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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30.일요일

 

 

논설우원 파토

 

 

 

 

 

 

 

 

 

 

 

 

 

 

 

 

 

 

 

 

 

 

 

 

 

 

 

 

 

 

 

 

 

자, 열분들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인류는 지난 21일에 멸망하지 않고 멀쩡한 거다.

 

 

 

 

 

 

 

 

 

암튼 이렇게 또 한번의 시끄러운 죽음의 예정일이 지나갔다. 우원의 그닥 길지 않은 인생 중에도 인류가 멸망한다는 소리를 들은 게 꽤 된다. 1982년 소위 ‘행성직렬’ 때나 86년에 핼리혜성이 지나갈 때도 그랬고 92년 다미 선교회의 종말 파동 때는 당일의 휴거 해프닝이 공중파로 생중계되어 국제적인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백미는 1999년. 정체도 아리송한 ‘앙골모와의 대왕’을 부활시키기 위해 온다는 노스트라다무스의 ‘공포의 대왕’과 행성들이 거대한 십자 모양으로 늘어선다는 그랜드 크로스, 거기에 달력 리셋과 관련된 컴퓨터망의 대혼란을 예언한 Y2K 등등 이중삼중의 근거들이 마련되면서 반드시 뭔가 일어날 것 같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리고 이제 마야인들이 세상이 끝난다고 했다는 그 날도 ? 실은 해석의 오류라고 들 한다만 - 무사히 넘기고, 나아가 염원했던 정권교체도 결국은 이뤄 이제 지난 5년의 악몽을 딛고 명랑하게 함 살아보려 하고 있는 거다.

 

 

 

 

 

 

 

 

 

허나 우리는 알고 있다. 조만간 무슨 명분과 이유에서든 종말론은 또다시 등장할 거라는 사실을. 나름 그쪽 이야기들에 정통한 우원도 1999년 이전에는 2012년 마야 종말론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던 걸 보면,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와서 앙골모와의 대왕을 부활시키고 그 전후 마르스는 행복의 이름으로 지배하려 하지 않다 보니 맥 빠진 사람들이 그걸 대신할 다른 뭔가를 열심히 찾아낸 거다. 참 부지런들도 하다.

 

 

 

 

 

 

 

 

 

근데 말이다, 이런 걸 그냥 잉여력 돋는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기에는 좀 묘한 구석이 있다. 멸망이란 건 결국 떼죽음을 의미하는 거 아니냐. 그 속에는 그런 이야기를 찾아내고 구성하고 전하는 사람들 본인이나 사랑하는 가족 친지 등의 죽음도 포함된다. 근데 왜 이렇게들 열심일까? 아 머 종교랑 관련해서 자기들만 구원받는다는 관점이면 또 모르지만, 그것도 아닌 경우는 대체 뭐냔 말이다.

 

 

 

 

 

 

 

 

 

그리고 이런 류의 이야기들에 솔깃하고 때론 열광하기도 하는 우리는 또 뭘까…?

 

 

 

 

 

 

 

 

 

 

 

 

 

 

 

 

 

 

 

 

 

 

 

 

 

 

 

 

종말론의 역사가 어디서부터 첨 시작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 기원은 구약성서는 물론 세계 각지의 전승으로 잘 알려져 있는 노아의 방주/대홍수 이야기와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정확한 상황은 몰라도 오랜 옛날에 종말 규모의 대홍수가 있었다는 전승은 노아의 방주나 길가메쉬 서사시 외에도 전세계 모든 대륙에서 500가지 이상 전해지고 있다. 이런걸 보면 옛날 고리짝에 국제적으로 번성하던 문명이 홍수로 파괴된 파국적 사태는 실제로 있었던 것 같다.

 

 

 

 

 

 

 

 

 

아주 오래 전 이야기인데다가 말 그대로 ‘전멸’한 건 아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느끼는 실감은 덜 하지만, 여하튼 이 홍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우리 인류는 이미 종말을 한번 경험한 적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기억이 후세에 남기는 트라우마는 엄청나다. 설사 우리가 대홍수니 방주니 아틀란티스니 하는 말을 개인적으로 믿지 않는다 해도 우리 문명 자체에 뿌리깊게 남긴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노력해서 휘황찬란한 무엇을 만든다 한들 하루 아침에 씻겨 내려가거나 불타 버릴 수 있다는 염려가 문명의 여기저기에 알게 모르게 각인되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룩한 문명에 대한 허무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의 감정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그런 일이 다시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경계심이 인류의 집단적 심리 기저에 뿌리를 내리게 되고, 오만 가지 것들에서 그 징조를 미리 발견하는 거다. 특히 전승에 따르면 대홍수는 꽤나 갑작스러운 사태였고, 그럼에도 사전에 알고 대비한 소수의 사람은 생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징후를 놓치지 않고 찾아내는 것은 열라 중요하다. 그렇게 살아남아야지, 구원받아야지 하는 생존 본능이 작용하고, 나아가 이를 널리 알려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을 구해내겠다는 류의 소명의식마저 때로는 작동하는 거다.

 

 

 

 

 

 

 

 

 

여기에 가세하는 게 이제 기독교류의 일신교가 만들어 놓은 직선적 역사관이다. 천지창조에서 시작해서 종말로 막을 내리는 이런 사관들에서는 도망 나갈 곁가지의 틈이 없다. 인류는 정해진 종말을 향해 치닫는 운명으로 원래부터 정해져 있고, 단지 우리가 모르는 것은 그게 언제, 어떻게 오냐는 것뿐이다. 따라서 세상이 끝나는 날 파멸에 이르지 않고 천국에 가서 지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신을 믿고 교리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기가 믿는 종교가 이런 세계관을 바닥에 깔고 있을 때 거기에 영향을 받지 않기는 절라 어렵다. 게다가 대부분의 현대 종교들은 집단화, 조직화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면을 구성원들 서로간에 확인해 주면서 확대재생산 한다. 그러다 보면 작게는 다미 선교회의 휴거 해프닝에서부터 크게는 비극적인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인민사원, 헤븐스 게이트 사태 같은 것들마저 생겨나게 된다.

 

 

 

 

 

 

 

 

 

머, 근데 여기까지는 솔직히 우리가 어렵잖게 생각할 수 있고 인식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고대와 중세의 긴 세월을 넘어 최첨단 과학기술 문명을 자랑하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종말론이 이렇게 틈만 나면 득세하는 데는 이보다 더 내밀한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뭘까.

 

 

 

 

 

 

 

 

 

 

 

 

 

 







 
 

그러니까 그 이유가 뭐란 말인가.

 

굳이 친절하게 설명해드리자면 발매 임박한

 

무규칙 이종매거진 <더 딴지> 신년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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