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23. 수요일
아까이 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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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하고 찌질한 유혹
2013년 9월 10일 오후 1시.
기차는 생 드니 지역을 지나 종착지 파리 북역에 도착한다. 짐을 챙기느라 다른 승객보다 조금 늦게 내린 나는 부랴부랴 발걸음을 재촉한다.
"마드무아젤, 떼 졸리! (어이 아가씨, 예쁜데?)"
어눌한 사내의 말투가 귓가를 스친다.
다른 때 같으면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지나칠 테다.
이미 10년 전, 어학연수로 프랑스에 머무르면서 이런 식으로 응수해 주다가 강간당할 뻔 한 경험이 있다. 혹자는 아니라고 할 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 이들은 위험하다. 미래가 없기 때문에 앞을 내다보지 않는다. 사회의 외면으로 인한 절망감이 그 근원이다.
프랑스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영화 <증오>의 한 장면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사는 곳이 아마도 이 지역 즈음일 게다.
영화 속 “세상은 여러분들의 것입니다!”라는 문구는 어느새 “세상은 우리 거야 병신아”로 바뀌어 있다.
하지만 딴지일보에 올릴 ‘프랑스라는 이름의 파라다이스’ 위험하고도 찌질한 유혹 편을 구상하고 있던 터라 인터뷰를 해 볼 셈으로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낮이고 역 안이니까 괜찮겠지’하는 생각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짜고짜 반말로 이름과 나이, 사는 곳을 물어 본다. 최대한 존칭을 써 가며 되묻는다. 여기서 존칭은 가능한 한 나를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 작전이다.
"안녕하세요, 무슈. 저는 한국에서 온 기자인데요, 프랑스인들의 '작업'에 대해서 취재를 하고 있어요. 혹시 제가 인터뷰를 요청해도 될까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횡설수설하며 집요하게 나이와 이름을 묻는다. 아뿔싸! 눈까지 풀려 있다. 주위를 둘러 보니 모든 승객이 빠져 나간 회색 플랫폼은 텅 비어 있다. 그래도 이미 시작한 거,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간신히 인터뷰를 시작한다.
22살의, (인턴이라고 답하기는 했으나) 그 시간에 역을 배회하고 있던 것으로 보아서 무직으로 보이는 그의 이름은 크리스토프(가명). 초록이 감도는 밝은 갈색 눈과 검고 곱슬곱슬한 머리카락, 얼굴 골격으로 볼 때 북아프리카인과 유럽인 사이의 혼혈이 아닌가 한다.
“저에게 하신 것처럼 지나가는 여자들에게 자주 말을 거시나요?”
“응. 뭐...지나가다가 내 마음에 드는 여자들이 있으면 말을 걸어. 근데 너 귀엽다. 몇 살?”
“아 저는 00살이에요. 이렇게 말을 걸면 여자들이 응수를 해 주나요? 아니면 그냥 지나치나요?”
“내가 좀 괜찮잖아. 근데 뭐 아닐 때도 있고 그래. 그리고 괜찮아. 내가 너보다 더 어리기는 하지만 나이는 그냥 숫자에 불과해.”
“이런 식으로 말을 거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난 혼자는 싫어. 그냥 이야기 하려고 하는 거야.”
“보통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그 다음엔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나요?”
“한 잔 하다가 우리 집으로 데리고 가지. 그리고 나선 여자를 기쁘게 해 줘. 난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남자야.”
“아 그렇군요. 실례지만 작업 성공률이 얼마나 되나요?”
“뭐라고?”
“성공률이요. 말을 걸면 몇 명이나 크리스토프랑 이야기하고 같이 집에 가나요? 한 절반? 아니면 60%?”
“아, 그런 거? (성공률이란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던 듯 하다) 한 60% 정도?”
인터뷰가 이어지는데 사람이 몰린다. 크리스토프와 같은 사내 두어 명이 주변을 기웃거리다 다가와 내게 같은 방식으로 말을 건다.
"에, 너 좀 괜찮다? 이름이 뭐야?"
살짝 빈정 상한 크리스토프가 말한다.
"어이, 안 보여? 내가 지금 내 여자친구랑 이야기하고 있잖아!"
그들 사이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있는 것일까? 그들은 금세 내게 말을 거는 것을 멈춘다. 하지만 곁을 떠나지는 않는다. 크리스토프의 작업이 성공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들이대 볼 심산이다. 점점 더 그 부류의 사내들이 모인다. 게다가 이 곳은 기차 플랫폼. 이미 승객들이 모두 떠나간 이 곳은 나와 나를 둘러싼 사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 감시 카메라가 있기는 하지만, 알고 있다. 여기선 그 누구도 카메라를 신경 쓰지 않는다. 무언가 공포심이 급습한다.
"크리스토프, 여기는 좀 불편한데 저기 아래로 좀 내려갈까요?"
"그러자."
나와 이야기가 잘 되어 가고 있는데 주변에 경쟁자들이 모여 심기가 불편했는지 크리스토프는 흔쾌히 나와 함께 다른 지하철 노선이 있는, 다시 말해 일반 승객들이 많은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말하자면 크리스토프가 의도하지 않았으나 나를 보호해 준 셈이다. 가슴이 벌렁거려 더 이상의 인터뷰는 불가능하며, 첫 번째 시도로는 나쁘지 않다고 판단, 인터뷰를 종료하기로 한다.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응? 어디 가? 나랑 우리 집으로 가자."
"아, 바로 약속이 있어서요. 좋은 하루 되세요."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민다. 크리스토프가 내 손을 잡는다. 내 오른손을 잡은 크리스토프가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자기 집으로 가잔다. 어쩌게? 나도 기쁘게 해 주려고? 최대한 친절하게 웃으며 사양하며 떠나려고 하는데… 말투가 어눌한 이 사내의 힘이 보통이 아니다. 계속되는 실랑이에 주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 때에야 뭔가 머쓱해 졌는지 혹은 계속되는 소란에 가디언들이 올 것을 염려했는지 나를 놓아 준다. 다행이다.
"그럼 다음 번에 가자."
크리스토프의 마지막 한 마디였다. 이 때가 아니면 안되겠다 싶어 발걸음을 재촉한다.
한 스무 걸음쯤 갔을까?
"거기, 그래 너. 너 맘에 들어. 잠시만 멈춰봐."
방금 플랫폼에서 크리스토프와 인터뷰를 하고 있을 때 내게 말을 걸었다가 크리스토프에게 쫓겨난 이들이 여기까지 따라왔다. 게다가 아까보다 사람 수가 더 늘어, 대여섯 명이 나를 둘러싸기 시작한다. 대낮에, 주변에 사람이 많은 역인데도 등골이 오싹한다. 여기서 무슨 일이 생긴대도 보통의 프랑스인들은 나를 도와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 안 도와줄 게 거의 확실하다.
"아 제가 시간이 없어서요, 죄송해요!"
아예 달리기 시작한다. 때마침 다가온 지하철이 어디로 향하는 것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그냥 타 버린다. 다행히 그들은 타지 않았다. 지하철 안 사람들은 한껏 상기되어 숨을 고르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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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웬 소설이냐고? 딴지에 기고할 글을 쓰기 위해 인터뷰를 하던 필자에게 정말로 닥친 일이었어. 나도 대낮이니까, 사람 많은 곳이니까 설마 설마 했지. 나중에 프랑스 친구들한테 이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북역에서 그런 짓을 한 내가 정신 나간 거라고 하더라.
붐비는 파리 북역(Gare du Nord)
파리 북쪽의 도시로 가는 온갖 기차와 영국으로 가는 유로스타, RER B, D, E, 지하철 4,5호선이 다니는 이 곳은 항상 온갖 사람들로 차고 넘친다. 그런 만큼 가방과 자신의 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곳.
사실 파리는 그 구역마다 성격이 뚜렷해서 명확히 구분되는 도시. 19세기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 남작(Baron Haussmann)의 도시계획으로부터 비롯된 파리 도시 구조는 흔히 달팽이에 비교가 돼.
파리엔 총 20개 구가 있어. 각각 1구, 2구 이런 식으로 불려.
숫자 배열을 보면 알겠지만 달팽이 껍질 모양처럼 방사선 형의 구조를 지니고 있어.
서울이 한강을 기준으로 크게 강남과 강북으로 구분되는 것처럼 파리 역시 세느강을 중심으로 좌안(Rive Gauche, 리브 고슈)과 우안(Rive Droite, 리브 드롸뜨)으로 나뉘어 져. 참고로 좌안이 남쪽이야. 세느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거든. 한국에선 보통 좌안을 강남에 비교하곤 하지만, 적절한 비교 대상은 아니라고 봐. 한국처럼 소득 격차로 두 지역이 구분되어 인식되는 게 아니거든(물론 역사적으로는 경제개발계획에 의해 한강 이남 지역이 개발되면서 그 성격을 구분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지금의 인식은 돈, 돈, 그리고 또 돈). 특히나 돈을 주제로 하는 대화는 급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이 곳에서는 더욱. 실제로 파리 최고의 부르주아들이 사는 16구는 강 북쪽에 있어. 그리고 남쪽의 13구는 중국인 지역으로 유명하고.
그럼 세느강을 중심으로 좌안과 우안으로 나누는 이유가 뭐냐고? 바로 정치와 사상과 문화. 프랑스 사회학자 모니크와 미쉘 팽송 샤를로(Monique et Michel Pincon-Charlot)의 묘사에 따르면 우안은 경제와 상업과 정치권력이, 좌안은 지식과 철학과 대학이 있는 곳이야. 달리 말하자면 세느강 북쪽인 우안은 부르주아적이고 귀족적 전통이 강한 반면, 세느강 남쪽인 좌안은 보다 지적이고 혁명적이며 문화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어. 좌안을 대표하는 지역인 5구엔 프랑스에 대해 뭣도 모르는 너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소르본 대학이 있지. 까르티에 라탱(Quartier Latin). 전통적 부르주아 계층은 정치적으로도 우파적 성향이 강하고, 학생들이나 지식인 계층은 좌파적 성향이 강해. 2편에서 말했던 보보가 새로운 사회 계급으로까지 구분되는 이유는 그들이 부르주아 계급에 해당하면서도 전통적 부르주아와 다른 사상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사회를 대한다는 데에 있어.
인터뷰 한 번 하려다가 새로운 인생을 선사 받을 뻔 한 에피소드가 진행된 파리 북역은 10구에 있어.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18구 및 19구 경계에 맞닿아 있어. 만약 세느강 우안을 서울의 강북에 견준다면 아마도 파리 동북쪽에 위치한 18, 19, 20구의 영향이 크지 않나 싶어. 물랑루즈와 온갖 섹스숍으로 유명한 피갈 지역을 지나 동쪽으로 향하다 보면 도시 풍경이 점차 회색빛으로 변해. 지나가는 사람들의 머리색과 피부색은 점점 짙어지고 어딘가 모르게 위협적인 억양이 들리기 시작해. 모든 것이 다 거래된다는 라 샤펠(La Chapelle) 역을 지나면 파리 북역에 다다라. 이 곳은 다름 아닌 프랑스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온갖 인간 군상이 모여 사는 지역.
성급히 일반화시키면 안 되겠지. 그래서 덧붙일게. 비교적 집세가 싸기 때문에 학생들이나 젊은 층도 많이 살고, 파리시의 노력으로 보다 깔끔해져 가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의 가장 가난한 이들, 불안정한 삶을 사는 이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은 바로 이곳. 평균 연소득으로만 보면 파리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은 에펠탑과 앵발리드, 온갖 대사관과 정부부처가 밀집한 7구, 샹젤리제가 있는 8구, 전통적 부르주아 동네 16구. 그리고 가장 가난한 지역은 방금 말한 18, 19, 20구. 이들의 평균 연소득은 3배 가량이 차이가 나.
2012년도 파리 각 구민들의 평균 연소득(단위: 유로)
출처: 파리시청(www.paris.fr)
2013년도 프랑스 최저임금은 시간당 9.43유로(만3천600원 가량), 일주일에 35시간 풀로 일한다면 월급은 1,430.22유로(207만4천원 정도), 1년에는 17,162.64유로(2천4백9십만 원 정도). 그러니까 파리에서 가장 소득이 낮은 세 개 구의 주민들은 평균적으로 최저임금의 두 배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임금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돼. 참고로 파리 집세는 아파트에 딸린 (살만 한) 방 하나를 빌리는 데도 최소 500유로(≒73만원). 한국 상황이랑 비교해 보면 대강 답 나오지?
그 중에서도 18구는 가장 ‘위험한’ 지역이야. 프랑스 전역에서 가장 사건 사고가 많은, 프랑스 정부에서 골칫거리 이민자들을 몰아 넣은, 2004년 개봉된 영화 <13 구역>의 모델이 된 생 드니(Saint Denis) 지역과 맞닿은 곳.
이번 편의 주제는 ‘위험하고도 찌질한 유혹’이잖아? 이러한 유혹의 주체는 대부분 위에 말한 곳에서 사는 이들이야. 슬프고도 답답한 이야기지만 주로 아프리카 지역의 이민 2,3세로 구성된 이들은 소위 사회 부적응자들이고, 사회에서 애써 외면한 이들이기도 해. 프랑스 정부는 1960-70년대, 값싼 노동력을 얻기 위해 이민 장려 정책을 통해 특히 북아프리카 지역 사람들을 받아 들여. 오랜 식민 지배로 언어 문제가 우선 해결되는 곳이었거든. 시간이 지나자 그들의 효용 가치가 떨어지지만 그렇다고 내쫓지는 못하지. 그리고 점점 사회 문제가 돼.
이를테면 이런 거야. 이민 1세대들은 프랑스에 와서 힘든 노동을 담당해. 주로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 출신인 이들은 대부분 이슬람교 신자야. 부모들이 등골 빠지게 일하는 동안 그 자식들인 이민 2세대는 프랑스식 교육을 받으며 자라. 그런데 이슬람에선 종교가 그 무엇보다 우선하기에 가정에서는 여전히 그들의 문화를 간직하고, 또 따르겠지? 여기서 말이야, 이방인으로서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든 삶을 사는 부모들이 과연 자녀들의 교육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을까? 또한 부모들 자신의 문화가 프랑스와 상이한데, 자녀들의 사회화에 힘을 기울일 수 있었을까? 프랑스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정체성을 그 땅에서 찾기에 실패한 이들은 사회의 냉대에 힘입어 더욱 삐딱해져만 가고 있어.
결국 프랑스 정부는 이를 미처 해결하지 못하고 그들을 씨떼(Cité)로 가득한 파리 교외, 이른바 방리유(Banlieu) 지역으로 밀어 넣기에 이르러. 씨떼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 정도로 이해하면 될 거야. 한국에서 럭셔리와 모던의 대명사인 아파트가 프랑스에선 가난의 대명사인 이유가 여기에 있어. 그 지역은 게토화되고, 그 곳에 사는 이민 2,3세들은 국적은 프랑스지만 자신만의 문화를 간직, 공유 및 확산시키며 살아가고 있어. 그러다 보니 이들은 프랑스 정부의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야.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Front National)이 주 공격 타깃이기도 하고. 그들 중 일부가 보이는 폭력성 및 폐쇄성은 실제로 적지 않은 일반 시민들에게 크고 작은 피해를 입혀 왔고, 이는 결국 지난 프랑스 1차 대선에서 국민전선에 18%의 지지율을 안겨다 주었지.
“프랑스를 프랑스인에게(La France aux Francais)!”를 외치는 프랑스 국민전선의 수장, 마린 르펜*
결국은 “냄새나고 무식한 아랍인과 흑인, 중국애들을 프랑스 땅에서 물리치고
고귀한 프랑스의 아름다운 예술과 일자리를 프랑스인에게 돌려주자!”는 개드립인데,
여기에 점점 더 많은 프랑스인들이 동조하고 있다는 건 함정.
* 아버지 장 마리 르펜(Jean-Marie Le Pen)에게서 프랑스 국민전선을 물려받은 마린 르펜(Marine Le Pen).
작년 대선에 출마하여 1차 투표에서 십팔 퍼센트의 지지를 받아 우파의 스타로 떠오른 인물.
더 자세한 얘기는 다음으로 미뤄 둘게. 그냥 이렇게 다루고 넘어가도 되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아. 한국에서도 2000년대 중반부터 ‘다문화’가 화두잖아? 정부에선 사회통합을 외치고 있지만 글쎄, 아직까지는 메아리뿐인 공허한 외침으로 보이네. 나님이 사랑해 마지 않는 유엠씨 님하는 딴지라디오 <그알싫>을 통해 몇 년 안에 이로 인한 심각한 증오 범죄가 나타날 거라 여러 번 예언한 바 있고. 나도 어느 정도 동의. 사실 프랑스는 현재까지만 보면 이민자 정책에 실패했어. 프랑스인들은 스스로를 ‘프랑스라는 나라의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으로 정의하지만, 실제로 프랑스 국적을 지닌 이들 간의 반목은 점차 심해지고 있어. 그런데 프랑스의 교육 및 사회보장제도는 한국보다 훨씬 탄탄하거든. 정치·사회·문화의 스펙트럼도 한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다양성이 보장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
그런데 한국은? 결혼 이민이 아닌 일체의 이민에 대해서 바늘구멍만 한 가능성만을 열어 놓은 곳이자 다양성은커녕 표현의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은 곳. 외국인에 대한 사회보장은커녕 자국민에 대한 배려마저도 ‘돈’이라는 커다란 전제 하에 애써 눈을 감아 버리는 곳. 정부는 그렇다 치고, 대부분의 일반적인 한국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외국인 계급이 있지 않나?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만 대강 ‘백인 > 미국 흑인 > 일본인 > 중국인 > 기타 아시아계 > 흑인’으로 이어지는, 제국주의에서 비롯된 천박한 인종차별주의가 내재되어 있음에도 그에 대한 성찰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잖아. 교육은 단군과 단일민족과 저항적 민족주의만을 말하고, 이 교육을 받은 이들의 다수는 그 틀만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잖아.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받아들이는 한국, 하지만 현실에선 이른바 ‘다문화’가 심화되어 가고 있어. 가끔 미래의 한국을 상상하며 몸서리쳐질 때가 있어. 타산지석이라고 하잖아. 프랑스의 사례를 통해 한국에선 어떤 준비를 더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음 좋겠네. 그게 언제가 될 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다시 유혹 얘기로 돌아가려니 글이 너무 길어진다. 필자의 저질 체력에 돌을 던지시라. 본격적인 ‘위험하고 찌질한 유혹’은 다음 편에서 다루도록 할게.
그래도 그냥 끝내려니 뭔가 아쉬워서 앞에서 말한 인터뷰를 한 날 있었던 일을 좀 더 얘기해 줄게. 그 날은 뭐에 씌인 건지 인터뷰를 하느라 생각 없이 발걸음을 옮긴 곳마다 사창가라던가 사창가라던가 또 사창가였어. 몽마르트 근처에 있는 피갈 지구처럼 관광지화 된 사창가가 아니라 정말 현지인들이 찾는 진짜 사창가. 보통 프랑스에서 그런 언니들은 밤거리에서 볼 수 있는데, 여기 가면 낮에도 직업적으로 자신의 육체를 영업하는 언니들을 한 다스씩 볼 수 있더라.
그 날… 문자 그대로 수박만 한 가슴을 드러낸 채 지나가는 나를 보며 으르렁거리는 언니들과 내 뒤를 따라오며 갖은 수작을 걸어제끼는 남자들을 뒤로 하고 참 많이도 헤맸네.
과장 없이.. 이 정도는 약과였음
비디오 제목은 가슴 vs 수박 (동영상 링크)
이 정도는 되어야 비교가 가능함. 정말이지 이런 가슴을 한 언니들이 날 노려보았음.
섹스숍으로 가득 찬 거리를 빠져나가려고 애쓰는 필자를 상상해 보라. 아련하지 않은가?
P.s 1. 크리스토프가 자신 있게 말한 성공률 60%는 허풍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인터뷰를 하면서 그런 작업에 응했다는 여성을 한 번도 보지 못했으며, 주변에서 그런 작업이 성공했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바 없다. 아마도 남자들은 교제해 본 수를 세 배로 뻥튀기하고, 여자는 삼 분의 일로 나눈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인 것으로 이해하였다.
P.s 2. 그러고 보니 크리스토프의 사진을 못 찍은 것이 한이다. 하지만 그 땐 너무 쫄았다. 인정한다.
아까이 소라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