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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 비밀

 

세계 증시가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일 수는 없어, 며칠을 연이어 하락하고 있다. 올 고점 대비 벌써 20% 이상 하락했는데 늘 그렇듯이 경제지를 필두로 언론들이 앞다투어 ‘약세장’, ‘패닉’, ‘검은 목요일’, ‘위기’, ‘투매’ 등의 말초적인 단어들로 장식된 기사들을 쏟아 내기에 여념이 없다. 가장 어이없는 기사는 한국 증시가 외국인들의 현금인출기라고 쓴 기사였다. 마치 한국 증시가 외국인들의 ‘봉’ 혹은 대한민국 개인 투자자들의 ‘무덤’인 듯한 인상을 주는 이런 기사들은 기자가 사악한 건지 아니면 무식한 건지 도대체 감이 잡히지 않는다.

 

시가 총액으로만 따지자면 미국 증시에서 빠진 돈이 훨씬 규모가 크고, 유럽이나 일본, 중국의 증시에서 빠진 돈이 훨씬 더 많다. 물론 한국 증시만을 놓고 보았을 때 하락폭이 다른 외국 증시에 비해 커 보이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만 돌아보면 우리처럼 진폭이 커 보이는 외국 자본에 개방된 신흥시장이나 준 선진 자본 시장들이 수두룩하다. 옆에 있는 홍콩만 봐도 우리랑 다를 게 별로 없다. 주가 그래프를 보면 우리보다 더 거지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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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부 이후 선진 외국자본이라면 누구든 환영한다며 금융 시장의 문을 활짝 연 우리 주식 시장의 진폭이 우리보다 앞서 잘 살게 되고 규모가 큰 유럽 증시나 미국 증시보다 더 출렁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개인투자자들의 매매 비중이 매우 높아 현금 유동성이 좋으니, 외국의 큰 손들, 헤지펀드나 기관 투자가들이 어지간히 돈이 커도 넣었다 뺏다가 쉬워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한국 주식 시장은 매우 매력적이고 다루기 쉬운 시장이다. 더구나 세계 제일의 반도체 산업을 필두로 하는 제조업이 아직은 든든히 실물 시장을 받치고 있으니 쉽게 버리지도 못하는 시장이다. 우리는 불안에 떨고 있지만 그들에게 한국 증시는 세계 어떤 시장보다 안전한 시장이다.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 이후의 세월을 복기해 보면 지금의 증시 조정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만약 이런 조정 혹은 추락의 과정이 없다면 그게 더 놀랄 일이다. 누구나 말하듯 경기는 늘 등락을 거듭한다. 시시각각 인구가 늘고, 매 분초를 다투며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현대 사회에선 무조건 경제는 커지기 마련이다(커진다는 것을 경제학적 전문용어로 ‘성장’라고 한다). 인구가 는다는 것은 식량이건, 집이건, 온라인 게임이건 수요가 는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경제가 커지지 않으면 예전 맬서스가 주장했던 것처럼 자원 고갈과 인간의 과학기술이 한계에 다달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경제가 축소되는 방향 말고는 갈 곳이 없다. 조금 더 지나면 경제학적으로도 인구가 줄게 될 것이란 뜻이니, 그때는 살아 있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고통만 느끼며 세상을 하직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하는 게 우리의 제일 과제가 될 것이지만 아직은 그런 세상은 아닌 듯하다. 그러니 주가가 지하 20층까지 떨어진다 해도 걱정하지 마시라. 버냉키가 헬리콥터에서 뿌린 돈을 생각하면 지하 50층도 높다.

 

여하튼 그 성장의 과정은 크고 작은 등락을 거듭하는 움직임이 축적되어 이루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고, 무딘 것보다는 예민한 것이 모든 생물들의 기본적인 본성이니, 그런 등락에 인간들이 호들갑을 떠는 것도 어색한 일은 아니다. 그래도 더 이상 들판을 뛰어다니며 사냥을 하던 지극히 동물에 가깝던 구석기, 신석기 시대의 인간은 아니라 한 번은 차분히 생각을 해야 하고 흥분하지 말라고 다독여야 하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일은 사회의 대변자, 온갖 권력의 감시자를 자처하는 언론과 지식인들이 해야 하는 일인데. 요즘 언론과 지식인들을 보면... 일제 강점기 주류 언론과 지식인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니 이건 그냥… 그냥...

 

 

80개월의 미덕

 

80개월 넘게 대한민국의 무역수지가 흑자가 났다. 80개월이면 자그마치 7년이 넘는 세월이고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죽네 사네 했던 지난 10년을 생각하면 그 어려운 기간의 대부분을 우린 늘 전 세계를 상대로 장사를 꽤 잘한 국가 중에 하나다. 그 선두에는 반도체 산업이 있었다. 그 덕에 2018년 올해도 무역수지는 사상 최대라는 수식을 달며 흑자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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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산업의 다섯 분야, 조선, 자동차, 화학, 반도체, 철강이 유기적으로 한국 경제를 이끌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으로부터 시작된 보수 정권 시절을 거치며 조선과 철강은 정권이 자원 외교를 한다며 다 말아 드셨고, 그나마 남은 게 제왕 같은 이병철 일가와 재벌 사주들이 버티고 있던 반도체, 화학, 자동차 산업만 살아남았다. 화학은 국제 유가에 연동된 산업이고 고용효과도 미미하니 밀어 두고 그나마 한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으로 보인다. 사실 20세기 경제 발전의 동력이었던 자동차 산업도 석유라는 화석연료를 태우는 내연기관 대신 전기 모터를 주동력원을 삼는 이상, 전자 산업이 되었고 환경 문제 때문이라도 개인들의 수요에 기댔던 기존의 수익모델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 예전 같은 영화를 다시 누리긴 그른 것 같다. 고용효과가 다른 산업 분야에 비해 매우 탁월했던 산업이라 공해를 무식하게 일으키건, 해마다 어떤 원인들보다 최고의 인명피해를 내건 아직까지 미련을 갖고 있지만 그도 생산 공정의 자동화와 비정규직 고용 때문에 무색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반도체 산업이라도 남아 있는 건 정말 다행인 일이다. 물론 그 선두 주자가 이병철 일가가 쥐꼬리만한 지분으로 전횡을 휘두르며 직원이 이산화탄소에 중독되어 죽어 나가도 그 알량한 산업재해보험 비용 때문에 쉬쉬하는 어이없는 삼성이라는 것이 문제지만 지난 촛불 혁명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릴 것 같은 박근혜 외 자한당 무리들을 내친 우리 민중들을 생각하면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앞으로도 당분간 전 세계 경제를 이끌고 가는 주도산업은 반도체 산업이 될 것이고 아직은 설계 기술이나 생산기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한국 반도체 산업은 전 세계 경제가 죽을 쓰지 않는 이상 승승장구할 것이다. 인공지능 입네, 빅데이터 입네 하지만 그 저변은 고밀도, 초스피드 계산능력을 뒷받침 해주는 반도체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아직도 우린 튜링이 설계한 컴퓨터 알고리즘에서 반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세계경제의 상황으로 아무리 위축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게임을 하고, 어마어마한 저장용량과 엄청나게 빠른 계산 능력을 요구하는 반도체의 수요가 없어지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실물 경제가 완전히 망가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세계 경제는 그렇게 돌아갈 테니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정말 시급한 일은, 수억 명을 넘어선 이해 당사자들이 관계를 맺고 있는 삼성이라는 거대한 수요공급 사슬 내에, 벼룩보다 더 작은 지분으로 황제 같은 호사를 누리고 있는 이병철 일가가 이제는 자신의 지분에 적당한 대우를 받게 만드는 일이다. 내가 이병철을 욕하고, 이건희가 그렇게 된 것에 가슴 아파하지 않고, 이재용이 불현듯 구치소 문을 나선 것을 분해하는 것은 그들이 지은 죄보다 받은 벌이 작기 때문이고 그들이 가진 부보다 터무니없이 더 많은 호사를 누리기 때문이다. 이병철 일가는 앞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사는 민중들이 자신들의 삶을 가늠할 시금석이다. 이재용이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말도 안 되게 삼성 기업 집단의 의사 결정권자로 남아 있는 한,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가 추락하는 것보다 더한 상황을 직면하게 될 것이다. 사실인지 거짓인지 네로가 시 한 줄 쓰겠다고 로마에 불을 질러 로마제국이 망했다고 하는 루머처럼 대한민국도 그림처럼 한 번에 훅 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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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의 비밀

 

3분기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률이 0.6% 정도 된다는 발표가 나오니 대한민국이 마치 망한 듯, 언론들은 또 난리가 났다. 팩트체크하고 넘어가자. 여기서 0.6%는 ‘분기 성장률’이다. 2018년 대한민국의 연간 성장률은 1,2,3 분기 성장률과 4분기 예상 성장률을 고려할 때 약 2.7% 정도 될 것 같다.

 

앞서도 말했지만 경제 성장의 동력은 인구 수, 즉 수요다. 설사 일 인당 소득이 낮아도 인구가 늘고 자원에 여유가 있고 시장이 개방되어 있으면 환율이 미치지 않는 이상, 경제 규모는 커지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스웨덴과 우리나라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전체 경제 규모는 오래전에 스웨덴의 5배를 넘어섰다, 인구가 다섯 배니까. 물론 일 인당 국민소득은 스웨덴보다 적지만 국가의 GDP는 스웨덴을 압도한 지 오래 전이다.

 

스웨덴의 인구는 약 1,000만 명 정도 되고 우린 5,000만 명 정도 된다(2013년 OECD 통계 기준). 스웨덴과 대한민국의 상대적인 환율을 무시한 채 OECD 통계에 표시된 달러 대비 각 국가의 환율만 고려한 아주 거친 비교를 하면 연간 국가 GDP는 스웨덴이 약 610조 원 정도 되고 우리나라는 약 2,280조 원 정도 된다. 어림잡아 우리가 스웨덴의 경제 규모보다 세 배가 크다. 이를 좀 더 정교하게 환율을 고려한다면 인구 규모 비율과 비슷한 5배에 가까운 수치가 나올 것이다.

 

어떤 나라든 전 국민이 경작도 안 하고 그저 산과 바다에서 나는 먹을거리를 수렵 채취하지 않는 이상, 즉 어느 정도의 대량생산체제를 갖춘 나라들 간의 비교에서 이 비교 수치는 거의 비슷하게 나올 것이다. 이를 가정하면 우리보다 2배 정도 인구가 많은 베트남은 국가 기준으로 볼 때, 조만간 우리보다 2배 정도 큰 나라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시 대한민국 2018년 3분기 경제성장률 0.6%로 돌아와서, 몇 달 전 미국의 연간 경제 성장률이 4%가 넘는 듯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보수지들과 경제지들이 웃기지도 않는 난리부르스를 부린 적이 있었다. 그나마 머니투데이라는 경제지의 논설위원이 통계의 오류를 지적하고 JTBC가 팩트체크를 한 덕에 그 실체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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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OECD에 가입한 나라들은 분기별로 경제 성장률을 발표한다. 미국도 발표를 하는 분기 성장률이 아닌 이를 연율로 환산한 수치를 발표한다. 미국 상무부가 발표하는 연율은 대충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발표된다.

 

발표할 연간 성장률 = 전 분기 대비 발표할 분기의 성장률 X 4

 

그래서 2018년 2분기 미국의 실제 경제성장률은 1분기 대비 1%였으니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경제 성장률은 연율로 4%가 된다. 직전 분기인 2018년 1분기는, 2017년 4분기 대비 약 0.5% 성장했다. 그래서 2018년 1분기가 끝나자 미국은 당해 경제 성장률이 2.2%라고 발표했다. 근데 숫자가 좀 이상하다. 0.5%씩 네 분기를 지나봤자 복리로 후하게 쳐도 2%를 넘지 못하는데 이를 훌쩍 넘은 2.2%라고 발표한 것이다(일반인들은 감이 안 와 그렇지 국가 GDP에서 0.1%도 대단히 큰 숫자다. 이걸 금액으로 따지면 우리가 늘 말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된다. 우리나라를 예로 든다면 대한민국 2017년 국가 GDP가 2,000조 원이 넘는다. 그 0.1%면 약 2조 원 정도 된다(요새 하도 조 단위 금액이 남발하니 그게 뭐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의 한 달 생활비가 350만 원이라면 약 4만 7천 년 동안 쓸 수 있는 돈이고 강남에 있는 30억 원짜리 아파트를 650채 정도 살 수 있는 돈이다). 이상하다 생각할 필요 없다. 세계 어디에나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늘 비슷해서 숫자와 관련되면 무조건 사사오입은 기본이니 2%로, 2%라고 딱 떨어지면 전문성이 없어 보이니 사사 아래, 매우 적당해 보이는 2.2%로 발표한 거다.

 

2018년 3분기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1% 정도 되면 지난 분기와 마찬가지로 연율 4% 성장을 할 거라 발표를 할 것이다(2018년 10월 26일에 발표한다)  이보다 미치지 못하면 미국이 지난 2분기에 발표한 연간 4% 경제 성장은 물 건너 간 것이다. 우리랑 비슷하게 0.6% 정도 나온다면 아마도 3.5 ~ 3.8% 범위 안에서 성장률이 발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편집부 주 - 이 글은 10월 25일에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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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자골목 & 골목상권

 

혀준 황교익 선생이 에쑤비에쑤 방송 제작 작자들을 비판하며 거론했던 백 선생께서 국회에 나와 먹자골목과 골목상권은 다르다며, 프랜차이즈를 이길 수 없는 식당들은 문을 닫는 게 당연하다는 증언을 했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 한 번도 대면한 기억은 없으나 바로 옆 건물에서 공부했던 학교 선배지만 그가 한 증언을 곱씹다 보니 참… 거시기 하다는 생각을 했다.

 

혀준 선생의 말처럼, 그는 우리나라 대중 음식문화의 표준, 단짠, 매단신짠이라는 공식을 대중적으로 공식화한 인물이다. 미국 포드와 테일러 생산 후예인 식당 프랜차이즈의 생명은 당연히 표준화다. 현대 산업 자본주의를 사는 민중들은 자신들이 일하는 것처럼 늘 표준화된, 그래서 예외가 없는 매우 안정된 상태의 맛을 동물적으로 원한다.

 

너무 먹은 탓에 질려서 발길을 돌리기 전까진, 어제 먹었던 맛을 기억하는 한, 오늘 먹는 음식도, 내일 먹을 음식도 그 식당은 같은 맛을 선사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대개는 우웨, 이게 뭐야, 뭐 이런을 남발하며 발길을 돌린다. 정말 고약한 것은 소비자들은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같이 오는 동반자들에 따라 매일매일 입맛이 바뀐다는 것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지 혀에 혓바늘이 돋고 입이 헐어 뭘 먹어도 맛이 그지 같을 때도 음식 맛이 다르게 느껴지는 건 자신이 아니라 식당 탓이다. 그냥 그날, 여하튼 아니니까 아닌 거다.

 

그러니 일단 소비자는 무시하고 자영업 식당만을 생각해 보자. 주택가 좁은 골목 초입에 있는, 개인이 운영하는 아주 작은 동네 음식점들이 매일 똑같은 맛을 유지하며 음식을 낼 수 있을까? 어젯밤 남편이 술 마시고 집안을 난장으로 만들고 본인은 몇 대 얻어맞아 눈덩이가 밤탱이가 되어 오늘 영업을 접고 싶은데, 아침 등굣길에 나선 자식은 참고서 살 돈을 내노라며 생떼를 부리며 왜 나를 낳았냐 진을 빼고 등교를 하시니, 몸이 고되고 맘이 걸레가 되었어도 가게 문을 열지 않을 수 없다. 막상 아침에 가게 문을 열러 나왔는데 지난밤 누군가 가게 앞에 아주 큼지막하게 부쳐놓은 구토전을 보지 못하고 밟았다면 그날 만드는 음식들은 어제와 같은 같은 맛을 낼 수 있을까?

 

늘 거래했던 고기 장수와 하늘이 두 쪽 나도 거래하겠다 개점 오백일 전부터 다짐했으나 불쑥 찾은 뉴페이스 고기 장수가 핏기가 서늘하긴 하지만 이전에 거래하던 고기 장수보다 10%로나 할인된 가격으로 돼지고기를 팔겠다고 한다. 한 달로 계산해보니 오늘 아침 자식새끼가 생떼를 부리고 내놓으라던 참고서를 10권도 더 사줄 수 있는 금액이라면 누가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문제는 누가 봐도 새 고기 장수를 선택하는 순간, 그 고기 때문에 매출은 반 토막이 날 것이고 그나마 오늘 아침 아들이 요구하던 참고서 값은커녕 제육볶음에 넣은 마늘 한단도 살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손님이 없어 핏기 선연해 싱싱해 보이는 고기도 냉장고에서 몇 날 며칠을 묵혀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더 할 것이다.

 

백 선생이 출연하는 다른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정말 개념 없는 개인 식당의 주인들 같은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컴퓨터 모니터에서 쏟아지는 먹방 프로그램과 게임 프로그램을 떠나지 못하는 자식을 보다 보다 못해 너 먹방 좋아하고 하루에 라면 10개는 끓여 먹으니 음식점이나 해보라며 부모가 등 떠밀며 식당을 차려 준 이 들 중에 그런 이들이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자영업 식당의 구조적인 문제는 식당 주인의 능력이나 의지보다는 음식을 소비하는 소비자들의 입맛에, 그 가게를 유지하게 하는 경영 환경에 더 방점을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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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타의에 의해 마지못해 요식업에 도전하는 이들이야 백 선생의 말씀처럼 망한다 해도 별로 동정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동네 골목에서조차 과도하게 달고 짠맛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우리나라 표준 입맛 때문에 아침마다 정섯껏 음식을 준비해도 생활비는 차치하고 한 달 동안 가게를 유지할 비용조차 벌 수 없는 식당이 수두룩하다면 폐업에 대한 비난을 식당 주인에게만 돌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음식 한 점이 혓바닥 위에 놓였을 때 나를 흥분시킬 수 있느냐에 목숨을 건 소비자들의 입맛과 우리나라 요식업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가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소비자들의 입맛은 그렇다 치고, 요식업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만 생각해 보자. 앞서 말한 냉동 트럭에 스페인에서 냉동되어 온 고기를 싣고 동네를 유람하며 판매하는 개인 사업자를 상대하는 동네 식당 주인과 그 냉동 트럭 고기 장수가 물건을 떼어 오는, 경기도 이천에 어마 무시 큰 고기 냉동창고 사장과 직접 거래하는 프랜차이즈 기업들을 생각해 보자. 비교를 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가격? 원가로만 20% 이상 차이가 날 것이고 그 돈을 한 달 동안 모으면 아마도 개인 식당 주인들이 지불해야 하는 한 달 임대료의 70%는 넘을 것이다.

 

이쯤 되면 누군가 또 말할 것이다. 어차피 프랜차이즈 식당도 다 개인이 사업주 아니냐고? 당연히 개인이 사업주다. 그래서 프랜차이즈 간판을 달지 않은 개인 사업자들은 항상 열위에 놓인다. 임대료는 프랜차이즈 개인사업자나 그냥 개인사업자나 비슷하게 낸다. 설혹 건물주가 자신의 맨 구석 가게에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들어온다 한 들, 옆에 있는 라면집보다 임대료를 몇 배다 더 받을 리는 없다. 그래서 골목 안 자영업 식당들의 경쟁력은 제일 먼저 임차료가 아닌 식당이 사용하는 원재료, 인건비 그리고 늘 일정한 음식 맛에 달려 있다. 간혹 오해하는 게 상권과 길목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요즘같이 스마트폰으로 무슨 음식이건 주문할 수 있고, 자동차로 두메산골도 찾아갈 수 있고, SNS로 물건을 사고파는  세상에서 상권, 길목은 절대, 필요조건이 되지 못한다. 그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충분조건일 뿐이다.

 

그러니 국회에 나와 열불 낸 백 선생도, 그를 증인이라 불러 놓고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해대는 국회의원도 한심하긴 마찬가지고, 이들을 보면 지 배만 부르면 다인 인간들의 전형을 보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야키니꾸는 원래 불고기를 왜놈들이 번역한 것이지요라고 하거나, 바다에서 건져 올린 모든 생물에는 미세 플라스틱이 디폴트로 장착되어 있다는 사실을 몇 년 전에만 알 수 있었어도 천일염은 나쁘다고 비판했을 때 사람들은 ‘역시, 혀준이셔.’ 했을 텐데 조금 빠른 발걸음 때문에 괜히 안 먹어도 되는 욕을 잡수시는 혀준 선생이 안쓰러울 뿐이다(천일염의 문제는 비단 환경의 문제뿐만 아니다. 그 소금이 아프리카의 블랙다이아몬드만큼이나 거지 같은 것은 한국에서는 현대판 노예 농장이라 불리는 각종 장애우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대표적인 산업현장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표준화된 맛으로 공장에서 식자재를 생산하는 프랜차이즈와 어떻게 하루하루의 생활과 싸워야 하는 개인 식당 주인의 입맛을 비교할 수 있을까? 프랜차이즈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자신이 어젯밤에 남편이나 아내와 싸웠다 한들, 오늘 아침 자식들과 참고서 비용으로 실랑이를 하고 열폭했다 한들 그들이 만드는 생산품의 품질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머리카락을 뽑아 뿌리지 않는 한, 품질 관리를 개뿔로 아는 공장이 아닌 한, 개인사가 대량생산되는 제품의 품질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래서 대형마트에서 레토릭 음식이라고 파는 음식들 중에 죽어도 맛없는데도 꾸준히 매대에 놓이는 이유는 그걸 만드는 식품 대기업들에선 품질 문제가 어지간해서는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설혹 생겨도 아주 극히 적은 빈도로 생기고 돈 주고, 언론 플레이하면 무마할 힘이 있기 때문이며 표준화된 그 맛을 잊지 못하는 바보 천치 소비자가 널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본도 없고, 당장 내 달 임차료를 걱정해야 하고, 내일 아침 또 생떼를 부릴 자식들을 걱정해야 하는 개인 식당 주인들은 그런 프랜차이즈를 당연히 이길 수 없다. 백 선생이 프랜차이즈를 이길 수 없다면 식당 하지 말라 했던 말은 한편으론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가 프랜차이즈의 사업주라는 것을 상기하면 세상에서 제일 교만한 말이기도 하다.

 

 

 

 

 

편집부 주

 

위 글은 독자투고에서 납치되었습니다.

딴지일보는 삼진아웃 제도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온바,

톡자투고 및 자유게시판(그 외 딴지스 커뮤니티)에 쓴 필자의 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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