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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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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에서 일반인들도 사용하던 ‘짐(朕)’이라는 칭호를 자신만 사용하게 한 남자. 혼란의 춘추 전국 시대를 마감하고 현대 중국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틀을 마련한 남자. 사후 2천 년이 지나도록 마치 자신의 지하 무덤처럼 폭군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사는 남자. 진시황에 대한 오판과 편견에 대해서 알아보자고.

 

우선 진시황 칭찬부터 좀 하면서 시작을 해야겠지? 우리나라의 역알못 들에게 진시황(B.C259~B.C.210)은 네로 황제와 동급의 폭군으로 기억되지만 중국 현지 평가는 사뭇 달라. 오늘날 55개 민족, 13억이 넘는 인구가 사는 현대 중국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이 바로 진시황제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China의 어원에 대한 다른 설도 있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역시 진시황의 진나라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어).

 

그는 천하를 통일한 뒤, 전국을 36개 군으로 나누고 군현제도를 마련했어. 군 밑에 현을 두고 중앙정부에서 관리를 파견하여 통치를 하는 제도야. 군현제도 이전에 중앙정부의 관리를 받지 않던 지방 영주들은 일부 몰지각한 유치원 원장님들이나 교회를 자식에게 세습하려는 목사님처럼 불만이 많았겠지? 이들의 불만을 누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이 또한 진시황이었기에 가능했어.

 

로마의 전성기를 이끈 원동력 중 하나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잘 닦여진 도로망이라고 할 수 있어. 진나라 때의 도로는 수레바퀴가 들어갈 수 있게 레일 같은 홈을 파 놓은 상태였어. 통일 전 각국은 적국의 마차가 자기 영토에서 이동을 불편하게 하도록 각기 다른 폭과 너비의 레일을 파 놓은 상태였어. 진시황은 전국에 이를 통일시키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어. 현대 중국에까지 흔적이 남아 있는 진시황 때의 도로는 그 당시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또한 세금을 보다 용이하게 징수하기 위함도 한 이유지만, 도량형의 통일도 진시황 때 이루어지게 되었어. 마지막으로 각국의 문자가 외국어처럼 다르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달랐던 문자를 진나라의 소전체로 통일시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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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 이후로도 중국은 분열과 통일을 거듭해. 하지만 대륙급의 이 나라가 다시금 통일될 수 있었던 주요 이유는 진시황 때의 문자 통일로 보는 현대의 중국 역사학자들 분석이 있어. 이게 사실 군현제도의 시행, 도량형과 문자 통일 등의 건조한 사지선다형 보기처럼 나열하면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인터넷도 없는 저 당시 대륙에서 해내기는 결코 쉽지 않은 업적이야.

 

아방궁만 자꾸 떠올려서 진시황을 파티 피플로 오해할 수도 있는데 그는 사실 워커홀릭이었어. 이 당시에는 종이가 발명되기 전이라 서류들이 종이보다 훨씬 무거운 죽간이었는데, 그는 하루 120건의 죽간 결제 서류를 처리하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않을 정도로 성실한 군주였다고 해. 또한 천하 통일 후 12년 동안 무려 중국 천하를 5번이나 순행하는 강행군을 했어. 결국 그는 마지막 순행 도중 객사까지 할 정도로 자신이 통일한 진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어. 어쩌면 남을 믿지 못해 자신이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는 성격이었는지도 몰라. 그래서 불로장생을 꿈꾸었던 걸까?

 

 

2.

이제 진시황 사후 2천 년이 넘도록 그를 폭군의 이미지에 가두어 둔 주요 사건을 살펴보자고. 오판인지 편견인지는 각자의 몫으로 남겨 두겠어. 먼저 분서갱유(焚書坑儒) 중 앞 두 글자인 분서에 대해서 검토를 해 볼까 해.

 

천하가 통일되고 8년이 지난 기원전 213년, 진시황은 함양의 황궁에서 만리장성의 축조와 주변국을 정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파티를 열고 있었어. 이런 자리에는 늘 아부를 하는 신하가 나오기 마련이야. 그는 바로 주청신이었어.

 

“일개 소국에 지나지 않던 진나라로 천하를 통일하신 폐하의 영민함에 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나이다. 통일 후에 시행하신 각종 제도와 개혁이 모두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특히 군현제도를 실시하여 지방 봉건 세력들의 잠재적 전쟁 위협을 없애셨습니다."

 

주청신의 아부성 발언을 들은 순우월이 그를 디스하는 일장 연설을 토해내면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어.

 

“폐하 저 자는 아첨꾼이지 충신이 아니옵니다. 옛 시절에는 영토를 지역의 영주들에게 나누어주고 세습도 가능하였기에 그들이 국왕에게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시행하신 군현제로 인해 그들의 충성심은 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는 분명 잘못된 정책이라고 사료되옵니다.”

 

이 둘의 배틀은 사실 둘만의 감정 싸움이라기보다 봉건제 아래 기득권 VS 진시황의 중앙집권제의 이념 대결이라고도 볼 수 있어. 이 일로 인해 진시황의 최측근 이사가 직접 나서게 되는데, 혹시 이사와 진시황의 이런 대화가 오간 후에 분서가 일어난 것이 아닐까?

 

“폐하! 순우월은 주구장창 옛 것만이 좋다고 하고 당대의 것은 나쁘다고 주장해 온 자입니다. 이는 단순한 이론의 주장이 아니라 폐하에 대한 도전입니다. 제가 총대를 메고 나서겠습니다. 폐하는 결재 서류에 싸인만 해 주십시오. 지금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겉잡을 수 없는 들불로 번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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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황제의 결제 싸인이 든 죽간을 옆에 끼고 나타난 이서가 아래의 요지로 성명을 발표하며 그 유명한 분서가 공포 되었어.

 

“이 시대의 지식인이라고 하는 유생들은 오로지 과거만 숭상하고 현재는 나쁘다고 비판을 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국민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이에 황제께서는 민생 안정과 국민의 동요를 막기 위하여 특단의 조치를 내리는 바이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이때 이사가 책을 불태울 것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일부 책의 수거를 주장했다고 기록하고 있어. 우리는 진나라 전역의 책이란 책은 다 수거해서 불태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국가가 공인한 유교 책과 백성들을 위한 농경, 천문 책 등은 수거하여 국립 도서관에 잘 보관했다고 해. 물론 강력한 법집행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서적을 광화문 광장 같은 상징적인 곳에서 태우는 퍼포먼스도 분명히 있었을 거야.

 

진나라가 망하고 한나라 때 진나라의 멸망 원인을 꼼꼼히 분석한 과진론(過秦論)이라는 문헌이 있어. 이 문서의 작성 목적은 진나라는 멸망할 만한 나라라는 여러 문제점을 부각시키면서 한나라 건국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함이야. 그런데 이 문헌에는 분서갱유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아.

 

 

3.

다음으로 살펴볼 사건은 460여 명에 달하는 유생이나 학자를 산채로 묻어 버렸다는 갱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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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이 불로장생을 꿈꾸다 방사나 술사로 불리던 자들에게 크게 돈을 뜯긴 사실들은 알고 있지?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했다는 좌절감에다가 자기가 사기까지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황제는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기 힘들었을 거야. 갱유가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유생들을 죽여서 마치 지식인과 학자들을 힘으로 탄압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인데, 이 당시 죽은 사람들은 사실은 유생이 아니라 진시황에게 사기를 친 방사들이란 주장이 있어.

 

사마천의 사기 유림열전에서는 술사를 묻었다고 언급했으나, 진시황본기에서는 생매장된 사람들이 유생을 뜻하는 듯한 생이라고 기록이 되어있어. 그런데 한나라 시대 이전에는 방사들도 생이라고 표현을 했다고 해. 진나라 때는 도사들을 죽였다는 기록만 있고, 유생을 죽였다는 기록과 갱유라는 단어는 진나라를 멸망시킨 한나라 때 처음으로 나왔다고 해. 이 정도 이야기로 진시황에게 면죄부를 주기는 어렵지만 한 번 정도는 진시황 변호인단의 입장에서 서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니 너무 노여워하지 말기를.

 

우리는 조작된 역사와 역사를 조작하려는 시도가 존재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 하자고.

 

 

 

 

 

틈새 광고 

 

일전에 연재한 "찌라시 한국사"는 여러분들 덕에

출판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됐어. 

 

덕분에 직장 다니면서 강연도 많이 하게 되고

여기저기 불려다니는 중이야. 

 

아직 안 본 분들이 있다면 추천해. 

역사를 쉽게 쓸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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