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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10.12.월

딴지문화부 기자 송순규



제가 대학교 다닐때 일입니다.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이 생기면서 사회가 한참 술렁거릴때...


그 당시 전 민중미술에 한창 관심있던 때였는데 어느날 총학생회에서 시위준비를 하는데, 걸개그림 작업을 위해서 같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림을 완성하려면 밤샘작업을 해야했는데 그날밤 경찰에서 학교로 야간침투를한다는 정보가 있어서 몇명이 돌아가면서 정문 앞에서 불침번을 서기로 했습니다. 전 새벽 3시에 교대를 해주러 갔는데 4월 밤공기는 꽤 추웠습니다. 졸린 눈을 껌벅이며 교문 앞에 선배랑 서 있는데 검정색 차가 교문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나 : ????


정체불명의 검정색차는 예사롭지 않은 눈초리로 우릴 한번 쳐다보더니 그냥 조용히 가버립니다... 더 추워지는 날씨...


검정색차량의 출현으로 긴장하며 그렇게 1시간 가까이 서있는데 학교담 저쪽에서 달그락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전 선배랑 그쪽으로 가봤습니다. 불길한 예감에 살짝 담넘어로 보는 순간 전 경악하고 말았습니다.


눈앞에 보이는건 셀 수도 없는 하얗고 푸른 백골단 하이바...


깜짝 놀라며 선배를 쳐다보는 순간...


조금전까지 분명히 내 옆에 있던 선배는 어느새 저쪽으로 타타타탁 뛰는 소리만 내며 어둠속으로 열라 도망가고 있었습니다.



나 : 야이 나쁜자식아!!! 나두 데꾸가~~~~


전 걸개그림을 그리던 건물로 뛰어가 다급하게 소릴질렀습니다.



나 : 얘들아~~~ !!! 튀어!


하지만 이미 백골단은 정문을 통과했습니다. 한밤에 학교를 울리는 백골단 워커의 엇박자 배경효과음... 우두두두두두...


그 소리는 공포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시위준비를 하던 애들은 여기저기서 도망가기 시작했고 백골단은 이건물 저건물로 일사분란하게 뛰어들어가며 긴몽둥이가 춤을 추는것이 보였고 동시에 비명소리가 교정을 가득 매웠습니다...


고함소리.. 욕지껄이.. 가 사방에서 터져나왔습니다. 전 그 광경을 보고 열라 학교 뒷산쪽으로 손에 각목하나 들고 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마음만 칼루이스... 다급한 상황에서 현실은 냉정했습니다... 한참 내 뒤에 있던 친구놈이 바람같이 제 옆을 스쳐지나갔습니다. 근데... 그냥 가면 될것을... 이놈은 뒤돌아서 백골단을 향해 욕을하며 약을 올리고 도망갑니다...



그놈 : 나 자바바라~


이에 빠짝 약이오른 백골단은 속도를 내기 시작합니다.



나 : 헉...헉... 저..미..친시키.. 헥헥.. 저게.. 제 정신이야 지금.. 헉헉.. 쒸발넘.. 헉헉..


이말이 끝나기도 전에 웃기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분명 제 앞에서 도망가던 뒷모습은 친구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제 눈앞에 보이는 건 친구의 뒷모습이 아니라 어느새 날 추월한 백골의 뒷모습이었습니다... 백골 한명이 제 옆을 스쳐 제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던 겁니다.


순간적으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처절하게 무시당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동시에 열라 다행이라는 똥꼬 깊숙한 안도감..



제일 앞서가던 친구놈 : 쫓아올수 있음 쫓아와봐 짭새야~~~
그 뒤를 쫓던 백골 : 너 씨파! 잡히면 나한테 뒤져써~~~
무늬만 도망자인 나 : 헉...헉... 쩝쩝... 헉헉...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는 상황에 일단 난 살았다는 생각을 하며 옆길로 빠졌습니다. 그런데... 아... 정말 전 억울했습니다... 그 뒤를 잇던 나머지 백골 7명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절 쫓아오기 시작합니다...



나 : 아니 저것들이 나하구 먼 왠수를.. 어흑흑...


달리기하고는 워낙 사이가 안좋았으면 지금도 계속 안좋고 있는 전, 곧 7명한테 둘러쌓였습니다. 승패는 이미 결정된 것이었으나 손에 각목은 들고있고.. 도망갈 길은 없고.. 전 독안에 든 황소개구리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발악이라도 해보자.. 라는 심정으로 각목을 휘둘럿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 코메디 였습니다.



나 : (눈을 질끈감고) 살려주세요~ 휘익~ 때리지마세요~ 휘익~ 아으~


내가 생각해도 웃기다는 생각을 하며 제풀에 넘어져버렸습니다.



백골들 :(어이없는 표정으로) ..... 이거 열라 우끼는 시키네...


그렇게해서 전 도망 못 가고 붙잡힌 나머지 애들하고 닭장차에 실렸습니다. 경찰서로 가는동안 닭장차 안에서는 우린 포로의 모습.. 바로 그것이였습니다. 백골들은 승리자가 되어 하이바로 실컷 머리통을 때린 후 이젠 마음놓고 지껄입니다.



백골1 : 저런 시키들은 왼쪽다리, 오른쪽팔을 짜른후 난지도에  갖다 버려야돼.
나 : (허걱!)
백골2 : 누구 낚시바늘 없냐?
백골3 : 야! 너 또 낚시바늘 쟤네들 코에 걸어서 잡아당기고 놀라 그러지?
나 : (어허익!)
백골1 : 그 바늘 어제 병원에 실려간 애 코에 걸려서 갔을껄?
나 : ( 어쨌거나 없다니 다행이다... )
백골2 : 그래? 그럼 거기 새거 꺼내.
나 : (오마이갓!)


새 낚시바늘을 꺼내는동안 천만다행으로 경찰서에 도착 했습니다. 경찰서 지하식당으로 가서 조사를 받는데 경위서, 진술서 이런 것들을 쓰고난 후에 높은 계급으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옵니다.



높은사람 : 오늘 낮에 시내에서 시위가 있었다 너희들도 아마 그 놈들일것이다. 이제부터 화염병 던진 놈들을 찾아낼테니 손바닥을 내밀어라 !


화염병 안에 있는 신나나 휘발류 냄새는 쉽게 가셔지질 않기때문에 냄새확인을 한다는 소리였습니다. 그 순간 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전 화염병은 던져본 적이 없었지만 그날 작업하던 걸개그림은 페인트로 그리기 때문에 손에서는 신나냄새가 진동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걸 어케 설명해야하나..


갑자기 머릿속에는 철창이 그려지고 철창밖에서 울고계시는 어무이.. 담배만 피시는 아버지.. 죄수복을 입고 있는 내모습.. 하지만 그 생각에 앞서 먼저 떠오르는건... 고문당하다 숨진 박종철...( 그땐 정말 그런 기분들었다니까요.. ) 어두컴컴하고 습기찬 지하복도... 이런것들이였습니다.


순간 성질 더럽게 보이는 전경이 저한테 왔습니다.



전경 : 킁킁
나 : (두근두근)
전경 : (쓰윽)......
나 :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아니 저 그게요...


완전히 조때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전경은 제 귀를 의심안할수 없는 말을 합니다.



전경 : (작은 목소리로) 빨리 바지에다 손바닥 문질러...
나 : 네 ?!
전경 : (역시 작은 목소리로) 구속되기 싫으면 내가 가려줄테니까 빨리 냄새없애란 말이야 시바시키야.
나 : ... !!!! (땀 삘삘 흘리며.. 슥삭슥삭슥삭슥삭슥삭)


전 잽싸게 바지에다 손바닥에 연기 날 정도로 문질럿습니다... 조금후 높은사람이 확인하러 왔지만 그 전경의 도움으로 무사히 통과됐습니다. 전 전경이름이라도 확인하고 싶어 돌아봤지만 벌써 어디론가 가고 안보였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경찰서를 나올때까지 그 전경을 계속 찾아봤지만 끝내 못찾고 고맙다는 말도 못한채 경찰서를 나왔습니다....


그 후 그 경찰서를 지날때마다 경찰서 정문을 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혹시 그 전경이 서 있다면 음료수라도 사주고 싶어서 말입니다.


이미 그 전경은 제대한지 오래됐겠지만 지금까지도 그 경찰서를 지나가게 되면 경찰서 정문을 돌아보게됩니다...


 


딴지문화부 기자 송순규 ( pfsongsg@chollian.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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