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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딴지]위로-끝났다

2012-12-3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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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30.일요일

 

 

너클볼러

 

 

 

 

 

 

 

 

 

 

 

 

 

 

 

 

 

 

 

2004년

 

 

 

 

 

 

 

 

 

2004년 1월. 대선을 앞두고 미국 민주당 경선엔 총 7명의 후보가 등장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7명의 난쟁이라고 불렀다. 2001년 9.11테러에 이어 2003년 부시의 이라크 침공에 이르기까지 미 국민들의 일방적이고 거침없는 애국심은 하늘을 찌를 듯 했고, 그 바람을 탄 부시의 재선은 당연시되고 있었다. 2003년의 이라크 침공 당시 부시의 지지율은 무려 90%에 육박했다. 부시가 그 정도니 민주당 경선주자 7명은 듣보 난쟁이로 밖에 보일 수 없었다.

 

 

 

 

 

 

 

 

 

하지만 베트남전 무공훈장의 주인공인 존 케리가 '국가안보=온뤼 부시'라는 공식을 깨줄 대안으로 등장하면서 경선이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조지 W 부시와 존 캐리

 

 

 

 

 

 

 

 

 

 

 

 

 

 

민주당은 부시의 대항마로 케리를 선택했고, 케리는 지지자들에게 4년 전 엘 고어와 같이 부시에게 당했던 패배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귀두를, 아니 주먹을 불끈 쥐었다. 민주당은 수십년 전 케리의 베트남전 참전 화면을 편집해 광고를 준비했다. 부시의 ‘대량살상무기보유’라는 헛다리에 기인한 대 테러전에 박수를 보내기도, 그렇다고 무작정 찐따를 주기도 뭐했던 민주당 지지자들이 속속 결집하기 시작했다. 이미 부시의 승리로 끝난 게임이라는 예상이 혼전의 양상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1980년대부터 미국은 양당(공화당, 민주당)과 유권자들이 양극화되면서 양당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앞선 2000년 부시와 엘 고어의 선거에서도 부시는 아슬아슬하게 승리했다. 2004년 역시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압도적이었던 부시의 우세였다. 존 케리의 상승세에도 넘어서기엔 역부족이었다. 이 결과를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란 양반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존 케리가 부수의 헛다리에 대한 공격과, 이미지 전략에서 성공했지만 ‘대 테러 전쟁을 반대하면 이적’이라는 공화당의 애국주의 프레임에 나자빠졌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어떠한 이슈던지 '애국' 프레임이 등장하믄 맥을 못 췄다는 것이다.

 

 

 

 

 

 

 

 

 

지금 이 마당에 2004년의 미국대선의 결과가 떠올랐던 이유는 바로 지금의 우리와 너무나 흡사한 결과 때문이다. 부시는 접전 끝에 300만 표 차이로 이겼다. 부시가 6200여만 표로 51%의지지, 존 케리가 5900여만 표 48%의 지지였다. 과거 40 대(민주당), 40 대(공화당) 20(무당파)의 사회라 불렸던 미국은 2004년에 들어 45 대 45 대 10으로 변화했다. 그 변화를 반영한 결과였다. 승부의 분수령이었던 오하이오에서 19만 표를 뒤진 존 케리가 부재자 25만 표가 남아있다는 이유로 패배를 인정할 수 없다며 조금 지연되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치유를 시작할 시간이 왔다'는 말로 운을 땐 존 케리는 패배를 승복하며 이처럼 말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일했고 싸웠다. 나는 이로 인해 약간의 변화가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미국의 선거에서 패자란 없다. 당선과 낙선에 관계없이 모든 후보는 다음날 아침이면 미국인으로 눈을 뜨기 때문이다. 이것이야 말로 이 지구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영광스럽고 괄목할만할 재산이다.’

 

 

 

 

 

 

 

 

 

다음 대선에서 민주당은 오바마를 내세워 공화당의 존 매케인를 누르고 당선되었고, 4년 뒤인 올해 오바마는 또다시 공화당의 미트 롬니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는 존 케리를 국무장관에 지명했다.

 

 

 

 

 

 

 

 

 

 

 

 

 

 

 

 

 

 

패배를 인정한 직후의 존 케리(보스턴)

 

 

 

 

 

 

 

 

 

 

 

 

 

 

2012년

 

 

 

 

 

 

 

 

 

기대와 현실 사이의 '괴리'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는 데는 10초, 아니 1초의 찰나로도 충분했다. 2012년 12월 19일 18:00. 나를 포함한 너 댓 명의 떨거지들은 순간 등장한 출구조사 결과를 캡처해 머리 속 깊은 곳에 꾸겨 넣었고, 믿지 못할 결과는 온몸에 각인되듯 촘촘히 박혔다. 축배는 순식간에 위로주가 되었고, 간만에 배달시킨 안주는 금방 식어 굳어버렸다. 아내는 몸 져 드러누웠다. 그 순간 여유롭던 기대가 간절한 바람으로 전이되었다. 누가 최면을 건 것도 아닌데, 같이 있던 우린 그렇게 같은 표정, 같은 포즈를 하고 있었다. 웃겼지만 웃을 수 없었다.

 

 

 

 

 

 

 

 

 

기대가 부러졌고,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내가 지지했던 이가 패배의 쓴 잔을 들이켰고, 단 한 조각의 지지도 보낼 수 없었던 이가 당선의 꽃다발을 들어올렸다. 다행히 몇 시간 푹 자고 일어나 출근했지만 무기력은 잠들었던 시간만큼 배가 되었다. 보기 싫은 장면들, 듣기 싫은 말들을 애써 외면하는 걸 봐서….

 

 

 

 

 

 

 

 

 

여전히 '독재자의 딸'을 우리나라의 '첫 여성대통령'으로 아무렇지 않게 치환하긴 쉽지 않지만, 독재자 망령의 부활로 인한 '세습'이라고까지 보지는 않는다. 삼 천만 명 이상이 투표를 했고, 그 중 과반을 득표한 이다. 정치적, 현실적 분석을 내놓기에 앞서 절차적으로 문제없이 당선된 차기 '대통령'이 맞다. 그녀가 당선되믄 우리 같은 서민의 무리들은 서서히 조땔거라며 불안을 피력하며 투표를 독려한 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한다. 불안하지만 당부도 드린다. ‘좋은 대통령 되시라’고.

 

 

 

 

 

 

 

 

 

다시금 2012년 대한민국 대통령선거의 결과가 2004년. 죽었다 깨나도 민주당이 승리하지 못했을 거라 했던 미국의 대선과 중첩된다. 솔직히 '해도 안 되나' 싶다. 지역의 벽이, 이념의 벽이, 기득권의 방어벽이라는 것도 결국 충분히 확인 된 일종의 거부할 수 없는 상식의 흐름이면 넘을 수 있을만한 조금은 높은 벽쯤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만만한 벽이 아님을 절실히 확인했다. 어쩜 그 벽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를 가로막는 ‘분리장벽’ 보다 더 높고 거대할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담을 쌓아놓은 기성세대뿐 아니라 견고한 벽 아래에서의 삶을 시작한 우리나, 우리보다 젊은 세대들이다. 낙선의 아쉬움이 아닌 열패의식에 유혹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문용린과 홍준표의 당선이 눈길을 부추긴다. 솔직히 해도 안 되나 싶다.

 

 

 

 

 

 

 

 

 

 

 

 

 

 

 

 

 

 

총 700km가 넘는 분리장벽으로 예루살렘 서안지구는 존나 게토화되었다.('기 들릴')

 

 

 

 

 

 

 

 

 

 

 

 

 

 

솔직히 말하면 이길 거라 생각했다. 근소한 차이의 초 박빙 승부라면 근소한 차이의 승리를 예상했다. 후보를 놓고 보았을 때 그건 일종의 상식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흥분을 경계했다. 지지하는 후보의 당선을 곧 나의 승리로 보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확인 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시시때때로 경계를 부추기고 진영을 몰아붙여 불 붙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고,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012년 12월 19일 18:00분 출구조사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통해 내가 그 동안 흥분하고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동시에 ‘민심’이라는 거대하고 오묘한 흐름에 대한 내 생각과 말들이 얼마나 황망한 것인지도 확인되었다. 내 삶에 가장 간절했던 선거였던 것이다.

 

 

 

 

 

 

 

 

 

절망이고 좌절이었다. 그 동안의 기대 때문에라도 끝까지 지켜봐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박근혜 후보의 당사 연설을 보고서야 지지했던 후보의 낙선을 인정했다. 막차 끊긴 정류장에 서있는 느낌이었다. 집은 멀고, 게다가 주머니에 돈도 없는.

 

 

 

 

 

 

 

 

 

 

 

 

 

 

 

 

 

 

 

 

 

 

 

 

 

 

 

 







 
 

이 와중에도 희망의 메시지가 있는지 없는지는

 

무규칙 이종매거진 [더딴지]에서 마저 확인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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