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파랑새는 있을까?

 

<파랑새는 있다>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제목만 그럴듯하게 지은 게 아니라 파랑새는 있다고 실제 절절하게 말하는 이야기였다. 재벌이 난무하거나 입체성 부족한 캐릭터들의 애정전선에만 집중하는 요즈음엔 볼 수 걸작이다.

 

주인공은 혜성처럼 등장해 반짝이다 이제는 태양계로부터 멀어져 드림팀에 등장하시는 이상인(김병달)이다. 그 이름처럼 병달스러운 이 드라마에서 그는 이름조차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 신비로운 '백 관장'으로부터 공중부양을 배우겠다고 상경한 무술인이다. 무술뿐 아니라 눈빛으로 촛불을 끄는 초능력의 소유자인 그는 백방으로 찾아낸 백 관장에게 큰절을 올리며 기술을 전수해 줄 것을 요청한다.

 

이런 전개는 늘 뻔하다. 초밥 고수에게 가면 설거지부터 하고 도자기 고수에게 가면 불타는 가마 청소부터 해가며 푸대접을 견뎌야 하는 법. 그는 백 관장의 제자가 되기 위해 가진 돈을 몽땅 빌려준 뒤 친구가 되는 달봉이와 차력사 집단에 들어가게 된다.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덜 배우고 덜 가졌지만 마음까지 비루하진 않다. 납치된 동료를 구하기 위해 조폭단 하나쯤은 우숩게 털어버릴 싸움 실력을 가졌지만 남의 것을 빼았지 않고 밤무대 차력사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간다.

 

hqdefault.jpg

 

주인공 병달 역시 매우 맑은 사람임에는 틀림없지만 공중부양을 배워서 라스베이거스에 진출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남들과 조금 다르다. 자살을 기도한 창녀 봉미를 살려주고 남들과 달리 봉미의 과거를 멸시하지도 않으며 물심양면 돕다, 마지막에 가서 사랑을 깨닫게 된다.

 

이 드라마에서 굳이 악역을 고르자면 병달을 등쳐먹는 백 관장이다. 공중부양 할 줄 알면 지가 라스베가스 가서 호의호식하면 될 텐데, 병달은 이조차 의심 않는 순진한 사람이다. 몸은 고생하고, 돈은 다 잃고, 생사를 넘나들며 기약 없는 하루하루가 이어질 때도 그는 백 관장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가 순진한 것도 있었겠지만, 찌라시 기레기와 짜고 친 조작된 잡지 사진 한 장과 피아노 줄에 매달린 백 관장을 보고 속아 넘어간 차력단장 이청풍의 말을 그대로 믿은 탓이다.

 

게다가 의심의 여지 없이 백 관장의 무술 실력은 진짜 중의 진짜. 최고의 고수다. 불구가 된 몸으로도 싸움 실력만은 드라마에서 발군이고 그것 때문이라도 등장인물들은 백 관장을 싫어하거나 의심할지언정 무시하지 못한다.

 

이런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사람들이 백 관장이 공중부양을 할 줄 안다고 믿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드라마의 마지막에서 그가 꿈꾸던 것들이 다 거짓이었고 결국 버스를 타고 떠나려는 봉미에 대한 사랑이 옆에서 지저귀던 파랑새였음을 깨닫는다. 우리가 꼭 그렇게 돌고 돌아서야 깨닫게 되는 것처럼. 병달이나 우리나 늘 그렇게 미련하고, 미련해서 인간처럼 산다.

 

 

막걸리 12종 블라인드 테스트?!

 

01.17903160.1.jpg

 

딴지일보 최고의 막걸리, 술 전문가라 자칭하는 무성한그곳은 사실 김치 전문가라고 커밍아웃 해 놓고, 김치 이야기는 한 일도 없지만 김치나 막걸리나 사실 알고 보면 비슷한 놈들이다. 최고의 무술 전문가 백 관장이 공중부양을 한다고 깝치면 당분을 유산균이 먹어서 김치나 요구르트가 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최고의 상업요리 전문가 백 종원 더본코리아 사장이 막걸리 12종을 블라인드 테스트해서 브랜드를 다 맞힐 수 있다고 언레기들이 설치면 황교익 씨가 분기탱천하는 게 효모가 당분을 먹어서 일어나는 일이라, 이 말이다.

 

술이란 에탄올을 함유한 음료의 통칭이다.

 

근대 이전까지 에탄올은 당분을 효모가 산소를 이용해서 분해할 때 생겨나는 부산물이었다. 발효와 부패는 그 결과물이 인간에게 유용한가 무용해지는가로 가르는 것일 뿐 본질은 같다. 나는 술을 안 마시니 당분의 알코올 분해는 부패였는데, 술장수가 되었더니 그게 또 돈이라 발효라고 해야 하는 자본주의적 삶을 살고 있다. 황교익 씨야 소위 '스피커'이고 총대 매는 걸 좋아하는 아재이니 이번 일로 또 뜨거운 구설판 위에서 튀어 오르는 천일염 신세가 되었는데,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백종원의 저 막걸리 12종 분별 소식을 듣고 콧방귀를 뀌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막걸리 12종을 시음으로 구별할 수 없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버락 오바마와 문재인을 광화문 광장에 세워놓고 도날드 트럼프를 불러보자. 도날드 트럼트에게 "누가 흑인이고 누가 아시아인이게?"라고 하면 정답을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다음 질문도 시켜보자. "둘 중 노란색 팬티 입고 온 사람은?" 앞선 질문이 맥주와 소주를 마셔서 구분하는 일이라면 막걸리 12종의 시련은 노란빤스와 같은 일이다. 심지어 한 사람은 레몬색, 한 명은 귤색 빤스를 입었다면 말이다.

 

카오스적 세계관으로 볼 때, 우리 사는 세상에선 변수가 늘어나면 결과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막걸리는 대표적인 곡물발효주이고 복발효주(술 제조용 원료가 포도당과 같이 단당류가 아닌 경우는 알코올발효를 위해 전분을 당화 하는 발효 공정을 거치고 나서 알코올발효공정으로 진행되는 양조방법)이다. 알코올은 자연에 저절로 존재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효모와 당분이 필요하다. 하지만 막걸리의 원료인 쌀(혹은 밀, 혹은 곡식 아무거나)은 그 자체로 당분이 아니라 고분자 물질. 효모균이 곧바로 섭취해서 분해할 수 없다. 그래서 곡식을 당으로 분해하는 균도 별도로 필요하다. 포도주는 포도의 포도당을 효모가 그냥 분해하면 되니까 단발효주고, 막걸리는 원칙적으로 '누룩'이라 불리는 잡균들이 2회 이상의 분해를 걸쳐 생성하므로 복발효주라고 한다.

 

 

막걸리를 막걸리로 만드는 녀석들

 

99F74C3359E4B39D1E.jpeg

 

한 브랜드의 막걸리가 항상 같은 맛을 유지하려 한다면, 최소한 다음 요인들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1. 원료

 

소믈리에가 와인을 완벽하게 감별할 수 있다는 건 오랜 미신이다. 블랜딩하지 않은 와인의 포도 품종 정도는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막걸리 맛이 일정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같은 쌀을 지속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부분의 막걸리는 아무 쌀이나 쓴다. 가장 대표적인 서울 장수막걸리는 수입된(자포니카 계열도 아닐) 쌀을 쓴 막걸리에 다른 색 병이나 뚜껑을 쓴다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수입쌀이 아닐 경우에도 대부분 정부미를 쓴다. 정부가 농협을 통해 비축해둔 쌀을 가공용 시장에 풀 때 사 오는 것이다(밥쌀로 팔면 쌀값이 요통 칠 테니까). 이 정부미 값은 대단히 정치적이고 들쑥날쑥하다. 게다가 품종 같은 것은 제대로 기록하지 않는다. 수급만 신경 쓰니 수확 후 2년이 지난 경우도 있고 3~4년 지난 것도 있다.

 

물론 어떤 양조장은 차별화를 위한 '마아케팅'으로 특정 산지의 특정 품종 쌀을 지속적으로 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막걸리는 생산량이 제한될 수밖에 없고 가격이 높아 대중적일 수 없으며, 12개 브랜드씩이나 공존할 수도 없고 그런 마이너한 맛은 백종원이 아니라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와도 맛을 기억하고 다닐 수 없다.

 

어디서 자란 뉘 집 쌀인지조차 알 수 없는 판국인데 심지어 아예 같은 쌀을 쓰더라도 논의 한켠에 해가 더 들거나 비료가 뭉치거나 그 해에 비가 많거나 가물거나 수많은 변수들이 쌀맛을 좌우해버린다. 최고의 위스키 브랜드들이 단일 위스키가 아니라 블랜딩인 것도 결국 비슷한 이유다. 매년 달라지는 위스키 원료를 통해 언제나 비슷한 맛을 유지하려면 이것저것 섞어서 맞추는 수밖에는 없다.

 

 2. 누룩

 

그러나 원료는 그중에서는 가장 통제하기 쉬운 요인일지 모른다. 같은 애국가 1절을 받아쓰더라도 백 명이 쓰면 백 명의 필체가 다 다르고 심지어 누가 썼는지 찾아내는 것조차 어렵지 않다.

 

당을 발효한 알코올의 화학식이야 동일할지라도, 그 균들이 만들어내는 온갖 부산물의 하모니는 인간이 절대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매번 같은 균을 쓰는 일도 불가능하다. 막걸리처럼 여러 번의 발효 과정을 거쳐야 하는 복발효주는 '누룩'에 사는 누룩균들이 상호작용의 결과로 태어난다. 그 상호작용이 같기를 바란다면 어느 날 내가 출근하기 위해 시내버스를 탔는데 거기에 있는 승객 전부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반이었던 애들로 우연히 가득 차 있는 것과 비슷하다. 게다가 안중근 의사의 아들이 독립투사가 아닌 것처럼 균도 세대를 지나치며 성격이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이다. 눈 두 개 코 하나인 특징 그대로인 것처럼 당을 알코올화 하는 것만 같을 뿐.

 

그걸 생각하면 문제가 균들의 다양성에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2927685_200.jpg

 

현실은 정 반대다. 이런 누룩균을 관리하는 게 어렵다 보니 오늘날의 대다수 양조장들은 '입국'이라고 불린리는 생소한 재료를 쓴다. 뻥튀기한 쌀을 건조시켜 불활성화 시킨 균을 코팅한 것인데 대부분 일본산이다. 여느 양조장이든 이 입국을 사다가 막걸리를 만들기 때문에 막걸리 맛을 분별할 수 있는 차이가 사라져버린다. 그래 봐야 앞서 말한 대로 같지도 않지만, 그게 또 문제가 되는 것. 웅변대회 참가자들이 인터넷에서 사온 같은 원고를 읽어버리는 셈이고 그나마 누군 발음을 틀리고 삑사리가 나서 의미전달을 어렵게 하는 총체적인 난국이다.

 

 3. 온도

 

하지만 이 미시세계의 격변은 차라리 애교에 불과하고 예고편에 지나지 않는다.

 

공시적으로 한 순간만 통제하면 원료나 균은 이론적으로 동질화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온도는 아니다. 막걸리 제조가 시작되고 위장으로 넘어가는 순간까지 이 악마는 끊임없이 통시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유난히 막걸리가 맛있는 식당이 있는데 가장 큰 원인은 회전율이 좋아 그날그날 생산해 유통된 막걸리만 내오는 것이다. 막걸리는 각종 균들이 살아있기 때문에 계속 맛이 변한다. 특히 온도가 달라지면 그게 더 문제가 된다.

 

약 10년 전쯤, 막걸리가 유산균의 보고라며 건강음료인 양 난리치던 시절이 있었다. 이 사실이 처음 알려졌을 때 식품학자들은 아연했다. 술에 유산균이 있다니. 그리고 그게 자랑이라니. 엄밀하게 생각하면 온갖 균이 공존한다는 것은 공산품으로서의 식품에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다. 불순물인 것이다. 게다가 각종 균들은 활동하기 좋은 온도가 다 다르고, 그에 맞춰 각기 다른 균들이 설치며 저마다 다른 분비물을 쏟아낸다. 그 분비물들이 다른 균들의 선호하는 영양분이나 pH에 영향을 미치고 또 기하급수로 다른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니 막걸리는 출고 이후 지난 시간이 중요하고 유통 중에 온도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심지어 문 달린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보관하는 슈퍼나 식당이라면 손님이 그 냉장고 문 여는 횟수까지 막걸리 맛에 참견을 하려 들 것이다.

 

만약 이 조건을 통제하면 온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막걸리 공장 자체가 일정한 온도 유지가 어렵다. 공장의 실내온도는 물론 막걸리를 만들 때 부어대는 상수도의 온도까지 수많은 온도들이 막걸리에 영향을 미치니 양조장 주인이라면 미쳐버릴 일이다. 여름에 이틀 만에 15도(자연상태에서 효모는 그 이상의 도수에서는 활동이 어려워진다. 15도를 넘는 술은 이후 증류를 통해 도수를 올린 것들이다)까지 올라가는 술독들이 겨울에는 일주일 이상 걸리기도 한다. 같은 15도에 달한 술이라도 같을 수가 없다. 제주도의 현무암이나 백운대의 화강암은 같은 용암이지만 식는 속도가 달라 다르게 만들어졌을 뿐이다.

 

29873711f707c9a9399f6141268e2479.jpg

 

 

공중부양은 없다

 

백종원 측이 이 문제에 대해 좋은 답을 내놓지 못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무술의 달인이자 사기꾼인 백 관장은 무술인이어서 사기꾼이 아니거나 사기꾼이어서 고수가 아닌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극구 한 가지만 기억하려 한다. 이순신 장군은 구국의 영웅인가 터무니없는 의심으로 애첩을 내쳐버린 의처증 환자인가? 박정희는 고도성장기의 지도자인가 친일 독재자인가? 소박맞은 애첩과 목숨을 구한 민초의 입장이 다르고 인혁당 희생자 유족과 태극기부대의 마음이 같지 않다. 그들에게는 비정하도록 한 가지만 유효하다.

 

백종원이 그동안 구축한 이미지가 있다. 외식사업의 대가, 음식의 최고전문가, 경영인. 실체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사실이라 믿는다. 조수가 있었다는 조영남의 손이 기술적으로 화가의 손이 아니었던 것처럼 실제 마케팅 전문가와 요리연구가가 백종원의 사업을 지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백종원이 그런 이미지를 구축했기에,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백종원이 이 이슈를 돌파할 수 있을까? 힘들다고 본다. 이는 백종원의 꼬리표가 되어 오래오래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이래 저래 안타깝다. 방송이 너무 큰 무리수를 뒀다. 물론 자신들은 이미 시청률과 광고 수익을 올리고 쏘옥 빠져나갔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