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중국언론에 비친 노무현
약 5년 전, 필자가 일 때문에 중국 회사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평소 연락을 주고 받던 담당자는 필자가 온 것을 보곤 이내 녹차 한 잔을 내왔다. 그러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야아, 너네 대단하던데? 이거 알아?" 그러면서 치익 칙 소리를 내며 모뎀을 켜곤 모니터의 화면을 내게 보여주었다.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탄핵소추 가결안이 통과된 것이다. 필자가 중국행 비행기를 타기 바로 전날에 벌어진 일이었다. 순간 굉장히 쪽팔렸다. 찬반을 떠나 이런 일을 외국 사람과 마주한다는 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쨌든 최대한 표정 감춰가며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중국 담배 한 대를 권하면서(mild & smooth라고 담뱃갑에 써 있었지만 타르 함량이 14mg...) 담당자는 자연스럽게 물었다. “뭐 어떻게 된 일이야? 노무현이 무슨 사건이라도 저질렀나?” "그것보다는... 노무현 싫어하는 반대당 국회의원 수가 훨씬 많으니까... 거의 독자적으로 일을 벌인 거지." "실제로 탄핵되고 하야하거나 하진 않고?" "그럴 가능성은 적어. 노무현 반대자들도 탄핵까지는 너무한 게 아니냐는 반응이 많거든." "호오... 그런데도 탄핵을? 그럼 쟤네들 어떻게 되는 거냐?" "응? 어떻게 되느냐니?" “탄핵 찬성한 국회의원들 말이야. 가만 두지는 않을 거 아냐? 총살 아니면 감방?” 낯빛을 보니 농담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아니 아니... 무슨 일을 당하진 않아. 국회의원 임기에는 지장이 없을 거야." 이번엔 그쪽에서 내 낯빛을 보며 농담하는 건지를 살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음? 감방도 안 가고 의원직도 그냥 내버려둔다고? 니 추측 아냐?" "뭐 그건 나 아니라도 누구나 그렇게 볼걸." 그는 하아 하며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단하군. 한국 정치는 진짜 대단해. 자기를 탄핵하겠다는 놈들을 그냥 놔두다니. 중국에서라면 어림 없지. 저런 건 다 총살이야. 최소한 숙청이지. 다시는 베이징에 발도 들이지 못한다고." 그러면서 그는 중국 정치 얘기를 한동안 늘어놓았다. "중국 입장에선 아주 부러운 일이야. 너네는 모르겠지. 난감하고 쪽팔리다고? 그건 이해하겠어. 하지만 중국에선 저런 기회 자체를 가져볼 수가 없어. 사람이 많아서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 우리는 직접 선거로 지도자를 뽑아본 적이 없거든. 전부 중앙 정부의 안배에 따라 조직되지. 전인대(全人大)위원도, 지방 정부 관리도 마찬가지야. 그러니 한국처럼 탄핵 같은 일은 생길래야 생길 수도 없고, 그런 조짐이 있다면 즉시 숙청된다고." "그거야 나라 사정에 따라 다른 면도 있는 거잖아? 말한대로 중국에서 직접 선거를 하기는 어려운 일이고..." "그러니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면도 있긴 해. 하지만 그게 중앙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정치를 합리화시킬 순 없고, 무엇보다 우리도 저렇게 해보고 싶은데 기회 자체가 주어질 수 없다는 게 씁쓸한 거지. 정치 비판을 해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사회... 아직 중국에선 그래본 적이 없단 말이야.” 지금 와 생각해보니, 우리도 그렇게 해본 적이 있었던 것뿐이었구나.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노무현이 탄핵을 당한 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보고 있던 매체가 제대로 사실만을 전하는지도 개념치 않을 것이다. 어쨌든 남의 나라 문제다. 그러니까 누가 옳고 그른지를 떠나 상황 자체만을 자신의 입장에서 반추해 보게 되니, 탄핵 정국의 의미가 전혀 다르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리고 2009년 5월, 노무현이 세상을 떠났다. 그 사이 한중 교류의 폭은 더욱 넓어졌고, 따라서 주목도도 예전보다 커지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 매체에서는 따로 심층보도 코너를 만들어 관련 소식을 전했다.
수많은 보도와 심층 분석, 칼럼, 시사방담이 중국에서 이어졌다. 앞서 탄핵 사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들 입장에서야 돈 받은 사람이 노무현인지 그 부인인지, 액수가 100만 달러인지 500만 달러인지, 박연차와 강금원이 대기업인인지 오랜 친구인지 사실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로서도 역사상 처음이며 중국에서도 상상할 수 없을 전 지도자의 자살이 대체 무엇 때문인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그 궁금증은 다시 우리와는 약간 어긋난 결론을 낳는다.
검찰의 권력이 너무 커졌다는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그들에 의한 법적 조사가 계속돼야 했다고 주장하는 건 모순이 아닐까? 반대로 법치(法治)의 원칙을 강조하려 했다면, 민중들의 항의가 사리에 맞지 않다는 주장도 함께 나왔어야 하는 게 아닐까? 위 글을 읽다 보면 사실과 논리의 연관이 어딘가 어긋나 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 주된 원인은 물론 기사 상에 나타나 있지 않다. 앞서 말했듯 외국 입장에서는 우리처럼 검찰 발표 내용이 사실인가, 국내 언론의 혐의 흘리기가 온당했는가 같은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외국의 정국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검찰 발표에 의거한 공식적인 사실들은 야당과 인터넷 매체들의 반대 근거에 비해 더 권위를 가지게 마련이다. 그러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뢰 혐의를 놓고 정치적 비자금과 부패로 단정하는 중국 언론이 있다고 해서 탓할 필요는 없다. 주목할 점은 그러한 해석 자체가 아니라, 중국에서 그러한 해석으로 유도되는 이유가 무엇이냐이다. 다음 글은 위와는 다른 결론을 내지만, 특정 부분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앞의 기사와 달리 여기서는 노무현의 도덕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 엄격한 제도 균형과 감독 기구의 존재, 즉 사법부 독립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앞글에서 검찰의 권력 문제를 짚으면서 딱히 부정적인 시각이 느껴지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처음에 밝힌 필자의 경험을 다시 돌이켜보시라. 엄연히 외국인인 중국 사람들이 한국 정치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특정 사안에 대한 잘잘못의 판단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중국 정치에 빠져있는 어떤 요소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섣부르게 요약하자면, 그것은 중국의 현실을 감안했을 때 불가능하다 여겨지는 민주주의의 원칙적 요소다. 위의 글들을 보았을 때, 우리는 중국 사법당국이 공정한지 정치적인지 알지 못하지만, 최소한 중국인들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그 행간에는 물론 현재 중국의 사법적 처리에 정치적 간섭이 많다는 견해가 담겨 있다. 그러므로 우리 딴에는 검찰의 행보를 애써 변호해주는 듯 보여 어색한 느낌을 가졌던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어색했던 점은, 노무현 정국을 불러온 최대 요인으로 많이들 지적하는 이명박 정권의 압박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중국 언론은 현 정부가 검찰에 압력을 가해 법률적 조사를 가장한 정치보복을 했다는 식으론 해석하지 않았다. 국민들이 이런 혐의에서 검찰과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는 내용도 찾기 힘들다. 최대의 초점은 어디까지나 한국의 부패 문제와 노무현의 도덕성이다. 지금 말하는 내용은 외부에 보여지는 중국 언론 기사를 근거한다기보다, 거기에 없는 것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의견 차이가 있을 줄로 안다. 필자의 견해로는, 중국 언론이 노무현 정국을 현 정부 비판과 국민적 항의에 연계시키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중국의 어떤 사건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덩샤오핑 집권 이래 경제 개방을 지속하면서 중국 지식인들은 정치적 개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1989년 4월 15일 후야오방(胡耀邦)이 사망하자, 이를 계기로 중국에선 그의 명예를 기리고 민주화를 실현하자는 열망이 한층 거세졌다. 급기야 광장에 운집한 대학생들은 단식 시위를 시작했다. 타협점을 찾지 못하던 중국 정부는 6월 3일, 군대를 수도에 진입시켜 이들에게 발포를 시작했다. 바로 유명한 천안문 사태다. 2009년 6월 3일은 그 20주년이었다. 중국 언론의 절대적 금기가 있다고 하면, 그 첫머리에 천안문 사태가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정부 옹호의 시각만 보도 가능하다는 게 아니다. 아예 입에 올리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시청 광장에서 열린 노제도 세세하게 보도했고, 이명박 정부에 대한 규탄의 의견이 있다는 것도 알렸지만, 이 상황을 중국의 실정과 연계시키기엔 지나치게 위험했다. 자칫 일종의 비유로 들릴 수 있고 게다가 날짜도 딱 그 무렵이니, 노무현 정국에 대해 이명박 정권의 처사가 지나쳤다거나 또는 문제 없었다고 평가하기조차 어려웠던 것이다. 따라서 논평의 초점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아니라 자살의 의미가 무엇이냐에 집중된다. 글을 하나 보충해보자. 그리고 위 글들을 다시 찬찬이 살펴보시라.
중국 언론은 스스로 선택한 자살이란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일단 그의 개인적 성향(도덕성)에서 분석하며, 다시 거기서부터 한국 정치에 끼치는 의미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정치적 피살 같은 분석은 사라지게 된다. 알다시피 자살이란 굳이 사무라이 정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동양 사회에서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부패 사실을 인정하든 안하든, 노무현을 도덕적 인물로 인정하는 한 동양 사회에선 자살을 부정적으로만 평가하지는 않는다. 그에 따라 한국 정치에 끼치는 영향도 긍정적인 전망을 낳는 것이다. 여기에 비교되는 대상이 있다면 긍정적 전망의 견해는 더욱 힘을 얻게 된다. 일차적으로 중국 현실을 비교해야겠지만 천안문이 연상돼 그럴 수 없으니, 그 흐름은 다른 목표를 향하게 된다. 중국 언론으로선 오히려 강추될만한 목표가 마침 있었다.
중국 입장에서 대만 정치인을 비난하는 건 자유롭고, 또 현재 대만 총통 마잉지우(馬英九)는 국민당 출신이니 대만독립을 외치던 민진당의 첸수이벤을 옹호할 리 만무하다. 사실상 나가 죽어라는 표현이 언론에서 가능한 것은 그런 배경을 깔고 있기 때문이다. 이 원색적인 비난 기사들이 재미있기는 하지만, 첸수이벤을 욕보이는 게 목적일 뿐 노무현을 이해하려는 시각과는 아무 관련이 없으니 여기서 끝맺는 게 낫겠다. 마지막으로, 언론이 아닌 개인 블로그의 시각은 어떨까. 외적 규제인지 아니면 자아검열 때문인지 모르지만, 천안문 사태를 연관시키는 언급은 개인 블로그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의 대중들이 볼 수 있는 노무현 정국에 대한 보도는 앞서 소개했듯 중국 상황이 반영된 이야기들이다. 자살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필자의 견해가 맞지 않더라도, 우리가 알고 있는 노무현 이야기와는 서로 같을 수가 없다. 근본적으로 블로그의 견해는 총정리가 가능하지도 않다. 굳이 거칠게라도 얘기한다면, 그 돈 받았다고 자살한다면 중국 관리들은 수십 번도 더 죽여야 마땅하다는 식의 공무원 비판이랄까. 들리는 말로는 노무현 대통령의 수뢰 액수는 중국의 일개 시장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필자 역시 이런 얘기를 많이 들어봤지만, 무슨 통계 자료에 근거한 것도 아니니 뒷담화 수준에서 만족해야겠다. 해서 이어질 이야기도 중국 블로거들의 보편적 의견이라고 볼 근거는 없다. 다만 블로그는 어쨌든 언론보다는 좀더 자유로운 비판이나 감성적 표현이 가능한 매체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더라도, 마치 우리가 그날 뜻 모를 눈물을 많이들 흘렸듯이, 말로 표현되지 않는 마음을 그들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다. 원래는 어느 게시판에 올려졌던 듯한데, 너무 많이 펌질이 되어 출처가 불분명해진 글 하나를 소개한다.
뜬금없지만, 노무현은 참으로 ‘행복할 수도 있었던’ 사람이라고 문득 생각이 든다. 아홉친구(ninthpa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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