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지난 기사

     

(52) 제르미날 : 고급 아파트가 쓰레기로 넘쳐나길 바라는 이유

 

(53) 이반 일리치의 죽음 : 판사는 왜 의사에게서 자기 모습을 봤나

 

(54) 태평천하 : 윤가놈만 좋은 세상

 

(55) 인간 실격 : 수많은 여자들의 정부(情夫)로 산 남자 이야기

 

(56) 주홍 글자 : 간통녀로 낙인찍힌 여자의 일생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

 

책표지.PNG

출처-<민음사>

 

 

죽음을 앞둔 작가가 끝까지 말하고자 한 것

 

그가 양 엉덩이를 밀쳐대는 꼴은 그녀에게 우스꽝스러워 보였고, 별 볼일 없는 배설의 절정에 도달하고자 안달하는 듯한 그의 성기도 가소롭게 여겨졌다. 그랬다. 이게 사랑이라는 것이다. 궁둥짝의 이 우스꽝스러운 풀썩거림과, 그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성기가 축축하니 조그많게 시들어버리고 마는 것이 말이다.

 

‘D.H. 로렌스’가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완성했을 때, 영국과 미국의 어떤 출판사도 이 소설을 출간하지 않았다. 출판사는 작가에게 노골적인 성묘사와 비속어들을 삭제한다면 출간을 고려하겠다고 했으나 작가는 이를 거부했다. 로렌스는 이탈리아에서야 비로소 자비로 자신의 소설을 출간할 수 있었다. 

 

작가 사진.PNG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었던 D.H. 로렌스

 

자비로 출간된 이 소설은 곧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무수한 해적판들이 불법 출판되어 영국과 미국에서 은밀하게 비싼 값으로 팔리기도 했으나, 이 소설에 대한 출판 금지는 풀리지 않았다. 결국 작가가 사망하고 한참이나 지난 뒤 1960년에 와서야 ‘펭귄 출판사’의 법정 투쟁으로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합법화되었다. 

 

‘D.H. 로렌스’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처음 완성했던 건 1927년이었다. 그러나 그는 첫 완성본에 만족하지 못했고, 다시 고쳐쓰기를 반복하여 1928년에 비로소 최종본을 완성한다. 그리고 2년 뒤 사망했다. 즉 작가는 죽음을 앞두고 병마와 싸우면서도 이 소설에 심혈을 기울였다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정식 출간을 포기하면서까지 부분 삭제조차 거부할 정도의 애착을 보인 것이다.

 

죽음을 앞둔 작가는 도대체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우리 시대는 본질적으로 비극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를 비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성불구자의 아내가 된 23살 채털리 부인

 

1.PNG

출처-<영화 ‘채털리 부인의 연인 中’>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와 커다랗고 파란 눈. 그리고 갈색 머리칼과 발산되지 못한 활력을 지닌 ‘콘스턴스(코니) 리드’는 열여덟 살이 되기 전에 남자를 경험했다. 청년들은 그녀와 정열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함께 노래를 불렀으며 자유로운 야영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당연히 겸손한 태도로 간절하게 사랑의 결합을 원했다.

 

처녀는 자신이 여왕처럼 굴면서 동시에 자신을 선물로 주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근사한 논쟁을 벌이고 속 깊은 이야기까지 하던 남자들은 결국 육체의 결합을 요구했다. 남자들은 마치 개처럼 성관계에만 집착했다. ‘코니’는 자신을 따르던 청년들에게 자신을 선물로 주었다. 

 

그 무렵 전쟁(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클리퍼드 채털리’라는 귀족 청년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코니의 집안도 귀족 가문이었으나 클리퍼드의 집안에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의 집안은 훨씬 더 ‘상류 계급’이었으며, 그의 아버지는 광산까지 소유한 부자였다. 

 

클리퍼드의 아버지인 제프리 경은 극도로 우스꽝스러운 작태를 보였는데, 자기 소유의 산림을 베어 바치고 자기 탄광에서 장정들을 솎아내어 전쟁터에 밀어 넣고는 그 자신은 아주 안전하게 애국자 행세를 하면서......

 

1916년, 클리퍼드의 형 ‘허버트 채털리’가 사망했다. 자연스레 클리퍼드가 완전한 상속자가 되었다. 다음 해인 1917년 코니는 클리퍼드와 결혼했다. 이제 코니는 ‘콘스턴스 채털리’가 되었다. 한 달간의 신혼생활을 한 후, 클리퍼드는 전선으로 나갔다.

 

2.PNG

 

그것은 그 끔찍했던 1917년의 일로, 그들은 마치 가라앉는 배에 함께 탄 두 사람처럼 서로에게 다정했다.

 

여섯 달 뒤, 클리퍼드가 돌아왔다. 부상 때문이었다. 온몸이 거의 바스러지다시피 한 큰 부상이었으나 살고자 하는 클리퍼드의 의지는 놀라웠다. 그는 끝내 생명을 건지고 회복되었으며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하반신이 영원히 마비되었다. 이 충격적인 현실 앞에서 그의 아버지 ‘제프리 경’은 화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젊디젊은 스물 세 살의 코니는 영원한 성불구자의 아내로 살아가게 되었다.

 

3.PNG

 

 

토끼 같은 남자로부터 오르가슴을 얻는 법

 

코니와 클리퍼드는 ‘라그비’ 저택에서 새롭게 결혼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저택은 클리퍼드 집안의 영지인 테버셜 마을과 테버셜 탄광이 있는 곳이었다. 마을 사람 그 누구도 이 젊은 지주를 환영하지 않았고, 꽃 한 송이 보내지 않았다. 클리퍼드 역시 그것에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광부들을 사람이 아니라 사물로, 즉 생명체의 일부가 아니라 탄광의 일부로, 자신과 더불어 사는 인간이 아니라 거칠고 조야한 자연 현상으로 보았다.

 

그는 자신의 시중을 드는 하인들 외에는 그 누구도 만나려 하지 않았다. 휠체어에 탄 그는 점점 소심해졌고 반대로 자의식은 강해졌다. 그는 매 순간 코니에게 의지했다. 그는 멋진 소설을 쓰겠다는 야심을 품었지만, 항상 옆에 코니가 있어야 했다. 코니는 라그비의 음울한 방에서 탄광에서 나오는 각종 소리를 들으며 점점 초조해지는 자신의 마음을 느껴야 했다. 가끔은 팔다리가 경련하듯 실룩거리는 경험도 해야 했고, 편히 쉬고 싶을 때도 등뼈가 느닷없이 홱 젖히듯 펴지는 것도 경험해야 했다.

 

그녀의 몸속, 자궁 안 어딘가 계속 전율하며 떨리는 곳이 있어, 물속에 뛰어들어 헤엄이라도 쳐서 그로부터 도망쳐야겠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녀의 심장은 아무 까닭도 없이 격렬하게 뛰곤 했다. 그리고 그녀는 점점 여위어갔다.

 

코니가 자신의 몸 어딘가가 부서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을 때, 그녀 앞에 ‘마이클리스’가 나타났다. 마이클리스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인기 극작가로 문학도가 된 남편의 초대를 받고 온 것이다. 운전기사와 하인을 거느리고 아주 멋들어진 차를 타고 나타난 마이클리스는 마치 세속적 성공이라는 암캐 여신의 보호를 받고 있는 듯했다.

 

44.PNG

 

그러나 그는 그녀의 이 육체적 욕망을 만족시켜 주지 못했다. 그는 항상 너무 빨리 절정에 이르러 끝내버렸으며, 그런 다음에는 그녀의 가슴 위에서 오그라들며 축 늘어졌고, 그녀가 멍해진 채 실망하여 헤매는 동안 자신의 뻔뻔함을 어느 정도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는 토끼 같은 남자였다. 코니는 스스로 오르가슴을 느끼는 방법을 찾아야 했고, 찾았다. 그것은 그를 꼭 붙잡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 코니는 그를 자기 몸속의 그곳에 계속 잡아놓는 법을 터득했다. 그녀는 몸을 움직여, 격렬하고 정열적으로 계속 몸을 움직여 스스로 오르가슴에 도달하고는 했다. 어느날 코니의 행동을 눈치챈 마이클리스는 코니를 신랄하게 비웃었다.

 

믹(마이클리스)의 아이를 낳는다! 생각만해도 끔찍했다! 그러느니 차라리 토끼 새끼를 배는 게 나으리라.

 

코니는 한 때 자신이 마이클리스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이 화려한 치장을 한, 돈과 명성에 자신을 팔아버린 듯한 남자의 씨를 받아 아이를 낳는다고 생각하니 굴욕과 혐오감이 들었다. 

 

한편, 테버셜 탄광 노동자들의 입에서는 ‘파업’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와 반대로 클리퍼드의 소설은 점점 명성을 얻어 갔다. 그와 함께 코니의 하루하루는 더 쓸쓸해지고 더 지겨워지고 있었다. 공허함! 코니의 인생은 오직 공허함 뿐이었다. 

 

 

건강한 남자의 알몸이 주는 충격 

 

코니는 점점 우울해졌고, 그녀의 육체는 맥없이 늘어져 갔다. 상류 사교계의 여자들은 자신의 외모를 항상 관리해야 했다. 마치 섬세한 자기 그릇처럼 광채가 나도록 유지해야 했다. 코니는 거울에 자신의 알몸을 비추어보았다. 거울 속 코니의 굴곡진 둔부와 궁둥이는 이전의 광채와 풍만한 느낌은 사라진 모습이었다. 거울 속엔 야윈 여자 하나가 서 있을 뿐이었다. 코니는 아직도 서른 살이 되려면 한참 남은 이십 대였다.

 

5.PNG

 

홀로, 내면까지 홀로 존재하며 사는 한 인간의 완전하고 고독한 하얀 나체. 그리고 그 너머, 순수한 한 존재의 어떤 아름다움. 그저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또 아름다운 육체라고도 할 수 없는 그것은 부드럽게 빛나는 어떤 하나의 불꽃이었다.

 

공허함과 며칠째 내리는 비가 그녀를 숲속으로 이끌었다. 이즈음 코니는 거의 매일 숲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곤 했다. 공기는 눅눅하고 고요했다. 마치 온 세상이 서서히 죽어가는 듯했다. 아예 작업을 멈춘 듯, 탄갱에서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북쪽 편으로 숲을 빠져나왔을 때, 사냥터지기 ‘멜러즈’의 오두막이 보였다. 너무나도 조용하게 외따로 떨어진 집. 아담한 굴뚝이 있는 집이었다. 그녀가 오두막 뒤쪽에서 마당을 보았을 때였다. 그녀의 눈에 벌거벗고 몸을 씻고 있는 그의 나체가 들어왔다.

 

6.PNG

 

코니는 이 환상의 충격을 바로 자궁 속으로 받아들였으며, 그녀도 이를 깨달았다. 그것은 그녀의 몸 안에 들어와 있었다.

 

 

완전한 성 불능과 우울증

 

그녀는 계속 꾸역꾸역 살아나갔지만, 짜증과 울화가 그녀의 하체를 사로잡았고, 그녀는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가 맷돌에 갈리듯 묘한 고통 속에서 힘겹게 이어졌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코니는 점점 야위어 갔다. 그녀의 얼굴을 흙빛이 되었고 목은 비쩍 말라서 누르스름해진 채 헐렁한 윗도리 밖으로 쑥 빠져나온 모습을 하고 있었다. 코니에 대한 클리퍼드의 집착은 더 심해졌다. 코니에게 그것은 ‘완전한 성 불능이 가하는 잔인함’이었다. 코니는 우울증을 앓았다.

 

숲속 산책만이 코니에게 즐거움을 주는 행위였다. 그녀는 숲속에 들어섰을 때, 햇살이 바람처럼 확 쏟아지는 것을 느낄 때, 그 햇살이 개암나무 아래 애기똥풀을 비추고 아네모네꽃들이 창백한 색깔로 빛나는 것을 볼 때만 온 세상과 썩은 고깃덩이 같은 육체를 잊을 수 있었다.

 

7.PNG

 

“새끼 꿩드를 너어둘 둥우릴 만들고 있던 차밉니다.” 그가 순 사투리로 말했다. 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그녀가 추위를 느끼며 집으로 향할 때였다. 망치 소리가 그녀를 오두막으로 이끌었다. 사냥터지기 멜러즈가 셔츠 바람으로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맬러즈는 주인 마님의 느닷없는 출현에 대한 당혹감과 자신만의 자유롭고 고독한 공간을 침범당했다는 약간의 분개심으로 보이며 코니에게 투박한 나무 의자 하나를 건넸다. 그리고 떨고 있는 그녀를 위해 벽돌 난로에 불을 활활 피웠다. 그리고는 “자, 이리 좀 안자서 모믈 녹이시지요.”라고 말했다. 왠지 묘한 권위를 느끼게 하는 말투였다.

 

불 가에 앉은 코니는 몸이 따뜻해졌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말없이 맬러즈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갈색 개가 그녀 옆에 꼬리를 깔고 앉았다. 사내는 정열적이고 조용하게, 마치 코니의 존재를 느낄 수 없다는 듯이 일에만 열중했다. 오후도 한참 지나 저녁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러나 코니는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코니는 오두막의 문간에 앉아 얼마 전 보았던 맬러즈의 허리와 등뼈를 떠올리며 긴장감이나 경계심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코니는 꿈에 빠져들고 있었다.

 

 

다시 타오른 불꽃 

 

이제 코니에게는 오직 한 가지 욕망, 즉 숲속의 그 공터로 가고자 하는 욕망밖에 없었다. 어느날 늦은 시간이었다. 코니는 상류층 손님들로 가득 찬 집을 빠져나와 숲으로 갔다.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고 의식은 몽롱한 상태였다. 그녀가 공터에 이르렀을 때 사냥터지기가 거기 있었다. 그는 닭장 앞에서 새끼 꿩들을 지키고 있었다. 코니는 닭장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맬러즈가 그녀에게 삐약거리는 새끼 꿩 한 마리를 부드러운 손길로 내밀었다. 눈물 한 방울이 그녀의 팔목에 떨어졌다.

 

“울지 마십시오!”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녀는 정말로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코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그의 손이 그녀의 구부린 등을 따라 가만히,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은 웅크려 굽은 그녀의 허리께를 쓰다듬었다. 영원히 사그라져 없어지기를 바랐던 옛날의 그 불꽃. 그 불꽃이 다시 허리께에서 솟구쳐 약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담요 위에 누운 코니의 얇은 실크 옷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끌어 내렸다. 깊고 섬세한 기쁨으로 떨면서 그녀의 따스하고 부드러운 몸을 어루만졌고, 그녀의 배꼽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그녀의 몸 안에는 문득 새롭고 이상야릇한 전율이 눈뜨면서 일어나 물결치기 시작했다. 마치 부드러운, 깃털처럼 부드러운 불꽃이 포개지며 피어나 너눌거리듯이, 그 물결은 하염없이 일어나 퍼지며,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정묘한 눈부심의 순간들로 치달아 오르더니, 완전히 흘러내릴 정도로 그녀를 녹여 버렸다.

 

썸넬.PNG

 

코니는 더 이상 마이클리스에게 했던 것, 만족을 위해 스스로를 자극해 일으키려는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임신과 코니의 결심

 

그리고 자신의 몸 안에서, 모든 혈관 속에서, 그 남자와 그의 아기의 존재를 느꼈다. 그의 아기는 그녀의 온 혈관 속에, 마치 황혼 빛처럼 스며 흐르고 있었다.

 

코니는 자신의 결혼 생활을 떠올렸다. 그리고 클리포드와 마이클리스가 보여준 상류 계급의 모습도 떠 올렸다. 그들이 탄광 노동자들을 어떻게 대하는 지도. 순간 모래알을 씹는 듯한 잿빛 절망감과 공포감이 자신을 덮치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 그녀는 결심했다. 자신의 아기를 결코 라그비의 상속자로 태어나게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녀는 이혼을 결심했다.

 

“희망에 찬 마음으로 아이를 원한다고 말해 줘요!” 그녀는 나직하게 속삭이면서, 얼굴을 그의 배에 대고 꼭 눌렀다. “어서 그렇다고 말해 줘요!”

 

맬러즈는 코니를 설득했다. 자신이 그녀에게 라그비 같은 것을 절대 제공할 수 없음을 말했다. 천한 신분의 남자들이란 단지 일하는 벌레에 불과한 세상이었다. 그는 자신 없어 했다. 그러나 코니는 맬러즈에게 키스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을 라그비에서 멀리 어디론가 데려다 달라고 말했다. 오두막 밖에는 폭풍우가 치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코니는 옷을 벗고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맬러즈도 옷을 벗어던지고 벌거벗은 몸으로 빗줄기 속으로 뛰쳐나왔다.

 

9.PNG

 

빗물이 흘러내리는 그들의 몸에서는 어느덧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는 그녀의 묵직하니 사랑스러운 양 볼기짝을 한 손에 한 쪽씩 그러쥐고는 격정적으로 꼭 끌어당겨 안은 채, 몸을 부르르 떨며 빗속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살 권리

 

“그래요! 왜냐하면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은 ㅡ당신으로 하여금 날 증오하게 만들 사실이겠지만ㅡ 바로 멜러즈 씨, 즉 이곳의 사냥터지기였던 사람이니까요.”

 

아마 의자에서 뛰어오를 수만 있었다면, 클리포드는 그리했을 것이었다. 그의 얼굴은 노래졌고 두 눈은 튀어나올 것처럼 코니를 노려보았다. 그는 분노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코니가 천한 하인 놈의 자식을 낳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혔다. 가증스러운 일이었다. 귀족도 아닌 저 천하고 더러운 하층 계급 사내놈과 자신의 아내가 놀아나고 자식까지 낳고 싶어 한다니! 

 

10.PNG

11.PNG

 

코니는 그에게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했다. 코니는 클리퍼드에게 자신이 맬러즈와 결혼할 것이며 그의 아이를 낳을 것이라 말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클리퍼드는 절대로 이혼해 줄 생각이 없었다. 코니는 밤을 새워 짐을 쌌다. 정말로 자신의 것이라 할 수 있는 것들만을. 그리고 클리퍼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짐을 기차역으로 보냈다.

 

해고된 맬러즈는 어느 시골 농장에 일자리를 얻었다. 그의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그것은 돈을 모아 자그마한 농장 하나를 코니와 함께 경영하는 것이었다. 맬러즈는 오직 자신의 힘만으로 둘의 생계를 꾸려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코니와 맬러즈는 기다려야 했다. 봄이 올 때까지,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또다시 여름이 올 때까지. 맬러즈는 코니에게 편지를 썼다.

 

이제 그만 편지를 끝내야 할 터인데 펜을 쉽게 멈출 수가 없구려. 하지만 우리의 아주 많은 부분이 지금 함께 있으니, 그거 그것을 굳게 지키면서 각자 삶의 진로를 조종해 나가기만 한다면, 우리는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요.

 

12.PNG

 

 

서로 살갗 맞대고 살아가기

 

오늘날 세상에는 오직 하나의 계급만 존재하는 것이니, 그것은 바로 ‘돈에 사로잡힌 돈돌이 계급’이었다. 돈돌이 사내와 돈돌이 계집. 차이가 있다면 오직, 돈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와 돈을 얼마나 많이 바라느냐일 뿐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체제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없겠지요. 그래서 우리의 세계관과 가치관은 자본주의 체제라는 테두리 내에서 형성되고, 우리는 그것을 토대로 판단하고 실행하며 인생을 살아갑니다. 자본주의의 본질은 모든 가치를 물질로 치환한다는 것입니다. 가격을 매길 수 있는 것만이 가치를 지니는 사회입니다. 이것이 작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본질적으로 비극적’이라고 말한 이유입니다.  

 

소련 붕괴.jpg

 

21세기가 되기 전에 이미 사회주의는 패배했고, 자본주의는 승리했습니다. 체제 경쟁에서 승리한 자본주의의 독주는 가히 ‘조자룡 헌 칼 쓰듯’ 거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패자의 말에도 배울 것이 있습니다. 과학적 공산주의의 창시자 칼 마르크스 선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물질적 소유가 강조되며, 그것을 위해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서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만 하고,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가 물질적인 소유와 연관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인간 소외’라 했습니다. 

 

인간 소외. 인간의 가치가 인격이 아닌 상품성으로 평가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가치 있는 인생이란 한 인간의 정서적인 연결이나 사회적 유대감이 아닌 연봉으로 결정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비극은 사랑과 결혼마저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알베르토.PNG

 

우리가 ‘사랑’하면 떠올리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본능적인 사랑, 누군가와 살갗 부비며 하나가 되고 싶다는 원초적이고 순수한 사랑은 퇴화된 추억일 뿐입니다. 그 남자의 친절하고 부드러운 미소나 그 여자의 찰랑이는 머리칼과 붉은 입술이 아닌, 어디에 있는 몇 평짜리 아파트, 어느 기업의 얼마나 되는 연봉 등이 사랑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도 100만 원짜리가 있고 1,000만 원짜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작가의 말처럼 참으로 비극적인 시대입니다.

 

“남자가 따뜻한 가슴으로 성행위를 하고 여자가 따뜻한 가슴으로 그것을 받아 들인다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잘되리라고 난 믿고 있소.”

 

“그렇소! 바로 부드러운 애정이요. 정말로 말이오. 그리고 그건 곧 씹의 깨달음이오.”

 

씹의 깨달음, 이해타산이 아닌 오직 본능에 따른 순수한 사랑, 이것이 죽음을 앞둔 작가가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성불구가 된 부유한 귀족 가문 상속자의 아내라는 지위 대신 가난하지만, 건강한 하층 노동자의 아내가 되는 것을 선택한 코니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황금만능의 시대지만 돈보다 중요한 것은 따뜻한 사랑이고, 그것이 성행위의 본질이라는 것. 이것이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돈이 되지 않는 것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치를 가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그렇다고 해서 그것에 맞춰 사는 것이 행복한 인생의 길이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시대를 거역하며 살면 잘 사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무언가가 문제라고 느껴진다면 그것을 고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따뜻한 살갗 맞대고 유대감을 느끼며 그렇게 인간다운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건강하고 뜨거운 육체를 가진 청춘들이 돈 때문에 사랑을 포기하고 돈 때문에 결혼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들이 들려옵니다. 그들과 우리 모두에게 ‘코니의 선택’과 함께 시 한 구절을 소개하며 쉰일곱 번째 인생탐구를 마칠까 합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

 

 

 

기다려주신 독자들께

 

연재 휴재를 공지하고 몇 달만에 다시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휴재 기간을 6주로 예상했고 그렇게 공지도 했으나, 이런저런 사정이 겹치면서 예상보다 기간이 많이 길어졌네요. 이 점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또한 별다른 소식도 없이 계속 연재를 다시 시작하지 못했음에도 기다려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재연재 시작합니다. 앞으로 다시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Profi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