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며칠 전 아내의 휴대폰을 들고 출근을 했다. 일하면서 사용할 일은 없지만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건 불시의 일을 걱정하는 습관이다. 공장에 도착한 후 일하기 위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놓으면서 바뀐 것을 알았다. 나야 휴대폰을 사용하는 일이 거의 없지만 아내는 조금 불편하겠다.
아내 휴대폰의 비밀번호는 현관문 비밀번호와 같다.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목록에 내편(집)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었다. 휴대폰이 바뀐 사실을 들은 아내는 웃었다. 너무 유쾌하게 웃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나를 자신의 편으로 이름 지어놓은 부분을 생각했다. 사람은 상호 간에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그녀의 믿음에 부합하기 위해 사는 면도 있겠다 싶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 기왕 상호 간에 영향을 주고받는다면 긍정적인 영향이 서로에게 좋다. 그녀의 편으로 조금 편협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2.
고성에 다녀왔다. 사내아이가 신청한 관사가 나왔다. 만든 지 수십 년이 지난 관사는 순차적으로 철거하고 새로 군인 아파트를 짓는 중이다. 아쉽게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를 배정받지는 못했다. 일 년 후에 철거할 건물이라고 했다. 신축 건물은 아이가 있는 가족에게 우선 배당되는 중이라고 했다. 새로 가족이 된 여자아이를 전날 집으로 불러 재우고 아내와 새벽에 출발했다.
배정받은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의 오층이었다. 철거를 일 년 앞두고 있다고 들어서 그런지 투박한 건물이 초라해 보였다. 오층까지 걸어서 올라가니 열기가 마지막 층 복도에 몰려있는 것이 느껴진다. 위로부터 달궈지는 복사열과 통로를 통해 올라오는 대류열이 합쳐지면 여름이 곤욕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은 15평에 방이 셋이다. 구형 건물이다 보니 싱크대가 있는 부엌의 공간도 좁다. 아무리 봐도 냉장고는 방에 들여야 할 것 같았다. 아기들을 키우던 집인지 싱크대 모서리에 스펀지가 붙어 있었다. 베란다에는 옥상에서 빗물을 빼내는 우수관이 지나고 있다. 햇빛에 달궈진 베란다에서 물비린내 같은 냄새가 난다.
신접살림을 시작하기에 그렇게 아름답지도 않고 매력적이지 않다. 아내는 여자아이에게 조심스레 미안함을 표현했다. 신부 아버님이 보면 썩 좋아 보이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계단 오르내리기가 좋은 운동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여자아이는 멋쩍은 얼굴로 서있는 사내아이에게 이 정도면 충분히 넓고 괜찮다는 말을 했다.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하기 조심스럽기만 하던 여자아이가 조금 마음에 들어왔다.
사내아이가 예약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바로 오기 서운해서 김일성 별장이라는 곳을 들렸다. 원산에서 밀려난 선교사가 세운 집이라는 표현보다 김일성 별장이라는 이름이 강렬하긴 하다. 오고 가는 내내 사내아이가 좋은 기분으로 약간 들떠 있는 게 느껴졌다. 아직은 철이 덜 든 소년 같은 느낌이다. 아내에게는 국민연금 추납하고 남은 돈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아내가 많지 않은 돈에도 기뻐한다. 그녀의 기쁨에 일조했다는 작은 뿌듯함이 되돌아온다.
애틋한 사랑이 어떤 건지 열렬한 사랑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아내에 대한 감정이 사랑이란 건지도 확신할 수는 없다. 사람은 결국 누구나 혼자 죽는다. 사는 동안 연이 닿아 가까이 있는 이가 되도록 행복하기를 바란다. 만약 행복하지 않다면 그 이유가 나로 기원하지 않기를 바란다.
3.
오랜만에 동해바다를 보고 돌아왔다. 아이들은 하루 뒤에 올라오기로 하고 아내와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쉬엄쉬엄 오다 보니 연료인 LPG가 떨어져 간다. 휴게소에 들려 충전소로 갔다. 차를 대고 연료 주입구를 열었다. 직원이 충전기를 연결하지 못했다. 내려서 확인하니 연료 주입구를 차체에 용접한 부분이 삭아서 떨어졌다. 받침이 고정되지 않아 누르는 힘을 버티지 못한다. 연륜이라는 것이 창틀의 먼지만큼은 쌓였는지 이런 일로는 당황하지 않는다. 뒷바퀴 위로 손을 넣어보니 틈이 있었다. 왼손을 넣어 용접이 떨어진 원판을 잡고 오른손으로 충전기를 밀어 결합시켰다. 녹과 그을림이 묻은 손을 닦고 남은 거리를 운전해서 돌아왔다.
가스 주입구가 고정되지 않는 건 불편을 떠나 안전과 관련된 문제다. 연료 주입구가 부식된 사진을 찍어 카센터를 하는 친구에게 보냈다. 해결할 방안이 있는지 물었다. 일단 한번 와 보라기에 갔다. 계획은 부속을 구입해서 리벳 작업을 할 예정이었는데 오래된 차라 업체에 재고가 없었다. 임시방편으로 철판용 피스를 원형으로 돌려 박았다. 차대가 일이 년 더 버텨 주었으면 좋겠는데 모를 일이다.
전화 요금 고지서가 나왔다. 삼 개월간 평균 통화 시간이 12분이다. 인간관계가 점점 빈약해진다.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보통 사람은 적절한 관계 속에서 행복을 느끼도록 되어있다. 결핍을 실감하거나 불편하지 않은 이유 중에는 책을 읽고, 잡문을 쓰는 습관도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 같다. 그것도 일종의 대화다.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군 입대 후 왕래가 없고 피가 연결되지 않은 조카의 결혼 소식에 가전이라도 하나 해 주고 싶단다. 동생이 삶과 마음의 여유가 조금이나마 있는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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