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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8.화요일


춘심애비, 무천, 너클볼러


 



 

 

1. 나는 사업가이자 음반 제작자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러다 좆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정치고 사상이고 사회구조고 뭐고 씨바 내가 좆 될 거 같다. 그러니 잠깐 시간을 내어 한 인간의 간절한 호소를 좀 들어주시라.


 



 

나는 지금 공식적인 직업이 2개다. 그중 하나는 모바일 앱 사업가다. 2차 IT 버블을 타고 뭐 한따까리 좀 해먹어볼라고 자본금 1000원짜리 (천 만원이 아니라, 퇴계 이황 그 천원 한장) 법인을 만들었다. 이상하게 보지 마라, 법 바뀌어서 그래도 된다. 그래서 어찌저찌 해서 직원도 늘리고 사무실도 간지나는 거 하나 얻고 하다가, 현금흐름 말려서 직원들 월급도 밀려보고, 며칠 동안 잠도 못 자보고 다 해보고, 지금은 협력업체 관계였던 회사와 합병해서 졸라 한방 노리면서 일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인디밴드 제작자다. 현재 공식적으로는 2개의 밴드를 제작 중이다. 그 중 하나는 <제8극장>이라는 락앤롤 밴드, 또 하나는 <일단은, 준석이들>이라는 버스킹 밴드. 둘 다 나름 홍대에서는 팬덤도 있고 하다만, 시바 뭐 보통 사람들한텐 듣보잡이다. 제작자 잘못 만나서 졸라게 고생중인 인디밴드.


 


제 8극장


 


일단은 준석이들


 

한 몇년동안 밴드 제작하다가, 시바 돈이 너무 없어서 스낵면에 계란 풀어먹고 나서 그 국물이 아까워 냉동실에 얼렸다가, 다음날 전자렌지에 뎁혀서 밥을 다시 말아먹는걸 몇 번 반복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모바일 사업에 뛰어들었다. 다행히, 모바일 사업은 음반제작보다는 상황이 좀 나아서 라면 국물 뎁혀 먹는 살림은 면했다.


 

하지만 대충 한 1년 반쯤 전에, 나는 악마의 소굴에 발을 들이고 말았다. 미친종북좌빨좀비 사이트인 딴지 일보. 시바. 그 때 글을 몇개 싸지르다가 외부필진이 됐고, 어쩌다 보니 좌익좀비 딴지 편집부랑 술도 먹고 뭐 그렇게 됐다. 나도 왜 이렇게 된지는 모르겠다. 그냥 살다 보니 일케 됐다. 머 니덜도 다 계획대로만 살고 그런 거 아니니까 이해하리라 본다. 아님 말고.


 

게다가 씨바, 어찌하다 보니 내가 제작하는 2개 밴드가 몽조리 좌빨 행사에 졸라 불려나간다. 문재인 북 콘서트, 나꼼수 토크 콘서트 등등 탁 모씨가 연출하는 행사에 몇 번 나가다가 이 새끼들이 쓸데없이 공연을 잘했는지 어쨌는지 계속 불려나간다. 이러다 보니 어느 순간, 홍대 씬에서 어떤 사람들은 우리 애들이 무슨 존 레논이나 잭 델라로차 쯤 되는 줄 안다(이렇게 섭외됐던 거 진짜 찍고, 내가 딴지 글 쓰는 거랑 졸라게 무관하다.).


 

암튼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는 상황을 가정해봤다.


 

가만 생각해보니까 말이다.


 

씨바. 난 좆 된다.


 

박근혜 누님의 공약 및 새누리당의 집권시 정책행보를 통한, 내가 속한 업계 관련 정책의 추정에 의한 거다. 좀 더 설명해 보겄다. 일단 내 모바일 사업은 어떻게 되냐면,


 

 

현재 한국의 모바일 사업을 포함한 IT 사업은 크게 3가지 비즈니스 모델이 있다.


 

첫째, 대기업의 외주.


둘째, 스타트업해서 가능성 인정받은 후 투자를 받거나, 그 이후에 성공지표를 만들어서 피인수 당하고 Exit하기


셋째, 그냥 열심히 해서 B2B든 B2C든 벌어먹고 살기.


 

대기업 외주 받는 건, 어차피 받던 거라서 누님이 아무리 대기업 불공정을 뿌리뽑는다 해도 우리한텐 변화가 없다. 이건 뭐 누가 당선되든 마찬가지다. 그냥 '갑' 께서 우리가 싫어지지만 않으면 된다.


문제는 자체 비즈니스 모델이다. 마치 그룹계열사가 골목상권 침투하듯, 요즘 분위기는 IT업계에도 대기업의 계열사가 끼어든다. 실제로 모 기업들이 졸라 코딱지만한 국내 모바일 서비스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벤처 기업의 발상지인 미국과는 졸라게 다른 문화가 발생한다.


 

아시다시피 미국은 '엔젤 투자자'와 벤처캐피탈들이 깜냥 있는 스타트업을 졸라 찾아 다닌다. 그러다 눈에 들어오는 애들이 있으면 투자와 동시에 멘토링, 인적 네트워크 확장, 행정지원 등의 서포팅을 한다. 이건 물론 사회적인 공익을 위한 게 아니라, 싸게 투자해서 비싸게 팔아먹으려는 의도일 뿐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생태계가 조성됨으로써 미국에는 한 분기에만 수십 개의 스타트업들이 인수된다. 이 구조는 스타트업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나 기술력, 잠재력을 바탕으로 조기 투자를 통해 최소한의 R&D 기간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실현해낸 상품의 가능성을 기존 기업들이 인수함으로써, 서비스들의 질적 향상 및 업계 자체의 양적인 규모 확대를 계속해서 순환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다. 물론 이 내부적으로도 씨바 깔건 졸라 많지만 암튼 이로 인해 미국에서는 수많은 대학생들이 취업보다 창업을 먼저 고려하고, 실제로 그렇게 Exit 하는 비율이 적지 않아 청년 실업 문제라던가, 불필요한 인재매몰, 취업 경쟁률 과열 등의 사회적 순기능도 어느 정도는 수행한다.


 

 

[caption id="attachment_115691" align="aligncenter" width="437"] 본문과 상관없지만, IT 비즈니스 모델의 한 예[/caption]

 

근데 한국은, 그림이 좀 다르다. 대기업이, 계열사를 통해서 모기업의 사업에 도움이 될만한 아이템을 구현한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은 외주업체를 이용한다. 이 외주업체는, 그 아이템의 구현이 끝나면 밥줄이 끊긴다. 굳이 비유하자면, 미국에서는 쓸만한 스타트업을 좋은 계약금을 주고 정규직 채용한다면, 한국에서는 대기업의 자회사가 모기업의 예산으로 비정규직을 몇 달 돌리고 잘라버리는 거다.


 

여기서 악순환의 고리는 어떻게 시작 되냐면, 투자자본이 스타트업을 향하지 않고, 대기업의 자회사에 향하는 현상이 발생하면서이다. 마치 비정규직이 노동유연성을 갖듯, 똑같은 내용의 프로젝트에 똑같은 예산이 들어가더라도 외주형태의 계약관계에서는 갑 입장에서 노동유연성 및 자본유연성을 갖는다. 이 때문에 돈은 대기업 자회사로 들어가고, 스타트업들은 그걸 빼먹기 위해 그 자회사의 외주를 수주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그 스타트업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딱히 정당한 보상도 없이 인건비로써 갑에게 빨아 먹히는 거고, 갑은 그 상품이 실패하면 아무 리스크 없이 계약을 연장하지 않으면 땡이다.


 

쉽게 말하자면, 미국 스타트업들이 자신들의 상품 모델을 보여주는 것 만으로 수십억 투자를 받아 그 상품을 실현하는 동안, 한국 스타트업들은 자신들의 상품 모델을 보여줌으로써 외주를 따는 데에 그치고, 대기업의 이익에 맞는 모델로 변형되면서, 그 상품이 실패하면 바로 밥줄이 끊긴다. 그러니까, 대기업에 대한 적절한 견제는 단지 골목상권 뿐만 아니라 이쪽 IT업계에도 졸라게 중요한 이슈다.


 

근데, 이게 누님이 당선되면 좆 될 거 같다 이거다.


 

다음은 음반제작을 보자.


 

홍대 인디밴드는, 좆같은 음원시장 불균형 문제 때문에, 음원 팔아서 밥 벌어 먹고 사는 놈들은 손발가락 다하면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뭐야. 장기하도 있고 십센치도 뭐 다른 유명한 애들 몇팀 있잖아? 거의 아이돌 수준 아닌가?"라고 할 넘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걔네가 다다. 시바. 걔네만 먹고 사는 거고 걔네 말고는 음원 수익이 한 달에 5만원, 10만원 뭐 이래도 대박인 게 홍대 인디씬의 현실이다.


 



 

이 상황에서, 밴드들이 먹고 사는 건 '행사'다. 지자체나 기업에서 여는 문화행사, 축제 등등. 그리고 그 행사에 섭외되기 위해 필요한 건, 행사 시장에서의 명성과 방송 경험. EBS 공감이나 라디오 방송 좀 출연하면 그 때부터 섭외도 조금씩 들어오고 행사비도 오르고 뭐 그러는 거다.


 

근데 시바, 우리 가카때 김제동, 윤도현 짤리는 거 봤지. 좌좀 탁모씨가 기획한 공연에 수도 없이 나간 우리 애들 시바 지자체에서 하는 행사 나갈 수나 있을랑가 모르겠다.


 

설마 지방 행사 하나에 글케 영향 있나 싶으신가?


 

얘기 하나 해주면, 2010 월드컵 때, 그리스전 응원을 위해 행사를 한 적이 있다. 나름 방송에도 나오는 큰 행사였는데, 당시 연출부가 우리 애들한테, '그리스에 대해 한마디 하라'는 주문을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이런 거였다.


 

"그리스. 참 고대 철학, 문학, 신화, 민주주의 등등 인류에게 수많은 유산을 남겨줘서 고맙다. 근데 너네, 기원 후에는 도대체 뭐했냐?"



 

어차피 국가대항 스포츠고 하니까 좀 유치하게 나갔다. 근데 시바 연출부에서 이러더라.


 

"민주주의란 말은 뺍시다."


 

잘못 들었는 줄 알고 뭘 빼야 되는지 다시 물었다. 연출부의 골자는, 이렇게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있는데 '민주주의'라는 선동적인 단어는 빼달라는 거였다.


 

씨바 민주주의가 선동적인 단어인가? 그럼 뭐 시바 가카 정부는 민주주의가 아닌가?


 

 

[caption id="attachment_115695" align="aligncenter" width="272"] 아니었을 수도...[/caption]

 

 

뭐 글 타고 우리가 거기서 '우리 이런 행사 하지 않겠습니다' 이럴 수도 없고, 5분 후에 무대 올라가야 되는데 연출부랑 민주주의란 무엇인지에 대해 토론을 할 수도 없어서 그냥 넘어갔다. 실제로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쓰지 못했다.


 

물론, 가카가 아무리 디테일 할 지언 정, 월드컵 응원전에서 사용 가능한 단어 리스트를 각 방송사에 보냈을 리는 없다. 그저, 연출부의 자체검열일 뿐이다. 이러이러한 단어들은 자제해야 뒷 탈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 가카 정부가 우리에게 남긴 건 그런 거였다. '민주주의'라는 말마저도, 혹시나 문제가 될까 싶은 자체검열 기준.


 

유신독재를 조기 교육받은 우리 박누님이 정권을 잡는다면 어떨까. 이런 자체검열이 졸라 눈 녹듯 사라지겠냐. 실제로 누님께서 한마디도 안 하셔도, 행사 섭외부는 뭐 암튼 쫌만 이라도 사고칠 위험성이 있는 새끼들은 섭외 대상에서 제외할거다. 물론 방송도 그럴 거다. 박누님은 은혜를 져버리실 그런 분이 아니니까, 열심히 도와준 K본부 M본부의 요직을 그대로 유지해 주실 거고, 그러면 김제동 윤도현 이은미는 다들 방구석으로 돌아가야 될 거고, 하물며 좌빨 행사 전문 밴드들이 출연 기회를 얻을 리가.


 

박누님이 그렇게 가이드를 주실 리는 엄따. 다만, 그런 자체검열이 계속될 거라는 거다.


 



 

 

시바 그래 나는 뭐 어떻게 잘 대기업 외주 받아가면서 근근이 산다고 치자. 준비하던 자체 서비스 그냥 접고 열심히 외주하면서, 최대한 계약 안 끊기게 성실하고 근면하게 솔선을 수범한다고 치자.


 

우리 애들은 어쩌나. 얘들 그냥 생업이 음악이라 방송이고 행사고 끊기면 그냥 백수다. 그럼 나는 그 월급 또 쪼개서 애들 밥 좀 사주고, 돈 못 모으고, 그래서 장가 못 가고, 그렇게 다같이 그로우 올드 앤 다이 얼론 하겠지 시바.


 

자. 열분께 부탁한다.


 

나와 우리 밴드 애들이, 이러다 씨바 좆될 거 같다.


 

뭐, 문재인이 대세 잡았다고? 이대로 가면 이긴다고?


 

조까 시바 그래서 노태우가 대통령 되고 4.11때 새누리당이 다수당 먹냐.


 

이 나라의 서민을 위해, 노동자를 위해, 예술가들을 위해 투표해달라는 거창한 위선은 안떨겄다.


 

시바 그냥 내가 좆될거 같다. 존나 불안해서 잠도 안온다 시바. 제발, 제발 꼭 투표해주시라.


 

그 투표로 나랑 우리 애들 좀 살려주시라.


 

 

 

 

춘심애비


트위터 : @miiruu


 

 



 

 

2. 나는 아빠다.


 

나이는 삼십대고, 장미란 같은 세 살 박이 공주님을 둔 행복한 아빠다( ㅠㅠ 야호~ ). 난 춘심횽아처럼 앞뒤 없이 속을 다 까는 일은 않을 꺼다. 사람은 항상 뒷쿠를 봐야 하니까. 그저 부모 잘 만나 타국에서 학생을 가장한 백수짓을 하고 있다는 정도로 정리를 해 두자.


 

딴지일보라는 미친종북좌파빨갱이편파 사이트에 외부필진이라는 따까리로 글을 쓴지도 1년이 지났다. 대망의 대선을 앞두고 우리가 처한 퐌타스튁한 상황을 다시 한번 복기해 보고자 한다.


 

말했듯이 나는 아빠다.


 

것도 그냥 아빠가 아니라, 대한민국 3대 수드라 신분 중 하나인, 군바리 바로 위인 나이든 학생이다. 아빠도 급이 있다. 딴지 일보에 절찬리에 연재됐던 정우성님이 쓴 ‘나는 아빠다’에 나오는 정도의 아우라를 가지려면, 직업도 변리사 ‘쯤’ 되어줘야 하고, 집도 있고, 차도 꾸질하지 않은 걸로 제법 굴려야 어디 가서 아빠 소리를 낼 수 있다.


 



 

나처럼 허구한날 체인이 벗겨져, 열쇠도 없이 길가에 대어놔도 거들떠도 안보는 자전차가 애마인 뚜벅이 족은 ‘너도 아빠냐’는 시시때때로의 존재적 도전에 직면한다. 다행히 머나먼 타국에서 그나마 아빠인 척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은 당근 내 팔팔한 XY의 파트너가 되어준 훌륭하신 친구님의 XX 염색체 덕이기도 하거니와 올 초 졸업한 친구님이 집안의 생계의 상당부분(최근은 사실상 전부)를 이끌어 나가시는 덕이기도 하다.


 

내가 원하지 않은 임신 축복받은 아빠가 되게 된 것은 불측의 사고 때문이다. 뭐 3%의 그 된장 맞을 확률에 걸렸냐, 콘돔이 불량이었더냐, 콘돔회사에 소송이라도 걸지 그랬냐, 게서 지랄 맞은 호들갑을 떠는 너네들, 마 - 다 - 내 잘못이다...


 

하지만, 나 남자다. 절대 캐나다서 태권도장을 하고 있는 둘째 처남이 무서웠다거나, 용인대 유도과 졸업생으로, 국대 출신 친구들이 즐비한 막둥이 처제가 무서워서 이런 결단을 내린 거 아니다. 목회하시는 장인이 새벽마다 새벽기도로 저주를 내리시는 걸 두려워해서도 아니다. 남자는, 마, 책임, 그러타, 책임으로 말하는 거다.


 

비행기 티켓팅부터 재입국까지 3주가 걸린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일정 속에,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했고, 다시 타국으로 잘 돌아왔지만, 문제는 예서부터 발생했다. 반대를 무릅쓴 결혼에 대한 보복으로 집에서부터 지원이 딱 끊긴 거다. 아예 전화도 안 받으신다. 결혼은 시켜줬으니, 이제 내 자식 아니라는 거지. 냉정하시데. 뭐, 쿨 하게... 여러 번 빌고 전화로 통사정했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해서 타의로 독립을 선언하게 된 거다.


 

졸업을 반년 남겨둔 친구는 계속 학교를 나가야 했고, 일단은 먹고 살아야 하니, 휴학을 한 채 일자리를 찾아 다녔다. 정규 일자리는 세금, 아, 그놈의 세금. 56만원까지는 세금이 안 깎이고 57만원부터는 세금이 많게는 1/4가량 떼이는 이 부조리가 믿기는가. 결국 어둠의 일자리를 찾아, 탈세로 탈세로 향해야 했다.


 

그 와중에 친구는 졸업하고 출산은 다가오는데, 어쩌냐. 당장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데.


 



 

친구가 학생 때 들어둔 7만원 짜리 학생의료보험 하나만 믿고 무턱대고 지역 가족청을 찾았다. 진짜 안 도와주면 배라도 까뒤집고 누울 생각이었다. 근데 웬걸 - 날 한번 흘겨 본 가족청 직원이, 내 소득상황만 체크하더니 몇 마디 물어보는 것도 없이 도장 쾅~ 찍고 ‘며칠 있다 쏴 주께’로 끝내는 거 아닌가.


 

그리고 며칠 뒤, 거짓말 같이 300만원이란 거금이 입금됐다. 한 달을 2.5명이서 20만원으로 날 때였다. 내 은행계좌 내역을 보여주고, 서류 한 두 장 쓴 게 단데, 난 세금도 여지껏 십 원도 안냈는데, 걔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내 이름도 발음 못하는데, 난 외국인인데... 내가 ‘아빠가 될 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300만원을 그냥 쏴 준거다.


 

300만원의 세목을 보니, 한술 더 떴다. 지나가듯이 말한 최근 우리가 이사했다는 말을 기억하고, 이사비용지원에, 아이방 도배비용, 아이유모차 비용까지 산정되어 가산되어 있었다.


 

허 - 이런 징하게 알흠다운 놈들.


 

출산에 닥쳐서는 더했다.


 

출산하고 싶은 병원을 미리 선택해, 편한 시간에 견학을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담당 산부인과 과장이 나와 출산과정과 출산방법을 설명해 주며, 수술실, 회복실 하다 못해 구내 식당까지 투어를 시켜 줬다. 막상 일이 닥치면 어떻게 될까 내심 걱정했었는데, 이렇게 한번 투어를 돌고 나니, 스타를 복기하듯 시뮬레이션을 한번 돌려볼 수가 있어 마음이 편했고, 친구는 그런 날 보며 든든해했다.


 

다들 아이 분만은 어떻게 하셨나? 차가운 수술실에 올라가 다리 벌리고 있는 산모를 보며, 캠코더를 든 손을 같이 덜덜 뻘며 그 과정을 향유하셨나? 우린 자유분만과 수중분만을 섞은 혼합분만을 했다. 한국에서 수 백만 원을 한다는 그 수중분만을 폼 나게 한번 우리도 해 보고 싶었지만, 감염의 위험이 희박하나마 있다는 걸 어디선가 본적이 있어 - 아 이 저주받을 잡식의 박식 스러움 - 그냥 안전한 혼합분만을 택하기로 했다. 친구님은 장차 집안의 기둥이니까.


 



 

혼합분만은 뭐, 별거 아니다. 유도분만제 맞고 시간되면 다짜고짜 수술대 위에 올라가 다리 벌리고 눕는 게 아니라, 산모가 충분히 출산의 준비가 될 때까지, 욕조에서 긴장을 이완한 채 전문 조산원과 준비를 하다, 충분히 자궁이 열리면 출산실을 옮겨 출산을 하는 거다. 초산에 한껏 긴장해 있던 친구도, 촛불로 은은하게 유지되는 조명 속에, 욕조에 몸을 누이고 허브향을 맡으니 한결 덜 고통스러워했고, 야릇한 분위기 속에 아시아 여자 하나, 서양 여자 하나와 같이 욕조 옆에 있는 이 생경한 경험에 나 또한 뭐, 뭐, 굳이 표현하자면 Not Bad 였다. 남은 출산과정은 출산용 침대 근처서 앉았다, 누웠다, 일어섰다, 엎드렸다 하며, 힘을 줬다 뺐다 하는 과정인데, 진짜 똥쌀 힘까지 다해 아기를 낳는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 같이 힘을 주다 나도 약간 지린 것 같았는데, 이건 뭐 떠올리기 싫은 경험이니 넘어가도록 하자.


 

여하간 출산과 연계되어 제공되는 프로그램으로, 예비 엄마아빠의 출산교실, 출산 후 산모의 체형관리 교실, 출산 후 전문 산후조리원의 가정방문 도우미 서비스 및 출산과 관련된 입원비 등 모든 제반비용과 아이의 생후 3년간에 걸친 예방접종 그리고 진료시의 치료비 등 까지 이 모두 월 7만원씩 내던 친구의 학생의료보험 안에서 해결이 됐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을 해야 할 판국에 하느님이 보우하사 그물망을 내려주신 거지.


 



 

지금? 지금은 어케 사냐고.


 

다행히 잘 키운 와이프 하나가 졸업을 무사히 하여 열씨미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다. 난, 우주경제를 걱정하고 있고. 근데 친구님이 아직 취직을 하신지 얼마 안되셔서 비정규직인데다 월급도 실하지가 못하다. 얼추 맞추면 한 달에 150만원 정도 될려나. 이걸로 우리 3식구가 한 달을 나야 하는 거다.


 

집 값으로 매달 70만원, 가족 보험비로 17만원, 전기세로 13만원 정도에다, 각종 통신비로 10만원 정도 나가고, 아이 유치원비로 매달 40만원 정도 내야 하니 이 정도에서 벌써 구멍이 난다.


 

아마 소득하한선(월 240만원 소득)으로 분류되어 아이 유치원비가 전액 감면되지 않았다면 살기가 많이 빡빡했을 거다. 다행히 올해부터 3살이 된 우리 장군님은, 3살 이상은 무조건 무상교육이란 규정에 따라 소득과 상관없이 유치원비를 내지 않게 되어 한결 수월해졌다.


 

얼마 전 유치원 재롱잔치에 갔는데 우리 장군님이 잘 적응을 못 하더라. 딴 얘들은 다들 노래 부르고 춤추는데 얘는 그저 먹는데 정신이 팔려 어쩔 줄을 모르더만. 먹을 것을 적게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의사소통이 안 되서 '따'당하는 건 아닌가 잠시 걱정하다가 장군님 곁으로 가 장군님이 좋아하는 빵들을 슬쩍 내 호주머니에 챙겨왔다. 뭐-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냐. 주변의 조언만 듣고 모국어만 우선적으로 가르쳤더니, 현지어를 이해 못해 못 섞이는 게 아닌가 걱정도 해 보고, 일주일에 한번씩 현지어로 집에서도 대화를 할까 고민해봤는데, 그냥 관뒀다. 걔나 나나 어슷비슷하겠더라고 말하는 건. 그제 학부모 모임에 갔더니, 3살 반부터는 외국아이들의 경우 따로 특별히 언어교육을 좀 더 한단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우리 장군님이 말이 많이 늘었다. 조만간 날 추월하지 싶은데, 그 때를 대비해 군기를 바짝 잡는 중이다.


 

내년 3월부터는 장군님만 좋다면, 발레학원이랑 악기학원에 보내려고 생각한다. 발레는 지엄마가 O(오)다리라 예방차원에서 내가 강력하게 주장하는 거고, 악기는 저만 즐거워하면 첼로를 가르쳐 볼려고. 어차피 시에서 1/3을 재정지원 해 주기 때문에 월 5-6만원이면 둘 다 가르칠 수 있다.


 



 

어떠냐.


이 정도면 나름 쓸만한 아빠 아니냐?


뭐? 내가 하는 건 아무것도 없지 않냐고?


 

이런 '사회안전망'이 있는 곳을 택해 안전하게 낳아준 게 어디야. 바로 다 내 덕인 거다.


 

올해에 장군님이랑 친구가 먼저 들어가는 것을 잠시 의논해 본 적이 있다. 절대 두 여자의 감시에서 벗어나 친구들 파뤼에도 한번 기웃거려보고, 말 잘 통하는 러시안 처자들과 밤새워 슈납스도 코 삐뚤어지게 마셔보고 싶어서가 아니고, 그저 손녀를 가까이서 보고 싶어하시는 애달아 하시는 부모님들과, 장군님의 교육문제 그리고 어차피 삶의 터전이 될 한국에서 미리 준비를 하자는 장래의 진로에 대한 염려 끝에 ‘사심없이’ 한 권유였다.


 

근데 계산기를 좀 두드려보니 답이 바로 나오더군. 양가 부모님들은 다 지방에 계시지, 친구는 서울에서 자리를 잡아야 하지, 당장 거처할 집에, 생활비에, 이동할 교통비에 이리저리, 비용만 쌓여가는 거다. 결국은 돈이 문제. 당분간 거주지가 2곳이니 2중의 주거비용이 들테고, 친구가 들어간다고 해서 당장 직장이 쌍수 들고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최대한 낙관적으로 봐서, 친구가 월 2백으로 곧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쳐도 월세, 공과금, 아이 양육비, 생활비, 의료비, 부모님 용돈 등을 계산해보니 빠듯하거나, 허덕이겠고, 부모님들께 아이들을 맡길 수도 없는 처지니, 친구가 2배의 몫을 해내어야 한다는 답이 나왔다. 친구가 바로 두 손 들고 주저앉는 건 당연지사.


 

뭣보다 친구가 주저앉은 건, 올 초 한국에 아이와 함께 자시 들어갔다 겪은 유모차 문제.


 

한국에서 3살 미만의 아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다니는 거냐? 무슨 휴대용 고양이 집 같은 아이들을 위한 간이 이동시설이 있는 거냐? 아니면 혼자 걸어 다닐 수 있을 때까지 아이는 집에만 박혀있는 거냐. 도무지 차가 없이 유모차만으로는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게 친구의 결론였다.


 

차가 없냐고? 당연하지. 나 장롱면허만 합치면 십 년이 훌쩍 넘는 무자차주다. 말했잖냐, 내 애마는 도둑들도 안 쳐다보는 낡아빠진 자전차에, 든든한 두 다리 뿐이라고. 그래도 여기서는 이동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종종 왕복 50-100km 가 넘는 장거리를 아이와 함께 이동해야 할 때가 있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다. 이곳은 택시, 버스, 지하철, 기차 모든 대중 교통수단에 의무적으로 유모차를 위한 공간이 비치되어 있다. 그 말인즉슨 이 모든 대중기관에 유모차로 손쉽게 접근이 가능하다는 거다. 우리나라 버스처럼 다리 짧은 사람은 앞문으로 타기도 힘든 높은 계단? 그런 거 없다. 심지어 휠체어까지 손쉽게 승하차가 가능하도록 차체와 도로의 턱이 균등하게 설계되어 있다. 유모차를 끌고 다닐 수 있는 길이 모든 인도에 연결되어 있는 것은 당연한 거고. 다들 아이들을 짐짝처럼 들고 다니는 거냐. 아니면 포대기에 싸매고 다니는 거냐. 근데 왜 그렇게들 여기 사람도 잘 안 쓰는 수백 만원 씩 한다는 슈토케 유모차는 불티나게 팔리는 거냐?


 

해서, 결국 넉넉히 살지도 못하고 따로 떨어져 고생만 똑같이 직사하게 할 거 그냥 같이 살자고 합의 봤다. 대충 월봉이 4-5백 정도 되고, 자가용이 없지 않으면 정상적인 도시민의 생활이 불가능해 뵈는 게 서울이더라.


 



 

실은 비밀이지만, 친구가 정규직이 되는 내년 초쯤에 둘째를 한번 계획해 볼까 한다. 우리보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둘째는 꼭 있어야 한다는 주위 충고가 설득력 있게 들려서이기도 하고, 아이를 가지면 가외의 생기는 가외의 소득에 솔깃해서이기도 하다. 알아보니, 아이를 출산하면, 법적으로 출산 후 3년까지 아이엄마와 아빠가 선택해서 최대 12개월까지 유급휴가를 낼 수 있단다. 그 기간 동안 기존 임금의 65-75%를 받을 수 있고, 복직 후 불이익도 없고 말이지. 게다가 이제 세금을 내서 무상보육비와는 별도로 아이가 18세가 될 때까지 아이 하나당 매달 30만원 정도의 아동수당이 지원이 될 테니, 월 60이면 제법 든든한 수입원이다. 아직 이 정보를 모르는 친구 몰래 아동수당을 신청해서 내년쯤 별렀던 컴퓨터를 한번 바꿀까 싶기도 하다. 들키면 뭐, 죽이기야 하겠어.


 

근데, 나, 걱정이 하나 있다.


 

이렇게 해서 덜렁 얘까지 하나 더 낳았는데, 신의가호로 내 일정이 대폭 축소되어 내년 말이나 내후년쯤 우리 가족이 급작스럽게 귀국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되는 거냐.


 

백수 엄마, 아빠가 갓난쟁이 하나에 -듣자 하니 갓난쟁이 하나에 들어가는 돈이 한국에선 최소한 월 백 만원이라는데- 4살 박이 얘를 한 팔에 하나씩 끼고, 서울에 상륙하면 살 수가 있는 거냐.


 

저소득층 무상보육도 곧 폐지되고, 무상급식, 무상교육도 다 도로아미타불이 되버리면, 난, ‘저 거지에요’를 입증하러 동사무소로 구청으로 뛰어다녀야 하는 거냐. 선별적 복지가 도대체 무슨 말이냐. 아이가 제대로 된 보육을 받고, 교육을 받고, 치료를 받는데 부모의 소득이 왜 중요한지 모르겠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이는 태어남과 동시에 의식주에 대한 보장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게 바로 보편적 복지 아닌가. 아버지가 이건희건 정몽준이건 먼저 똑같은 혜택을 줘라. 우리가 받는 혜택을 저네도 받아야 그게 좋은지 나쁜지 알 거 아니냐. 그리고 추후에 따로 더 세금을 걷는 거다. 감사하게.


 

왜. 우리 아이가 사회가 제공해야 마땅한 당연한 권리를 누리기 위해, 아비의 무능함을 낙인마냥 이마에 새기고 다녀야 하는 건가. 그 과정에서 아이가 받아야 하는 상처는 누가 쓰다듬어 주고.


 



 

그제 토론을 보다, 박근혜 후보가 줄푸세는 경제 민주화라는 씨알도 안 먹힐 농담으로 국정을 농하는걸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 그래서 그제 투표하고 왔다. 예서 투표장까지 갈려면 왕복 4시간에 차비만 5만원이다. 니네 그거 아냐. 나 이번에 우리 장군님 기차놀이 장난감 사줄려고 하루에 3천원씩 한달 가까이 은행에 저금한 사람이다. 짱깨 같이 생긴 외국인이 한 달을 매일 줄 서서 2천원이나 3천원씩 입금하면 나중엔 창구직원이 널 또라이로 추정하는 참사가 생긴다. 근데, 5만원이라니!


 

알다시피, 나는 아빠다.


 

수드라 계급에, 무능한 룸펜에, 셔터맨이나 꿈꾸는, 주는 것 없는 한심한 아빠지만,


하루에 한 시간은 우리 장군님한테 책을 읽어주고, 자기 전에는 되도 않는 호랑이 이야기로 버전만 벌써 수 백 개가 되는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빠다. 이 당연하지만 감사만 일상이 가능한 것은, 이미 나 같은 아빠를 꿈꾸던 예전의 어느 아빠들이 기나긴 수고로움 끝에 만들어놓은 복지시스템에 운 좋게 무임승차해 이 평온을 누리고 있는 덕택이다.


 

어느 아빠가 그러고 싶지 않을까.


 



 

우린 아빠다.


아이의 자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깨어있는 모습에 인사하고, 피곤에 쩔어 잠에 빠진 아빠의 모습이 아니라, 활기차게 아이와 함께 뛰어다니고 싶은 모습으로 함께하고 싶은 아빠다.


 

우린 아빠다.


비록 지금은 어쩔 수 없는 환경과 여유의 부족으로, 기계 속 톱니바퀴로 시름시름 앓아가는 아빠지만, 아이들에게만큼은 부속품이 아닌 제 몫의 환경을 만들어 돌려주고 싶은 아빠다.


 

맞다. 우린 아빠다.


지금의 끝없을 것 같은 가난을 거쳐 아이의 아빠 됨이 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면, 기꺼이 우리의 수고로움을 디딤 삼아 아이의 무임승차를 반길 우리는 아빠다. 아이에게 보다 나은 미래와 사회제도를 선물하도록 하자.


 

우린 아빠다.


아빠야, 투표하러 가자.


 



 

 

 

무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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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는 회사원이다.


 

춘심애비가 애인도 없는 완전한 총각체이고, 무천이 아내와 아이가 있는 구조적으로 완벽한 가장 1호기라면 나는 맞벌이하는 아내를 두고 있는 일종의 반가(반쯤 가장)다. 아내와 나름 꿍짝이 맞아(?) 아직 아이는 없다. 나름 둘이 좀 여유 있게(이건 아기 있을 경우에 대한 상대적인 여유를 뜻한다) 열심히 잘 맞춰 살아보자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애가 나와 봐야 '세상이 뭐 재미나 있겠나' 싶은 일종의 절망 같은 게 작용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 탓에 내 또래 친구들이 결혼해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면 부럽다가도 한 개도 안 부럽고 그렇다.


 

뭐 나름 아내와 열심히 잘 살고 있고, 아덜에게 아직 좋은 세상이 아니라는 믿음엔 변함이 없다. 가끔 내가 부모 될 자격이 있는가 싶기도 하고...


 

춘심애비가 사업에, 인디밴드 제작(사실 내가 알기론 몇 가지를 더하고 있다)까지 하고 있는 팔색조의 총각이라면, 무천은 먼 타국에서 일가친척의 도움 없이 학업과 가정을 꾸려가는 자립형 가장이겠고, 나는 그냥... 회사원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믄 반도체 유통업에 종사하는 세일즈맨이고 직급은 일개 ‘과장’이다. 굳이 ‘일개’를 붙인 이유는 회사가 작은 규모여서 직급이 크게 상관없는데다 세일즈라는 업무의 특성상 사원이어도 ‘을’, 주임이어도 ‘을’, 대리여도 ‘을’, 심지어 사장이어도 ‘을’이다. 그러니까 그냥 ‘을’인 거다.


 



 

단도직입적으로다가 이 정도의 형편인 나는 누굴 지지해야겠는가?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독자제위라믄 누굴 지지하겠는가? 사실 애초에 누군가 대통령이 된다고 세상이 바뀐다는 생각해본 적 없어 큰 기대도 없다. 심지어 운동권의 정치세력화란 꿈이 실현되어 ‘민주노동당’이 만들어 졌을 때도, 운동권에 발을 붙이고 있었으면서도 세상이 바뀔 거라 생각하지 않았으니깐. 솔직히 아직 '진심'으로 누군가를 결정하지 못했다. 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말이다. 여전히 다수의 이익을 대변해 줄 수 있을 것인가에 의문이고, 소수의 권리를 제 입장처럼 보호해 줄 것인가에 의문이고, 해방 이후 단 한번도 다수의 편이었던 적이 없는 권력이 단 한 번의 대선으로 커밍아웃이 가능한지가 의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만은 확고하다. 어제 있었던 3차 TV토론으로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 졌다.


 



 

십 수년 전, 여차저차, 이러쿵저러쿵 하다 보니 나도 대학이란 델 들어가게 되었다. 내가 입학하던 당시에도 이미 대학은 차고 넘쳐 '가고 못 가고'가 아니라 '어디엘 가느냐'가 중요한 때였다. 나 역시 어딘가 들어갔다. 가고 싶어서 갔냐고? 왜들 그러냐 선수들끼리. 점수 맞춰서 갔다. 점수. 여기서 진짜 중요한 사실은 내가 학력고사 세대 아니라 수능세대라는 것이다. 게다가 수능 원년도 아닌 3년차 세대다. 지금 수험생과 크게 다르지 수능세대인 것이다. 문득 꼭 밝혀두고 가고 싶었다.


 

대학에 들어갔고 운동권에 발을 들이고는 5년 정도 활동했다. 아무런 계획도, 의도도 없었으나(하긴 무천도 그렇게 장군님을 얻었으리라) 어느 날 보니 아스팔트 위에 드러누워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일꾼에서 시작해 간부까지 했으니 그리 긴 시간도, 그렇다고 짧은 시간도 아니었다. 안에서는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허구한날 갈등했고, 나와서는 5년의 시간을 까먹은 탓에(게다가 IMF 직후였으니) 현실에 진입하기 어려워 개고생을 했지만 그렇다고 그 5년이 내 인생을 규정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탓에 짧지 않은 내 인생의 가장 중요했던 시간을 뽑으라고 한다면 아마 신입생시절 다른 동기들이 시험 준비할 때, 현대사 댓거릴 준비하던 바로 그때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아. 그때 처음 알았다. 세상이 내가 알던 세상과 졸라 다르다는 것을...


 

나는 독재와는 무관한 세대다. 이승만은 뭐 아예 상관도 없고, 박정희가 죽던 해엔 고작 두 살이었고, 80년엔 광주가 우리나라에 있는지도 몰랐다. 87년 6월에는 쉬고 있는 전경 옆에 앉자 빵이나 얻어먹고 있었고, 88년 올림픽 때는 대통령을 능력자라 생각했던 초딩 중 하나였다.


 

생각해보니 초딩 시절 1년에 한번씩 큰 천막이 세워지고, 그 안에서 반공영화를 상영하곤 했었는데 대부분 빨갱이가 남한군을 고문하고 죽였지만 결국 남한군이 이긴다는 뭐 그런 '권남징북'한 설정의 영화들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와 운동장에 떡 하니 서있던 이승복에 동상을 보믄서 살짝 고마워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말이다. 설마 설마 했다.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이가 북괴군이랑 똑같은 짓을 국민에게 일삼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아무도 내게 박정희가, 전두환이, 노태우가 그런 놈이라는 걸 알려주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밖에서도... 그제서야 친일로 나라를 팔아 묵고 축적한 재산을 돌려달라 나라를 상대로 소송을 하고 자빠졌다는 신문 기사도 눈에 들어오고 그러더라. 이게 나라냐.


 



 

30년을 독재자가 지배했던 나라라는 것도 쪽 팔려 죽겠는데 과거 아버지의 독재에 사과도 없는 독재자의 딸이 대통합을 말하며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오겠다는 시도가 현실이 된 몇 달 전부터 필자 마음속으로 다짐한 것이 하나 있다. 박근혜가 당선되믄 조용히 언제 그랬냐는 듯 '극렬좌경용공빨갱이' 언론사인 딴지 일보 필진의 탈퇴가 바로 그것이다. 그땐 이미 늦었을지 모르겠다만 '전향'하는 액숀이라도 보여줘야 할 것 아닌가 싶은 거다. 블로그도 닫고 조용히 5년을 버텨낼 생각이다. 두려워서 그런 것도 있고, 쪽 팔려서 그런 것도 있다. 투사가 못될 바에야 권력을 향한 욕도, 비판도 분위기 봐가면서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배운 건 없어도 눈치 하난 기가 막히다. 남의 똥꼬 찌르려다 내 똥고 허는 그런 시츄에이숀은 대충 감이 온다. 감이...


 

사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서 만족스러웠던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내 주뎅이와 손꾸락을 내 맘대로 놀릴 수 있었다는 것. 지금은 어떠냐. 건설회사 사장이란 분이 대통령이 되고 난 뒤 보여준 소통이라는 거, 아무리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아우성을 쳐도 콘테이너로 산성을 쌓고는 죄다 잡아가고 쌩까는, 딱 그 정도다.


 



 

아버지를 보며 정치를 배웠을 그녀가 된다고 생각해보자. 독재자를 통해 민주주의를, 소통을 배웠을 리 만무하다. '약은 약사에게, 물은 셀프, 독재는 독재자에게'인 거다. 하긴 생각해보니 내가 딴지 일보 필진에서 도망가기 전에 딴지 일보가 '폭망'할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 나 그냥 조용히 입 닫고, 손 잠그고 살란다. 그러다 열통 터지믄 술 마시믄 되고, 술 깨고 또 열통 터지믄 다시 술 마시면 된다. 그러나 속병 생기면 병원댕기면 대고, 그러다 괜찮아지믄 다시 술 먹으면 된다. 그렇게 5년 버티면 된다. 문제는 술 먹을 돈인데...


 

우리가 흔히들 ‘마트마트’ 하잖냐. 대형 마트 뿐만이 아니다. 내가 발붙이고 있는 반도체 업계를 포함해 대부분의 유통업계의 사정이 그렇다. 이미 큰손(재벌)들이 시장 깊쑤키 들어왔다. 생각해보라 마트 뿐이냐. 빵집도, 분식점도, 극장도 다 똑같다. 다시 말하믄 내가 먹고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졸라 없다는 걸 뜻한다. 얼마 되지도 않은 시장에서 서로 먹고 살기 위해 피를 흘린다. 다른 유닛 없이 하루 좽일 중앙에서 저글링만 하고 마는 거다 힙 겹고, 때론 누추하게... 그마저도 대기업이 맘만 먹으면 우리 같은 공급자들은 순식간에 시장에서 몰려나 손쉽게 관람객처지가 된다. 그래서 이 바닥에선 시장이 경직되면 작은 놈부터 굶어 죽는 것이 진리다 진리.


 

줄푸세와 경제민주화를 동일한 개념이라 이해는 이가 대통령이 되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경기부양'이라는 명목으로 줄푸세를 통해 재벌은 시장을 조금 더 손쉽게 장악할거다. 우리의 주머니는 점점 거덜 날 테고 ‘같이 좀 먹고 살자’고 지랄하다 운 좋으면 재벌이 적선하는 듯 조금씩 던져줄 거다. 아마도 그걸 '(지들만)경제 민주화'라고 하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 어른들은 부자 되려면 장사(사업)하라고 그랬다. 장사(사업)를... 지금 어디 가서 장사(사업)하겠다고 그래 봐라. 닥치고 공무원시험이나 준비하라고 할거다 아마. 안타깝게도 난 공무원시험 준비할 시기도 이미 지났다. 대통령 잘못 뽑았다가는 돈이 없어 술도 못 먹게 생겼다. 에라이...


 



 

그래 한 때 ‘불순좌익용공세력’이었던 쉐이의 졸 오바질이라 치부할 수 있다. 근데 나 니덜이 말하는 그런 거 아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장 눈치도 봐야 하고, 고객 눈치도 봐야 하고, 집에 가선 때론 아내 눈치도 봐야 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아내가 지금의 회사의 정규직이 되기까지 딱 7개월의 계약직 근무 기간이 있었다. 딱 7개월이었는데도 마음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딱 7개월이었는데 말이다. 대기업 정도 다녀야 결혼하고, 집 얻고, 애 낳고 교육시킬 수 있는 뭐 그런 거 말고, 평범한 중소기업 다녀도, 동네에서 순대 좀 팔아도, 빵 좀 팔아도 결혼하고 집 얻고, 애 낳아 교유시킬 수 있는, 뭐 그렇게 좀 살자. 같이 좀 먹고 살자는 거다. 그런 세상 좀 꿈꾸는 게, 그게 그렇게 불순하고 좌익스럽고 용공스런 거냐.


 

그래. 찌질 하게 세상 탓이나 하고 자빠졌다 손꾸락질 할 수도 있다. 내가 말한 유통업계에서도 큰손들의 틈새를 비집고 성공하는 이들이 있다. 사실이다. 그 중에 큰손에 줄이나 연이 있어 한 두 개씩 빼어 들고 나와 성공한 이들 빼고, 어디서 돈 보따리를 들고 와서는 시장 일부를 쓸어 담은 이들 빼고, 진짜 맨땅에 헤딩해서 성공한 이들 몇이나 될 거 같나. 애초에 그런 성공 접은 지 오래다.


 

일할 기회를,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이들이 꿈꾸는 건 성공시대의 주인공이 아니다. 넘치진 않아도 노력한 만큼 행복했던 순돌이나 만수 아부지 같은 한 지붕 세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은 거다. 거기다 대고 성공할 수 있다. 땀 흘려라. 최선을 다해라. 기회는 있다. 나도 고생했다 뭐 이런 말 하는 대통령. 다시는, 다음 생애에서도 만나고 싶지 않다.


 



 

난 이틀 뒤에 무조건 투표한다. 내가 꿈꾸는 세상이 내 한 표로 눈앞에 성큼 다가 올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 아니다. 내 한 표가 내가 꿈꾸는 세상이 저 앞에 있는데 적어도 U턴하지는 않게 해줄 수 있을 거란 작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시민의식이니 정치적 실천이니 뭐 이런 말들 다 때려치우고서라도 철저하게 나만을 위해서 생각해도 박근혜는... 아니다.


 

박근혜가 나를 위한 선택이라 생각하는 분덜께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길 부탁 드린다. 박근혜가 우릴 위할 것인지 아님 대통령이 되기 위해 우릴 필요로 하는 것인지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 봤더니 나를, 우리를 위하는 이가 박근혜로 결론 났다면... 앞선 질문을 다시 한번 부탁 드린다. 1번으로 부족하면 2번을, 2번으로도 부족하면 3번이라도 부탁 드린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나라가 뒤집어 지거나, 과거 군사독재시절로 순식간에 회기 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냥 저냥 누군가 에겐 그녀의 나라가 유토피아일지도 모를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무기력하게 서서히 조때기 싫다. 앞으로의 5년을 조때쥐 않으려고 발악만 하믄서 살기도 싫다. 딴지 필진도 조금 더 해야겠다. 혹시 아냐. 직장에서처럼 5년 정도 근속하믄 금 반에 반 돈이라도 줄지... 조땔지 모를 나를 봐서라도 함께 투표 하자. 그럼 우리 앞으로 5년 동안... 같이 좀 살게 될지도 모르니깐 말이다.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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