식집 고모아줌마도 모두 노동자란 말이지.


어설프게 사업자등록증냈다고 자본가가 아니야. 그들은 투입된 그들의 노동만큼만 잉여이익을 창출해내고 그것으로 생활을 영위해. 또 그들의 이익의 일부는 금융자본이 대출해준 자본의 이자로 지급해야 하더라고.   


그리고, 더 나아가 그들의 어린 자식과 은퇴한 그들의 노부모님들도 모두 노동자의 자식과 부모일 뿐이야. 관료와 자본가들에게 산업예비군으로 취부되는 미취업청년들 역시, 기실 갈데없이 노동자지 뭐.


그러니 노동자라고 다 눈꼴시려 하지 말자구. 그게 바로 우리 모두의 모습이잖아.


그러나, 한가지 짚어보자. 이렇게 위태위태하게 산다고 다 노동자가 아니야. 노동자임에 틀림없는 이가, 노동자일 수 밖에 없는 이가 그나마 노동자이기조차 포기한다면, 또는 온갖 생떼를 부리면서 노동자가 아닌 척 한다면... 이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문제가 돼.


노동자를 등쳐먹는 사기꾼이나 서민가구들에 피해를 주는 좀도둑, 약한자에게만 패악질을 부리는 깡패놈들... 이들은 그 어떤 변명을 대고도 용서할 수 없는 노동자의 적 아니겠어. 그들은 갈데없는 노동자임에도 자신들의 고통을, 같은 노동자에게 전가시키는 터무니없는 악당들이야. 왜 같은 노동자끼리 이러는 거야.


물론 혼내주어야 할 그들이라고 노동자에게 저주와 멸절의 대상이라 할 수 없어. 그들도 노동자이기에 회복과 포용의 대상이야. 그들이 노동자임을 스스로 다시 자각하고 인정할 때야만 회복과 포용이 된다구.


자본주의는 경쟁의 시대래. 자본주의 이데올로거들은 자본주의야말로 인류가 만들어낸 최상의 시스템이고 마지막 사회구조라고 우겨대. 그럴 수도 있어. 또 어느 이바구처럼 자본사회내의 점진적 발전으로도 우리가 꿈꾸던 이상향을 맞을 수도 있고. 그럴 가능성을 무조건 다 부정하는 건 아니야.


무슨무슨 주의나 무슨무슨 이념...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냐. 그러나 적어도, 야만의 적자생존과 약자에게 모든 고통을 전담시키는 현재의 시스템이라면 결코 노동자로서 받아드려서도, 받아드릴 수도 없다는 거야. 노동자는 경쟁의 세계관이 아니라 공존의 세계관, 공존의 철학을 견지해야 한다고 봐.


노동자 한사람, 한사람은 세상 누구와도 경쟁해서 이겨낼 수 없어. 졸라 약한 게 한사람의 노동자거든. 그래서 노동자는 이 경쟁의 시대를 쫑내고 모두가 평화속에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줄이 연대임을 느끼고 알아서 챙겨두어야 해.


옆집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십시일반으로 작은 돈이라도 모아주고, 고생하는 집배원에게 물이라도 한잔 건네고, 갈길은 바쁘지만 길잃은 아이의 손을 잡고 파출소까지 데려다 주는 것, 그게 노동자란 말이야.


이익이 없으면 동전한푼에도 벌벌 떨고, 가사도우미아줌마가 집배원에게 떠준 한잔물도 아까워 소리소리 지르고, 남의 자식이 어떻게 되든 자기자식만은 고액과외에, 불법유학에, 경호원까지 딸려주어야 폼이 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결코 상상조차 할수 없는, 그런 노동자로써의 생각과 마음이 노동자에겐 있다구.


당장은 손해라고 주판 두들기는 놈에겐 이해될 수 없는 노동자의 삶은, 이렇게 함께 가기 위해 당장은 힘들고 손해보는 것 같아도 길을 넓혀 함께 가는 역사를 만든는 거라고 할 수 있지. 느리고 더디더라도 모두가 공존하는 방식, 아니 그것만이 빨리, 빨리 가자며 꼬드겨대던 야바위꾼들의 사기술에 속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야.


속지말자구. 빨리 빨리 가자고 하던 놈들 말 들어서 빨리 간 적 한번도 없잖아. 노동자는 천천히 가고, 모두 함께 가는 거야. 그래서 노동자는 그 잘난 자본만의 사회에서 만족할 수 없어.
 



만약 당신이 자본가라면, 또는 지금은 아니지만, 정말, 정말, 정말 좀 있다가 자본가가 될 것 같은 요망한 예감에 어쩔 줄을 모르겠다면, 지금 본 우원의 야그가 당최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가지 않을 거야. 그러니 이쯤에서라도 그런 놈들은 반전이면 사족을 못쓰는 허리우드키드가 스포일러 피해가듯 잽싸게 사라져 주길 바래.


노동자하면 뭐부터 생각나니? 빨갱이? 공산당? 마르크스? 또 뭐 생각나냐... 그래 그렇게 생각되는 거 이해는 돼. 그러나  그런 생각이 틀리고 맞고를 떠나서, 그런 정치적 가름을 떠나서... 노동자는 본래적으로 존재하는 거야. 빨갱이나, 공산주의자가 모두 감빵가고, 맑시즘이고 뭐고가 모두 불살라지러라도 노동자는 노동자로서 존재하는 거라고.   


문제는 노동자가 스스로 노동자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이해하고 있냐는 거야. 자기도 똑같이 노동자이면서, 그저 노동자라면 머리 빡빡 밀고 붉은 머리띠와 으싸으싸 팔뚝질만 생각난다면, 그래서 눈쌀만 찌푸려진다면. 씨바, 이게 비극이 아니고 뭐겠어?


노동자가 무슨 조직깡패들처럼만 느껴지는 거, 니들 잘못만은 아닐 거야. 문제는 언제나 사건의 본질보다는 지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편집해서 들이미는 언론이라는 것들 탓이 가장 커. 그렇다고 쪼다같이 그 놈들에게 속아 눈쌀 찌푸리는 못난 자신이 다 용서되는 건 아냐.


다음 기사하나 추천할게.


[이광회] 싱가포르 勞使문화  - 좃선일보 원문


지난 조흥은행 금융노조의 파업기사들 바로 밑에 이 기사를 올려붙여 편집미학의 극대화를 이루고 있는 좃선의 기사야. 이게 좃선의 힘 아니겠냐. 그러나 마음은 참 심란해. 싱가폴과 우리나라의 경제는 그 기본적인 패러다임부터 다른 나라 아닌가. 그 나라, 정치적으론 여러나라에 끼인 관계로 문제가 있는 반면에, 그걸 커버할 만한 경제력과 행정투명성을 가지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청렴하다는 싱가폴 공무원들 이야기는 이제 식상할 정도의 상식이잖아. 2~3만불을 오르내리는 국민소득에 유럽을 방불케하는 복지수준의 싱가폴과, 경제라면 그저 경제성장율이 7~8%쯤 되야 자랑인 줄 아는 개도국 대한민국은 그 구조 자체에서 다른 나라야. 그런데 이런 기사가 우리와 비교할 만한 기사라고 퍼온 거야? 이 따위를 찾아 온 나라를 헤맸을 좃선의 데스크가 가련할 지경이야.


생각이라는 걸 해보자구. 도대체 왜 파업을 하겠냐구? 아까도 말했지만, 노동자는 그저 몸뚱이 하나로 먹고 사는 약자이고 그들에게는 함께 뭉쳐 소리치는 연대 외에는 아무런 무기가 없어. 그래서 파업은 노동자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그리고 마지막 무기인 거야.


대화와 타협? 이제 개 풀 뜯는 소리 좀 고마하자. 누군 책상머리에 앉아서 대화랑 타협하면서 오손도손 귤 까먹는 재미 몰라서 오뉴월 길바닥에서 그 진저리겠어?


노동자는 자신과 온 가족의 생존을 걸었고 사용자는 가지고 있는 것 중 일부만을 걸었어. 벌써 게임이 안 된다고. 좋다. 모두가 좋아한다는 대화와 타협에 들어갔어. 그런데 아무리 해도 결코 결론이 안 난다면, 상대가 결코 받아드릴 수 없는 조건만 내세운다면, 니들 같으면 어쩔래? 니들도 노동자잖아.


막말로 자본가는 걍 공장 문닫으면 돼. 지 손해볼 거 없어. 자본가는 수십조니 수백조니 하는 엄청난 돈 떼먹고도 그저 외국으로 사뿐히 날라가서 선탠하며 주스 마시며 지내면 돼. 그러나 노동자들은 앉은 자리에서 거지되는 거야.


그런 나쁜 짓 막고 노동자 보호하라고 국가나 정부라는 게 있고, 노동법도 있고, 노조도 합법화된 거야. 그게 현대국가라고. 그런데 그런 거 하라고 있는 정부나 국가란 것들은 언제나 노동자부터 패대기치고 보는 거야. 지금까지 그랬어. 그리고 앞으로도 더더욱 그럴 분위기야.


노동자는 호구가 아니야. 노동자들이야말로 여의도사이비텔레토비들이 한 표 받기 위해 그렇게 우러러 받드는 바로 그 국민이란 말이다. 그래, 그것들이야 워낙에 생각없이 나오는대로 떠들어 제끼는 것들이니 그렇다 치고, 방송국 신문사 놈들이야 비열치졸싸가지 없는 것들이니 그렇다 치자.


그러나 우리끼리야 그라믄 되겠냐?


우리끼리는 절대 그러지 말자구. 내가 노동자고, 지하철노조가 노동자고, 운수하역노조가 노동자고, 은행원들이 노동자고, 집앞 골목길 담배가게 아저씨가 노동자라고 이미 말했어. (벌써 은행원연봉 운운하고, 노동귀족운운하는 놈들 몇 마리 보인다.^^ 그래 그 야그는 나중에 천천히 하자. 세월이 좀 먹냐? 천천히 가자. 노동자답게... 그러나 이거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 지금 남부럽지 않은 연봉의 그 은행원들이라도, 경제관료가 끄적이는 펜대아래에선 그들의 생활과 삶이 날아간다. 지난날의 월급명세표가 무슨 소용인가 말이다. 그저 노동자인 걸.)


노동자라고 늘 옳은 판단을 하는 것 아니다. 그래서 파업결정이 오류일 수 있어. 그렇다고 나서서 방송국카메라 앞에서 시민불편 어쩌구하는, 누워서 침 뱉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해.


노동자 파업 몇 번 했다고 나라 망하지 않아. 지금까지도 언론이라는 잘난 것들이 노동자파업으로 국가경제 위기운운하며 예를 드는 건 수십년도 더 지난 아르헨티나 정도야. 그에 반해 위정자가, 관료들이, 자본가들이 들어먹고 망쳐버린 나라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고, 지금도 지구상 대부분의 제3세계에서 그 망쪼가 진행중이야.


이 정부 들어 먼저 터진 몇건의 파업들이 며칠간의 불편을 제외하면 큰 참사없이 종결된 걸 보면서 확실히 역사는 진보하는구나하고 느꼈어. 비록 노조가 모든 걸 다 이룬 것처럼 보도되고 있지만, 기실 조흥은행은 다른은행으로 흡수되어 사라지는 것이고 노조는 삼년의 기간만 직장이 보장된 것 뿐이야. 그들은 그들이 제시한 최소한만을 얻고 나머진 양보한 거야. 이렇게 최소한이라도 사수하게 된 것에 가슴을 쓸어 내리면서 이제 삼년 뒤를 준비하는 수 밖에 없어.


그런데 언론은 이 모든 양보와 성과에 대해선 그런 건 나몰라라 하고 별다른 내용적시도 없이 불법만 운운해. 도대체 그런 상황에서 합법,합법하며 깨깽거린다고 당장 거리에 나앉은 노동자 귀에 들리기나 하겠어?


만약 불법행위가 있으면 그것만 지들 좋아하는 엄단하면 돼.(도대체 그놈의 합법파업이 어떤 건지 꼴에 법을 전공했다는 나도 꼴 좀 봤슴 좋겠어. 누구말처럼(진중권) 강력대처운운하는 강금실씨가 합법파업 이렇게 한다같은 가이드 하나 만들어봐. 대통령하고 장관하고 파업한번 해서 합법파업 모범 좀 보여보라구.) 그렇다고 파업타결의 모든 결실물마저 송두리채 폄하하는 게 과연 옳은 거냐?


이제 그나마의 합리적 타협들도 포기하는 분위기야...


기사 하나 더보자.


[지금은 파업시대] 피해자는 누구인가 - 쭝앙일보 원문


이것들, 경찰 워커발에 노조원을 짓이기는 상황이 없으니 아주 속이 뒤집어지나 봐 . 꼭 파업의 끝은 그래야만 하는 거야?


돼먹지 않은 언론들의 지랄발광에 그만들 좀 속자구. 꼴에 노조라고 언론사노동자들도 가끔 집회도 하고 파업도 해. 그러면 지들도 좀 알 텐데, 다른 노동자들 파업에는 늘 비아냥조야. 이 돼먹지 못한 것들은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그럼 여의도 텔레토비들은 어떤가? 그나마 좀 낫다는 여당 중진이 하는 이야길 보자.


"예전 같으면 쿠데타 났을 상황" 민주 김경재 의원 쓴소리 - 쭝앙일보 원문


이 천박한 역사인식을 봐. 역사속의 쿠데타가 무슨 국가위기의 돌파구라도 되었던 양 이야기한다. 또 이 조잡한 현실인식을 보라구. 지금 대한민국이 절단날 상황이라도 되었단 말인가? 그리고 그게 노동자 책임인가?


사실 현재 경제는 침체기이고, 솔직히 나도 사회전반에 횡횡하는 납치나 살인강도 같은 뉴스 보기가 겁나. 그래서? 그게 노동자 파업때문인가? 아.. 이럴 때이니 자제하자는 그런 이야기라고? 그럼 좋은데 그 테레토비들은 그런 말 할 자격없다.


지난 5년간의 집권동안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고, 결국 그들이 카드빚이니 납치강도니 하는 것의 교사범인 걸. 지들이 무슨 자랑이라고 파업노동자들에게 기업 이탈 운운할 수 있냔 말이야. 기업이 가고 싶으면 가라고 해. 원래 그것들 오로지 돈만 좇아가는 것들 아닌가 말야. 갈 때가 되면 아무리 말려도 가는 거야. 아직도 노동자 피빨아 장사할 생각이라면 아예 지구에서 꺼져주길 바래. 언제까지 사람장사로 남겨먹을려는 후진경제마인드로 살아갈 거냐?
  



파업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얘기가 밥그릇 얘기야. 그 놈의 밥그릇 타령, 꼴보기 싫지? 근데 이게 자기 밥그릇이면 이야기가 달라져. 그치? 또 보자구. 국익이니 기업의 이윤추구니하면서 가진 자들의 밥그릇 타령에는 그렇게 유순한신 분들이, 왜 갑자기 노동자들(그리고 그 자신)의 밥그릇 타령에는 이다지도 불쾌해들 하시는 지 알다가도 모르겠어.


우리가 무슨 조선시대에 사는 것도 아니고 밥그릇 타령도 사람따라 지위따라 할 사람이 있고 안 할 사람이 있는 건가? 도리어 해야 된다면, 산더미같은 재산 등에 업은 잘나고 근엄한 부자들보단, 당장 밥줄에 온 가족이 딸려있는 노동자의 밥그릇 타령이 오히려 당연한 일 아냐?


그래, 밥그릇 타령하자고. 세상이라는 게 막말로다가 다 잘 먹고 잘 살자고 있는 건데 왜 그게 흉이냐고. 그게 다 돌아돌아 자기차례의 밥그릇이 아닌가 말야. 밥그릇 타령이 그리도 꼴보기 싫고 시비걸고 싶으면, 밥그릇 그 자체가 목표라는 자본사회 모든 사기업들 먼저 다 조져버리고 시작하자고.


그럼 제 밥그릇 투쟁을 넘어 정치적 사회적 이슈를 내건 노조활동은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어. 이번 파업에도 비정규직 차별 철폐, 경제특구 폐지 같은 거 내걸었잖아. 이건 지 밥그릇 타령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이슈를 내건 활동이지. 근데 이것도 골 때려. 언제는 지밥그릇 타령만 한다고 투털대더니 이젠 남의 밥그릇도 챙기려니깐 비아냥이야.


뭐하자는 거야. 밥그릇 타령만 하라는 거야. 하지말라는 거야. 왜 정신머리 하나도 없는 사이비언론들에게 그렇게 이리저리 속는 거야.


지난 6월 현대자동차노조의 산별노조가입 등이 찬반투표가 부결되었고, 부분파업에도 참여율이 저조했어. 누구는 무지 좋아들 하더군. 하지만 산별노조가입이 무산된거 좀 비딱하게 보면, 그냥 잘나가는 현자노조끼리만 잘 살자는 거야. 게다가 파업의 이슈 중 비정규직 기본권보장같은 쟁점(이건에 대해선 잠시후 따로 이야기하자)은 정규직 중심의 노조원들에게 별로 달갑지 않았나봐. 그게 너무 정치적이라 싫다나 어쩐다나...


이게 문제라는 거야. 먼저 이야기했지만. 노동자는 공존의 철학자들이여야 하는데 잘나가는 것들끼리만 뭉치겠다고?  저렇게 수구언론들이 좋아라 하는 것 보면 몰라?


노조는 정치적이야해. 이거 좀 복잡하지. 간단히 보자구. 흔히 노조의 정치투쟁은 안 될 일이라고 씨부려댄다. 누가? 누구긴 잘난 분들이지. 왜냐? 정치는 지들만 하고 싶으니깐. 노동자들이 정치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갱세이 놓는 거 듣기싫다는 야그야.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을 봐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명백백히 쓰여있어. 지금 경제인들도 공공연히 정치권과 정부에 간섭, 협박을 노골화 하고 심지어 외국으로 회사를 옮긴다느니 하는 흰소리까지 서슴지 않는다. 언제는 자기들이 애국심때문에 한국에 있었던 건가?


중국의 노동자의 임금이 10분지 1밖에 안된다며 겁죽대지만, 그럼 왜 진작 안 옮겼니?


[韓經硏] "정부, 경제위기 제대로 인식못해" - 좃선일보 원문


그럼 기업인들은 이런 소리하면 안된단 말이냐? 아니야. 해도 된다. 하고 싶으면 해야지. 민주국가인데. 문제는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된다는 비합리다. 기업도 정치하고 노조도 정치하자고. 기업만 그럴 게 아니라 노동자도 정부에 압력 넣고 하자고. 누가 더 옳은 주장을 했었는지 나중에 결론이 나겠지만, 지금 당장은 누가 더 논리적이고 합목적적인 주장을 하는지로 판단만 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


정부 옳고, 노조가 틀릴 수도 있고, 노조가 맞고 기업이 틀릴 수도 있어. 그게 문제가 아니라, 누군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활동해선 안되고 누군 된다... 이럼 안된다는 거야.


열나게 파업하고 시위해서 임금 5% 올렸어. 그런데 소비자물가 1%로만 오르면 말장 도루묵이라는 거 우리들 다 알아. 기름값에 버스비에 쌀값에... 거기다가 온갖 세금은 늘어가고, 연금에 의료보험료는 가만있냐고.


이거 악순환이잖아. 무능한 정부일수록, 노동자는 열받고 파업을 참을 수 없게 되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하냐고. 경기 안 좋으니 임금동결하자고? 그 대신 갑근세도 줄이라고. 그래도 세금늘리자고? 그럼 복지제도 보장하라고. 노동자해고를 쉽게 만든다고? 그럼 잘려나가도 잠자리 먹을거리 걱정은 국가가 책임지라고.


이게 정치가 아니고 뭐야. 정부가 무능하거나 편파적이라면 노동자들이 정치적일 수 밖에 없는거야. 아니 정부를 무능하고 편파적이지 않게 하기위해 노동자는 정치적이여야 해.
 






긴 글 읽느라 수고했다. 근데 이번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기회될 때마다 계속 얘기해야겠다. 앞으로 비정규직 문제, 청년취업 문제, 대기업 노조문제, 외국자본 문제, 외국인 노동자 문제, 여성노동자 문제 등 전반적으로 노동 얘기 함 해보자. 우리가 곧 노동자인 이상, 노동 얘기는 곧 우리 얘기 아니겠어.



 
딴지 노동부된장
버디(yibudd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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