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2. 05. 02. 수요일

정우성


 



 


 


나는 지난 11편과 12편에서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만연된 선행학습을 비판했다. 육아와 자녀교육을 주제로 이야기하면서 선행학습에 대해 침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구조적인 관점이 아니라 도덕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서 ‘선행학습은 반칙’이라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개개인’의 선행학습을 끄집어내서 그 개인을 향해 삿대질하려는 게 아니다. 선행학습을 강요받은 ‘아이들’을 비난할 권한이 우리에게는 없다. 우리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한 공동정범인 까닭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행학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시하고 권장하는 부모 개인의 태도까지 침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데 왜 내게 돌을 던지는가?’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미 어쩔 수 없는 세상이다. 아이들의 인생을 망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모두 속물이며 거짓말하며 거칠게 말한다고 해서 그것을 꼭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게다가 선행학습의 피해는 결국 아이들의 오늘과 내일을 망치는 일이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멍들게 하고 다치게 하는 일을 남들이 한다고 왜 따라가야만 하는가?


 


 


개인적인 성찰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개인적인 차원으로 성찰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구조적으로 개인의 실존과 사회현상을 파해치는 것은 철학적이고 정치적이며 문화인류학적인 작업이지만, 이것과 개인의 성찰은 양립가능하다. 이것을 배타적으로 놓고 논리를 설정하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수습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개인적 차원의 성찰과 구조적인 문제의 추적은 양립 가능하다. 개인을 비난하는 것과 사회를 비난하는 것도 양립 가능하다. 개인의 어긋난 욕망과 타락을 논하는 일과 타락한 사회 구조를 비판하고 대안을 논하는 일도 양립 가능하다. 어쨌든 나는 선행학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권장하고 당연시하고 일반화 된 세태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육 구조와 사회 시스템 문제까지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런 문제를 외면하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나는 아빠다> 시리즈는 개인의 성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고, 내게 주어진 몫이 있다는 점에 밑줄을 긋는 것이다.


 



 


아이들의 먼훗날의 미래가 정말로 걱정된다면, 아이들을 독촉하고 닦달하고 괴롭혀서는 안 된다. 아이의 몫과 어른의 몫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아이의 몫은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체라는 점, 아이 스스로 자기 결정을 하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생각의 힘과 마음의 힘)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반면에 어른의 몫은 그런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 사회를 더욱 공평하고 정의롭게 개선하고 혁신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른의 몫으로서 ‘육아와 훈육은 정치다’(나는아빠다 7편)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국 정치의 몫이다. 정치인의 몫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몫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미래를 물려주고 싶다면 아이의 몫을 빼앗을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힘을 모으면 된다. 아주 많은 사람의 힘이 모이면 가능해진다. 선행학습을 조장하는 경쟁과 무배려와 학벌주의와 권력욕과 지나친 물욕과 탐욕이 여기 있다. 이것으로부터의 해방은 낱낱이 흩어진 ‘개인’이 해결해야 할 몫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은 경쟁에서 밀려나거나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더욱 ‘경쟁적으로 무장’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까 더욱 심각해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구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여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생긴다. 그래,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구조적인 관점의 실천과 노력이 그동안 없었던 것이 아니다. 있었고 지금도 있다. 그것은 그것대로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개인의 성찰이 수반되지 않는 시스템 개선 노력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한편 <나는아빠다> 시리즈는 개인의 양육에 대해서 말하고 있음을, 개인의 자각과 실천을 향해 있음을 알아주기 바란다. 다만,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어쩔 수 없으니까 계속 지금 하던 대로 해!”라고 말하며 함부로 면죄부를 발급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가 길을 가다가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길 바란다.


 



 


 


자녀교육에서 ‘도덕’을 어떻게 빼놓을 수 있을까?


 


시야가 좁고 성격 급한 사람들은 내가 사용한 ‘도덕’이라는 단어에 과민반응을 보인다. 도덕 프레임에 갖히는 진보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도덕’을 이용하는 권위주의의 속성을 경계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고, 또 ‘도덕’의 무력함을 탓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심리적 현상이다. 도덕이 문제가 생길 때에는 도덕과 권력이 서로 연관성을 가질 때이다. 하지만 개인의 성찰과 관련될 때에는 특별히 문제가 없고 오히려 자연스럽다.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도덕이라는 ‘용어’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안타깝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그냥 과감히 이야기해도 된다. 특히 자녀교육을 말할 때 도덕을 빼놓고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도덕을 과감히 빼놓으면 우리는 인간을 키우는 게 아니라 괴물을 키우게 된다. 아이를 키워서 그 아이가 높은 권력을 쥐는 자리까지 올랐다면 어떤 관점에서는 성공한 육아다. 하지만 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 자기 권력을 악용해서 여리고 선량한 다른 사람의 인생을 흔들고 피눈물을 흘리게 했다면 그것은 도덕적으로 실패한 육아다.


 


자녀교육에서의 도덕은 그렇게 어려운 개념도 아니고, 복잡한 것도 아니며, 히스테리 반응을 일으킬 만큼 위험한 것도 아니다. 얘야 거짓말하지 말아라, 정직하게 살아라, 약속을 소중히 여겨라, 남을 때리지 마라, 남을 험담하지 마라, 그건 공평한 게 아니란다, 남을 괴롭히지 말아라, 타락하지 말아라, 악행을 하지 말아라, 규칙을 지켜라,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라, 버릇없이 굴지 말아라, 나쁘게 말하지 말아라 등등 이 모든 게 도덕적인 것이다. 육아와 자녀교육에 필수적인 사항들이다.


 



 


개인은 자유를 위해 저항할 수 있다.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을 우리 아이들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개인은 더욱 저항할 수 있다. 이것은 개인의 성찰과 자각으로도 가능하다. 선행학습이 반칙임을, 그것이 만연되면 결국 너 죽고 나 죽는 게임임을, 그렇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성찰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다. 부모의 불안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길다. 그리고 상상력도 풍부하다.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사교육은 선행학습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이고 공교육과 대쌍 개념이어서 공교육에 대한 성찰없이 쉽게 거론할 수는 없다. 그런데 사교육과 선행학습을 구분하지 못하고 선행학습은 반칙이라는 것을 곧 사교육은 반칙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선행학습이 떨어진다고 해서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미국을 못난 사회라고 지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무 훌륭한 선진국이라고 칭송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미국조차 선행학습은 대개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 초등학생이 미국 초등학생보다, 한국 중학생이 미국 중학생보다, 한국 고등학생이 미국 고등학생보다는 성적이 좋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이후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비교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얘야. 손을 내게 내밀렴. 내 안에서 빛나는 너의 신뢰의 빛을 받으며 걸을 수 있도록.”


- 하난 칸(<부모와 아이 사이> 중)


 


 


부모와 아이 사이


 


여기 한 권의 책이 있다.


 


1965년에 씌어진 “부모와 아이 사이 (Between Parent And Child)”라는 책이다. 저자 하임 G 기너트는 유태인이고 미국에서 자랐다(이 책은 원래 하임 기너트가 쓴 책을 그가 죽은 후에 아내인 앨리스 기너트와 윌리스 고너드 박사가 수정 보완하여 재출판한 것을 번역한 책이다)고 한다. 나는 서평을 쓰는 재주는 없고, 게다가 기억력이 썩 좋지 못해서 아무리 좋은 내용의 책이었다손 치더라도 ‘그런데 어떤어떤 내용이 있었더라?’고 자문하기 일쑤여서 서평은 거의 써 본 적이 없다(몇 번 시도했지만 대참패). 하지만 이 책은 내가 최근 읽은 자녀교육 책 중에서 – 지금까지는 – 가장 참고할 만한 책이므로 여기 소개한다. 이 책을 읽으면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 <아이의 자존감> 등의 책은, 해당 출판사에게는 미안하지만, 읽지 않아도 된다.


 



 


“육아의 목적은 무엇일까? 아이가 반듯한 인간, 곧 동정심이 있고, 헌신적이고, 남을 보살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인간다운 사람으로 키울 수 있을까? 자비로운 방법으로 키울 때에만 그럴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과정이 방법이라는 것을,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을, 예절바르게 행동하도록 하는 데 효과가 있을까 하여 아이들의 감정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에만, 인간다운 사람으로 키울 수 있다.”


 


라고 저자는 선언한다. 그리고 일관되게 이런 입장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여러 가지 구체적인 방법을 고전처럼 제시한다.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부모로서의 자신을 성찰하게 만든다.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친절함이 있고, 덕분에 부모의 자녀를 대하는 방식을 여러 상황마다 들여다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저자가 죽기 몇 주 전에 자기 책이 ‘고전’이 될 거라고 예언할 정도의 자부심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의 어떤 부분을 읽다가는 ‘어떻게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놀라기도 하고, 또 어떤 부분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세심한 조언을 주기도 한다.


 


지난 주 이 책을 여기에 소개하기로 결심을 했는데,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 고민에 빠졌다.육아는 실천 분야이기 때문에 뭔가 실천적으로 요약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게다가 너무 장황하게 정리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거니와 책이란 어차피 잊혀지기 마련이어서 뭔가 뾰족한 수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중, 이 책은 단지 ‘한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것은 실로 내게 귀중한 깨달음을 줬다. 마치 아이들을 향한 내 태도를 다스리는데 있어 매우 밝고 명쾌한 등불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바로,


 


“그랬구나!”


 


이다. 이를테면 부모와 아이 사이에 언어가 있고, 그 언어를 ‘구나체’로 접근하면 길이 보인다는 것. 물론 저자가 한국인이 아니어서 ‘구나체’를 알 리가 없고, 번역자가 그렇게 번역한 것이지만(비슷한 느낌의 영어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구나체’로 아이들을 대하라는 게 바로 이 책의 메시지다, 라고 요약해 본다. 가령, ‘그랬구나’, ‘화가 났구나’, ‘기분이 안 좋았구나’, ‘놀고 싶었구나’, ‘갖고 싶었구나’, ‘미웠구나’, ‘먹고 싶었구나’, ‘칭찬받고 싶었구나’, ‘…구나” 등등.


 


기너트 박사는 아이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 간주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공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가르친다. 그리고 매우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하지만 보통 부모들은 책에 밑줄을 그으면서 자기 아이에게 임상하지는 않는다. 책을 읽을 때에는 끄덕이고 감화를 받지만, 잘 실천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상당부분 잊혀진다. 책에 어떤 가르침이 있었는지조차 까먹곤 한다. 그래서 간단한 요약이 요긴한 것이다. 만일 당신이 아이와 대화할 때, 어미에 ‘구나체’를 적용해서 대화한다면 아마도 모르긴 몰라도 이 책이 안내하려는 대화방법의 팔할은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구나체’를 습관처럼 사용하여 아이에게 공감을 표현하고 대화를 하기 시작하면 이미 이 책을 읽었다고 말해도 좋다. 물론 건성건성 들으면서 구나체를 사용하면 아이들이 눈치 채고 짜증내 할 수 있으므로 아이들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가 중요할 터이다. 아이들은 눈치가 빠르다. ‘구나체’에서 청유형의 ‘하자체’로 나아갈 수만 있다면 가장 좋은 대화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청유형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쨌든 ‘구나체’를 실제로 적용해서 두 아이를 대했던 실제 예를 다음 혹은 그 다음 번에 소개할까 한다.


 



 


 


자녀교육에는 기술과 지식이 필요하다


 


“부모들은 모든 아이가 훌륭한 사람, 곧 동정심과 헌신, 용기 있는 인간, 곧 강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공정함을 준칙으로 삼아 살아가는 인간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이와 같은 인간미 있는 목표들을 성취하기 위해서 부모들은 인간미 있는 방법들을 습득해야 한다. 사랑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통찰력만으로는 부족하다. 훌륭한 부모가 되려면 기술이 필요하다”


 


그렇다. 이 책은 저자인 기너트가 사명감을 갖고 그 기술을 가르쳐주기 위한 책이다. 우리는 한 번도 부모인 적이 없다. 아무런 경험 없이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된다. 우리는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좋은지 모를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남들이 오래 전에 겪은 동일한 시행착오를 반복하기도 한다. 때로는 인생의 큰 후회를 남기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시행착오와 후회를 예방하기 위해 매우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우리나라 사회에 적용할 수 없는 내용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백인이 자기 아이들을 양육하든 흑인이 양육하든 우리 같은 동양종족이 아이들을 양육하든 간에 모두 인간이 인간을 양육하는 것으로 대동소이하다.


 


“아이들이 여러 가지 감정을 드러낼 때, 부모가 이에 공감하면서 이해해 주면,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풍부한 감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을 했을 때, 아이를 존중하면서 제지하고 그에 따를 것을 요구하면, 사회의 규범을 존중하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사려깊지만 근엄하고 재미없는 면도 있다


 


이 책은 또한 규칙과 규범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이 부분에 대해서 부모가 쉽게 타협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이런 점에 대해서도 귀 기울일 만하다. 이 책의 대부분은 훌륭하다. 하지만 심리학자의 소심함이 엿보인다는 점, 그리고 저자의 안내대로 따라가다 보면 사려깊지만 너무 근엄하고 재미없는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염려가 들기도 한다. 그게 이 책의 단점이다. 대부분의 <자녀교육서>는 상당히 따분하다. 시시콜콜하게 분석하고 염려하며 지적한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매순간 깨어 있는 것은 불가능하며, 굳이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언제나 불충분하고 부족하며 어딘지 모자란 인간이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도 알지만 아이들조차도 알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는 이 책의 저자와 같은 부류는 아니다. 무릇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조심해야 한다. 시선이 좁아진다.


 


우리 부모들은 좀 더 즐겁게 아이들을 키울 수 있다. 예컨대 기너트는 아이에게 칭찬을 할 때 칭찬의 진정한 효과를 생각하면서 함부로 과장하지 말라고 경고하지만, 부모가 아이를 칭찬할 때 그 아이에게 꼭 도움이 되기 위해서 칭찬하는 것은 아니다. 머뭇거리면서 칭찬하는 것은 재미가 없다. “오줌 안 싸면 이번 크리스마스 때, 자전거 사주지”라는 조건과 대가를 제시하는 것은 아이를 망치는 유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기너트는 말하지만, 그런 저자의 생각에도 동의할 수 없다. 그런 부분까지 일일이 신경쓰면서 어떻게 아이를 양육한단 말인가. 괜찮다. 지킬 수 있고 너무 과하지 않은 약속이라면 나쁘지 않다. 또한 저자는 텔레비젼을 30분 이상 시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지만 수십 년 전의 지적일 뿐이다. 오늘날 매우 훌륭한 아이용 콘텐츠가 많고 그 중에는 정말 눈부신 것들도 있다. 선정적이지 않으며 환상적이며 아름다운 내용도 있다. 그냥 지나치면 안 좋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정도의 단점은 외면하면 그만이다. 그만큼 크게 드러나지 않은 반면에 장점은 눈부시다. 이 책에서 인용할 수 있는 부분은 매우 많다. 그 중에서 하나만 여기 다시 옮겨 보자.


 


“어린이들이 던지는 많은 질문들의 이면에는 확신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 숨어 있다. 그와 같은 질문에 대한 최선의 대답은, 우리의 관계는 변함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것이다. 아이가 어떤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건 그 자체보다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아이의 감정을 깨닫고 그에 반응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일독을 권한다. 아마 목차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이 이미 훌륭한 자녀교육서임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읽었음에도 내용이 가물가물하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구나체’를 권한다. 나는 아빠다. 우리는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부모다.


 



 


 


 

 


 


정우성

twitter:
@hanaeserin


두 아이의 아빠, 변리사, <특허전쟁> 저자, 곧 후속편 나옴



저서 사러가기 (이미지 클릭)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