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이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정말 민주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정치적 제도만 놓고 보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매번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는데, 이 선거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치러진다. 법정연령 이상의 대부분의 국민이 선거권을 갖고, 모든 선거인은 한 표씩만을 행사할 수 있다. 그것도 교육 수준, 경제적 수준과 무관하게, 모두 동등하게 한 표씩.
그러나, 이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사회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느낄 것이다. 적어도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는.
경제인 주진형 씨는 팟캐스트에서 한국사회에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구조를 원청과 하청의 관계를 통해 설명했다.
원청은 이미 기득권을 가진 조직으로, 자신의 지위(기업의 경우 브랜드 및 유통망, 공무원의 경우 예산 집행권)를 이용하여 일을 하청에게 발주시킨다. 원청이 하청에게 일을 발주시키는 이유는 단 하나, 원청이 직접 그 일을 하는 것보다, 하청에게 시키는 게 더 싸게 먹히든가,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기업들은 위험하고 돈이 안 되는 일감일수록 하청에게 일감을 짬 때린다. 사고가 발생해도 발을 뺄 수 있고, 생각보다 돈이 안 된다 싶으면 직원을 직접 해고할 필요 없이 하청과 계약해지를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돈이되면 나중에 본인들이 직접 해도 되는 거고.
하청도 규모가 좀 되다 보면 다시 대기업으로부터 가져온 일감 중에서 타산이 맞지 않는 일에 대해 다시 하청을 주거나, 값싼 계약직을 고용해서 비용을 더욱 절감할 수 있다.
이러한 갑을관계를 통해서, 원청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득권을 안정적으로 보전하되, 이에 동반된 많은 리스크는 하청에게 전가시킬 수 있다. 꿩 먹고 알 먹고. 반면, 한번 하청이 되면, 현상유지에 급급하지 어지간해서는 원청을 따라잡을 수 없게 된다.
이런 계급사회에서, 우리는 누구나 갑이 되길 원하고, 갑의 위치에 서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국민들의 의식이 수능에서 크게 나아가질 못한다는 말이 있다. 좋은 대학을 나오면 그만큼 좋은 직장에 갈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으니까 (요즘은 좋은 대학 나와도 취업하기가 힘들어서 오히려 입시시장이 예전만 못하다는 자조 섞인 말도 들리지만).
복지가 취약한 우리나라에선 “생존”, 즉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최소한의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은 그만큼 절박한 문제이다. 그런데 좋은 직장은 한정되어 있다. 나쁜 대학 간판을 달면, 거기서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가 정말 어렵다.
어쩔 수 없이 하청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다면? 우리는 안다. 하청에 가서 아무리 노력하고 잘 해도 한번 하청에 들어간 이상 원청으로 옮기기 힘들다라는 걸.
제2의 기회가 막혀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수많은 에너지가 낭비된다. 재수를 해서라도 좋은 대학에 가고, 졸업을 몇 년 늦춰서라도 토익점수 맞춰서 좋은 기업가는 게 이득이니까. 이렇게 줄 세우고, 계급을 매기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아주 공허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요즘은 이러한 잘못된 사회구조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자주 나오는 것 같아 다행이다. 국민들이 이런 문제에 관심을갖고, 이러한 문제를 좀 더 잘 해결할 수 있는 정치인을 선출해서 법과 제도를 바꾸어 나가는 게 민주주의 제도의 힘이니까.
이렇게 거대한 사회 구조적 문제는 정치의 영역이다. 국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정치인과 경제학자들이 정책과 입법활동을 통해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고쳐나가야 한다. 대통령 한번 잘 뽑는다고 다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두세 번의 개혁적인 정권과, 그 이상의 국회 회기동안 잘못된 사회구조 개혁에 대한 전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을 때만 이런 문제는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 짧으면 십 년이지만, 그나마도 제2의 이명박, 박근혜가 나와 개혁을 되돌리면 그 두 배 이상의 시간을 들여야만 나아질 수 있는 문제다. 한 마디로, 지난한 싸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보다 작은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다. 굳이 어떻게 우리 사회 기득권이 카르텔을 형성하고 흔드는지를 살펴보지 않아도, 우리가 매일같이 마주하고 있는 비민주적인 조직에 관한 문제이다.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든, 작은 회사에서 일을 하든, 프리랜서로 외주 일을 하든, 우리 대다수는 어떠한 직장이나 이에 준하는 조직과 엮여서 경제활동을 한다. 그리고 이 직장들은 대단히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직장에 입사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구의 결정인가? 경영자다. 당신이 만약 지금 직장에서 퇴사해야 한다면? 그 결정 역시 경영자의 결정일 것이다. 경영자는 직장에서 당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이 오늘 해야될 일,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하달한다.
이런 경영자는 누가 뽑는가? 주주들, 혹은 오너다. 매일같이 경영자에게 “경영” 당하는 건 당신인데, 당신은 자기를 이끌어줄 경영자를 뽑을 권한이 없다. 자기회사 주식 쬐금 사고, 의결권을 가질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주주들은 보유한 주식 수만큼 표를 행사한다. 민주주의처럼 1인 1표가 아니라, 주식을 많이 가지 사람이 왕이다.
분배 또한 문제가 많다. 당신 회사가 만약 올해 이익이 두 배가 됐다면, 당신의 연봉은 두 배가 되는가? 명절에 보너스나 좀 더 받을 수 있음 다행이다. 경영자는? 연임이 된다던가, 보수가 좀 띌 수는 있겠지만, 역시 그 돈이 자기 돈이 아니다. 회사가 발생시킨 이익은 온전히 주주 몫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당신 회사가 적자라면? 주주들은 그동안 받은 배당금을 토해낼까? 아니다. 이익 개선을 위해 인건비를 낮출 것을 요구하며, 당신의 연봉을 낮추려 들것이다. 또한 당신이 갖고 있던 기술이나 능력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당신을 직장에서 내쫒으려 할 것이다. 그렇게 당신은 조직에서 버려지게 된다. 마치 낡은 기계처럼.
좀 오버해서 단순하게 쓴 점도 있지만, 나는 분명 이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모순을 꼽으라면, 우리는 정치적으로 민주적이지만, 경제적으로 비민주적인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는 점을 꼽고 싶다.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개인의 재산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생산활동을 함에 있어, 왜 우리는 늘 비민주적인 방식을 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한번 고민해 봤다. 사회의 경제민주화가 아닌, 기업 내에서의 경제민주화에 대해서. 학부 졸업논문 때 썼던 주제라 사실 깊이는 별로 없다. 그냥 가볍게 읽고, 이 문제에 대해 같이 고민을 해 보는 방식이었으면 좋겠다.
씻퐈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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