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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26 사건을 쾌거로, 이날을 탕탕절로 희화화해 부르는 트렌드는 벌써 수년이 됐다. 이 추세라면 일종의 문화를 넘어 전통이 될런지도 모르겠다.

 

헌데 왜 젊은 층은 이 비공식적 기념일을 출범시켰을까?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현상은 일베와 디씨의 알력, 내지는 적대적 동거에서 유래했다. 거시적으로 보자면 젊은층의 염세주의 즉 헬조선 세계관에서 탄생했다.

 

 

2.

 

이제는 단락이 매조지된 역사지만 동시에 따지고 보면 몇 년 되지도 않은 과거는 이렇다.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 전후로 진보진영 담론의 정점에 있었던 이슈는 젊은 층의 우경화였다. 왜 이명박을 찬양하며 김대중과 노무현을 혐오하냐는 것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선택한 비극에 수많은 국민들이 공명했다. 현재 젊은 층의 입장에서 기성세대였다. 그들 중 많은 수는 기성세대의 분과 눈물을 가식이나 자기기만으로 받아들였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며 젊은 층의 생존공간은 협소해졌다. 이 글에서 두 진보 대통령의 공과는 중요하지 않다. 국내정치의 결과든 세계적 조류든 상관없다. 민주화가 자신의 삶과는 관계가 없다는 관념이 형성될 만한 시기였다. 물론 민주화는 역사발전임에 틀림없지만 특정 세대의 관념은 그와는 상관없이 정체화될 수 있는 법이다.

 

정의가 불의에 짓밟히는 것이 세상의 굴레이고, 그럼에도 정의의 편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주먹을 쥘 줄 알아야 한다는 민주화 세대의 관념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우리는 그 정의감에 수혜를 받았다. 그러나 젊은 층이 그들의 정의감을 발견했을 때 기성세대는 이미 생존공간을 충분히 확보한 기득권이었다.

 

 

3.

 

키워드는 '반대급부'다.

 

젊은층의 우경화는 386세대에 대한 반대급부다. 386세대가 신세대일 때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천착, 즉 자유와 정신보다 위장이 중요하다는 산업화세대의 태도는 노예의 정치관이었을 수 있다.

 

우리가 이만큼 먹고살게 된 게 다 누구 덕인데!

 

물론 이 주관식 문제의 답은 박정희다. 나는 이에 본능적 거부감을 느낀 민주화 세대 선배들을 이해하고 존경한다.

 

그런데 비슷한 매커니즘에 의해 '우경화된 젊은층'에게 386은 이미 사회의 헤게모니를 쥔 기득권이며, 기득권의 한때 정의로웠던 과거는 현대판 음서제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젊은층의 생존 불안은 상상 이상이기 때문이다.

 

(2030은 놀라울 정도로 가난하다. 그들의 가난은 겉으로 보기에 트랜드를 벗어나지 않는 단돈 9000원짜리 깨끗한 중국산 셔츠에 묻혀 있다.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백만 원짜리 스마트폰은 그옛날 당구장과 막걸리, 기차여행의 낭만을 훨씬 싼 값에 대체한다.)

 

따라서 반대급부가 일어난다. 일베는 386의 기득권을 부정하고 노무현 추모열기에서 동떨어지고 싶은 이들을 쉽게 흡수했다. 막말은 쉽고 편하고 자극적이다. 그렇지만 막말의 쾌감은 불난 데 붓는 기름이지 불이 난 원인 자체는 아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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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화된 젊은층은 생존불안 속에서 느끼는 그나마의 안전에 주목했다. 한국의 치안, 물질적 인프라, 실패하고 소외당할지라도 아프리카 주민처럼 굶어 죽지는 않으리라는 확신. 이것들의 원인을 추적하다 보니 산업화세대와 박정희 추억을 공유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산업화세대는 이미 주류에서 퇴출되어 약자로 전락한 동병상련의 처지라는 점도 한몫 했으리라 나는 믿는다. 한국의 노인빈곤률과 노인자살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OECD 1위다. 그들이 감내한 노고 역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학창시절에서 시작해 취업에 이르기까지 '이해찬 세대' 그리고 '이해찬 이후의 세대'에게 강요된 내부경쟁 역시 전 세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하나의 현상으로써, 젊은 층이 산업화세대의 정치관에 감응해 우경화된 일은 더없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산업화세대와 보수성향의 젊은층이 박정희의 추억을 소환해 '유사 박정희' 이명박을 대통령에 당선시키고 나자, 오래된 속담이 자석처럼 뒤따라 소환되었다. 구관이 명관이었다.

 

유사 박정희가 실패하자 유권자들은 마지막 카드로 박정희의 생물학적 유전자를 선택했다. 박근혜 정권의 실패는 논하거나 부언할 가치도 없을 것이다.

 

 

5.

 

삶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불투명해지니 반대급부의 반대급부가 작용했다. 이제 젊은층은 노무현과 문재인의 도덕적인 인생을 재조명했다. 디씨의 주갤과 야갤이 대표적이다. 두 갤러리는 한때 성향이 비슷했던 일베를 적폐로 선포하고 이명박근혜는 물론 두 대통령을 가능케 한 박정희 신화에 맹공을 퍼부었다.

 

이 당시 주갤의 게시글을 보면 이게 디씨인지 노무현재단 홈페이지인지 헷갈릴 정도다. 일베가 노무현의 죽음을 조롱하는 데에는 미러링으로 맞섰다. 너희가 노무현과 문재인 지지자를 분통 터지게 한다면 똑같이 너희도 부들부들하게 해주겠다는, 아주 간명한 논리였다.

 

(애초에 디씨는 '우리는 저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지 말자'는 다짐과는 거리가 먼 동네다.)

 

그 결과 주갤과 야갤은 대통령이 여대생과 여가수를 불러 시바스 리갈을 마시다가 부하의 총에 비명횡사한 10월 26일을 주목했다. 몹시도 추하게 맞이한 최후의 날이었으므로, 상대진영을 놀려먹기에는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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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당연하게도 김재규 칭송은 상대적으로 박정희를 깎아내려 보수성향 유권자를 조롱하기 위한 의도적인 장난으로 시작되었다. 보다 신나는 조롱을 위해 김재규의 칭송할 만한 이력을 살피다 보니 어? 그저 그런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비범한 면이 실제로도 많다 보니 장난이 진심이 되고, 어디까지가 장난이고 진심인지 구분하기 모호한 상태에 이르른 것.

 

농반 진반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는 '탕탕절'이라는 이름은 이렇게 탄생했다.

 

 

6.

 

촛불혁명이 성공하고 문재인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주갤과 야갤의 태도는 돌변했다. 차마 이름을 부르기도 싫다는 의미를 담아 문재인을 '그 인간'으로 부르면서 비난하기 시작했다. 언제 문재인을 그렇게 칭송한 적이 있냐는 듯, 그야말로 극적인 변화였다. 물론 이 또한 반대급부다.

 

젊은 층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현실과 기득권, 기성세대에 대한 비관적 태도를 내재화했다. 그들 중 일부는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어도 삶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컬트적으로 표출하기 위해 농반 진반으로 문재인 혐오를 하는 중이다.

 

재미있게도, 문재인 칭송은 끝났지만 탕탕절 기념은 남았다.

 

나는 이 역시 기득권에 대한 반발심의 일환으로 본다. 김재규의 명예는 공적인 영역에서 아직 복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탕탕절'은 새로운 발견이자 도발적인 주장이다. 아직 기득권이 되지 못한 불안을 위무하기에는 퍽 좋은 놀이다.

 

더욱이 전두환의 신군부가 스스로를 위해 김재규를 폄훼하고 매도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 놀이는 정의에 부합하기까지 한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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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탕절 기념 문화에 대해, 나는 긍정적이라고 본다. 역사적 사건은 가벼운 장난이어도 될 때 진정 진중함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소화하는, 아니 날것으로 말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접근 역시 민주주의의 증거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노무현의 죽음을 조롱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분명 다르다. 권력자가 이미 권력에서 은퇴한 전임자를 죽음으로 몬 사건은 불필요한 비극이다. 명절이 될 자격이 없는 가학적인 이벤트다.

 

하급자가 저격으로 현재진행형이었던 독재자의 권력을 중단시킨 사건은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 사건의 덕을 봤다. 물론 다른 관점에서는 (전두환에 의한 더 참혹한 독재를 불러왔으므로) 역사발전에 해가 됐다.

 

그러나 적어도 당사자인 김재규가 역사와 민주주의에 대한 소정의 사명감을 갖고 실행한 거사임은 분명하다. 비록 자기기만과 자아도취가 있었을지라도 그 마음이 사명감이 아닌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를 재조명하려는 방식이 가벼울지라도, 재조명이 아닌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 한 인물이 재평가된다면 짠하면서도 유쾌한 해프닝이리라.

 

 

8.

 

오늘 저녁에는 탕탕절 공식 젯밥인 탕수육을 먹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