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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호밀밭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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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민음사>

 

 

암살자들이 열광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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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애플TV>

 

1980년 12월 8일 월요일, 세기의 락 밴드 ‘비틀즈’의 리더였던 ‘존 레논’은 녹음 스튜디오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존이 집 앞에 도달했을 때, 한 남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크 채프먼’이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38구경 리볼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존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할로 포인트(HP탄)’였다. 존은 4발을 맞았고, 즉시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급소 여부와 관계없이 할로 포인트 4발을 맞고 살 수는 없었다.

 

살인범 마크 채프먼은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열렬한 독자였다. 그는 체포되는 순간까지 그 책을 손에서 떼지 않았다고 한다. 법정에서조차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는 정신 병력이 인정되어 사형이 아닌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최근 2022년까지 12번의 가석방을 신청했으나 모두 기각되어 현재까지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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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데이비드 채프먼 (왼쪽 1980년, 오른쪽 2012년)

출처-<AFPBBNews>

 

존 레논 암살 사건 3개월 후에는, ‘존 힝클리 주니어’라는 남자가 불과 4.6m의 거리에서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에게 리볼버 권총을 난사했다. 모두 6발을 쏘았다. 그로 인해 대통령 수행 인원들은 물론, 레이건도 총에 맞았다. 레이건의 경우, 총알은 왼쪽 겨드랑이를 통해 폐를 뚫고 심장 앞 2.5cm 지점에서 멈췄다. 이 덕분에 레이건은 살 수 있었다. 존 힝클리 주니어는 정신질환이 증명되어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이 존 힝클리 주니어 역시 ‘호밀밭의 파수꾼’ 열혈 독자임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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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로널드 레이건을 총으로 쏜

존 힝클리 주니어 (범행 당시 25세) 

출처-<AP통신>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은 순식간에 ‘암살자의 책’이 되었다. 20세기가 끝날 때까지 미국 대부분의 고등학교는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였다. 그러나 이 책은 현재까지 7,000만 부가 팔렸으며,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접 이 책을 번역하기까지 했다.

 

저기요, 아저씨. 센트럴 파크 남쪽에 오리가 있는 연못 아시죠? 왜 조그만 연못 있잖아요. 그 연못이 얼면 오리들은 어디로 가는지 혹시 알고 계세요?

 

 

크리스마스 선물은 네 번째 퇴학

 

내 이름은 ‘홀든 콜필드’.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고 싶어. 나의 이야기를. 이것은 출생과 어린 시절, 그리고 부모님의 직업과 나의 꿈 따위의 따분하기 그지없는 자서전이 아니야. 내가 크리스마스 시즌에 겪었던 어처구니없는 일들에 관한 거야. 마녀의 젖꼭지처럼 추웠던 열여섯 살의 12월, 내가 펜시 고등학교를 떠나던 그날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야.

 

1888년 이래로 우리는 건전한 사고 방식을 가진 훌륭한 젊은이들을 양성해 내고 있습니다.

 

이런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버젓이 수천 개의 잡지에 광고하는 학교가 바로 내가 다니는 펜시 고등학교야. 난 이 학교에서 ‘건전한 사고 방식을 가진 젊은이’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오히려 나쁜 놈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지. 내 털코트를 훔쳐 간 놈처럼. 원래 학비가 비싼 학교일수록 사기꾼들이 들끓는 법이지. 펜시에는 부잣집 아이들이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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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영화 ‘호밀밭의 반항아’ 中>

 

크리스마스 휴가를 앞두고 나는 학교에서 쫓겨났어. 이것이 네 번째 퇴학이야. 나는 네 과목에서 낙제점을 받은 데다가 전혀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몰라. 중간고사 즈음에는 부모님이 교장 선생에게 불려 가기도 했고, 학교가 나에게 경고하기도 했으나 나는 이런 것들을 모조리 무시했거든. 결국 퇴학이야. 그리고 펜시에서 퇴학은 드문 일이 아니야. 아주, 아주 훌륭한 학교니까.

 

이제까지 나는 떠난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한 채로 여러 학교들을 떠나왔다. 그런 것이 싫었다. 슬픈 작별이든, 기분이 좋지 않은 이별이든 간에, 내가 그곳을 떠난다는 사실은 알고 싶었다.

 

 

스펜서 선생님의 충고

 

‘스펜서’ 선생님의 방 안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이곳에 온 것을 후회했어. 선생님은 나에게 집에 가기 전 잠깐 다녀가라고 편지를 주셨고, 나는 마지막 작별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았어. 그래서 선생님의 방에 갔건만, 방안을 온통 채운 약 냄새와 앙상하게 뼈만 남은 늙은이의 다리를 보는 순간 내 기분이 한층 더 우울해졌거든. 

 

엄지손가락으로 코를 후비며 스펜서 선생님은 잔소리하기 시작했어. 우리 부모님이 훌륭하신 분들 같다는 말과 함께. 열여섯 살인 내가 들어도 위선임을 알 수 있는 구역질 나는 말. 선생님은 인생이란 시합과 같고 그래서 규칙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어. 나는 겉으로는 그 말에 동의했지만, 속마음은 달랐어. 

 

생각해 봐. 인생이 시합이라면 못난 팀에 속한 사람들은 어찌해야 하는 거냐고. 잘난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팀이라면 시합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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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에 대해서 전혀 걱정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아, 물론 장래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어요. 그럼요 걱정되고 말고요.”

 

난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심각할 정도는 아닙니다. 아직까지는 말이죠”

 

“앞으로 걱정하게 될 거다.”

 

스펜서 선생님이 말했다.

 

선생님과 나의 대화는 극과 극을 달리고 있었어. 난 선생님이 진심으로 날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견딜 수 없었어. 이 자리에 10분만 더 있다가는 죽을 것만 같았지. 나는 선생님에게 내 걱정은 하지 말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어. 코코아라도 한 잔 하고 가라는 선생님의 말을 좋게 거절하고. 선생님은 문을 닫고 나가는 내 등 뒤로 뭐라고 소리를 질렀어. 정확히 듣지는 못했지만, 그 말은 아마도 ‘행운을 비네’였던 것 같아.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한 말이야. 

 

 

가출 첫날, 호텔에서 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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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내가 정말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결정했다. 펜시를 나가는 것! 오늘 밤 당장! 수요일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더 이상 이곳에서 어슬렁거리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는 너무 슬프고 외로웠다. 그래서 난 떠나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퇴학당한 학교였어. 이 지긋지긋한 곳에 있을 필요가 없지. 난 큰소리로 ‘잘들 퍼자라. 이 바보들아!’고 외치곤 잽싸게 짐을 꾸려 기숙사를 나왔어. 언제나 나와 함께 하는 빨간 사냥모자를 쓰고. 빨간색은 내 동생 ‘앨리’의 머리카락 색이기도 해. 참으로 착한 아이였어. 누구나 좋아할 아이였고 나보다 오십 배는 더 똑똑한 아이야. 내가 열두 살 때 앨리가 죽었어. 백혈병으로. 그날 밤 나는 차고로 숨어들어 눈에 보이는 모든 유리창을 전부 주먹으로 깨부쉈어. 아마 손이 엉망이 되지 않았다면 스테이션 왜건의 유리창까지 깨버렸을 거야.

 

택시에 탔을 때는 빨간 사냥 모자를 다시 쓰고 있었지만, 호텔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벗어버렸다. 다른 사람에게 이상하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기숙사를 나온 나는 집으로 향하지 않고 호텔을 잡았어. 가출을 한 셈이지. 내 주머니는 두둑했어. 할머니가 보내 준 용돈들을 모은 게 있었으니까. 한 2, 3일 호텔에 머물다가 크리스마스 휴가에 맞춰 집에 가려는 생각이야. 호텔 방에 들어오자, 코트도 벗지 않고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았어. 할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호텔 맞은편에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짓이 벌어지고 있었어. 

 

머리가 하얗게 센 점잖게 생긴 남자가 여자 스타킹에, 브래지어에 코르셋까지 갖춰 입는 것이었어. 그는 하이힐까지 신고는 진짜 여자처럼 혼자 방안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는 거야.

 

그 남자의 방 위층에서는 여자와 남자가 서로의 입에서 물을 내뿜고 있었어. 교대로 서로에게. 두 사람은 내내 히스테리라도 일으키는 것처럼, 너무나도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그 짓을 하고 있었어. 나는 분명히 보았어. 그 방들은 커튼을 치지 않았으니까.

 

이 호텔에는 온통 지저분한 변태들뿐이었다. 어쩌면 이곳에서 정상적인 인간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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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저 변태 쉐끼들....

 

 

클럽에서 만난 여자들과 예일 대학생 

 

아직 이른 시간이었고 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어. ‘피비’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졌어. 예쁘고 깜찍한 나의 여동생 피비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어. 하지만 곧 포기했지. 이 시간이라면 이 열 살짜리 꼬마는 잠들었을 테고 전화를 받는 건 부모님일 테니까. 문득 아래층의 ‘라벤더 홀’이 생각났어. 이 호텔의 나이트클럽. 나는 그곳으로 향했어.

 

호텔 로비에는 포주처럼 보이는 남자 몇 명과 창녀처럼 보이는 금발 머리 몇 명 외에는 아무도 없었어. 나는 음악 소리가 들리는 라벤더홀로 들어갔어. 밴드는 형편없는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고 나는 구석 후미진 자리에 앉았어. 술을 달라고 했지만, 신분증을 요구하는 웨이터 덕분에 콜라만 마셨지. 

 

수석 웨이터에게 1달러라도 찔러주었어야 했던 모양이다. 뉴욕에서는 모든 것을 돈으로 말한다. 농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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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의 보험회사에서 일한다는 세 명의 여자와 합석하게 되었어. 셋 중 누가 가장 멍청한지 고르기 힘들 정도였고, 못생겼지만 금발 머리만큼은 그럭저럭 괜찮았기 때문이야. 그녀들은 영화배우들을 보러 왔다고 했어. 그중 한 여자는 내가 조금 전 ‘게리 쿠퍼’를 보았다고 말하자 흥분해서 춤도 추지 않고 게리 쿠퍼를 찾아다니더군. 내가 장난으로 거짓말한 것을 후회하게 만들 정도로.

 

술을 다 마신 여자들이 내게 작별 인사를 하며 일어섰어. 나는 그녀들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보려 했지만, 결국 헤어져야 했어. 그리고 나는 그녀들이 마신 술값까지 모두 계산해야 했어. 적어도 합석하기 전에 자기들이 마신 술값은 자기들이 내야 하는 것 아닐까. 밴드도 연주를 끝냈고 춤을 출 상대도 없었고 술도 마실 수 없었기에 나도 라벤더홀을 빠져나왔어. 다시 택시를 타고 또 다른 클럽으로 향했어.

 

늦은 시간에도 ‘어니 클럽’은 고등학생과 대학생들로 북적이고 있었어. 펜시보다 일찍 크리스마스 휴가에 들어간 학교가 많은 모양이야. 어니 클럽은 여섯 살짜리도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야. 난 스카치를 주문했어. 이곳에서는 아무도 내 나이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아. 내 주위에는 온통 얼간이들뿐이었어. 농담이 아니고 진짜야. 

 

예일 대학생처럼 보이는 녀석 하나는 대단한 미녀와 같이 있었어. 그 녀석은 테이블 밑으로 손을 넣어 그녀를 만지작거리며 자기 기숙사에서 아스피린 한 병을 다 먹고 자살하려고 했던 남자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아이비 리그에 다니는 놈들은 모두 다 똑같다. 우리 아버지도 내가 예일이나 프린스턴에 가기를 원하셨지만, 죽어도 난 아이비 리그에 있는 대학에는 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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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놈들...

 

나는 클럽을 나와 호텔로 갔어. 택시를 부르지 않고 걸어서 갔어. 무려 마흔한 블록을 말이야. 빨간 사냥 모자를 쓰고.

 

 

엘리베이터 보이와 창녀

 

호텔 로비는 텅 비어 있었고 5천만 대의 시가 꽁초를 모아 놓은 듯한 냄새가 났어. 엘리베이터 보이가 나에게 몇 살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스물두 살이라고 대답했어. 그러자 보이는 오늘 밤에 놀아보지 않겠냐며 가격은 잠깐이면 5달러, 하룻밤은 15달러라고 말했어. 죽고 싶을 만큼 우울했던 기분이 화근이었어. 승낙하자마자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었어.

 

여자가 머리 위로 드레스를 끌어올려 벗는 모습을 본다는 건 굉장히 흥분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성적 흥분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자극보다는 좀더 기분이 우울해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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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근에 수술을 받았다는 핑계를 대며 그녀를 피했어. 그냥 대화나 좀 나누다 가라고 말했어. 염색한 것이 분명한 그녀의 금발 머리를 보며 왜 창녀가 됐는지 묻고 싶었지만, 틀림없이 상처가 될 것이기에 묻지 않았어. 그리고 고맙다고 말하며 5달러를 건넸어. 여자는 화를 냈어. 10달러를 줘야 한다고. 나는 분명히 보이가 잠깐이면 5달러라고 말했으며, 현재 이 돈이 전부라고 말했지. 그녀는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목소리로 옷을 달라고 말했고 곧 떠났어. 난 그녀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게 너무 기뻤어.

 

날이 밝았어. 그리고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드렸어. 문을 열자, 엘리베이터 보이와 어제의 창녀가 서 있었어. 나는 겁이 났어. 그들은 내게 5달러를 더 내라고 했고,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맞섰지. 그러자 보이는 나를 문까지 밀어붙이며 내 지갑에서 5달러 꺼냈고, 그 돈을 받은 창녀는 지폐를 내 눈앞에서 흔들어 보였어.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울기 시작했어. 그들은 그냥 가지 않았어. 창녀가 보이를 말렸지만, 그는 내 배를 힘껏 갈겼어. 나는 쓰러졌어. 

 

그렇지만 나는 정말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어쩌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땅에 떨어졌을 때 누군가가 내 몸을 덮어줄 거라는 확신만 있었으면 말이다. 피투성이가 된 내 모습을 바보 같은 구경꾼들에게 보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실패로 끝난 샐리와의 데이트 

 

다시 눈을 떴을 때, 시간은 겨우 10시였어. 허기를 느끼며 담배를 피웠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어. 결국 ‘샐리’에게 전화를 했어. 샐리는 몇 년 동안 가끔씩 만나던 애야. 2주 전 그 애가 보낸 편지에 의하면, 샐리는 학교를 떠나 이미 집에 와 있을 테니까. 샐리는 전화기에 대고 수다를 떨었어. 하버드 학생 하나가 자신을 쫓아다녀서 귀찮다는 말 같은 것들을. 나는 샐리에게 공연을 하나 보자고 제안했어. 샐리는 ‘멋지다’라고 말했지만, 그 가식적인 말에 나는 곧 후회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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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를 보았을 때,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어. 샐리와 연극을 보고 스케이트를 탔어. 샐리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학교는 물론이고, 뉴욕에서 사는 것도 싫었고, 택시와 메디슨가의 버스들 이 모든 것들이 싫었으니까. 샐리와 함께 떠나고 싶었어. 진지하게 샐리에게 말했지만, 샐리는 거절했어. 우리는 아직 어리며 대학에 가야 한다고 말했어. 직장 같은 것들도 말하며.

 

언제 한번 남학교에 가봐. 시험삼아서 말이야. 온통 엉터리 같은 녀석들뿐일 테니. 그 자식들이 공부하는 이유는 오직 나중에 캐딜락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야.

 

샐리는 나에게 목소리를 낮추라고 말했어. 나는 그 애가 화제를 바꾸고 싶어 한다는 것을 눈치챘어.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어. 나는 샐리에게 너와 함께 있는 것이 답답하니 나가자고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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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데. 샐리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어. 내가 미친 사람처럼 사과했지만, 결국 샐리는 나의 배웅을 거절하고 혼자 집으로 돌아갔어. 샐리에게 함께 떠나자고 한 것은 내 진심이었을까? 아니야. 난 샐리 같은 여자애와는 아무 데고 가고 싶지 않아. 틀림없이 난 미친 게 분명해.

 

술에 취해 덜덜 떨면서 거리를 쏘다녔고, 나를 만난 사람들은 내게 몇 살이냐고 물으며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어. 나는 내가 폐렴에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 동생 앨리가 생각났어. 차가운 무덤 속에 있는 동생. 만약 내가 죽는다면 그런 곳에 들어가기는 정말 싫어. 그냥 내 시체를 강 같은 곳에 버려주었으면 해. 다시 피비가 보고 싶어졌어. 착하고 예쁜 동생 피비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은 이유

 

수요일에 오지 않고 왜 오늘 온 거야? 혹시 또 퇴학 같은 걸 당한 건 아니겠지?

 

어머니와 아버지를 깨우지 않고 몰래 피비를 만나려 한 시간이나 공을 들였어. 부모님이 파티에 가신 걸 알았다면, 이 쓸데없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는데. 피비는 정이 많은 아이야. 내가 몰래 깨우자 ‘오빠!’ 하며 내 목을 꼭 끌어안았어. 그러나 곧 내가 틀림없이 퇴학을 당한 것이라며 주먹을 쥐어 내 다리를 쥐어박더니 침대 위에 엎드려 베개를 끌어 올렸어. 이번에는 아빠가 오빠를 죽일 것이라며.

 

나는 피비를 달래고 또 달랬어. 학교와 기숙사가 얼마나 끔찍한 곳인지를 설명했고, ‘동문의 날’에 찾아온 선배라는 사람들이 했던 그 말도 안 되는 지겨운 충고들에 대해 말해주었어. 펜시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이 얼마나 의미 없고 싫은 것들이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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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피비가 나에게 물었어. 싫어하는 것 말고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어냐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

 

나는 피비에게 ‘제임스 캐슬’에 대해 말했어. 말라비틀어지고 작은 몸집을 가진 연약한 그 녀석에 대해 말했어. 학교 폭력에 시달렸던 아이. 어느날 캐슬은 자기 방에서 여섯 명의 지저분한 녀석들에게 두들겨 맞았어. 그날 캐슬은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어. 그리고 창문으로 뛰어 내렸지. 캐슬은 내가 빌려준 터틀넥 스웨터를 입은 채 그렇게 죽었어. 이빨이며 피가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어. 학교는 그런 짓을 저지른 놈들에게 고작 퇴학이라는 조치를 내렸을 뿐이야. 나는 피비에게 말했어.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안식처를 찾아서

 

다시 집을 나서는 나의 손에 피비는 자신이 모은 돈을 쥐여주었어. 나는 ‘앤톨리니’ 선생의 집으로 향했어. 앤톨리니 선생은 내가 펜시에서 가장 좋아했던 선생님이야. 앤톨리니 부부는 서튼 플레이스의 고급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어. 사모님이 엄청난 부자셨지. 선생보다 열여섯 살이나 연상이었지만 두 분의 사이는 좋아 보였어. 두 분은 나의 부모님들과 잘 알아. 우리 집에서 가끔 식사도 같이하셨으니까.

 

앤톨리니 선생은 술을 마시고 있었어. 사모님은 쉬어야겠다며 먼저 들어갔어. 선생은 나에게 ‘미성숙한 인간’에 대해 말했고, ‘탈선’에 대해 말했으며, ‘타락’에 대해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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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점점 취해갔고, 나는 피곤이 몰려왔지. 그래서 나도 모르게 하품을 했어. 선생은 가만히 웃으며 나를 위해 긴 의자 위에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어.

 

갑자기 난 눈을 떴다. 몇 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잠에서 깨버리고 말았다. 뭔가 머리에 닿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 손 같기고 했다. 그 순간 난 정말 기절할 듯이 놀랐다. 그런데 내 머리를 만지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앤톨리니 선생의 손이었다.

 

난 변태 놈들을 많이 알고 있었어. 나는 황급히 선생의 집을 빠져나왔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미친 사람처럼 몸을 떨었어. 이런 변태 같은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난 바보처럼 땀을 뻘뻘 흘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스무 번 정도는 이런 일을 겪었을 거야. 나는 벤치에 앉아 비 오듯 땀을 흘렸어. 그리고 결심했어. 멀리 떠날 것을. 피비만 만나서 작별 인사를 할 거야. 난 서부, 서부로 갈 거야. 아무도 나를 알아보는 이 없는 아름다운 서부로.

 

그곳에서는 귀머거리에 벙어리 행세를 하며 살 참이었다. 그러면 누구하고도 쓸데없고, 바보 같은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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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야, 오빠야~

박물관 앞에서 잠깐 볼까?

 

박물관 앞에서 피비를 만났어. ‘오빠’하고 부르며 피비는 커다란 여행 가방을 질질 끌다시피 하면서 오고 있었어. 난 의아했어. 왜 이 아이가 이토록 큰 가방을 들고 오는지. 피비는 나에게 가방 속에 자신의 옷가지 등이 들어 있다고 말했어. 그리고 ‘나도 오빠하고 같이 갈 거야.’란 말도. 나는 정신이 멍해지는 것 같았어. 절대 안 된다고 말하자 피비는 울기 시작했어.

 

일단 피비를 데리고 동물원으로 갔어. 물개를 보아도 곰을 보아도 피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그런데 회전목마를 보자 피비가 입을 열었어. 나는 피비가 회전목마를 타고 싶어 한다는 것을 눈치챘지. 피비의 화가 조금 풀리는 듯했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 나는 피비에게 내 빨간 모자를 씌워 주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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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가 다시 목마에 올라탔을 때, 갑자기 비가 엄청나게 퍼붓기 시작했어. 아이들의 부모들이 회전목마 지붕 밑으로 뛰어 들어갔지만, 나는 그냥 벤치에 앉아 있었어. 흠뻑 젖어도 상관없었지.  

 

피비가 목마를 타고 돌아가고 있는 걸 보며, 불현듯 난 행복함을 느꼈으므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내가 서부로 갔냐고? 아니야, 난 가지 못했어. 난 집으로 돌아갔고 병에 걸렸으며 병원에 보내졌어. 정신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이야. 그리고 난 이 이야기를 한 것을 후회해.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은둔자의 인생에도 이유는 있다

 

짐승과는 달리 인간은 두 개의 ‘나’를 갖고 있습니다. 한 개의 ‘나’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나’이고, 또 다른 ‘나’는 마음속에 감춰둔 ‘내가 원하는 나’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자기 욕망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자아(ego)’이고 오직 인간만이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자아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환경, 사회, 문화 등)이 ‘세계’입니다. 천재나 바보가 아니라면 누구나 자신의 세계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아는 세계와 끊임없이 대립하고 갈등을 일으킵니다. 갈등이 격렬해지면 투쟁으로 바뀝니다. 작용이 크면 반작용도 큰 법입니다. 투쟁에서 승리했을 때의 기쁨과 비례해서 패배했을 때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이 고통 때문에 사람들은 괴로워합니다. 소가 되새김질하듯이 이 고통을 되새기고 또 되새깁니다. 아마도 인생이란 곧 세계와의 투쟁이 아닐까 합니다. 특히나 우리처럼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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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투쟁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에게 온갖 격려와 질책과 충고가 가해집니다. 누군가는 ‘넌 할 수 있어’라 말하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의지 박약’이라고 비판도 합니다. 그리고 ‘난 이렇게 했으니 너도 이렇게 해 봐.’라며 진심이 담긴 충고를 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것들조차 짐이 된다는 것을.

 

세상 만물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람에 따라 이 투쟁을 대하는 태도도 다릅니다. 누구나 전사(戰士)면, 좋겠지만 누구나 전사일 수는 없습니다. 또 누구나 전사가 되어야 할 당위성도 없습니다. 누군가는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불만족스러운 세계에 불요불굴의 의지로 맞서 싸우는 것이 하나의 모양이라면, 싸움 자체를 하기 싫어하는 것도 하나의 모양입니다. 각자의 대응 양식은 각자가 선택한 최선의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살면서 많은 단체나 조직의 구성원이었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소속감이나 일체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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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해 보니 오랜 기간 근무했던 직장도 없었습니다. 대부분 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어울렸고, 웃어야 하니까 웃었고, 남들에게 비칠 내 모습을 걱정하며 행동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혼자 있을 때가 가장 편안했습니다. 지금도 늘 낯선 사람들과 부딪혀야 하는 아파트를 벗어나 호젓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이너스인 통장 잔고와 얽히고설킨 인간관계 앞에서 꿈만 꾸고 있기는 하지만요.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것만큼이나 확실한 것은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 산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각자의 인생은 각자가 속한 세계와 그것을 포함하는 더 큰 현실 속에서 내린 최선의 결론일 것입니다. 행복한 인생에 모범 답안이 없는 것은 모든 인생에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인생은 그 누군가가 선택한 행복해지기 위한 최선의 방법입니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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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세상과 거리를 둔 은둔의 삶에도 이유는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행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상대성입니다. 우주가 상대성의 원리로 움직이는데 어떤 절대적 기준이 있다는 듯이 타인의 인생을 재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무식한 것이고 폭력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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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D. 샐린저

 

저자인 ‘J.D. 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할리우드의 영화화 제안도 거절하는 등 누군가가 보기에는 많은 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버리며 뉴욕을 떠나 뉴햄프셔의 시골에서 은둔자처럼 살았습니다. 그리고 91세의 나이로 병원이 아닌 자신의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신영복 선생의 짧은 문장 하나로 쉰여덟 번째 인생탐구를 마무리합니다.

 

삶이란 삶 그 자체로서 최고의 것입니다. 

 

- 신영복, ‘강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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