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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생활 중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혼 후에도 전 부인에게 집착하여 자동차에 위치추적기를 달고 행적을 알아내 폭력을 행사하던 남자가 끝내 전 부인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딸들마저 자신들의 아버지에게 사형을 내려 달라고 요청한 청와대 청원을 읽으면서 “이런 짐승 같은 놈을 어찌해야 하나.” 분노하는 분들이 담벼락에 그득이다. 나 역시 그 남편을 당장이라도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은 매한가지이지만 “세상에 이런 일이...”하는 놀라움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그런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필요 이상으로 많이 봤다. 가정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들을.

 

이번 살인사건을 보면서 한 얼굴이 떠올랐다. <긴급출동 SOS 24> 프로그램이 시작도 하기 전, 아이템을 찾아 헤맬 때 만났던 강북구 사는 한 아주머니. 피해자와 처음 대면했을 때 나는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아니라 아동학대의 피해자를 잘못 데려왔나 고개를 갸웃했다. 그만큼 그녀는 왜소했다. 150센티미터에도 훨씬 못 미치는 체구에 깡마른 몸. 영양실조 걸린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로 보였으니까. 하지만 나이 30대 중반의 가정주부였다. 남편은 밤이 되면 술만 처먹는 게 일이고 허구헌날 아내 트집 잡아 주먹질 발길질하는 게 주요 업무라고 했다.

 

아이구 어쩌나 추임새를 넣으며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피해자가 이상한 말을 꺼냈다. “때리기만 했으면 좋겠어요. ‘그거’ 할 때는 정말 미칠 거 같아요.” 그거? 그게 뭔데요? 혹시 부부 성폭력을 말하는 것인가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이 괴물 같은 남편에게는 괴이한 특기(?)가 있었다. 술에 취해 아내를 두들겨 패다가 재미가 없어지면 유리창을 떼어 냈다. 그리고 그 가운데를 주먹으로 쳐서 깬 뒤 갖다 대기만 하면 사람의 살 정도는 얄팍하게 썰려 나갈 깨진 유리날 사이에 아내의 머리를 끼웠다. 술에 만취한 채 남편은 실실 웃으며 "돌릴까? 말까?"를 연발하면서 슬금슬금 움직인다고 했다. 그 유리로 된 칼을 쓰고서 아내는 동태처럼 파랗게 되어 서 있는 게 일상이었다.

 

얘기를 들으며 내 눈에서도 불길이 치솟았다. 어떻게 그런 인간이 산소를 호흡하고 이산화탄소를 내뱉고 똥오줌을 싸면서 이 아름다운 지구를 더럽힐 수 있단 말인가. 이 가냘프고 깡마른 여자가 오들오들 떨면서 남편에게 ‘살려 주세요’ 빌면서 오줌을 싸는 (실제로 그랬다고 했다) 모습을 상상하는 자체가 내게는 정신적 형벌에 가까웠다.

 

그런데 다음 궁금증. 도대체 왜 이렇게 사십니까. 하다못해 친정 식구라도 부르시고, 경찰에 신고도 하시고 이혼을 하시든 처벌을 하시든 법 절차를 밟으셔야지요. 라고 안타까이 얘기했다. 그러는 게 상식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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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주머니는 이렇게 울먹였다. “친정이 없어요. 저는 고아로 자라서 친정이 없어요. 경찰에 신고도 해 봤고, 경찰이 잡아간 적도 있어요. 처벌을 원한다고 했어요. 벌금이 나왔어요. 그런데 그거 결국 내가 내야 돼요. 이혼하고 싶어도 해주지도 않고요. 이혼 변호사 비용이 600만 원이라고 그랬어요. 도망이라도 가라구요. 도망가면 애들은 누가 보호해요. 저랑 딸 둘이 같이 갈 수 있는 쉼터 같은 곳도 없대요. 이혼을 하면 내가 뭘 해서 얘들 둘을 먹여 살려요. 당장 집도 절도 없는데.”

 

“어떻게 그러고 사느냐?”라는 말이 또 하나의 폭력이 될 수도 있음을 그때 느꼈다. 그 아주머니도 그 말을 수태 들은 듯했다. 남들은 자신을 모른다며,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데 어떻게 그러고 사느냐면 자기더러 어쩌냐며 울었다. 막막. 갑갑. 답답. 암담. 아주머니에게 일단 방송이라도 해 보자고 제안했다. 남편의 폭력성이 입증되고 아내의 피해 사실이 방송을 타면 최소한 아주머니 가족 하나만큼은 안정적인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충심을 다해 설득했다. 어떻게든 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끝내 방송에 응하지 않았다. 이유는 ‘두려워서’였다. 남편이 방송하는 걸 알게 되거나, 방송 나간 뒤 어떻게 나올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데 공포만 한 도구는 없다. 공포는 사람을 위압하여 굴복시킴과 동시에 역으로 다른 기회와 환경에 대한 기대를 포기시키는 ‘편안함’이기도 하다. 즉 사람은 공포에 적응함으로써 스스로를 가둔다. “이 정도만 되면 참을 만해.” 하면서.

 

아주머니가 “남편이 나 죽이면 어떡해요.”라고 할 때 나는 무기력하게 소리 지를 수밖에 없었다.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아주머니 이러다가 정말 죽어요.”

 

문제는 공포를 줄이는 일이었지만 나는 설득에 실패했다. 아주머니는 나라의 공권력이나 무슨무슨 센터의 활동가들, 동사무소 복지사 등에 전혀 믿음이 없었던 바, 별안간 나타나 수백만 국민이 보는 방송을 하자고 나서는 사람에 대해서도 쉽사리 마음을 열지 못했다. 결국 이 나라의 시스템은 아주머니가 공포를 깨고 나올 만한 용기를 제공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신이 이 정도만 하면 우리가 책임질게.”하는 보장을 누구도 해 주지 않았고, “다른 삶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전망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이다.

 

뉴스를 보다 그만 우거지상이 되고 만다. “접근금지 명령을 어겨 봐야 벌금 기십만 원 내면 끝난다.”는 얘기는 10년 전 입버릇처럼 하던 얘기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거나 정신이 나가도록 두들겨 패는 사람들이 그 돈 무서워서 접근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성토한 후로도 이미 강산이 두 번 변했다. 그런데 아직도 그대로였구나.

 

귀신같이 찾아오는 남편 때문에 교회로 주소 옮겨 놓고 폐가에서 숨어 살면서 쓰레기집을 만들어 놨던 케이스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구나. 가정폭력 현장에 출동해서 남편 제압한 것까지는 좋은데 아내한테 와서 “잡아가요 말아요”를 물어보고 또 남편 앞에서 “처벌해요 말아요.”를 물어봐서 경찰한테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라고 화내게 만들었던 일도 여전히 현실에서 재방송되고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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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 애비들은 집에만 들어오면 지가 김일성인 줄 알아.”

 

영화 <똥파리>의 대사다. 웃기는 건 집안에서 주먹 휘두른 놈치고 바깥에서 주먹깨나 쓰는 놈 거의 없었다. 오히려 밖에 나가면 멸시받고 누구한테 큰소리 못치는 ‘호인’들이 많았다. 그런 주제에 집에 들어오면 자기가 김일성인 줄 아는 똥파리, 그래서 자신을 무시하면 수령 모독이라도 한 듯 눈에 불 켜고 주먹 부르쥐는 똥파리들...

 

걸리는 대로 감옥에 처넣으라고 얘기하고 싶은데 또 그것으로 해결될 일도 아니다 싶은 이유는 이혼도 신고도 방어도... 아무것도 못 한 채 깨진 유리 목에 걸고 오들오들 떨고 서 있었을 아주머니가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그 아주머니 지금 살아 있을까. 왜 우리는 더디 변하고 빨리 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