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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 많은 관심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병원에선 수술실 CCTV 설치에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었는데요. 많은 분들이 의견을 주셨습니다. 반감을 보이시는 분들도 많더라구요. 많은 분들의 반감이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의사들의 책임입니다. 저도 공감합니다. 

 

범죄를 저지르는 의사들을 조지고(표준어입니다) 싶은 마음은 제가 여러분에 뒤지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현상 너머로 시선을 보내야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돌팔이를 욕하는 것은 쉽습니다. 왜 돌팔이가 끊이지 않는지, 왜 의료 사고는 잘 해결이 안되는 건지, 왜 의사들은 수술실 CCTV 설치에 대부분 반대하는 건지, 왜 정부는 수술실 CCTV 설치를 강행하지 못하는 것인지를 궁금해해야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원래는 무자격자의 수술 보조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했습니다만, 지난 글에 달린 여러분들의 의견에 대한 해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것 같더군요. 결국 다 연결되어 있는 문제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해서 하나씩 쉬운 것부터 답을 해볼까 합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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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과정 전체를 녹화할 수 있는 고해상도 수술 카메라를 CCTV로 설치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을 주신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제가 앞선 글에서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퉁치고 넘어갔던 의견이었는데요,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돈 때문에 어렵다'입니다.

 

외과 의사가 수술을 하는 모습을 기록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합니다. 내시경을 넣어 환부를 보면서 수술하는 경우도 많고 수술용 현미경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물론 육안으로 환부를 보면서 수술하기도 하고, 필요한 경우에 수술용 헤드라이트와 수술용 확대경(loupe)의 보조를 받기도 하지요. 이 모든 영상을 CCTV 와 같이 관리하기란, 짐작하시겠지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잘 아는 매우 유명하신 정형외과 교수님이 계시는데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 중 한 분입니다. 적어도 그 업계에서 그분 성함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지요. 이 분은 주로 수술 현미경을 사용해서 수술을 하시는데, 본인의 모든 수술 영상을 녹화해서(당연히 환부만 찍히는 현미경 영상이므로, 환자의 개인 정보와 신체 정보는 전혀 들어가지 않습니다) 수술을 복기하고 문제점을 보완하며 개선하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미경에 부착된 카메라는 병원 재산인 탓에 특별히 돈 들 구석이 없었겠지만, 현미경에 연결된 녹화 장치, 녹화 테이프(DV tape), 녹화된 영상을 인코딩 하는 장비, 저장 장치 모두 그 교수님이 개인적으로 구매해서 쓰고 있으셨습니다. 최근에 장치를 개선하면서 고해상도 카메라와 녹화 장치는 병원에서 새로 구매해 줬다고 하시더군요. 카메라와 녹화 장치에만 4000만 원이 넘었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UHD 영상도 아니었습니다. FHD 영상 촬영 및 녹화 장치에만 그만큼 들었다고 하시더군요. 저장 장치에도 비슷한 정도의 사비가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본인의 수술만 녹화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의료와 관련된 장비들은 생각보다 비싼 경우가 많습니다.

 

현미경이나 내시경 영상은 최소한 영상을 촬영하기는 쉽습니다. 녹화기만 달면 되니까 말이죠. 환부를 직접 열어서 수술하는 경우에는 다른 특수한 카메라가 필요해집니다. 요즈음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수술등(무영등이라고도 하죠) 중앙에 카메라를 설치해서 촬영하는 방법입니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제법 잘 찍을 수 있지요. 일반 외과나 정형외과 등의 큼직큼직한 수술을 할 때는 이것으로 영상을 촬영하면 됩니다. 이 카메라의 가격은 업체마다 제각각이기는 한데, 카메라만 200만 원 언저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녹화 장비는 별도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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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용 확대경을 써서 수술하는 의사들의 경우에는 조금 더 복잡해집니다. 이런 경우는 보통 수술 부위가 너무 작기 때문에 무영등 카메라만으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가 어렵지요. 때문에 고프로와 같은 액션 캠에 맞춤 렌즈를 달아서 사용하는 의사들이 있습니다. 저도 한 세트의 장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 사비가 대략 100만 원 정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영상을 얻는 데에도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데, 이것이 CCTV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폐쇄된 네트워크에 영상을 모으고 백업이 가능하도록 저장하는 데에도 상당한 비용이 들어갑니다. 대부분의 대형 병원에서는 의료용 영상(X-ray, MR, CT 등)을 관리하기 위한 서버 및 네트워크를 운용하고 있으니 그것을 일부 확대해서 이용한다고 해도, 보안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지난한 비용과 노력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영상의 특성상 용량이 대단할 것이므로 서버를 증설하는 비용도 추가되겠네요.

 

사실 이런 통합 영상 체계를 갖추는 것은, 외과 의사들의 꿈이기도 합니다. 저도 제가 현미경을 사용하여 수술한 영상을 대부분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다른 정형외과 선생님들 중, 본인이 수술한 관절경 동영상을 모아서 관리하시는 분들은 정말 많습니다. 병원 서버에 보관되는 병원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영상을 저장해 놓는 것을 의사들이 싫어할 거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전 세계의 많은 외과 의사들은 자신의 수술 장면을 녹화해서 여러가지 목적으로 사용하고 싶어합니다. 관련된 논문들도 상당히 많이 나와 있지요.

 

그런 만큼, 만약에 수술 장면을 녹화, 관리할 수 있는 통합 체계를 설치하는 데에 정부가 자금을 지원해 준다고 하면 외과 의사들이 반대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수술의 영상을 반드시 획득해서 위변조가 불가능하게 보관하고, 의료 분쟁이 발생했을 시에 증거 자료로 사용하도록 한다면 정말 좋겠습니다만, 상술한 이유로 불가능합니다. 돈이 너무너무너무 많이 들어요. 어설프게 돈을 쓰면 쓴 효과도 없고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이런 영상 시스템보다 급하게 돈을 써야 할 곳은 넘쳐납니다.

 

병원들 돈 많은데 그런 거에 왜 정부 지원을 해 주냐. 그냥 의무 조항으로 만들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병원 각자가 수술 영상을 획득하고 저장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운용해라! 안하면 벌금! 뭐, 이런 식으로 말이죠. 이러면 정말 복잡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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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서 찢어지거나 터진 상처를 봉합하는 경우가 흔하지요. 이건 수술로 봐야 할까요? 전신 마취를 하지 않고, 수면 마취만 하고 진행하는 성형외과적 수술(쌍꺼풀 등)은 어떨까요? 수술일까요? 이런 수술도 녹화해야 한다면, 국소 마취하에서 진행하는 절개술 정도는 어떻게 할까요? X-ray 투시만으로 진행하는 시술이나 수술(혈관 색전술, 관상동맥 확장술 등)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도 전부 녹화해야 할까요? X-ray 투시 장비를 바꿀 돈도 없어서 수십 년 된 장비를 그대로 사용하는 영세 병원들도 많은 판에 모든 병원에서 모든 수술 과정을 녹화하고 저장해야 한다는 법안이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요? (돈과 관련된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도록 하지요.)

 

의사 단체의 반발도 예상됩니다. 의협은 너무 xx이니 언급하기도 싫지만, 병원 협회 차원의 반발이 있을 것이고(대형 병원 경영자들의 협회입니다. 전경련 같은 조직이죠) 로비도 하겠죠. 의협은 바보라서 영향력이 별로 없는데 병협은 상대적으로 강력합니다. 아예 그런 법안이 입법되지 않도록 작업을 하거나, 소위원회 단계에서 좌초시키려고 할겁니다. 만약 그런 법안이 정말 시행된다고 해도, 제대로 지키리라 기대하기도 힘듭니다.

 

단적으로, 의료법에는 각 의료 기관 종별 간호사 정원의 법적 기준이 있어요. 그런데 이 법의 준수율이 종합 병원은 64%, 병원급은 20%, 의원급은 9%밖에 안됩니다. 법을 지키지 않은 경우 의료 기관에 영업 정지 등의 처분을 하도록 되어 있기는 하지만, 사문화된 규정인 거지요. CCTV 관련법 또한 법안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문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간호사 정원 문제에 대해서도 나중에 다시 다뤄 보도록 하겠습니다.

 

 

2.

 

대리 수술을 확실하게 잡아내고 의료 사고 시 일부라도 증거로 활용될 수 있는 고해상도 CCTV를 모든 수술실에 설치하자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이건 제가 원칙적으로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다만 환자의 신체 노출 문제라든지, 영상의 유출 가능성, 관리의 어려움 등을 감안할 때 수술실 입구에만 CCTV를 설치하는 것이 가성비 면에서 낫다고 이야기한 거지요. 사실 가성비만을 생각한다면, 대리 수술 신고 센터 같은 곳을 만들어서 현상금을 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것 같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이 사안의 법제화도 불가능할 거라고 예상합니다.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 정책 중, 의사들이 반발하지 않고 있는 것이 거의 없는데요, 어떻게든 의료계를 달래서 정책을 추진해야 할 정부 입장에서 이런 법안까지 만들어 가면서 전면전을 할 필요성을 느낄 리가 없지요. 이 정부뿐만이 아니라, 군사 독재 시절부터 모든 정부가 비슷한 의료 정책을 펴 왔다고 봅니다. 싼값에 건강 보험을 굴러가게 하기 위해서는 의사들을 자극하지 않아야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의사들의 자격 조건에 대한 규제와 처벌이 강화되지 않았다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 보지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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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 수술 문제에 대해 의료 수가를 언급하는 것은 책임에 대한 회피다라고 이야기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보일 여지가 분명히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대리 수술을 저질러 적발된 의사가 '의료 수가가 낮아서 그랬다' 따위의 헛소리를 지껄인다면, 저부터도 용서하기 어려울 것 같군요. 그렇지만 대리 수술 문제가 의료 수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1) 낮은 의료 수가로 인해 수술실에 충분한 인력을 공급할 수가 없고,

 

2) 의료 기기, 기구는 상당한 이윤이 발생하는데 의료 기구 업체에서 '기구의 사용법을 교육한다'는 명목에서 사실상 수술 보조 인력을 파견합니다. 그래야 경쟁사에게 이길 수 있지요.

 

3) 병원과 의사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손이 부족하니 공짜 인력을 마다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기구 회사의 직원이(대부분 간호조무사도 아닌 무자격자들입니다) 수술에 참여하게 되고요.

 

4) 그렇게 한두 종류의 수술에 반복적으로 참여한 의료 기구 업체 사원은 그 한두 가지 수술이나 시술에 대해서는 상당히 숙련되게 됩니다.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여기서 멈추죠.

 

5) 그런데 간혹 있는 돌팔이가 보기에는 제법 하는 것 같으니, 수술을 맡기는 겁니다.

 

거의 모든 대리 수술은 이 패턴으로 진행됩니다. 업체의 수술 보조를 원천 차단하면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인데요, 이것이 병, 의원급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는 게 문제인 겁니다. 위에도 언급했습니다만, 간호사가 턱없이 부족하거든요. 간호사가 부족한 것도 역시 비현실적인 간호 수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법정 간호사 정원을 지키지 못한 병원에 영업 정지를 먹인다 하면, 우리나라 병원의 절반 이상(의원급의 90%, 종합 병원의 40%)은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므로, 정부에서도 강력한 제제를 가하지 못하는 것이고요(이런 상황에서 간호간병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하니, 상황을 아는 사람들은 헛웃음을 내뱉는 겁니다).

 

이 무자격자의 수술 보조가 어느 정도로 만연해 있는 상황인고 하니, 과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습니다만 서울 소재 최고 수준 상급 종합 병원에도 만연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예전보다는 많이 줄었고, 파견되는 인원들도 간호사 자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비율이 늘어나고는 있습니다만 아직 멀었지요. 무자격자 수술 보조 문제는 정말로, 다음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역시 이번 글도 너무 길어졌습니다만 요약하자면,

 

1. 수술 과정 전체를 녹화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1) 돈이 지나치게 많이 들고

2) 정부 지원금을 쓸라 친다면 CCTV보다 급한 것이 많으며

3) 병원 자체 자금을 사용하라 한다면 법안 자체가 좌초되거나 사문화될 것이다.

 

2. 일반 CCTV의 설치는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의사 단체의 반발이 상당할 것이고, 불필요한 싸움을 회피하고 싶은 정부에서는 이걸 긁어 부스럼으로 만들 생각이 없을 것이다(실제로 요즘 수술실 CCTV 법제화 관련하여 보도가 없지요).

 

3. 낮은 의료 수가가 무자격자 수술 보조를 양산했고, 이 때문에 대리 수술이 벌어진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많은 의견 기다리고, 다음 글로 또 뵙겠습니다. 어째 열린 상자를 닫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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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병원 척추외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