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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 1. 도서정가제나 책값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전제 2. 1월 3일 송인서적 부도 소식을 확인하고, 직격탄을 맞은 몇몇 출판 관계자들과의 이야기를 엮은 스케치 정도로 바라봐 주길 바란다.  



십여 년 간 20권 이상 책을 쓰다 보니 한 다리 건너면 어지간한 출판사와 닿게 됐다. 그 사이 팔린 책도 있고, 팔리지 않은 책도 있다. 인연은 계속 이어져 난 어느새 ‘편집자’를 따라 책을 내는 ‘평범한’ 작가가 됐다.


2년 전 일이다. 이제는 나이 마흔에 가까운 배불뚝이 아저씨가 된 편집자. 그는 불콰하게 된 얼굴로 자신의 미래를 비관하기 시작했다.



“이 작가님 제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그의 사수이자, 내 전임 편집자였던 N팀장은 나이가 차서, 회사 사정으로 회사를 나갔다. 그는 1인 출판사를 차렸다.



“배운 도둑질이 책 찍어내는 거라...”



수줍게 웃으며 출판사를 연 N팀장. 그러나 그 웃음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불안함으로 덧칠된 쓴웃음이었다. 다행히 N은 회사 때 거부당한 기획을 성공시키며 나름 기반을 잡게 됐다. 그러나 1인 출판은 1인 출판이었다. 



“저도 마흔 넘어가면 회사 나와야겠죠? 지금은 팀장이라지만, 나가면 제 연차로 어디 들어가기도 그렇고...”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그의 사수의 사수. N팀장의 사수였던 U주간도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1인 출판사를 차렸다. U는 선비였다. 역사학도이자, 시인의 감수성을 가진 산문가였던 그는 몇 권의 책이 성공해 임프린트의 팀장에서 일약 본사의 주간이 됐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출판사는 구조조정을 하게 됐고, 그는 그의 손으로 20여 명 가까운 직원들을 해고해야 했다. 그는 그의 손으로 직원들을 해고한 다음 마지막 1명의 이름에 자기를 넣었다. 그는 선비였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난 그에게 달려가 술을 같이 했고, 어디를 가든 같이 책을 내자고 했다(아는 출판사에 소개도 해줬다). 결국 그가 옮긴 출판사와 새로 새운 출판사에서 각각 책을 냈다.


그 사수에 그 부사수라고 할까? N팀장도 마찬가지였다. 평생 책 만드는 일만 했던 이들이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불콰해진 얼굴로 자신도 살아남기 위해 1인 출판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편집자. 한 출판사에서 서로 이어서 3대 편집자를 다 겪은 나로서는 달리해 줄 말이 없었다.



살아남은 자


외부 원고를 보내기 위해 포털을 열었을 때 눈에 들어온 실검.



“송인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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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동아일보>



송인이 부도가 났다. 순간 수많은 생각이 실타래처럼 풀어헤쳐 졌다. 몇 개의 출판사 이름이 떠올랐고, 그 몇 배의 이름과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마감 생각이 확 사라졌다. 바로 몇 군데 출판사로 연락을 돌렸다. 아무도 연락을 받지 않았다. ‘괜찮겠지?’ 주관적인 희망을 품어봤지만, 말 그대로 ‘주관적’이다. 객관적인 전망을 생각한다면, 한없이 검은색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부지런히 손가락을 놀렸고, 간신히 한 군데와 연락이 닿았다.



“Y사장님 괜찮으세요? 페북 보니까 아무 글도 안 올라와서...혹시...”


“송인? 아, 난 지금 몸 사리는 중이야.”


“에?”


“난 원래 북센하고만 거래하잖아.”


“아, 다행이네요!”


“다행일 거까진 없고, 다들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이럴 땐 ‘다행’이란 말 들어도 되는지...”


“그러게요. 불행 중 다행이라고 말해야 할지.”


“(한숨) 송인이 좀 그랬어. 대금 결제도 자주 빵꾸나고. 한 번 망했던 적도 있었고, 그래 IMF 때 그때도 피 본 출판사 많았거든. 나쁘게 생각하면, 상습적으로 부도내는 회사라 볼 수도 있는데, 그렇게까지는 생각 안 하려고... 다 무슨 사정이 있겠지.”


“그래도 별 피해 없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아, 거 참 다행이란 말 좀 쓰지 말라니까 그러네. 여기 사람들 보면 내가 다 미안해(Y사장님 출판사는 파주 출판단지 안에 있다). 휴, 출판계 쪽에서 망한다, 위험하다 말은 많이 들려왔는데... 폭탄 돌리기 한 거지. 요즘 같은 시절에 책도 안 팔리고, 힘드네. 만약에 나도 송인한테 걸렸으면, 출판사 닫아야지. 지금도 빚내서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데...”


“힘내세요. 그래도 사장님 책은 초판은 얼추 다 빠지잖아요.”


“(한숨) 초판만 빠지면 뭐하나? 디자인, 저자 인세, 필름비 다 털어내면, 난 뭘로 먹고 사는데. 2천부 찍어내면 답 없어.”



내가 처음 책을 쓸 때 출판계는 초판 1만부 시대에서 초판 5천부 시대로, 다시 5천부가 3천부, 2천부, 요즘은 1천5백부나 마의 1천부 선도 깨졌다고 한다.


처음 책을 냈을 때는 초판 개념 자체가 없었다. 그냥 찍어내면 1만부, 2만부 막 찍어내고 저자는 돈방석에 앉고, 출판사는 떼돈 벌고 그러는 줄 알았다. 어린 시절 소 뒷발에 쥐 잡는 격으로 책 몇 권이 터지면서 다들 이렇게 글 쓰며 사는 줄 알았다. 나중에 내 운이 다하고 난 뒤의 상황을 보니 내 경우가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출판계에 오래 있었던 편집자들 말을 듣다 보면, 2000년대 초반이 마지막 불꽃이었다고 한다.



“인터넷 없던 시절에는 우리 선배들도 책 아무렇게나 찍어냈지. 그래도 팔렸으니까. 초판은 기본적으로 다 소화됐으니까. 그런데 인터넷 나오고, 게임 나오고, 스마트 폰 나오고, 요즘 누가 책을 읽어? 좋은 시절 다 지났지.”



그럼에도 그 편집자는 끝까지 좋은 책을 만들겠다며 버티고 있다. 책의 형태가 달라지더라도 그 내용만은 변하지 않는다고 버티는 사람들. 


문득 생각이 나 내 계약서 철을 들춰봤다. 초판 5천부로 시작된 계약서는 2014년 이후 초판 2천부 혹은 그 이하로 고정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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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맞은 자


오후 5시가 다 돼서야 다른 출판사와 연락이 닿았다. 3명이서 운영하는 소규모 출판사다.



“새해에 덕담도 못 드리고, 정신이 없네요.”



애써 밝은 목소릴 내려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목소리에서 묻어나오는 씁쓸함은 감출 수가 없었다.



“피해 많이 보셨어요?”


“한 1천8백 정도요?”


“...어쩝니까?”



회사 사정을 알기에 섣불리 말을 꺼내기가 힘들다. 



“그래도 다행인 게, 우리 쪽은 북센 쪽이랑 반반 나눠서 크게 당하진 않았습니다.”


“진짜 불행 중 다행이네요.”


“불행 중 다행이긴 한데, 속이 쓰리긴 매한가지죠.”


“할 말이 없네요.”


“그래도 뭐 버텨 봐야죠. 우리 쪽은 원래 작으니까. 또 어찌어찌 꾸려나가 봐야죠.”


“잘하실 겁니다.”



최근에 내는 책들 중 6할 정도는 이쪽과 내고 있다. 라이프 워크라 할 수 있는 일도 이쪽과 함께하는데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했다. 



“어음거래가 직격탄이네요.”


“그러게요 8월부터니까, 앞으로 좀 막막하죠. 그냥 떼였다고 봐야죠. 좀 큰 출판사들은 모여서 대책회의 만든다 하는데, 저희 같은 작은 출판사는 그냥 떼인 거죠.”



어떻게 위로해 줄 말이 없었다. 그저 서울 올라가면 소주나 한잔 사겠다는 게 고작이었다. 



수습하려는 자


중견 출판사 한 곳과는 끝까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다들 심란한 때이니 그만 연락해야겠다라고 생각하던 찰나 제법 규모가 있는 출판사 담당 팀장이 연락이 왔다.



“어유, 선생님 신년에 제가 먼저 연락 드렸어야 하는데...”


“아닙니다. 그쪽은 별 피해 없으세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오늘 정신이 없었어요. 하루 종일 이 건으로 미팅만 3번 했고, 이제야 겨우 빠져나와 퇴근했어요.”



나름 큰 출판사인데(사장이 출판인 협회 회장을 역임했던) 이곳도 피해가진 못한 듯했다.



“(한숨) 불행 중 다행이라면, 저희 쪽은 그래도 출판사 연혁이 좀 되는 곳이라 인터넷이나 큰 곳과는 직접 거래하는 쪽이라...”


“정말 불행 중 다행이네요.”


“그러게요. 뭐 예견된 일이긴 했지만...”


“부도 이야기가 그 전에 있었나요?


“있었죠. 계속 망한다, 망한다 말은 있어왔는데... 폭탄 돌리기죠. 미심쩍어 하면서도 설마 망하겠냐 하는 생각도 하다가... 그래도 신년에 이렇게 갑자기 터질 줄은 몰랐죠. 근데, 좀 이상하긴 했어요.”


“예? 뭐가요?”


“이게, 지나고 나니 좀 그래서 재고 관리 쪽을 확인해 봤는데, 지난 연말에 갑자기 주문량이 늘었어요.”


“아...”


“나쁘게는 생각 안하려고 하는데, 고의로... 아니,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한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어요. 다른 출판사 쪽도 알아봐야 하지만 아마 비슷할 거 같아요.”


“그럼 먹튀 하겠다는...출판사가 송인 창고 가서 자기 책들 가져오면 안 되나요? 그럼 다만 얼마라도 건질텐데...”


“불가능하죠. 언론에 나온 걸로는 200억 좀 더 된다고 하는데, 오늘 회의해 보니까 400억이 될 수도 있어요.”


“아직 더 밝혀지지 않는 피해가 있나요?”


“그건 차차 밝혀지겠지만, 이게 만약 완전 부도처리 되면 채권단이 압류 들어갈 텐데, 그럼 그 책들을 어쩌겠어요? 벌써부터 채권단이 이 책들을 중고서점에 싸게 푼다는 말이 나오고 있어요. 애써 신간 찍어서 납품했는데...중고 서점에 신간이 쫙 풀리면 독자들이 신간을 안 사게 되죠.”


“아...”


“결국 출판사가 돈 떼먹힌 것도 모자라 자기 돈 내서 그 책을 다시 사들여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 아니, 정말 운이 좋아 책을 회수해도 문제예요. 송인 창고에 있는 책만 40만 권이 넘어가는데, 작은 출판사들은 그거 회수해도 제대로 쌓아놓을 데라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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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은 출판사 쪽에서 채권단을 꾸리면 자기들의 자산과 채권에 대한 권한을 양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그게 그리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피해는 어느 정도 되나요?”


“저희요? 저희도 제법 당했죠. 근데, 저희는 덩치가 있잖아요. 큰 곳은 액수가 크더라도 어찌 됐든 버틸만한 구력이 있는데, 작은 곳은 액수가 작아도 바로 숨넘어가죠. (한숨) 크게 당한 데는 10억을 당했다는데...아는 출판사 몇몇은 송인으로 찾아가 버티는데, 그런다고 방법이 나오겠어요.”


“이럴 땐 정부가 나서야 하는데...”


“그러게요 공공기관이 나서서 어떻게 해결을 봐야 하는데...이대로 가다간 작은 곳은 다 무너지거든요. 근데, 지금은 공공기관이 없죠. 공공기관 흉내 내는 곳이 있을 뿐이죠.”



각자도생(各自圖生)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이 말이 익숙해졌다. 이제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200억 부도? 요즘 뉴스를 보면 200억이 돈인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송인은 엄연히 개인 기업이고, 정부가 나서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말에도 나름 수긍이 가는 이유가 있다. 동의는 할 수 없으나 이해는 할 수 있는 상황. 어디서 해법을 찾아야 할지 난망한 상황 속에서 확실한 한 가지는 이대로 가다간 얼마가 될지 모르는(몇백 개가 될지 아니면 천 단위가 될지) 출판사들이 망하거나 ‘상당히’ 힘들어질 거란 사실이다.



“몇몇 출판사에서 대책회의 하고, 채권단을 꾸리려 하는데 그렇게 한다고 해결될 거 같지는 않아요. (한숨) 말이 좋아 정부지원에 희망을 건다 하지만, 송인이 깔아둔 게 200억뿐이겠어요? 그리고 서점들은요? 이게 악질적인 게, 저희같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는 똥 밟았네 하고 버틸 수 있는데, 당장 피해 보는 게 작은 서점들이랑 1인 출판 같은 곳이거든요. 당장 서점들도 죽어나죠. 좀 큰 서점이라면 도매상 몇 군데랑 연결해서 거래하지만 동네 서점 같은 곳은 한 곳이랑 거래하거든요. 송인 문 닫으면 반품이나 정산은 어떻게 되죠? 이게 무서운 게 책 읽는 독자들에게는 실질적인 타격은 없고, 출판계 내에서만 죽어나간다는 거예요.”


“아...이쪽만의 문제로?”


“그렇죠. 당장 AI 터지니까 달걀값 오르고 난리도 아니잖아요? 근데 송인 부도난다고 일반인들이나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어떤 피해나 영향이 갈까요? 없어요. 가뜩이나 책도 안 읽지만, 이미 쌓여있는 재고가 산이에요. 송인만 해도 재고가 40만 부 넘어가 있고, 이미 작은 서점들은 다른 도매상 찾겠죠. 근데 1인 출판 같은 곳은 생명줄이 달려 있거든요. 가혹하죠. 마지막 희망, 꿈, 뭐 그런 걸로 시작한 1인 출판이나 소규모 출판사들에게는 추운 겨울이 될 겁니다.”



말문이 막혔다. 팀장의 말이 절절히 와 닿는다.



“...휴, N팀장님 있죠.”


“아, 맞다. 계속 연락이 안 되던데...”


“N팀장님이 이번에 직격탄 맞으셨습니다.”


“예?”


“송인에 몰빵하셨더라구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대형 출판사를 나와(3/4쯤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1인 출판사를 열었는데, 그게 의외로 성공(소박한 성공이라 표현했지만)적이어서 직원도 뽑고, 나름 자리 잡아 가는 듯이 보였는데...



“피해 많이 보셨어요?”


“말은 안 하지만, 간당간당 한 거 같더라구요.”



그의 걱정과 분노의 근저에는 N팀장이 있었던 것이다. 이럴 땐 달리 꺼낼 말이 없다. 그저, 



“조만간 서울에 올라갈 거 같은데, 연락 드릴게요. 같이 소주나 한잔 해요.”


“예, 그러시죠. 저도 지금 경황이 없어서...오시기 전에 연락 주세요.”


“예”




추운 겨울이 되지 않기를


거창하게 도서정가제나 1인당 도서구입비를 더듬고 싶지는 않다. 출판 사업의 특수성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어찌 보면 나도 업계 종사자라 볼 수 있기에 괜한 변명을 늘어놓는 모양새는 피하고 싶다. 


그저 가뜩이나 없이 사는 우리 이웃들이 자신의 잘못도 아닌 일로 당장 생계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을 뿐이다. 


내 인생은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읽지 말아야 할 책을 읽으면서 꼬이기 시작했고, 그 결과 이제껏 글을 쓰고 책을 내며 사는 인생을 걸어오게 됐다. 그리고 그 시간의 흔적들은 고스란히 내 책장 속에 쌓여있다. 물론, 다른 길을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의 시간도 있었지만 적어도 그 순간순간만은 행복했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며칠 전 내 여동생이 행복에 대해 물어보기에, 



“내가 행복한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읽고 싶은 책이 아직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쓰고 싶은 글이 아직 잔뜩 밀려 있어서 적어도 심심하진 않아.”



라고 대답했다. 내게 있어 책이란 그런 존재인 것 같다. 이런 생각과 감정을 느껴본 이들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감정을 이해하는 이들이라면 이번 사태에 관심을 가져주고, 평소 눈여겨봤던 출판사가 있다면 짧은 안부라도 물어봐 주자.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책에서 보고 배웠던 게 바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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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 테이블 위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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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더


편집 :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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