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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언론에 비친 노무현
- "그놈들도 뻔히 살아있건만"



2009.6.26.금요일


약 5년 전, 필자가 일 때문에 중국 회사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평소 연락을 주고 받던 담당자는 필자가 온 것을 보곤 이내 녹차 한 잔을 내왔다. 그러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야아, 너네 대단하던데? 이거 알아?"


그러면서 치익 칙 소리를 내며 모뎀을 켜곤 모니터의 화면을 내게 보여주었다.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탄핵소추 가결안이 통과된 것이다. 필자가 중국행 비행기를 타기 바로 전날에 벌어진 일이었다.


순간 굉장히 쪽팔렸다. 찬반을 떠나 이런 일을 외국 사람과 마주한다는 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쨌든 최대한 표정 감춰가며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중국 담배 한 대를 권하면서(mild & smooth라고 담뱃갑에 써 있었지만 타르 함량이 14mg...) 담당자는 자연스럽게 물었다.


“뭐 어떻게 된 일이야? 노무현이 무슨 사건이라도 저질렀나?”


"그것보다는... 노무현 싫어하는 반대당 국회의원 수가 훨씬 많으니까... 거의 독자적으로 일을 벌인 거지."


"실제로 탄핵되고 하야하거나 하진 않고?"


"그럴 가능성은 적어. 노무현 반대자들도 탄핵까지는 너무한 게 아니냐는 반응이 많거든."


"호오... 그런데도 탄핵을? 그럼 쟤네들 어떻게 되는 거냐?"


"응? 어떻게 되느냐니?"


“탄핵 찬성한 국회의원들 말이야. 가만 두지는 않을 거 아냐? 총살 아니면 감방?”


낯빛을 보니 농담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아니 아니... 무슨 일을 당하진 않아. 국회의원 임기에는 지장이 없을 거야."


이번엔 그쪽에서 내 낯빛을 보며 농담하는 건지를 살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음? 감방도 안 가고 의원직도 그냥 내버려둔다고? 니 추측 아냐?"


"뭐 그건 나 아니라도 누구나 그렇게 볼걸."


그는 하아 하며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단하군. 한국 정치는 진짜 대단해. 자기를 탄핵하겠다는 놈들을 그냥 놔두다니. 중국에서라면 어림 없지. 저런 건 다 총살이야. 최소한 숙청이지. 다시는 베이징에 발도 들이지 못한다고."


그러면서 그는 중국 정치 얘기를 한동안 늘어놓았다.


"중국 입장에선 아주 부러운 일이야. 너네는 모르겠지. 난감하고 쪽팔리다고? 그건 이해하겠어. 하지만 중국에선 저런 기회 자체를 가져볼 수가 없어. 사람이 많아서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 우리는 직접 선거로 지도자를 뽑아본 적이 없거든. 전부 중앙 정부의 안배에 따라 조직되지. 전인대(全人大)위원도, 지방 정부 관리도 마찬가지야. 그러니 한국처럼 탄핵 같은 일은 생길래야 생길 수도 없고, 그런 조짐이 있다면 즉시 숙청된다고."


"그거야 나라 사정에 따라 다른 면도 있는 거잖아? 말한대로 중국에서 직접 선거를 하기는 어려운 일이고..."


"그러니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면도 있긴 해. 하지만 그게 중앙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정치를 합리화시킬 순 없고, 무엇보다 우리도 저렇게 해보고 싶은데 기회 자체가 주어질 수 없다는 게 씁쓸한 거지. 정치 비판을 해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사회... 아직 중국에선 그래본 적이 없단 말이야.”


지금 와 생각해보니, 우리도 그렇게 해본 적이 있었던 것뿐이었구나.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노무현이 탄핵을 당한 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보고 있던 매체가 제대로 사실만을 전하는지도 개념치 않을 것이다. 어쨌든 남의 나라 문제다. 그러니까 누가 옳고 그른지를 떠나 상황 자체만을 자신의 입장에서 반추해 보게 되니, 탄핵 정국의 의미가 전혀 다르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리고 2009년 5월, 노무현이 세상을 떠났다. 그 사이 한중 교류의 폭은 더욱 넓어졌고, 따라서 주목도도 예전보다 커지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 매체에서는 따로 심층보도 코너를 만들어 관련 소식을 전했다.
 



시나닷컴(新浪网)의 노무현 서거 심층보도 코너. 국내외 보도가 총망라돼 있다.


수많은 보도와 심층 분석, 칼럼, 시사방담이 중국에서 이어졌다. 앞서 탄핵 사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들 입장에서야 돈 받은 사람이 노무현인지 그 부인인지, 액수가 100만 달러인지 500만 달러인지, 박연차와 강금원이 대기업인인지 오랜 친구인지 사실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로서도 역사상 처음이며 중국에서도 상상할 수 없을 전 지도자의 자살이 대체 무엇 때문인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그 궁금증은 다시 우리와는 약간 어긋난 결론을 낳는다.







한국식의 비극: 노무현의 죽음 (5월 28일)
출처/ 시대주보(时代周报)
글/ 구진셩(顾锦生) 기자


... 노무현의 자살은 한국 국내 정치 투쟁의 축소판이다. 노무현은 민주당 출신으로 자유주의적 좌파에 속한다. 반면 이명박은 보수파로, 민주당 세력이 집권한 10년 동안 한나라당에 대한 압력이 매우 컸기 때문에 노무현에 대한 보수파의 원한도 아주 깊었다.


많은 정치 전문가들은 노무현에 대한 조사를 통해, 적어도 한국 정치 체제에서 대통령과 사법부에 대한 감독과 균형이 미비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검찰 기관의 권력이 너무 컸다는 것이다. 연세대 정치학 교수이며 노무현 재임시절 대통령 고문을 지낸 문재인은 이렇게 말한다. "검찰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있다. 그들의 권력은 독재의 유산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다." (중략)


또 어떤 전문가는, 80년대 이래 비자금의 축출은 한국 사회 전반의 목표였으며,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이 퇴임한 후에 모두 법적 심판을 받았음을 지적한다. 만약 노무현의 죽음이 지지자들의 주장대로 수뢰 조사와 관련된 것이라면, 현재까지도 한국에는 파벌 정치의 그림자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민중들의 항의로 인한 압박 속에서 노무현 사건에 대한 조사를 중지했다면, 그 또한 한국에는 부작용을 불러왔을 것이다.


한국이 비자금 정치에서 벗어나고 부패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독립적인 조사가 계속돼야만 했고 그와 함께 수뢰 정도에 따라 엄정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했다. 불행한 것은, 노무현의 자살이 남긴 후유증으로 현재로선 정치 문제가 더 중요해지는 듯하고, 법치는 방해받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또한 한국 정치의 비극성을 찾을 수 있다.


검찰의 권력이 너무 커졌다는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그들에 의한 법적 조사가 계속돼야 했다고 주장하는 건 모순이 아닐까? 반대로 법치(法治)의 원칙을 강조하려 했다면, 민중들의 항의가 사리에 맞지 않다는 주장도 함께 나왔어야 하는 게 아닐까? 위 글을 읽다 보면 사실과 논리의 연관이 어딘가 어긋나 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 주된 원인은 물론 기사 상에 나타나 있지 않다.


앞서 말했듯 외국 입장에서는 우리처럼 검찰 발표 내용이 사실인가, 국내 언론의 혐의 흘리기가 온당했는가 같은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외국의 정국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검찰 발표에 의거한 공식적인 사실들은 야당과 인터넷 매체들의 반대 근거에 비해 더 권위를 가지게 마련이다. 그러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뢰 혐의를 놓고 정치적 비자금과 부패로 단정하는 중국 언론이 있다고 해서 탓할 필요는 없다. 주목할 점은 그러한 해석 자체가 아니라, 중국에서 그러한 해석으로 유도되는 이유가 무엇이냐이다.


다음 글은 위와는 다른 결론을 내지만, 특정 부분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역사는 노무현에게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가 (5월 25일)
출처/ 샤오샹 모닝뉴스(潇湘晨报)
글/ 저우동페이 논설위원(周东飞)
 



... 한국 역사에서 검찰 조사를 받았으며 심지어 영어(囹圄)의 몸이 된 대통령이 노무현 하나만은 아니지만, 자살을 선택한 사람은 오직 그 하나 뿐이다. 지금에서도 모욕감이란 여전히 매우 희소하고도 개인적인 감정으로, 어떤 문화적 형태가 되기는 어렵다. 사람들이 노무현을 동정하는 것은 그가 부패를 멀리하려 했다는 것을 감안해서였지만, 그보단 공무원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도덕성을 인정하고 격려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최소한 이 점에서, 역사는 장차 노무현을 공정하게 기억할 것이다 – 부패의 추문 때문에 자살을 선택한 한국의 대통령으로 말이다. 노무현 개인으로 말하자면 자살이란 더할 나위 없는 비극이다. 하지만 이 노무현 개인의 불행이 역설적으로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증명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번에 노무현 가족이 부패 혐의를 받은 금액은 불과 600만 달러로, 이전의 대통령 부패 사건 액수와 비교하면 아주 작은 숫자이다. 또한 엄격한 제도 균형과 감독 기구가 존재한다면, 전 대통령과 그 가족이라는 신분이라 해도, 일단 부패 행위가 있으면 조사 대상을 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노무현의 죽음은 입증해주었다...


앞의 기사와 달리 여기서는 노무현의 도덕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 엄격한 제도 균형과 감독 기구의 존재, 즉 사법부 독립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앞글에서 검찰의 권력 문제를 짚으면서 딱히 부정적인 시각이 느껴지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처음에 밝힌 필자의 경험을 다시 돌이켜보시라. 엄연히 외국인인 중국 사람들이 한국 정치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특정 사안에 대한 잘잘못의 판단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중국 정치에 빠져있는 어떤 요소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섣부르게 요약하자면, 그것은 중국의 현실을 감안했을 때 불가능하다 여겨지는 민주주의의 원칙적 요소다.


위의 글들을 보았을 때, 우리는 중국 사법당국이 공정한지 정치적인지 알지 못하지만, 최소한 중국인들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그 행간에는 물론 현재 중국의 사법적 처리에 정치적 간섭이 많다는 견해가 담겨 있다. 그러므로 우리 딴에는 검찰의 행보를 애써 변호해주는 듯 보여 어색한 느낌을 가졌던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어색했던 점은, 노무현 정국을 불러온 최대 요인으로 많이들 지적하는 이명박 정권의 압박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중국 언론은 현 정부가 검찰에 압력을 가해 법률적 조사를 가장한 정치보복을 했다는 식으론 해석하지 않았다. 국민들이 이런 혐의에서 검찰과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는 내용도 찾기 힘들다. 최대의 초점은 어디까지나 한국의 부패 문제와 노무현의 도덕성이다.


지금 말하는 내용은 외부에 보여지는 중국 언론 기사를 근거한다기보다, 거기에 없는 것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의견 차이가 있을 줄로 안다. 필자의 견해로는, 중국 언론이 노무현 정국을 현 정부 비판과 국민적 항의에 연계시키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중국의 어떤 사건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4 탱크에 맞선 SCV 하나?
그러나 저 시점에선, 그건 우스개가 아니라 죽음을 감내한 용기였다
.


덩샤오핑 집권 이래 경제 개방을 지속하면서 중국 지식인들은 정치적 개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1989년 4월 15일 후야오방(胡耀邦)이 사망하자, 이를 계기로 중국에선 그의 명예를 기리고 민주화를 실현하자는 열망이 한층 거세졌다. 급기야 광장에 운집한 대학생들은 단식 시위를 시작했다. 타협점을 찾지 못하던 중국 정부는 6월 3일, 군대를 수도에 진입시켜 이들에게 발포를 시작했다.


바로 유명한 천안문 사태다. 2009년 6월 3일은 그 20주년이었다.


중국 언론의 절대적 금기가 있다고 하면, 그 첫머리에 천안문 사태가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정부 옹호의 시각만 보도 가능하다는 게 아니다. 아예 입에 올리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시청 광장에서 열린 노제도 세세하게 보도했고, 이명박 정부에 대한 규탄의 의견이 있다는 것도 알렸지만, 이 상황을 중국의 실정과 연계시키기엔 지나치게 위험했다. 자칫 일종의 비유로 들릴 수 있고 게다가 날짜도 딱 그 무렵이니, 노무현 정국에 대해 이명박 정권의 처사가 지나쳤다거나 또는 문제 없었다고 평가하기조차 어려웠던 것이다. 따라서 논평의 초점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아니라 자살의 의미가 무엇이냐에 집중된다.


글을 하나 보충해보자. 그리고 위 글들을 다시 찬찬이 살펴보시라.







시사방담 : 노무현의 자살, 한국 민주화의 경고등 역할을 할 것 (5월 23일)
주펑(朱锋, 베이징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제 생각에 노무현의 죽음은, 개인적으로는 비극이지만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 있어선 일종의 이정표적 사건이라고 봅니다. 검찰 수사를 받은 대통령이 셋 있었죠. 전두환은 재판을 받곤 산사로 들어가버렸죠. 노태우 역시 여러 차례 검찰 수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노무현은 자살로 끝을 맺었죠. 그가 이 나라의 민주적 변환기에 생명을 내놓음으로써, 그는 굉장히 강렬한 경종을 울린 셈입니다. 이후의 대통령이나 고위 정치인들은 영원히 노무현의 경종 소리를 무시할 수 없겠죠. 여기에 비극이 있는 겁니다. 민주화 과정 속에서의 지도자로서 이 (부패)문제에 관해 숨길 수가 없었고, 폭로될 수밖에 없었으며, 압력을 이기지 못해 죽었으니까요. 경고의 역할을 두루 갖춤으로 해서 이번 사건은 한국 정치의 진보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겠지요.”


중국 언론은 스스로 선택한 자살이란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일단 그의 개인적 성향(도덕성)에서 분석하며, 다시 거기서부터 한국 정치에 끼치는 의미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정치적 피살 같은 분석은 사라지게 된다.


알다시피 자살이란 굳이 사무라이 정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동양 사회에서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부패 사실을 인정하든 안하든, 노무현을 도덕적 인물로 인정하는 한 동양 사회에선 자살을 부정적으로만 평가하지는 않는다. 그에 따라 한국 정치에 끼치는 영향도 긍정적인 전망을 낳는 것이다.


여기에 비교되는 대상이 있다면 긍정적 전망의 견해는 더욱 힘을 얻게 된다. 일차적으로 중국 현실을 비교해야겠지만 천안문이 연상돼 그럴 수 없으니, 그 흐름은 다른 목표를 향하게 된다. 중국 언론으로선 오히려 강추될만한 목표가 마침 있었다.







노무현과 비교하면 첸수이벤은 수치를 모른다 (5월 24일)
출처/ 봉황망(鳳凰網)


...한국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5월 23일 자살한 소식은 아시아 전역을 놀라게 했다. 그와 첸수이벤(陳水扁)은 모두 검찰 수사로 욕을 보았기 때문에 대만과 한국 언론은 두 사람을 비교하곤 했다. (중략) 두 사람은 모두 농촌 출신이고, 인권 변호사로 일했으며,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해 청렴과 친근함을 무기로 삼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지도자가 된 후엔 모두 뇌물 수수의 추문에 시달렸다. 하지만 첸수이벤과 그 가족은 해외로 돈세탁을 한 것과 파푸아뉴기니와의 외교비용을 빼돌린 혐의를 받았으며, 더구나 대만 사상 처음으로 구속 수감된 총통이면서, 첸수이벤은 여전히 혐의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사건 후 노무현이 사과했던 것과는 다르다.


민진당은 23일 노무현 사건과 첸수이벤을 지나치게 연관시켜 비교하지 말라고 주장했고, 대변인 역시 이러한 정치조작을 그만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린줘쉐이(林濁水, 전 민진당 입법위원)는 첸수이벤이 근본적으로 뻔뻔스럽고 부끄러운 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는 "한쪽은 수치심이 있고, 또 한쪽은 수치심이 없다. 수치심이 없는 쪽은 제 친구들의 잘못을 털어줄 생각도 없고 그럴 필요도 못 느끼는 것 같다. 가서 죽으라는 게다. 첸수이벤 이 자는 남한테 신세지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린줘쉐이는 첸수이벤 얘기가 나오자 성이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하지만 린줘쉐이는 또 이렇게 말했다. "뭐 저쪽처럼 꼭 그렇게 하라고야 못하겠지만, 빨리 죄를 인정하고 주위 사람들 살 길을 열어줘야 할 것 아닌가! 그게 당신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거란 말이다."


중국 입장에서 대만 정치인을 비난하는 건 자유롭고, 또 현재 대만 총통 마잉지우(馬英九)는 국민당 출신이니 대만독립을 외치던 민진당의 첸수이벤을 옹호할 리 만무하다. 사실상 나가 죽어라는 표현이 언론에서 가능한 것은 그런 배경을 깔고 있기 때문이다. 이 원색적인 비난 기사들이 재미있기는 하지만, 첸수이벤을 욕보이는 게 목적일 뿐 노무현을 이해하려는 시각과는 아무 관련이 없으니 여기서 끝맺는 게 낫겠다.


마지막으로, 언론이 아닌 개인 블로그의 시각은 어떨까. 외적 규제인지 아니면 자아검열 때문인지 모르지만, 천안문 사태를 연관시키는 언급은 개인 블로그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의 대중들이 볼 수 있는 노무현 정국에 대한 보도는 앞서 소개했듯 중국 상황이 반영된 이야기들이다. 자살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필자의 견해가 맞지 않더라도, 우리가 알고 있는 노무현 이야기와는 서로 같을 수가 없다. 근본적으로 블로그의 견해는 총정리가 가능하지도 않다.


굳이 거칠게라도 얘기한다면, 그 돈 받았다고 자살한다면 중국 관리들은 수십 번도 더 죽여야 마땅하다는 식의 공무원 비판이랄까. 들리는 말로는 노무현 대통령의 수뢰 액수는 중국의 일개 시장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필자 역시 이런 얘기를 많이 들어봤지만, 무슨 통계 자료에 근거한 것도 아니니 뒷담화 수준에서 만족해야겠다.


해서 이어질 이야기도 중국 블로거들의 보편적 의견이라고 볼 근거는 없다. 다만 블로그는 어쨌든 언론보다는 좀더 자유로운 비판이나 감성적 표현이 가능한 매체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더라도, 마치 우리가 그날 뜻 모를 눈물을 많이들 흘렸듯이, 말로 표현되지 않는 마음을 그들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다.


원래는 어느 게시판에 올려졌던 듯한데, 너무 많이 펌질이 되어 출처가 불분명해진 글 하나를 소개한다.







노무현의 이른 죽음으로 본 국내 탐관오리의 후안무치
출처/ 소후닷컴(sohu) 게시판 등등


부패를 근절시키겠다는 공약으로 대통령까지 오른 노무현이, 그 부인이 몇백만 달러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었고, 이로 인한 압력은 노무현의 정치 생명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도 앗아가고 말았다.


들리는 말로는, 전임 대통령과 비교하면 노무현은 가장 청렴한 인물이었다고 하지만, 그러나 가장 동떨어진 결말을 맞았다. 정치상의 시시비비에 있어, 대중들이 알 수 있는 것들은 그저 가공을 거친 몇 조각의 비늘에 불과하며, 그 모든 진상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노무현이 억울함을 품고 죽었는지 죄를 두려워해 죽었는지 판단할 길이 없다. 하지만 정치의 거센 파도 속에서 성장한 엘리트이자 오랜 경력을 거쳐 풍부한 재능을 지닌 관리가, 결국 이런 식으로 여생을 끝냈다니 실로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그의 유서를 보며 나는 그저 이렇게 말하고 싶다. 노무현은 추문이나 암투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 농가 출신의 피 속에 흘렀던 선량한 인자들 때문이었다고. 그런 감성적인 글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은 결코 비정한 인물일 수가 없다.


노무현은 생전에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부인이 사업가로부터 돈을 받았단 사실을 인정했지만, 그건 수뢰가 아니라 부인이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고 해명했다. 중국 내의 많은 관리들도 출처가 불분명한 거액의 재산이 발견되고 나면, 사업하는 친척이 잠시 맡겨둔 돈일 뿐이라거나, 부인이 사업으로 사둔 땅이라고 둘러대곤 했다. 말하는 투야 노무현과 비슷하다. 하지만 행동에 있어선 천 리는 떨어져 있다. 그들은 곧 삶겨 죽을 돼지가 끓는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댜오위타이(釣魚臺, 중국 고위직 회의가 자주 열림) 석상에 꿋꿋이 앉아서는 비난의 파도를 견뎌낸다.


사업가가 노무현의 부인에게 준 돈이 계산적인 것이었는지, "돈 문제에서 나는 결백하다. 나에 대한 평가는 먼 훗날 역사가 밝혀줄 것이다"고 말한 게 정말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정치 내막의 진상이 밝혀지는 그날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노무현이 "퇴임 후 시골에서 여생을 보내려 했는데, 잘 되지 않아 참으로 유감이다"고 말한 건 분명 진실이었고, 아쉬움으로 남았다. 국내의 그 탐관오리들이 잡혀간 후 농사나 지으려 했다는 변명과 이것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인간의 본성은 모두 같다. 여유가 있으면 욕심을 거둘 줄 모르고, 길이 끊겨서야 뒤를 돌아보는 법이다. 막다른 곳에 이르러 풍진 세상을 헤쳐나가려니, 돌아가 농부가 되느니만 못했다. 아쉽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쳐도 늦은 거다. 이런 식의 결말을 전제하고, 갖가지로 발뺌하면서 쳐죽인대도 몇천만의 자금 내역을 불지 않는 탐관오리들을 다시금 보노라면, 그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은 선량했다고 말이다. 선한 자만이 비로소 약해질 수가 있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모든 걸 매듭짓고자 한다.


노무현의 짧은 생애를 마주하여, 그 탐관오리들의 두꺼운 낯짝과 완강한 저항을 생각해보면, 노무현을 절벽에서 민 것은 정치적 맞수가 아니라, 마음 속에 다하지 않은 선량함이었던 것이다. 이에 비추어 우리에겐 한 마디 말이 허락되리라. 노무현이여, 편히 쉬십시오.



뜬금없지만, 노무현은 참으로 ‘행복할 수도 있었던’ 사람이라고 문득 생각이 든다.


아홉친구(ninthpa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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