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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are an EEA national, and Irish or Swiss national …”

: 당신이 유럽경제공동체 국가, 아일랜드 혹은 스위스 국적자라면, …

 

외국인이 영국 국적(시민권, Citizenship)을 취득할 때 필요한 신청서 말미에는 위와 같은 질문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는 아래와 같은 문구가 삽입되어 있다.

 

“If you are an Irish national you must provide your Irish passport”

: 당신이 아일랜드 국적자라면 아일랜드 여권을 꼭 제시해야만 합니다.

 

EEA는 European Economic Area(EEA)의 약자로 유럽경제공동체, 즉 유럽 내 관세동맹을 맺은 자유무역(free movement)이 가능한 국가를 말한다. 즉 영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서 EEA에 속한 국가의 국적자라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한 가지 있다. 스위스야 중립국이라 별도로 언급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아일랜드는 EEA에 속한 국가임에도 왜 다시 구분을 지어 놓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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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아일랜드의 오랜 갈등

 

영국과 아일랜드의 관계는 연합왕국(United Kingdom)이라고 불리는 영국 나라 명칭 변천사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현재 영국의 정식 국호는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다. 이 명칭은 세 번에 걸쳐 변했다. 

 

- Kingdom of Great Britain

-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1700년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합병하여 ‘Kingdom of Great Britain’이 되었다가 1800년대 아일랜드와 합병으로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가 되었고, 1949년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최종적으로 독립을 하게 되면서 아일랜드 북쪽 지역만 포함한 지금의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라는 국호를 갖게 됐다.

 

*참고로 북쪽의 스콜틀랜드, 서쪽의 웨일즈 그리고 잉글랜드가 위치한 땅을 브리튼 섬이라고 일컫는데 세 왕국이 합쳐져 있으니 그 앞에 ‘대’(Great)를 붙여놓은 것뿐 특별한 의미는 없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부르는 the UK이라는 단어는 브리튼 섬과 북아일랜드의 연합왕국이라는 뜻이다.

 

영국 국호가 세 번에 걸쳐 변경된 이유는 다름 아닌 아일랜드 때문이다. 아일랜드가 포함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 이름이 바뀌어 왔으나 그만큼 영국과 아일랜드의 관계는 오묘하고 복잡하다고 할 수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일제 강점기, 일본과 우리 나라와의 관계와도 비슷한 면이 없지 않다. 일본이 영국. 우리가 아일랜드.

 

이 두 나라의 감정의 골은 우리와 일본보다도 더 심할 수도 있다. 우리는 36년이지만 아일랜드는 800년이다. 잉글랜드도 일본 못지않게 아일랜드를 억압하고 학대했다. 대표적으로 산업혁명 이후 영국이 대영제국으로서의 초국가적 면모를 지니게 됐을 때 아일랜드는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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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영국은 18세기 산업혁명의 기운으로 지금까지 먹고사는 나라다. 1800년대 세계의 모든 교역 물자가 런던으로 집중 될 때, 런던 이외의 지역으로 물품을 운송하기 위해 대대적인 운송수단을 정비했는데, 당시 영국의 공학자 마크 브루넬(Marc Brunel)이 지하 터널을 뚫는 기술인 쉴드를 개발해 템즈 강 지하로 지하철을 연결하도록 했다. 그런데, 200년이 지난 지금도 쉴드-TBM 공법으로 발전되어 사용되고 있으니 영국이 산업혁명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거 아니겠나. 자동차, 지하철, 금융, 보험 등 사실 나열하자면 수없이 많은 현대적 유물들이 대부분 영국에서 비롯되었지만, 영국은 절대로 아일랜드에게 이러한 혜택을 나눠 주지 않았다.

 

민족도 언어도 달랐던 터라 더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일랜드는 근대화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채, 1920년대까지 후진적인 농업 국가로 남아 있었다. 그나마 공업화가 이뤄졌던 벨파스트마저 북아일랜드로 영국에 남게 되면서 아일랜드는 더더욱 보잘 것 없는 곳이 되었다. 장기간에 걸친 잉글랜드의 차별 통치로 아일랜드의 농지도 대부분 잉글랜드인 지주의 소유였다. 대다수 아일랜드인들은 빈곤한 소작농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고, 극심한 빈곤과 빈부차에 사회 갈등까지 빈번하게 발생하여 이를 참다 못한 아일랜드가 독립운동까지 하게 된 것이다.

 

흔히 IRA(Irish Republican Army)라는 단체를 테러리스트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IRA가 잉글랜드의 이러한 불합리한 통치에 반하여 생긴, 독립을 모토로 한 단체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IRA가 단순 테러리스트 집단은 아니었다는 것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마치 우리가 일제에 저항한 것을 테러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물론 1960년대, 아일랜드 독립 후 북아일랜드 분쟁이 시작되면서 독립운동보다는 정치세력으로 발전하면서 의미도 퇴색되고 집단 테러를 감행하는 무장단체로 전락했지만, 이들의 테러도 영국의 구교 탄압이라는 배경이 있었다.)

 

 

굿 프라이데이 협정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 국제사회는 세계대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던 아일랜드의 손을 들어 주었다. 국제적인 압력에 밀렸던 영국은 북쪽 지방(지금의 북아일랜드)를 뺀 나머지 지역(아일랜드)를 독립시켰다. 하지만 산업화 혜택을 받아 나름 넉넉한 삶을 살고 있던 북아일랜드에 체류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영국인이 아니라 아일랜드인이 되고 싶었다. 결국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과 영국 잔류를 요구하는 세력의 전투가 극심해졌다. 사실 문제의 원인은 종교에 있었다. 전통적으로 로마 천주교였던 아일랜드와 개신교였던 북아일랜드의 오랜 갈등이 무장 투쟁으로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날이 갈수록 갈등이 거세지고, 독립을 목표로 시작된 IRA도 무장투쟁을 이어가며, 1969년까지 3,600명이 이 갈등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이에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 그리고 북아일랜드는 5년에 걸친 협상 끝에 테러를 종식시키고 국가 권력의 공유 등을 골자로 하여 평화협정을 타결했다. 이것이 바로 1998년 4월 10일,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가 맺은 ‘굿프라이데이 협정’(Good Friday Agreemen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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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IRA는 무장해제를 공식 선언했고, 정치적으로는 개신교 정당인 북아일랜드의 ‘민주통합당’(Democratic Unionist Party, DPU)과 로마천주교 정당인 ‘우리당’(흔히 신 페인(Sinn Féin) 당이라고 부르는데, 신 페인은 ‘우리들’ 혹은 ‘우리 스스로’라는 뜻이다)이 출범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은 했지만 해결해야만 하는 복잡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어느 날, 경상도나 전라도가 대한민국에서 따로 분리되어 별도의 독립된 국가로 운영되기 시작했다고 가정해보자. 옆 동네에 산다는 이유로 신분증, 여권뿐만 아니라 세금도 따로 내고 모든 행정적 절차들이 구분된 것이다. 이 얼마나 짜증 나고 복잡한 일인가. 굿프라이데이 협정에는 이러한 신분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사실 북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영국인은 아일랜드 여권까지 신청할 수 있다. 그래서 영국과 아일랜드 여권을 동시에 소지할 수 있는데, 서두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기 때문에 아일랜드인(Irish)을 유럽과 분리하여 시민권을 신청하도록 한 것이다.

 

아무튼, 평화 협정까지 체결한 이후, (여전히 앙금은 남아 있지만) 영국과 아일랜드는 각가의 독립된 국가로서 잘 사는 듯했다. 아일랜드도 유럽연합(EU)의 출범 이후, EU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영국은 물론 유럽 대륙의 국가들과 물적, 인적 교류를 점차 더 확대해 나갔고, 1990년대에는 ‘켈틱 타이거’(Celtic Tiger)라고 불리며 유럽의 신흥 경제 강소국으로 급성장하고 선진국 도약을 이뤄냈다. 물론,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부동산 버블이 금융권의 부도로 이어지면서 결국 IMF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브렉시트로 인해 역전이 된 영국과 아일랜드의 관계

 

갑을 관계라고 말할 수 없지만, 영국과 아일랜드는 보이지 않는 강대국 vs 약소국이라는 관계가 성립될 만큼 차이가 있었다. 국제적인 영향력이 경제력, 정치력 모두 영국이 아일랜드보다 한 수 위. 그런데, 브렉시트를 하고 난 이후부터 이들의 관계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로 나뉘어 있지만, 사실 영국이 아일랜드를 점령할 당시 북아일랜드도 아일랜드였다. 따라서 아일랜드인들 중에는 북아일랜드 역시도 아일랜드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실제로 북아일랜드에 거주하는 이들 중에 ‘아이리쉬(Irish, 아일랜드인) 정체성을 갖는 이들이 꽤 많다. 때문에 북아일랜드가 영국으로 남아있기보다는 아일랜드로 재통합/편입되기를 여전히 바라고 있는데, 굿프라이데이 협정이 있기 전까지 무장투장이 이어졌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영국이 브렉시트를 선언하면서 또 다시 갈등이 시작되었다. 북아일랜드는 EU를 탈퇴해야 하고, 아일랜드는 유럽연합에 남게 되기 때문인데, 사실상 국경 없이 지내오던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에 국경이 만들어지게 될 위기에 놓였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고자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 브렉시트가 뭔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찬성 투표를 던진 이유가 바로 이민자를 제한하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는데, 뜻밖에도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의 관계가 수면위로 떠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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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주장처럼 인적 자원을 제한하겠다고 한다면, 영국에 입국하는 모든 유럽인들에게 이민국 심사와 같은 일정 정도의 제한이 가해지게 되는데, 집 앞(아일랜드)에 있는 곳을 출근하던 북아일랜드 거주자가 입국 심사를 거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물론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여권을 모두 소지하면 문제없지 않느냐고 반박할 수 있겠으나,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같이 북아일랜드에 거주하면서 아일랜드 여권만을 갖고 있는, 아이리쉬 정체성을 가진 아일랜드 인들이 매우 많다. 따라서 새롭게 비자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영국은 유럽연합의 일원으로, 인적자원 뿐만 아니라 관세동맹을 통한 물적 자원의 자유로운 교역이 가능했는데, 브렉시트 이후 관세동맹에서 제외되면서 영국은 유럽에서 들여오는 모든 물품에 세금을 내게 된 것. 내면 되지 않겠냐고 할 수 있겠으나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경우가 조금 다르다. 어느 날부터, 집 앞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면서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데이비드 카메룬 총리가 정치적 생명을 걸었다고는 하나 브렉시트가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실시되었다고 평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와 같이 자신들의 국경 문제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실시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도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실시된 지 1년이 넘도록 전혀 진척이 없었으니 무슨 할 말이 있으랴.

 

아마도 영국인들 입장에서 자신들은 유럽연합 탈퇴가 그나마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외딴 섬에 따로 떨어져 있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영국은 유럽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이, 사실 지금까지 영국은 유럽 대륙에 있는 국가들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여왔다. 통화 정책에 대해서도 파운드화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이라크 전쟁에 대한 입장도 달랐다. 아무래도 북미와 영연방(Commonwealth) 국가와의 관계가 있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1973년, 영국이 유럽공동체에 가입할 당시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 한사코 반대를 던졌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드골은, 영국은 결국 유럽의 등골만 쏙 빼먹고 빠질 것이라고 여겼는데, 이는 영국은 유럽이 아니라는 생각에 기반한 것이었다.

 

현재, 아일랜드는 유럽연합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브렉시트의 주도권을 갖게 되었다. 영국은 70조에 육박하는 이혼 수수료를 지급하고 유럽연합을 떠나야 하고, 그동안 공짜로 들여왔던 모든 공산품에 대해 세금을 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유럽연합의 아일랜드와 영국의 갑을 관계가 제대로 역전된 것이다. 심지어 북아일랜드에 거주하는 아일랜드인들은 이참에 북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아일랜드로 편입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는 세력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북아일랜드가 아일랜드에 편입이 된다고 해도 문제다. 북아일랜드에 거주하는 잉글랜드인들은 졸지에 고향에 가려면 비자를 받아야 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영국이 아일랜드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면야 모를까, 오랜 수탈과 불공정한 통치로 관계가 좋지 않았는데, 이렇게 주도권이 역전이 되었으니 영국에게 아일랜드는 제대로 된 부메랑이 된 것이다.

 

 

 

 

 

 

편집부 주

 

 

필진 BRYAN은 주영한국대사관 내 성폭력 사건을 폭로한 이후 2년째 재판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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