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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 12. 30. 일요일

 

 

취재팀장 죽지 않는 돌고래

 

 

 

 

 

 

 

 

 

1. 사형 선고를 받아라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자.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내게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대한민국 법정에서 10년 안에 사형 선고를 확정 받아라. 그렇지 않으면 너의 가족을 포함해 네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죽일 것이다. 네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너의 눈 앞에서.‘

 

 

 

 

 

 

 

 

 

상당히 좋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10년이란 시간은 넉넉한 편이고 다행히 대한민국 법정 최고형은, 아직, 사형이다. 나는 갑작스레 주어진 상황에 이성을 잃은 상태지만 사형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자연스레 다음과 같은 생각을 떠올린다.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

 

 

 

 

 

 

 

 

 

 

 

 

 

 

 

 

 

 

 

2. 누구를 죽여야 하나

 

 

 

 

 

 

 

 

 

문제는 죄책감이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기는 마음이 편치 않다. 죽여야 한다면 죽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한 남자가 떠오른다. 강력범죄 사건을 다룬 기사에서 자신의 실명이 거론되었다는 이유로 나의 애인을 수 차례 살해 위협했던 남자다. 그는 접근해선 안될 사람에게 접근했고 하지 말았어야 할 말들을 했다. 그 남자라면 죄책감을 희석시키기에 충분하다.

 

 

 

 

 

 

 

 

 

나는 그에 대한 충분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메일주소와 옛 전화번호. 이 정도면 개인정보 보안 프로그램을 역으로 돌려 웹 상에서 확인 가능한 그의 모든 기록을 수집하고 지인 2, 3명을 알아내기에 무리가 없다. 아쉽게도 택배 기록이 뜨지 않아 현주소를 알아내지 못했지만 그가 사기죄로 몇몇 사람에게 비난 받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사건 인터뷰를 가장해 그에게 당한 최근 사기 피해자와 접촉했다. 함께 법원에 찾아가 재판기록 열람복사를 신청하고 피의자 신문조서 복사를 부탁했다. 주민등록번호와 현주소가 보인다. 직업은 무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가 사기죄로 재판부에 회부되었다가 범죄 입증 사실이 어려워 최근 풀려났고 현재는 고시원에 머물면서 경마장에 자주 들락거린다는 사실을 알아내기까지, 채 5일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주소지로 찾아가 1달 남짓 미행하니 내가 원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경마를 끝낸 일요일 밤에는 으레 근처의 포장마차에 들러 소주 댓 병을 마시고 고시원으로 돌아간다.

 

 

 

 

 

 

 

 

 

3. 칼날은 수평으로

 

 

 

 

 

기자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조직폭력배를 찾아간다. 그와는 배짱이 맞기에 어설프게 말을 돌리지 않아도 된다.

 

 

 

 

 

 

 

 

 

‘사람을 죽이려 한다. 방법을 알려달라.’

 

 

 

 

 

 

 

 

 

‘처음이라면 공포심에 힘이 빠져 실패한다. 게다가 지금은 겨울, 옷이 두꺼워서 칼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나는 두 번 묻지 않았다. 계속 쳐다 볼 뿐이다.

 

 

 

 

 

 

 

 

 

 

 

 

 

 

 

 

 

 

‘일단 칼 손잡이에 붕대를 감아라. 붕대를 감지 않으면 칼이 들어가기 전에 손에 땀이 나서 미끄러진다. 뒤에서 목을 잡고, 그러니까 입을 막은 다음에 허리를 찔러라. 허리는 갈비뼈가 없으니까. 칼날은 위로 세워라. 그리고 들어간 다음에 최대한 안 쪽에서 손상을 일으킬 수 있도록 휘저어야 한다.’

 

 

 

 

 

 

 

 

 

‘상대는 취한 상태일 것이다. 잡는 건 좀 부담이 된다.’

 

 

 

 

 

 

 

 

 

‘그럼 체중을 실어야 한다. 손 힘 만으론 잘 들어가지 않을 거다. 그러니까 이렇게(직접 회칼을 잡고 방법을 가르쳐 준다), 한 손으로 칼자루를 잡고 한 손은 손바닥으로 칼자루 끝 부분을 받쳐라. 밀어 내듯이. 배에서 2, 30cm 정도만 띄운 상태에서.

 

 

 

 

여기(내 몸을 만지면서 설명한다.)는 찔러봤자 폐만 빵꾸 난다. 뒤에서 봤을 때 여기가 신장이다. 여기로 들어가면 지옥을 본다. 전 속력으로 달려가라. 찌를 지점을 정확히 계산해서 달려가라’

 

 

 

 

 

 

 

 

 

그에게 몇 번 실습을 받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 등 뒤에서 한마디를 보탠다.

 

 

 

 

 

 

 

 

 

‘뒤에서 찌를 때 칼날은 수평으로. 갈비뼈에 안 걸리게.’

 

 

 

 

 

 

 

 

 

4. 죽인다

 

 

 

 

 

 

 

 

 

나는 그가 술에 취해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일을 끝내야겠다고 계획한다.

 

 

 

 

 

 

 

 

 

모든 일이 쉽사리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나 또한 처음이다. 무방비상태인 그의 등을 찌른다는 단순한 계획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수 백 번 연습을 거듭하며 수 천 번 되뇐다. 너는 인간 쓰레기다.

 

 

 

 

 

 

 

 

 

뇌수가 끓어오르고 식도가 타오르는 느낌이 들다가도 막상 일요일 밤에 그를 쫓다 보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돌아온다. 증오심으로 견고하게 쌓은 자기합리화가 100%의 현실 앞에서 깨진다. 무섭고 두렵다. 이렇게 가다간 10년을 악몽에 시달리다 모든 걸 잃게 된다.

 

 

 

 

 

 

 

 

 

그를 미행한지 세 달이 지났을 무렵, 나는 소주 반 병을 한번에 들이켰다. 용기가 난다. 다시 한번 되뇐다.

 

 

 

 

 

 

 

 

 

너는 인간쓰레기다. 너는 죽어야 한다. 네가 죽지 않으면 내 사람이 죽는다.

 

 

 

 

 

 

 

 

 

 

 

 

 

 

 

 

 

 

 

 

 

 

 

그가 술에 취해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의 끝자락, 막상 결심이 서자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의 오른편 등뒤에 회칼을 집어 넣는다. 연습대로 된다. 생각했던 것보다 쉽다. 다만 그는 힘들어 보인다. 제대로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한 채 쓰러진다. 반항을 하면 어떻게 할까 수 백 번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흘러나온 피가 그의 하얀 추리닝을 적시고 먼 허공을 바라보는 듯한 눈으로 아, 아, 라며 가냘픈 신음소리를 낸다. 그렇게 많은 피는 처음이라 손이 떨린다. 조금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왕 일을 시작하고 나니 마무리를 짓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나는 그의 목에 칼을 가져가 그를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려 보낸다.

 

 

 

 

 

 

 

 

 

미리 알아둔 가까운 경찰서로 걸어가 자수한다. 초점 없는 그의 눈은 무얼 보고 있었던 걸까. 달빛을 머금은 칼이 아름답다.

 

 

 

 

 

 

 

 

 

5. 1명을 죽이고 사형선고를 받을 수 있는가.

 

 

 

 

 

 

 

 

 

나는 그토록 간절한 사형선고를 받을 수 있을까.

 

 

 

 

 

 

 

 

 

아쉽게도 대한민국은 사람 한 명을 죽였다고 쉽사리 사형 선고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극단적인 인명경시 성향이 눈에 띄도록 무차별적인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 가장 확실하지만 죄 없는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죄책감에 시달린 나는 어떻게든 이 한 건의 살인만으로 극단의 효율을 이끌어내야 한다.

 

 

 

 

 

 

 

 

 

형법은 법관에게 양형에 대한 자유재량을 인정하지만 양형에 대해서 일반적 지침도 제시하고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범죄 유형별 주요 양형기준(2011년 7월 1일 시행)’이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살인범죄에 대해 참작 동기 살인, 보통 동기 살인 등으로 유형을 구분해 놓고 감경, 기본, 가중 등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나의 경우, 어떻게든 사형선고를 받아야 할 상황이므로 내가 한 모든 일들을 형법에 근거하여 최고형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떻게?

 

 

 

 

 

 

 

 

 

 

 

 

 

 







 
 

본 기사는 강력계 형사와 법률가, 살인용의자 및

 

전현직 조직폭력배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합니다.

 

[더 딴지]에서 본 기사에 대한

 

친절한 각주도 확인 가능합니다. 

 

사형 선고를 받기 위해 처절한 두뇌싸움을 시작한

 

필자의 운명을

 

[더딴지]에서 확인하시길.

 

 

 

 

 

 

 

 

 

 

 

 

 

 

취재팀장 죽지않는돌고래

 

 

 

 

트위터 : @kimchangkyu

 

 

 

 

 

 

 

 

 

 

 

 

Profile
딴지일보 편집장. 홍석동 납치사건, 김규열 선장사건, 도박 묵시록 등을 취재했습니다. 밤낮없이 시달린 필진들에게 밤길 조심하라는 말을 듣습니다. 가족과 함께 북극(혹은 남극)에 사는 것이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