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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 전 사무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외신들도 연이어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그의 대선 출마가 ‘뜨거운 감자’이긴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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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FINANCIAL TIMES>

 


그의 최측근 조차도 반 전 총장의 이번 결심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 방송을 보고 소식을 접했다는 직원도 있었다. 특히, 반기문 대변인으로 선거 캠프에 합류할 예정이었던 서울신문 부국장 출신 이도운 기자는 사표가 수리되자 마자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관련기사: '반기문 대변인에 이도운 전 서울신문 부국장'(링크), 오마이뉴스)

 

자신을 위해 생업을 버리고 온 사람들을 옆에 두고, 이같은 결단을 내린 반 전 총장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관심법이라도 있으면 속마음을 들여다 보겠지만, 그럴 수도 없어 안타깝다. 어찌됐든, 고심은 했겠지.

 

그런데, 그 고심의 기간이 참 짧았다. 한국에 온지 불과 3주정도 밖에 안 됐는데, ‘국민 대통합’을 위해 “이 한 몸 불사르겠다”던 그의 불타는 의지는 어디로 간 걸까. 그의 불타는 의지력은 고작 3주짜리였단 말인가.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는가.

 

많은 이들의 궁금증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여 준비해봤다. 이른바, ‘반기문을 알면 외교관이 보인다’ 특집.

 

지난 2016년 12월 16일, JTBC 뉴스룸에 출현했던 유시민 작가는 반 전 총장의 향후 행보를 어느 정도 예상이라도 한 듯, 그의 대선 레이스 중도 하차 가능성을 언급했었다. 사실 필자 또한, 당시 유 작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불출마 선언이 그리 놀랍지 만은 않았다. 물론, 국민들의 절반에 가까운 비율이 반 전 총장이 대선 중도 하차를 예상했던 것도 안 비밀이다. (관련기사: 반기문 대선레이스 중도 포기할 것 45.5% (링크), 미디어오늘)

 

당시 유 작가는 대선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의견들을 제시했다. 그 중에 반 전 총장에 대한 평가 만큼은 다른 것들 보다 더 예리 했다. 그의 평가는 이러했다.




 

“…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면서 뭘 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대체로 전망이 뚜렷하고, 거기로 가는 길이 탄탄해 보일 때 나서는 분이거든요...”

 


그렇다. 유 작가가 평가한 반 전 총장은 모진 풍파를 이겨내며 고진감래하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것. 사실 반 전 총장의 과거를 보면 ‘승승장구’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1970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외무고시를 차석으로 통과하여 외교부에 입부, 연수원 수석,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 그리고 외교부 장관까지 그의 삶은 탄탄대로였다.

 

이 뿐인가. 불과 얼마전 까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반기문은, 케네디를 만난 한국의 수재, 서울대-하버드로 이어지는 최고의 학력 소유자이자 아시아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경력을 지닌 위대한 인물이었다. ‘대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2위로도 뽑힐 만큼 그의 명성은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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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위인의 표본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수 많은 젊은이들에게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이유가 뭘까.

 

유엔사무총장 임기가 끝난 후, 일반인 반기문 앞에는 ‘검증’이라는 숙제가 놓여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잘 살아왔는지’에 대한 평가가 새롭게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조직의 후광을 걷어내고 화려한 계급장을 뗀 뒤, 요동치는 정치 세계에서 그가 드러낸 철학과 가치관은 국민이 기대했던 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풍부한 국제 경험에서 나올 거라 예상했던 통찰력과 참신한 아이디어도 보이지 않았다.

 

국민은 찾고자 했다. 우수한 학생이자 일꾼이었다는 그의 경력에서 지적이고 전문가적인 면모를. 그런데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헤맸다. 보수권에서는 그의 치적과 업무능력을 추켜세우며 기대감을 고조시키고 있었는데, 그의 어눌한 언변과 작은 마음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세계 대통령을 10년간 수행했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좁은 식견을 미디어로 접하며 부끄러움은 또 우리의 몫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탈탈 털리기 시작한 반기문 전 총장은, 그야말로 ‘허당’의 면모를 3주간 뽐내며 역대 가장 짧고도 굵은 대선행보의 시간을 보냈다. 입국에서부터 시작된 서민 코스프레, 각본대로 간담회, 취준생 자원봉사 권유에 자신의 영어실력 깨알자랑까지. 밉상도 이런 밉상이 없었다. 아울러, 대선 예비 후보로서 검증이 시작되자마자, 박연차·성완종 관련 뇌물수수 의혹이 기사가 터졌고 친인척 비리까지 뉴욕 연방법원에 기소됐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건들이 스물 스물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그의 위상은 나락으로 추락했다.

 

털면 먼지 안 나오는 이 없다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나 굵직한 사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연일 기사로 터져나왔다. 그동안 몰랐던 걸까, 모를 수 밖에 없었던 걸까. 아니면 알고 싶지 않았던 걸까.

 


외교부라는 거대한 방패 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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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전 총장은, 1970년 외교관이 되어 유엔사무총장이 되기 전인 2006년까지, 36년간 외교부 소속 공무원이었다. 학창시절을 제외한 대부분의 삶을 외교부라는 조직 안에 보낸 셈이다. 외교관. 그가 갖고 있던 타이틀은 어쩌면 그에게 커다란 ‘방패막’이 되어 줬을 지도 모른다.

 

지금은 폐지됐지만(사실 폐지된 것도 아니다. 외교아카데미 입시가 외무고시와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 외무고시는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보다 선발 인원이 적어 선후배나 동기들 간의 유대관계가 매우 끈끈하다. 잘 한 것은 더 치켜 세워주지만, 잘못한 것은 더욱 철저하게 감춰준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구성이 된 조직이 외교부다.

 

예를 들어보겠다. 일전에 주영국대사관에서 근무했던 한 직원이 외교부 감사관실에 공직자의 불륜 고발한 적이 있었다. 해당 공직자는 불륜 상대로 의심되는 직원에게 인사이동과 급여 인상 시 혜택을 주어, 타 직원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참다 못한 직원 하나가 외교부 감사관실에 고발 메일을 보냈는데, 돌아온 답변은 아래와 같았다.

 

 1) 신고한 사람이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할 수 있고,


 2) 불륜을 저지른 당사자의 사생활은 보호 되어야하며,


 3)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면 진술만으로는 사실 확인이 불가능 하니,


 4) 고소 안 당하도록 부디 몸 조심하세요.

 

감사관실 조차도 실은 외교부의 부조리를 조사하기 위한 기관이 아니라, 외교부 내에서 일어난 부조리를 잘 덮어주고 잡음을 잠재우는 기관이었던 셈이다.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외통위)의 한 관계자도 이와 비슷한 경험담을 얘기한 적이 있다. 외교부에서는 내부고발자나 비판세력에 대한 보복이 매우 교묘하게 이뤄진다고 한다. 알게 모르게 사람을 괴롭히고, 오랜 기간 동안 지켜보며 약점을 잡아 철저하게 짓밟는다는 것이다. 아닌 척 겉으로는 점잖게 대하면서 뒤에서는 온갖 고초를 겪게 만들기도 한다고 했다. 비정상적인 처사에 대해 항의를 하거나 고발 하는 사람을 보이지 않게 ‘사회적 매장’을 시켜 나가는 처사를,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고 했다.

 

이처럼, 폐쇄적인 외교부 안에서 서로 감싸주고 덮어주고 가려주니, 그 안에서 승승장구했던 반 전 총장도 본인이 굉장히 대단한 사람이라고 착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듯 ‘철벽수비’를 해 주는 기관 내에서 대부분의 삶을 보냈던 사람이 어떤 비판을 달게 받을 수 있겠는가? 그 안에서는 조직의 ‘방패막’이 매우 고마운 존재였겠지만, 결국 건강하지 못한 보호막 속에서 대선 정국을 스스로 헤쳐갈 내공이나 언론의 포화를 받아낼 여유와 담대함은 기르지 못했다. 비판이나 냉정한 평가에 대한 최소한의 면역력도 기르지 못하고 바깥세상으로 나온 반 전 총장이 한국언론하고만 얼굴을 붉힌 게 아니다.

 

 

토 달지 말고, 비판도 하지 마라!

 

전 유엔 내부감찰실(OIOS) 실장 ‘잉가 브리트 알레니우스’(Inga-Britt Ahlenius)가 스웨덴 출신의 니클라스 에크달(Niklas Ekdal) 기자와 함께 <미스터 찬스 : 반기문의 리더십 아래에서 후퇴한 유엔(Mr. Chance-The deterioration of the UN during Ban Ki-moon's leadership>을 출간했다. 그녀는 반 전 총장이 ‘딴지’를 거는 걸 매우 싫어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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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 따르면, 반 전 총장이 “여러분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듣고 싶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누군가가 반문을 하거나 개인적인 의견을 표시하면 화를 내거나 충성심이 부족하다고 여겼다고 한다.

 

외교부는 상명하복의 질서가 매우 엄격한 조직이다. 각 국에 있는 대사관들도 대부분 본부의 지시에 따라 운영이 되고 공관 내부에서도 서열을 분명하게 구분한다. 이 같은 경직된 조직 문화에서 공직생활을 했던 반 전 총장이 수평적 의견 청취/수렴을 하는 일에는 끝내 적응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각에서는 알레니우스의 비판이 모두 수용될 만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반 전 총장의 측근인 ‘비자이 남비아르’(Vijay Nambiar)는 알레니우스가 반 전 총장의 업적을 저평가한 부분이 많다고도 했다. 하지만, 내부 감찰실에 있었던 사람의 시각과 사무총장 비서실에 있었던 사람의 말 중, 누구의 의견이 더 객관적인지에 대해서는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다만,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는 습성은 오랜 외교부 생활 동안 길러졌을 거라는 말을 하고 싶다. 외교부에 근무했던 기간 동안, 반 전 총장은 아마 ‘딴지’ 한 번 걸려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조직문화는 자신의 결점을 보완하고 스스로를 발전 시키는 기회를 줄곧 막았을 것이다. 스스로를 뒤돌아보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도 훈련을 해야 얻어지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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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의혹과 비판에 대해 ‘아니오’라고 일관하는 그를 볼 수 있다

출처 - <중앙일보>



오랜 시간 누적되어온 습성이 이제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비판의 화살을 당해낼 재간이 없도록 만들었을 수 있다. 반 전 총장은 자신에 관한 검증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에게 ‘나쁜 놈들’이라며 화를 내기도 하고, 더 이상 위안부 합의문 관련한 인터뷰는 하지 않겠다며 특정 질문에 대한 보이콧을 하기도 했다. 비판에 대한 유연한 자세가 없는 정치인이 얼마나 아마츄어인지 알 수 있었던 3주였다. 온갖 굴욕적인 닉네임과 원색적인 비난에도 꿋꿋하게 버텨주는 정치인들이 새삼 프로페셔널하게 보였다는.

 


(다음 편에 계속)




BRYAN


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