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때 모든 감각이 최고점을 찍었기에, 그 이후의 생에서 정서적 무감각 현상을 겪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100미터 높이의 자이로드롭을 타고 온 사람에게 월미도 바이킹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정서적으로 무감각해지는 대신 신체적 감각은 극도로 예민해졌다.
사고 이후 내내 불면증에 시달렸고, 잠을 잘 못 자니 밥을 잘 못 먹고, 밥을 제대로 못 먹으니 영양상태에 문제가 생겼다. 20대 후반에는 걸핏하면 저혈압에 고열로 까무러쳐 응급실에 실려가곤 했다. 손목이나 손등을 자세히 보면 그때 맞은 링거 자욱이 아직도 수두룩하다.
몸이 그 지경인데 마음이 성했을까. 그때는 악몽은 물론이고 대낮에도 가위에 눌렸는데 나중엔 하도 가위에 눌리다 보니 귀신이 귀에다 휘파람을 불어도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귀신이 아니라 환청이라는 확신도 있었고). 그날 이후 여태 집에서 형광등을 켜지 않는다. 집에 가면 암막 커튼부터 치고 침대 맡에 있는 핀 조명 하나 켜고 생활한다. 청소를 하거나 물건을 찾을 할 때만 불을 켠다.
이러는 게 단순히 성격문제인 줄 알았다. 담당의는 사고 직후 생긴 습관을 제때 치료하지 않아 지금까지 이러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습관은 우울증을 유발하기 쉬우니 의도적으로라도 밝게 지내라고 했다. 하지만 이걸 고치는 게 그렇게 어렵고 힘들다.
나는 365일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이어폰을 끼고 산다. 음악을 듣기도 하지만 대부분 소음 차단용으로 쓴다. 사고 이후, 유독 소리에 민감해졌다. 그래서 내 가방에는 예비 이어폰이 늘 두어 개쯤 있다. 제대로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못 해도 열 개 이상의 이어폰이 집에 있을 것이다. 이어폰을 모으는 것은 일종의 강박이다. 강박은 불안의 친구고, 강박은 사람을 쉽게 지치게 한다.
마음의 병이 깊어지면 몸 아픈 것과 진배없이 합병증이 늘어난다. 사고 직후 병원에서 TV를 보는데 누구는 사고가 나기 전에 천장이 비스듬히 기운 것을 보았다고 했고, 누구는 조명이 살짝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래서 건물이 무너지기 전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나는 무슨 일인지 종일 무너져 가는 건물 안에 있었으면서도 아무 것도 몰랐다는 사실이 천추의 한이 되어 지금은 어딜 가도 남보다 많이 긴장한다. 그래서 여태 신경안정제를 달고 산다.
스무 살 이후에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내 삶의 이면을 잘 모른다. 당연하다. 내가 의도적으로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이 이만큼 흘렀어도 여전히 그 일을 떠올리기 싫고, 그 일로 인해 받는 타인의 호기심과 관심이 싫다. 차라리 마음이 불편할 때마다 신경정신과에 가 의사와 상담을 하고, 처방에 따라 약을 먹으면 먹었지 그 일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기 싫다.
한데 지금의 나는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내 상처를 만천하에 공개하고 있다. 그렇게 힘들게 닫아 넣은 과거의 일들을 다시 꺼내 밤새 헤집고 또 헤집어 가며 글을 쓴다. 그래야 이런 식의 사고가 개인의 서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안에서 살아 나온 사람들이 생을 어떻게 살아내는지 세상이 알 것 같아서. 그래야 더이상 타인의 고통을 쉽고 간단하게 조롱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다.
지난 지방 선거때 우연히 안산지역의 한 시의원 선거 공보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안산에 세워지는 추모공원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이런 글로 표현했다.
"기르던 개가 죽어도 앞 마당에 묻지 않고, 뒷산에 묻는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한테 이럴 수가 있을까 생각했다. 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그런 끔찍한 변을 당했는데, 이웃에게 위로는 못 할 망정 어떻게 네 새끼가 죽어 내 아파트값이 떨어졌다고 원망을 할 수 있는가.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그런 이웃이 있는 동네라니. 안산 거리를 서늘하게 만들어 놓은 건 그 차가운 이기심이지 죽은 아이들이 아니다.
전에 시청 앞을 지나가는데 태극기 부대로 보이는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다짜고짜 내게 "이 빨갱이 년아, 너 같은 년들이 세상을 망치고 다녀"라고 한 적이 있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 분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분들이 겪은 전쟁을 모르고 배고픔을 모르고 빨갱이를 모른다. 나는 어버이 연합이나, 태극기 집회에는 아무 감정 없다. 오히려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내가 진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슬픔을 겪고 있는 이웃에게 잔인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말이다. 우린 인간이다. 짐승이나 저보다 약하고 아픈 상대를 물어뜯는 거다. 그러니 제발 부탁인데, 우리 그러지 말자.
이런 말을 본 적 이 있다.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자꾸 소리 내어 말하라고. 말에는 힘이 있다고. 나도 그렇게 느낀다. 그래서 내가 겪은 사고에 대해 말하는 게 달갑지 않지만,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함께,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크게 외치자. 지난겨울 광화문에서처럼.
그렇게 각자의 공간에서 외치자. 최소한 짐승은 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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