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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목차

 

1. 후삼국 시대를 연 두 영웅 - 링크

2. 송악의 잠룡 왕건 - 링크

3. 궁예의 관심법과 왕건의 결심 - 링크

4. 패강의 눈물

5. 삼국통일

6. 광종의 히든카드

7. 고려판 사법고시

8. 고려의 노스트라다무스 최지몽

9. 전쟁의 신 서희

10. 천추태후와 강조의 변

11. 거란의 2차 침입과 몽진

12. 양규와 하공진

13. 강감찬과 귀주대첩

 

 

 

<지난 편 역사, 한 줄 요약>

 

1. 호족과 대립하던 궁예는 호족 견제를 위해 종교를 이용한다.

 

2. 궁예는 자신을 '미륵불'이라 칭하며, 관심법을 사용했다. 

 

3. 이즈음 왕건은 백관의 우두머리인 파진찬과 시중을 겸하고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국무총리.

 

4. 어느덧 궁예의 관심법은 왕건에게도 향했다. 궁예는 왕건의 역모를 의심했다.

 

5. 궁예가 원하는 대답을 하며 왕건은 일단 지금의 위기를 벗어났으나, 위험은 계속될 것이었다.  

 

6. 궁예의 폭정에 고심하던 왕건은 드디어 쿠데타를 일으킨다.

 

7. 궁예를 몰아낸 왕건이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왕건의 집권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세력이 아직 있었다. 그중 가장 먼저 움직인 건 '환선길'이었다.

 


 

 

왕건의 유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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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건국을 발표한 다음 날. 왕건은 복지겸으로부터 반란 조짐이 보인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폐하, 마군장군 환선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데리고 있는 자 중 가장 날랜 오십 명을 추렸습니다. 당장 내일 폐하께 들이닥친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분부만 내려 주시면 소신이 직접 처리하겠습니다."

 

"아니다. 대비만 하고 그냥 오게 두자. 나를 노리는 자가 그자 하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 자들을 다 죽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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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건국 4일 만에 일어난, 환선길의 난

 

고려 건국 선포 나흘 만에 환선길은 군사를 데리고 궁으로 쳐들어온다. 격렬한 저항을 예상했으나, 너무나 쉽게 왕건 앞에 도착한 환선길은 오히려 불안했다.

 

'혹시 내가 올 것을 이미 눈치챈 것인가? 어찌 이리도 조용하단 말이냐?'

 

호위무사도 없이 나타난 왕건. 환선길 앞에 나타나 그를 꾸짖었다.

 

"너의 단순한 권력욕이라면 용서치 않을 것이고, 이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네가 나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면 내 기꺼이 목을 내놓겠다. 전자냐? 후자냐?"

 

왕건의 당당한 태도에 환선길은 기가 눌렸다. 그리고 점점 불안해졌다.

 

'호위무사도 없이 어찌 저리도 태연할 수 있단 말인가? 필시 믿는 구석이 있을 것이다.'

 

왕건의 기세에 눌려 자기 생각에 갇힌 환선길은 혼자 결론을 내리고 물러난다.

 

'매복이 있다. 일단 물러나자.'

 

환선길의 섣부른 행동은 다소 싱겁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후로도 역모 시도는 끓이지 않았다. 여기에 백제로 귀부하는 호족들까지 생겨나며 왕건은 즉위 초반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폐하! 더 엄하게 다스리고, 강하게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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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왕건은 강경책이 아닌 유화책으로 난국을 돌파하기로 한다. 정치적 혼란으로 일상이 위태로워진 백성들을 위해 세금을 1/3로 줄이고, 2천 명에 가까운 관리를 개국공신으로 책봉한다. 본격적인 혼인 정책을 실시해 호족들과 우호 관계를 이어 나간다. 왕건의 유화정책은 건국 삼 개월 만에 빛을 보게 된다.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의 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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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의 환대를 받는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

 

"폐하! 백제의 아자개가 귀부를 요청해 왔습니다."

 

백제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 그의 귀부는 한 호족의 단순한 복종, 그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무엇이라? 하늘이 날 돕는구나. 짐이 친히 나갈 것이니, 성대히 맞을 준비를 하도록 하라."

 

부자간 사이가 좋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초유의 사태. 아자개가 아들의 왕국 백제를 버리고, 고려를 택한 정확한 이유는 사료로 남아있지 않다. 다만, 이와 관련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가장 알려진 설은, 부자가 세력을 키우는데 국경이 맞닿으면서 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

 

10대의 나이에 자원입대한 견훤은, 전라도 지역에서 '비장()'이 되어 세를 키운다. 그리고 그 지역에 백제를 건국한다. 반면, 부를 축적한 아자개는 상주 지역에서 스스로 장군이라 칭하며, 호족으로 일어선다. 견훤의 백제 건국 후, 부자 관계는 더욱 회복하기 어렵게 되었다.

 

왕건은 적장의 아버지까지 포용하는 품성을 보인다. 이후, 아자개에 이어 그의 사위와 많은 호족들이 왕건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

 

건국 이듬해인 919년 정월. 왕건은 고려의 도읍을 '철원'에서, 그의 고향이자 주 무대인 '송악'으로 옮긴다. 궁예의 색깔 지우기를 넘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인 계산이었다. 송악 천도 4년이 지난 925년, 북방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발해가 거란에 의해 멸망한 것이다.

 

견훤에게 등 돌린 신라의 호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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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 500명을 이끌고, 고려로 귀순한 발해 장군 신덕

 

포용력 있는 왕건도 증오하던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거란이다. 훗날 삼국 통일 후, 왕건은 거란에서 선물로 보낸 낙타를 굶겨 죽이고, 자기 유훈 <훈요십조>에도 거란에 대한 적개심을 강력하게 드러낸다.

 

발해가 멸망하자, 발해 유민들은 고려 국경으로 물밀듯이 밀려온다. 이에 왕건은 이렇게 말한다.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우리의 형제국이다. 갈 곳 잃은 백성들을 당연히 우리가 거두어야 하지 않겠느냐! 서둘러 그들이 머물 곳을 마련하도록 하라."

 

발해 사람 셋이면 호랑이도 때려잡는다는 말이 있다. 발해 유민 중 일부는 고려 군에 편입되어 삼국통일에 일조한다.

 

왕건은 신라에 대한 관점도 궁예, 견훤과 완전히 달랐다. 멸망시켜야 할 적국으로 보지 않았다. 비록, 명맥만 유지하던 신라였지만, 천년 왕조에 대한 예우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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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 앞에 무릎 꿇은 신라 경애왕

 

고려와 후백제 사이에 일시적으로나마 이어지던 평화를 먼저 깨트린 것은, 후백제의 견훤이었다.

 

"신라 놈들이 왕건과 붙어먹는 꼴을 더 이상 못 보겠다. 이번 기회에 신라 왕실의 버르장머리를 뜯어고쳐, 왕건과 더 이상 놀아나지 못하게 하리라."

 

견훤이 서라벌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신라는 왕건에게 원군을 요청했다. 하지만 고려군이 신라에 도착하기 전, 견훤의 백제군이 서라벌 포석정에 먼저 당도했다.

 

"왕비를 잡아 내게 대령하라. 나머지는 모두 너희들의 것이다."

 

견훤의 한 마디에 백제 정규군은 폭도로 돌변했고, 약탈이 이어졌다. 군사들이 신라 왕의 후비를 취하고, 견훤은 신라 경애왕의 왕비를 범했다. 이도 모자라 경애왕을 자기 앞에 무릎 꿇렸다.

 

"과인이 온다는 것을 알고도 네가 취한 방도라는 것이 겨우 왕건에게 원군을 요청한 것이냐? 제 계집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나라를 어찌 지킨단 말이냐! 그래도 과인이 너에게 왕으로서 위신을 세울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견훤은 단검 한 자루를 경애왕에게 던졌다. 경애왕은 단검을 주워 들고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고 자결한다.

 

"네 놈은 절대로 삼국통일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견훤은 경애왕의 이종 사촌인 김부를 경순왕으로 앉히고 서라벌을 떠난다.

 

"짐이 아니었다면 당신이 어찌 왕위에 오를 수 있었겠소. 저기 자결한 선왕의 모습을 잘 봐두시오. 왕건과 또다시 붙어먹거나 짐의 말을 따르지 않다가는 언제 당신도 저 꼴이 될지 모른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은, 경애왕의 시신을 거둬 장례를 치르고 회한에 잠긴다. 이날 포석정에서 있었던 사건으로 신라계 호족들은 완전히 견훤에게 등을 돌린다.

 

공산전투와 신숭겸의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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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로 향하던 고려군은 공산(오늘날의 팔공산)에서 후백제군과 마주한다. 51세의 왕건과 61세의 견훤. 그들은 서로를 꺾어야만 통일왕국의 주인이 될 수 있단 걸 알았다. 양보할 수 없는 전투가 벌어졌다. 승부는 일방적이었다. 신라의 구원요청을 받은 왕건은 기병 부대로 서둘러 왔으나, 전투를 치르기 전부터 지쳐 있었다. 또한 이곳의 지형에 더 익숙한 견훤의 매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고려군은 전멸 직전으로, 적에게 완전히 포위되었다.

 

"언젠가 전장에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나, 오늘이 그날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인간의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 인생이란 것을 죽을 때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이루지 못한 것에 미련은 있으나, 그대들과 함께한 지난날은 후회가 없다. 적에게 포로로 잡혀 수모를 당하느니 싸우다 죽겠다. 다른 뜻이 있는 자는 떠나도 좋다."

 

모든 병사가 왕건과 함께 죽기를 각오하고 최후의 항전을 준비할 때, 신숭겸 장군이 갑옷을 벗는다.

 

"폐하, 황공하오나 갑옷과 투구를 소신에게 주십시오. 폐하와 저는 용모가 비슷하여 적군이 눈치채지 못할 것입니다. 저와 나머지 병사들이 적진으로 돌격하여 유인할 터이니, 폐하께서는 이곳을 피하십시오. 그리고 이루지 못한 통일의 대업을 반드시 이루어 저희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갑옷을 벗은 왕건은 혈혈단신으로 팔공산 둘레를 돌아 도주하기 시작한다. 신숭겸의 지혜로운 묘책을 뜻하는 '지묘동', 후백제가 고려군을 깨트렸다는 의미의 '파군재' 등. 2023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팔공산에는 이때의 전투에서 유래된 지명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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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은 천신만고 끝에 목숨만 간신히 건지고 돌아왔다. 신숭겸과 하늘이 도와 목숨이라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왕건은 공산전투 패배로, 경상도 서부 일대는 물론 전략적 요충지인 나주까지 견훤에게 빼앗겼다. 건국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는다. 전쟁에서 승리한 견훤은 왕건에게 자신감 넘치는 서신을 보낸다.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에 나의 활을 서경에 걸어 놓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나의 말은 패강(대동강)의 물을 달게 마실 것이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왕건. 그는 제대로 반격하기 위해 내부 정비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훗날 고창(안동)에서 복수의 기회를 얻게 된다.

 

<계속>

 

 

<오늘의 역사, 한 줄 요약>

 

1. 고려 건국 직후, 왕건은 여러 차례 시험대에 오른다.

 

2. 이에 왕건은 유화책으로 난국을 돌파한다.

 

3.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가 고려로 귀부한다.

 

4. 발해의 멸망으로, 발해민들이 고려로 귀화하기 시작한다.

 

5. 견훤이 신라 서라벌을 기습하자, 신라는 왕건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6. 신라 경애왕이 자결하고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즉위한다.

 

7. 신라로 향하던 고려군과 후백제군의 전투가 벌어진다.

 

8. 공산전투에서 고려는 크게 패하고, 신숭겸 장군의 희생으로 왕건을 무사히 탈출한다.

 

 

※ 역사의 빈틈은 개연성을 고려하여 작가의 상상력으로 메꿨음을 알린다.

 

 

  

 

 

슈퍼팩토리공장장이 이제와서(?!?!)

유튜브를 시작했다.

 

기나긴 역사 중 흥미로운 주제를 집어

한 편 한 편 이야기로 엮는다. 

 

필요할 때는 스스로 재연(?!)하는데,

가서 허접한 연기를 비웃어주자...!

 

유튜브 채널 <역사킹> 링크

 

 

 

 

 

 

필자의 지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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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찌라시 한국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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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찌라시 세계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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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 아직 안 죽었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