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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리를 처음 한 건 초등학교 5학년. 아무도 믿지 않지만 당시 키가 작지 않은 편이었던 나는(그 이후 성장판이 이별을 고함) 여름방학을 맞아 놀러간 고모네 집에서 첫 피를 봤다. 

 

아침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복통이 계속되던 차였다. 체해서 아픈 것과도, 변비 때문에 아픈 것과도 조금 달랐다. 아랫배가 쑤시고 몸에 힘이 잘 안 들어갔다.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있으면 조금 나았는데 이는 곧 앉아있거나 상체를 세우고 있으면 계속 아팠다는 것이다. 

 

처음 겪어보는 고통의 정체를 깨닫기 전에 찾아온 건 찝찝함이었다. 몸에서 뭐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뭔가 끈적끈적한 게. 화장실에 달려가 확인해보니 팬티에 갈색의 무언가가 묻어있었다. 

 

생리혈이었다(인간으로서의 긍지를 위해 밝히지만 응가는 아니고 응가라고 의심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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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빨갛다고 배웠고(실제로도 빨갛지만), 팬티에 묻은 건 갈색(정확히는 흙갈색)이었지만, 보자마자 이게 생리혈이고 방금 첫 생리를 했다는 걸 알았다(생리의 시작과 마지막엔 흙갈색의 피가 나옴). 학교에서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지만 왠지 알 수 있었다.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 씩 생리를 하기 시작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고모에게 '생리하는 것 같다'고 말하자 고모는 일가친척들에게 전화를 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그 집은 일가친척 모임장이 됐다. 사실 바로 우리 집에 돌아가야 했으나 배 아프고 기력이 없어서 돌아갈 힘이 없었다. 결국 아빠가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자연스럽게 만남의 장소는 고모네가 되었다.

 

케이크와 꽃다발. 부모님을 비롯해 친척들이 나름 선물이라고 뭔갈 사들고 왔는데, 선물이란 게 안 기쁠 수도 있다는 걸 이 때 알았다. 분명 케이크도 좋아하고 꽃도 싫어하지 않지만, 당장 처음 느껴보는 생리통에 사족을 못 쓰고 있는 처지에선 한낱 물건들에 불과했다(몸도 일으키지 못할 만큼 아픈데 기쁜 감정을 느낀다면 성적취향을 의심해 봐야 하는 건데). 그저 이상한 보온팩을 품에 껴안고 고모네 집 거실 바닥에 옆으로 누워있었다. 끙끙대던 내게 케이크를 먹던 친척어른 하나가 나에게 '어른들 먹는 데 누워있냐'고 타박을 했던 게 기억 난다(그 친척 안 만난지 몇 년 됨).

 

주인공 없는 파티가 즐기기 무안해졌던 건지, 다른 친척이 "너도 이제 여자가 되었다"는 축하 아닌 축하를 해주었다. 예나 지금이나 이과과목과는 거리가 먼 아이임에도 '난 태어날 때부터 XX염색체였는데 대체 무슨 소리일까' 싶었다. 전 그 전에도 이후에도 고추가 없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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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여자'가 '가임능력을 갖게 됐다'는 뜻이라는 걸 안 건 꽤 나중이었다. 왜 임신을 할 수 있는 몸이 되었다는 이유로 '여자'가 되었다는 건지, 임신을 못하면 여자가 아닌 건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 때는 지금처럼 인성파티를 하는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못 들은 척 아픔에 집중했더랬다(세간에선 이런 걸 무시라고 한다지만).

 

원하지 않았음에도 가임능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축하와 예의범절교육을 받았지만, 그 와중에 현실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까 날 때부터 여자였는데 갑자기 '여자가 되었다'는 선언을 듣고 아무리 아파도 어른들이 뭔갈 먹을 땐 누워있으면 안 된다는 가르침은 받았지만, 이 가임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12살부터 최소 몇 십 년은 좋게 보내야 한다는 사실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2. 

 

하나 다행인 건 사람은 뭐든 익숙해진다는 것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생리를 하다 보니 절대 익숙해질 수 없을 것 같았던 생리에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예고 없는 생리혈+생리통의 등장에도, 갑작스레 시작된 생리에도 당황 않고 생리대를 빌리는 것도 아무렇지 않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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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다고 해서 아무렇지 않다는 건 아니다. 생리 그 자체와 생리를 전후로 찾아오는 생리전증후군과 생리통은 많이 겪어서 익숙해졌을 뿐(어느 정도 대비가 가능해졌다고 할까), 찾아올 때마다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곤 한다. 

 

 

- 생리전증후군의 습격

 

생리전증후군은 다양하게도 찾아온다. 그 중 가장 먼저 사인을 보내는 건 여드름. 생리 시작 2주 전 쯤 얼굴에 하나둘 씩 올라온다. 하나만 있어도 속상한 판에 장소를 가리지 않고 피지 친구들이 한 번에 정체를 드러낼 때는 온동네 모낭충이 여기 다 모여있는 것만 같다.

 

얼굴이 가장 티가 나서 그런 거지 몸에도 앞뒤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옷 갈아입다가 몸 여드름을 건드리기라도 하면 세상 누구보다 멋드러진 쌍시옷을 내뱉는데, 사춘기 때나 할 줄 알았던 이 바보짓을 한 달마다 하고 있으면 내가 이래가 살겠나 싶어 속이 상하고 그런다. 

 

이 속상함은 식욕으로 풀게 된다. 피동형일 수밖에 없는 게 나는 안 먹으려고 했는데 손과 입이 먹고 있다(그러니까 피동형이 맞음. 암튼 맞음). 어찌나 단 게 땡기는지 생리 전 만큼은 푸드파이터 남부럽지 않다. 원래 조금씩 자주 먹는 편임에도 어느 날은 미쳐서 파ㅇ바게트 홀케이크를 반 정도 한 번에 해치웠다. 냉장고를 열었는데 단 게 있었을 뿐이지 내가 먹으려고 했던 건 아닐 거다(?). 

 

운동으로 속죄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체력이 뚝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평상시엔 거뜬하던 일도 지치거나 졸리거나 기가 빠져서 해내기가 쉽지 않다. 이는 나이에 따른 체력저하와 겹쳐서 나타나기도 하는지 요즘은 몸살 기운도 든다. 니베아 진주펄을 바르지 않았음에도 처참한 안색이 될 때면 10년 뒤 얼굴을 스포일러 당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이에는 부은 몸(살찐 거 아님. 생리하기 전 원래 몸이 부음)과 광대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의 콜라보레이션이 한 몫 했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다.

 

우울감은 덤이다. 친절과 관심은 체력에서 나온다고 하던데, 난 부종으로 몸은 무겁고 체력은 떨어져있는 상황. 온지구가 싸우자고 하는 것 같은데 굳이 친절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라는 이유로 만사 짜증과 화의 연속이다(늘 이런 상태이긴 함). 슬픈 건 하루에도 12번은 더 바뀌는 감정에 가장 지치는 건 본인이라는 거다. 이 때 만큼은 웬만해선 자기자신이 싫어지는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차라리 '빨리 생리 시작했으면'하고 빌고 말지.

 

 

- 생리를 시작하면...

 

생리를 시작하면 바로 생리통이 찾아온다. 배가 콕콕 쑤시고 알싸하게 아프기 시작한다. 배 아픈 것도 참기 힘든데 허벅지가 그렇게 저리다. 특히 오른쪽 허벅지가 저려오는데, 그럴 때면 일본영화에서 야쿠자가 '형님(아니키)!'하면서 양손을 양허벅지를 올려놓고는 자세로 지긋이 아픔을 참아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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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든 어디든 이 자세로 이를 꽉 깨물고 있음

 

뱃속이 뒤집혀서 그런가 배변생활이 갑자기 원활해지는 건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또 그렇게 단언하지 못하는 건 생리하는 기간 내내 똥X멍이 그렇게 아리기 때문이다(이 때만큼은 왠지 BL을 잘 못 봄). 변비로 고생하던 사람 또한 오만 숙변까지 제거할 만큼 건강한 장생활을 해서만은 아니고, 그냥 아리다. 일하다 걷다가 앉아있다가 갑자기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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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든 어디든 고통이 찾아오면 이러고 있음

차마 만질 수 없는 부분이라 그저 이만 꽉 깨물 뿐...

 

다행인 건 그나마 진통제가 잘 드는 편이라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생리 시작한 것 같다!' 혹은 '생리 시작했다!'고 느꼈을 때 진통제를 먹어 잔잔한 고통만을 느끼고 지나가기도 한다.

 

라는 건 원래 몸 상태가 그다지 나쁘지 않았을 때 얘기고,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으면 약도 효과가 없다. (참고로 여기서 진통제를 더 먹으면 큰일난다. 끊이지 않는 생리통에 열이 받아 진통제를 여러 개 입에 털어넣은 적이 있었는데 깔끔하게 실려갈 뻔 했다. 1회 권장량이 2알(그것도 성인 남자 기준)인데 그에 몇 배를 먹었으니 메스꺼움과 어지러움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도였다. 토하고 괜찮아졌긴 했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약이 잘 듣지 않아 생리통으로 응급실 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만큼 극심한 생리통을 호소한다는 것인데, 지인 중에도 생리 때면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 나가는 이가 있다. 이 기간에 진통제를 달고 사는 건(별 효과는 없지만) 물론 생리 중이 아닐 때도 양약, 한약 등 생리통을 줄여준다는 모든 것을 시도했으나 차도는 없었고, 여전히 없는 모양이다.

 

나도 진통제 없으면 꽤나 앓으면서 진통제마저 잘 듣지 않는 지인을 볼 때면 참 안타깝고 그렇다. 생리를 평균 7일 정도 한다고 했을 때 생리통이 7일 내내 있는 건 아니라지만, 생리통이 끝나면 본격 '생리'가 시작되는 걸...

 

 

- 7일의 주옥같음

 

생리기간의 사람은 굴을 낳을 수 있다. 그것도 피떡 굴을. 피가 특히 많이 나오는 1-3일 째에는 울컥하는 느낌과 함께 생리대 위로 굴 같은 피뭉치가 떨어진다. 기저귀 차는 아기들이 자기가 응가해놓고 왜 기저귀 갈아달라고 우는 걸까 심리가 궁금하다면 굴을 낳아보면 된다. 굴이 안착된 생리대를 하고 있다 보면 당장 생리대를 갈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어서 울고 싶어진다. 

 

기침만 해도(사실은 숨만 쉬어도) 몸에서 굴이 쏟아지는데 활동적인 건 꿈도 못 꾼다. 아니, 땀을 내는 행위 자체가 힘들다. 땀이 나면 생리대가 몸에 쩍쩍 달라붙는데, 상기해야 할 건 그 생리대엔 굴이 있거나 적어도 피가 묻어있다는 것이다. 티슈보다 조금 질긴 종이에 끈적끈적한 걸 묻혀놓고 손에 꽉 쥐는 걸 상상하면 대충 느낌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걸 가랑이 사이에 달고 다닌다면? 날이 추울 땐 그나마 낫지, 더워지기 시작하면 질 외부를 비롯, 사타구니 등 그 주변에 땀띠가 생긴다. 심할 땐 주변 살이 짓무르기도 한다. 괜히 중요한 시험이나 이벤트를 앞두고 생리를 미루는 게 아니다. 

 

이런 건 다 구라임

 

일상은 일상대로 고장이다. 잘못 움직였다 생리대가 움직이진 않을까, 피가 밖으로 새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혹시 새어나와 옷에 묻진 않았는지 수시로 확인한다. 보통 이를 방지하기 위해 위생팬티(생리대 이탈 등으로 인해 피가 새는 것을 방지하는 팬티. 방수천이 덧대어 있는 만큼 두껍고 공기가 잘 통하지 않음)를 입거나 일반 팬티 위에 위생팬티를 덧대입고, 그것도 불안하면 쫄바지를 더 입는다. 물론 어느 쪽이든 통풍이 오지게 안 되고 복부와 사타구니에 압박이 가해지기 때문에 이는 다시 부종으로 나타나서 일상을 또 방해한다.

 

집에 있다고 마음을 놓을 수도 없다. 특히 잘 때. 오버나이트(일반 생리대보다 훨씬 긴, 수면용(?) 생리대. 엉덩이골을 전부 덮을 정도로 길다)를 하고, 팬티를 두 장 입고 그 위에 또 바지를 입어도, 얼마나 험하게 자는지 깨보면 생리대가 약간 다른 위치에 가있다. 이는 즉슨 피가 생리대 바깥으로 새어나갔단 것으로 침구에 빨간 피가 묻어있음을 의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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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옷 그거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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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이불을 못 사는 데엔 여러 이유가 있음

 

팬티와 생리대가 만들어내는 습기와 마찰은 질염으로 이어진다. 질염이 면역력이 약해지거나 통풍이 잘 안 되는 옷만 입어도 생기는 거라고 하지만, 이게 또 생리할 때 찾아오면 삶의 질과 질의 삶을 몇 배는 떨어뜨린다. 질염도 힘든데 생리대 끝이 닿는 음모 사이에 뾰루지까지 날 때면 그렇게 브라질리언 왁싱이 하고 싶다. 올누드(다 밀어버리는 것) 경험자로서 차라리 털이 없으면 뾰루지라도 나지 않겠나 마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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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파란 피 그거 아니야

 

생리를 '한 달에 한 번 마법을 부리는 날'이라고 하던데, 차라리 한 달에 한 번만 부렸으면 좋겠다. 생리주기 평균이 28일임을 상기하면, 7-14일을 생리전증후군으로 고생하고 7일을 피를 쏟아내며 살아가는데, 한 달에 한 번이면 감지덕지다. 끝났다고 기뻐해도 겨우 일주일 휴식기 갖고 다시 생리전증후군이 시작되지를 않나. (나는 주기가 약 32일이고 규칙보단 불규칙에 가까워서 한 달 반만에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따라서 평균보다는 생리 사이클(생리전증후군~생리)이 길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봤자 휴식기가 2-3주다. 세 달에 적어도 30일은 생리전증후군 혹은 생리통, 생리로 인한 불편함을 겪으며 산다)

 

언제는 한 달에 하는 마법이라며. 이건 한 달도 아니고 마법도 아니다. 생리가 마법이라면 내가 마법사라는 건데, 세상에 어느 마법사가 한 달에 최소 반을 부족한 HP로 살겠냐구(HP도 없는 주제에). 헤르미온느 같은 재산을 주지 않을 거라면 그런 말은 삼가주는 게 좋겠다. 저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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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평생을 생리란 주옥같음과 함께 보내야 하나 달관하던 때, 놀라운 사실을 하나 접했다.

 

'피임법을 이용해 생리를 중단하거나 조절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생리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XX로 태어나면 무조건 생리하는, 아니, 해야 하는 거 아니었나? 라는 상식이 더 이상 상식이 아닐 수도 있다는 발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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