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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뉴 외인부대 사령부 연병장과 추모비

 

다시 오바뉴 사령부, 행정중대(CAPLE)

 

나는 2eme R.E.P으로 결정난 것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어떻게 지나온 교육대 4개월이었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흘러간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기억에 남는 것 없이 정신없이 달려온 길이었다.

 

앞으로 가야 할 곳이 정해졌다. 가고 싶어했던 곳에 갈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같이 고생했던 동료 중 자대 배치를 같이 받은 친구들을 보니 결속력이 더 생기는 듯했다. 말 없이 조용하던 러시아 친구들이 있었고 가끔 티격태격했던 처칠을 닮은 영국 친구와 1등을 다퉜던 베테랑도 포함되었다. 같이 자대배치를 받는다는 동질감은 지금껏 느껴왔던 동료애보다 더 컸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다시 오바뉴 사령부로 떠날 군장을 챙기기 시작했다. 4개월 동안 동고동락했던 동료들, 병장교육을 받던 선배들, 부사관 교육을 받던 중사까지 함께 조촐한 파티를 끝내고서야 4연대의 건물과 익숙한 길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낯설어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떠나는 인생이 외인부대원의 운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가 짜놓은 프로그램대로 만들어진 나는 세계 유일무이한 외인부대원으로서 겨우 기초 과정을 마쳤을 뿐이다. 진짜 외인부대의 얼굴이 무엇인지,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가 가득했다. 그와 함께 다른 곳에 대한 길들여짐 없이 잠깐 여행이나 다녀오는 것이 괜찮은 인생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정답 없는 인생의 한 켠에 서서,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았다.

 

1주 - 농장 입소 후 병영 생활, 관물함, 침대, 청소 등, 군가

2 - 제식 훈련, 군가

3 - 기본 전투 훈련, 상황보고 및 수류탄 투척

4 - 케피블랑 수료를 위한 행군

5 - 첫 사격 및 총기 분해 조립, 청소

6 - 상황보고 및 총기 사용

7 - 병영 생활, 근무, 연대 체육

8 - 포미게르 (Formiguères)

9 - 병영 생활, 근무

10 - 야외 훈련 및 총기 교육, 분대 훈련

11 - 연대 내 보충 훈련, 경비, 방어, 전투

12 - 기초 전투 기술 훈련(CTE 00) 시험

13 - 5일 동안 150km 전투 행군

14 - 최종 의료 및 행정 절차 완료

15 - 운전 면허 교육

16주 - 운전 면허 시험

17주 - 오바뉴 사령부/자대 배치

 

1997 8 25일에 파리 외인부대 분견소에 자원했고 한 달 가량의 사령부 선별 중대를 거쳐 4개월 교육대 훈련을 마치고 사령부 본대로 돌아왔다. 40여 명으로 줄어든 소대원 중에 누가 탈락을 했는지, 다음 기수로 밀려났는지 기억에 없을 정도로 시간은 빨랐다. 고작 4개월 교육을 받았을 뿐인데 새롭게 태어난 듯 했다. 한국을 떠나온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있었으면 무슨 삶의 변화가 있었을까 부질 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삶을 선택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 들었다.

 

함께 제2외인공수연대로 같이 가기로 한 친구들은 의외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애들은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안 썼다. 외인부대 월급이 러시아나 동구권의 1년 연봉이라는 얘기가 있었지만 와닿지 않았다. 환율로 계산하면 170, 공수연대는 200 정도 되었지만 소비문화가 아니어서 돈의 가치가 높았다. 술 한 잔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문화였고 가족 문화였기 때문에 돈을 쓸만한 곳도 별로 없었다.

 

친구들은 국가에 따라 특징이 있었다. 서유럽 친구들은 개인의 개성을 중히 여겼고 대화의 소재가 다양했다(영국 친구들은 친절하긴 했지만 자신들만의 색깔이 너무 강했다). 동구권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지내는 경향이 강했다. 그렇다고 척을 두거나 하진 않았다. 지내면서 러시아 권의 이름은 대개 예프로 끝나는 반면, 폴란드 쪽은 스키로 끝난다는 걸 알았다. 사소한 것이긴 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었다.

 

나는 대부분의 동료들이 침묵을 즐긴다고 생각했다. 헝가리 친구도, 루마니아 친구도 모두 말이 없었다. 같은 목적으로 뛰고 구르면서도 상대의 고독을 존중해주었다. 고독, 그것은 외인부대가 내성적인 성향의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취향일지도 몰랐지만, 언어를 익히고 문화에 젖어 들면서 본성을 되찾았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친구들은 인정 받았고 이기적이고 모난 친구들은 고독을 즐겼다. 그렇다고 해서 왕따를 시키지는 않았다. 그렇게 느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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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러시아 친구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다시 만나면 뜨겁게 포옹하고 싶다.

 

같이 자대배치를 받은 동료들과 맥주를 마시며 보내는 일주일, 우리는 다시 한 번 당주 대위 박물관에 찾아가 외인부대의 정신을 되새겼다. 사령부 행정 중대에서 우리를 인솔할 교관과 파견 병장이 올 것을 기다렸다. 이 곳 행정중대 숙소는 제대하는 사람들, 휴가 중인 병사들, 병가 중인 병사들도 머무는 곳으로, 스쳐가듯 지내서 그런지 군율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도둑이 많았다.

 

나는 이곳에서 95년도에 지원했을 때 만났던 반가운 얼굴을 보았다. 한국 UDT팀 출신인 이 형은 그로부터 2 6개월이 지났으니 사십을 넘겼을 터였다. 남미의 프랑스령 기아나 제3외인보병연대에서 2년 근무를 마치고 본토 자대배치를 받기 위해 대기 발령 중이라 했다.

 

형은 한참을 뚫어지게 보고서야 나를 알아보았다. 포옹을 하면서도 횡설수설했다.

 

아니, 너 임마, 어떻게 된 거야? 그때 탈락해서 갔잖아! 그래 다시 온 거야? 이야, 이게 어찌된 일이야 응? 무슨 일이야 응? 어떻게 된 거야? 도대체 어디서 온 거야?”

 

1995 11, 겨울 같을 거라던 예상과는 달리 여름의 강한 지중해성 햇살이 살갗을 쪼아대던 한가로운 주말 점심시간, 같이 지원했던 주태, 치영, 영광이와 함께 전투식량을 나누어먹던 선별 중대 대기 시절이었다. 예리한 눈빛과 총기 있었던 두뇌회전에 감탄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형이었다. 어찌나 UDT팀 얘기를 실감나고 맛깔나게 하는지 넋을 잃고 들었다. 

 

뭐야, 그럼 세 번째 들어왔어? 별 볼 일 없는 여길 뭐 하러 세 번씩이나 들어와 드응신!”

 

피엑스에서 사온 맥주를 마시며, 양 형은 실감나는 얘기를 이어갔다.

 

내 나이에 무슨 공부야, 내가 나이만 젊었어도 까짓 거 못할 게 뭐가 있어. 우리 중대장이 불어 공부 좀 하라고 사정을 했지. 그런데 그게 들어오냐! 중대장님, 내 머리 벌써 죽었다오, 그러니 공부하라는 말은… , 나 거기서 무지무지 고생했어!”

 

우리는 복도에 퍼질러 앉아 밤 샐 기세였다. 양 형은 해외파병 후 주어지는 2개월짜리 휴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프랑스 육지, 어디로 발령 받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령부에 남을지, 보병으로 갈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어쩌면 새로 생긴 산악연대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양 형님이 휴가를 떠나고 나는 칼비에서 오는 교관을 기다리며, 다른 동료들이 자대에서 데리러온 당직 부사관들의 인솔 하에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15명의 공수부대 신병들은 따로 코르시카 섬에서 오는 교관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인지 파업 때문인지 아직 더 기다려야 했다. 그러는 사이 선별 중대의 새로운 한국인 친구들에게 담배와 생필품을 가져다주며 정보를 주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무작정 대기만 하던 선별 중대에겐 누군가가 전해주는 한 마디 정보가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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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비Calvi, Camp Raffalli 연병장에서의 카메룬 데이

 

목요일, 드디어 인솔 교관이 등장했다. 영국 출신의 상사였다. 베테랑이 영국인이라며 혼잣말로 좋아했다.

 

내일 아침, 부대 차량을 타고 마르세유 공군기지로 이동한 뒤, 칼비로 향하는 트랑잘 수송기를 탄다. 질문?”

 

교관의 '질문?' 소리에 수줍게 손을 들었다.

 

관등성명 똑바로 한다!”

 

지원병 준, 질문 있습니다.”

 

!”

 

몇 중대입니까?”

 

“3중대다! 다른 질문?”

 

“……”

 

바다군

 

모든 것이 뜻대로 되어간다고 생각했다. 나는 바다나 산, 저격이나 폭파에 관심이 많았다. 이 모든 것을 다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고 실전에 써보고 싶었다. 배우기만 하고 써먹지 못하면 시간이 모든 것을 망각하게 할 터였다.

 

우리는 마르세유 공군기지에서 트랑잘 수송기를 탔다. 나도 그랬지만 모두 긴장감이 역력했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군용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솔렌자라 공군기지에 도착, 칼비까지 6시간을 이동한다고 했다. 어떻게 그 말을 이해했는지 신기했다.

 

어두운 수송기 안, 긴장된 눈빛이 교차되던 때 트랑잘이 굉장한 소음을 내며 공중으로 떴다. 난기류에 심하게 흔들렸는데, 흔들리는 수송기만큼 마음도 흔들리고 있었다.

 

지중해에 떠 있는 거대한 항공모함이라 불리는 그 곳에선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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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애묘, 40대를 위한 딴지미팅 목적으로 가입! 2018년 초 2개월간 탈퇴 후 재가입. 딴지 뇐네.
파뤼 거주
북아프리카 자주 출몰.
50 넘겨 꿈과 희망 잃은 독거노인!
잘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