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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오전 11시, 맨하튼 42가 8ave의 <뉴욕 타임즈> 본사 앞에서, 평생 시위라고는 구경도 못해보았을 한국인(대부분 50대 이상의 여성) 500명이 모여 <뉴욕 타임즈>를 규탄하고 주지사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를 했다. 시위 내용이 무엇이든 미국에서, 그것도 맨하튼에서 한국인이 500명이 모여서 시위를 한 건 단군 할아버지 아침에 일어나신 이래 처음 있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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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한국일보>


시드니에 사는 내가 웬 뉴욕이야기냐고? 그게 다 사정이 있다. 뉴욕에서 네일업을 하는 70대 여성의 전기를 쓰다가 그 쪽 동네의 급한 사정을 알게 되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뉴욕엔 한인이 운영하는 네일샵이 4,000개 정도 있다. 뉴욕 한인교민들 가운데 단일 업종으로 가장 많은 숫자의 인구가 종사하는 주종 사업이다. 이런 네일업계에 쓰나미가 닥쳐와 몰살당할 위기에 처해있다.


우선 길지 않은 역사지만 역사는 역사이니만큼 쪼게 거슬러 가보자.


1980년대 뉴욕에서 한인 여성들이 할 수 있었던 직업이라곤 봉제공장에 취직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 한인 여성들에게 네일 산업은 단기간의 훈련으로 직업을 얻을 수 있게 하고, 홀로 사는 여자의 수입으로도 아이 둘쯤은 무난하게 공부시킬 수 있는 우리 교민들의 젖줄이었다.


네일업계는 세계 패션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네일 트렌드 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다. 세탁이나 청과, 마켓 등 타 이민 비즈니스 업종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세련된 감각과 고급화 전략으로 맨해튼을 포함한 뉴욕시 일대의 주요 상권을 선점해 뉴욕 네일 업계를 주도하고 있다. 네일살롱 수가 늘면서 서비스도 업그레이드되었고 단순히 손톱, 발톱을 다듬어주는 서비스에서 페이셜·마사지·왁싱 등 스파의 개념을 더해 고급 살롱으로 진화했다.


1970년대까지 세탁소나 채소 장사 등을 제외하고는 주로 한인들끼리 비즈니스를 하던 한인사회에서 네일업은 완전히 주류 백인 사회를 대상으로 한다는 데에서 차이가 있었다. 물론 한류 열풍으로 한국 연예인들이 타민족들에게 인기를 끌고, 한인 미용실의 파마 기술이 입소문을 탄 영향도 적지 않다.


네일업은 여자가 소자본으로도 손쉽게 열 수 있었던 사업이었기 때문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하여 가격 경쟁도 심해지고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서 성수기에는 직원을 보충하기 위해서 쩔쩔매야 했다.


2015년 5월, <뉴욕 타임즈>에서 르포 기사를 낸다. 이 기사로 네일산업엔 뿌리까지 흔들리는 날벼락이 떨어졌다. ‘악마의 편집’에 의해 네일업계에 헬게이트가 열린 것이다.


다음은 친절하게도 한글로 번역까지 해주신 기사(링크)다.


반짝이는 매니큐어에 숨겨진 네일 미용사들의 어두운 삶


"뉴욕타임스는 취재 중 많은 네일숍 직원들이

부당한 대우와 인종차별 및 학대에 흔하게 시달리며

정부 노동자법률기구의 보호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김없이 매일 아침 시계바늘이 오전 8시를 가리키기 직전이면 뉴욕 퀸즈 플러싱의 주요 도로변의 거의 모든 길모퉁이는 젊은 아시아 및 히스패닉 계 여성들로 꽉 들어찬다.


마치 신호라도 받고 출동하는 것처럼, 낡은 포드 이코노라인 밴들이 굉음을 내며 골목으로 들어선 후 여성들을 태운다. 또 다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이들 여성은 뉴욕시 네일 미용사들로서, 뉴욕시 주변의 3개 주에 퍼져 있는 네일숍으로 빠르게 배정된다. 이 여성들은 10~12시간 동안 손님들의 손가락과 발가락 다듬는 일을 하다 밤이 깊은 후에야 돌아온다.


(하략)



귀차니즘에 입각하여 원문까지 접근하기 어려운 딴지스들을 배려하는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한 줄 요약하면,


“네일 가게의 현실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현실인데 ‘코리안 아메리칸 네일 살롱 협회’에 따르면 뉴욕시 네일샵의 70~80퍼센트가 한국인 소유이다.”


라는 글로 끝을 내고 있다.


처음에 뉴욕 타임즈 기사를 접한 대부분의 한인 업주들은 30여 년 전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다고 한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스를 얻은 것인지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뜩이나 인력난에 허덕이는 때에 일당 10, 20, 30불에 일을 하는 스페니쉬나 중국인이 어디에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오히려 요즘은 가격경쟁이 심해서 세금과 높은 임금을 제하고 나면 업주들 대부분이 종업원 수입보다 못한 것이 네일 업계의 현주소다.

이민자들이 운영하는 가게 치고 한인업소만큼 시설에 투자하고 고급재료를 쓰고 임금을 많이 주는 곳이 없는 것이 현실인데 한인 업주들이 폭언과 폭행까지 하는 일들이 있고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교육의 대가로 주인이 돈을 받는다는 기사가 마치 한인업소에서 행해지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악마의 편집이 된 것이다.

경악스러운 것은 기사가 나오고 바로 그 다음 날, 뉴욕시가 특별법 시행 명령을 비롯해,
융단폭격 같은 규제를 가하기 시작한다.


주정부는 영세규모의 네일업계에게 규모를 갖춘 정상적인 기업들처럼 제반 법규를 지키도록 압박한다. 지금까지 구멍가게 식으로 운영하던 업주들이 정부 지침에 맞추려니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이 됐다.


주정부는 이제까지 누이 좋고 매부 좋게 두루뭉술 주급으로 주던 임금을 세밀하게 시급으로 계산해서 주라고 요구했다. 임금을 시급으로 준다고 해서 직원들에게 유리한 것도 아니다.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세금을 더 내야 하고 경영자 입장에서는 회계 관리 비용이 크게 늘어난다.


생존의 기로에서 위기를 느낀 이들은 2016년 2월 29일, 올바니 뉴욕주청사 의원 회관 건물 월홀에 집결해 대규모 항의 피켓 시위를 가졌다. 뉴욕의 3,000여 한인 네일 업계는 7개의 대형 버스를, 중국 네일협회는 8개의 대형버스를 동원해, 대략 1천여 명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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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Radio AM 1660>


이날 항의 시위 참가자들은 피켓을 통해


△ 네일살롱 임금보증보험인 웨이지 본드(Wage Bonds)의 철회
△ 더 이상 네일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지 말 것
△ 인종차별을 하지 말 것
△ 이중잣대를 들이대지 말 것
△ 우리를 범죄자 취급하지 말 것
△ 지금껏 말한 것들을 관철 시키기 위해 도움이 필요하다


등의 메시지를 전하며, 참고 참았던 울분을 토해냈다.


브루클린에서 네일살롱을 경영하는 한 업주는


“주정부에서 나온 인스펙터(inspector. 조사관, 감독관)가 느닷없이 조사를 나와 문을 잠그고 한 사람씩 다른 방에 불러다가 일대일로 면접을 하고 8000달러의 벌금을 내라고 했다.”


“마치 중범죄자 취급을 당한 것 같았다. 열심히 일하고 세금 잘 내고 법을 잘 지키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규정대로 다 지키니까 환경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


라고 울먹였다. 이 밖에도 1천여 명의 시위자들은 청사 밖으로 나와서 준비해 둔 매니큐어와 네일살롱에서 쓰는 연장, 집기들을 무덤처럼 쌓아놓고, 이대로 두면 네일업은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퍼포먼스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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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중앙일보>


네일 업계에 대한 주정부의 마지막 한 방은 강제 환기 설치 규제였다. 간단히 말해서 업소 안의 공기가 나쁠 수 있으니, 기존 가게는 5년 뒤, 신규가게는 10월부터 환기 시설을 갖추라는 것이다. 벽에 구멍 하나 뚫어서 환풍기 하나를 달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좌석마다 고기 집에 연기 빨아들이는 것처럼 닥트를 설치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자기 건물에서 가게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다들 세를 들어 하기 때문이다. 어떤 건물주가 자기 건물에 수없이 벽을 뚫어야 하는 대공사를 허락해 주겠는가. 기존에 가게를 하는 사람들도 장사하다가 5년 후에 손 털고 나와야 한다는 결론이다. 한 푼도 못 받고 ‘킥아웃’ 당하는 거다. 그러니까 5년 뒤에 형이 집행되는 비즈니스에 대한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다.


이 규제는 앞뒤도 안 맞는다. 모든 제품은 제조물 책임 규정(product liability regulation)에 따라 생산자나 판매자 책임 원칙이다. 지금 주정부에서 시행하고자 하는 강제 환기 장치 설치 규제는 유해하다고 판단되는 화학제품에 대해 사용자 또는 소비자에게 책임을 묻는 조처다.


주정부는 이런 화학제품에 대해서 생산자에게 먼저 책임을 묻고 건강에 해가 되지 않는 제품을 생산할 것을 명령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정부는 단지 영세한 네일업 종사자를 근거 없이 규제함으로써 주정부가 노동자를 위해서 일한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한다.


환기규제 시행령도 현상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공청회 등을 통해서 업주들의 의견을 들어봐야 함에도 불구하고, 절차를 무시하고 ‘화학물질이 건강에 유해하다’는 이유 하나로 강제 규제를 한다. 차별적인 행정 집행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네일업종 뿐 아니라 화학물질을 사용 하는 업체엔 세탁소, 미용실, 간판업, 프린팅업 등이 있다. 유독 네일 업종에만 적용하는 것도 차별적이지만, 적용하려면 의학적인 기준치를 제시하고 이에 따라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과정은 생략되었고, 네일협회는 주정부 네일업 표적단속과 환기시설 의무화 철폐를 위해 대규모 시위를 하기에 이르렀다.


한일 업주들은 여기에 음모설이 아닌 진짜 음모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언론이 이민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네일 업계의 약점을 최대한 부각시켜, 네일 업계의 생태계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네일 산업이 돈이 되는 것을 알고 제약을 둬서 아시안 소상인들을 어렵게 만들어 쫓아낸 뒤 이 시장을 차지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현재 군소 네일숍을 운영하는 이들은 대부분 아시안 이민자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자본이 들어오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일이지만, 약자를 보호해야 할 뉴욕 주정부 행정당국은 보호가 아니라 오히려 주리를 틀고 있다.


네일산업계가 대자본 위주로 변한다면 당연히 서비스 가격이 상승되어 손님들에게 부담을 줄 것이다. 직업을 잃은 기술자들이 저소득층으로 떨어지면 어쩔 수 없이 정부의 도움을 신청할 테고, 결과적으로 세금이 지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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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한 네일살롱


지금 뉴욕 한인 네일 업주들은 거대하게 밀려오는 파도 앞에 서 있다. 사람은 배고픔, 추위나 더위, 아픔은 참을 수 있어도 억울한 것은 참을 수 없다. 네일 업주들은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을 쌓아오던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듯한 심정을 느끼고 있다. 참새도 죽을 때 짹 소리는 하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이역만리에서 땀과 눈물을 흘려 일군 삶의 터전을 잃을 위험 앞에 가만히 있다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네일업계는 단합해서 주정부 명령에 대항하려고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려면 힘이 든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뉴욕 한인 네일협회 단체 카톡방을 들여다보면서 몇 번이나 눈물이 날 뻔했다. 가장 마음이 뭉클 했던 것은 ‘성조기여 영원하라’의 영어 가사를 한글 발음으로 옮겨 적은 것이었다. 대부분의 교민들이 그 노래를 듣기는 많이 들었지만 입으로 부를 기회를 별로 없었을 것이다. 나도 호주에 20년을 살면서 호주국가를 듣기는 해도 부를 일이 없어 아직 가사를 외우지 못하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부를 때가 왔다.


미국 국가를 부른 다음 그들은 어설픈 발음으로 목이 쉬도록 구호를 외쳤다. 데모에는 항상 구호가 있게 마련이지만 ,강자의 구호는 강요일지 몰라도 약자의 구호는 호소다.





[편집자의 뱀발]


 


딴지일보 필진 'syndey'가

<시드니 택시 기사의 문화 관찰기 - 백인 사회의 뒷골목>

이라는 책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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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호주 시드니에서 택시 기사로 일하며 보고 듣고 느꼈던 점을 풀어낸 책으로,

백인 사회에 대한 촌철살인을 마구마구 보여준다고 헌다.


택시 기사로서 만난 수많은 군상들이 보고 싶으다면,
지금 당장 딴지마켓에 들러보자.
현재 딴지마켓(링크)에서 절찬 판매 중이다.


이상.





sydney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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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