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01. 04. 금요일
무천
결혼 때 꼭 주례로 모시고 싶었던 고등학교 은사님이 계셨다. 학기 중간에 갑툭 뛰어들어온 전학생을, 가져 봄직한 선입견 없이 무심한 눈길로 쳐다봐 주시던 분이었다. 유별난 성격만큼 모난 내 글을 좋아해주시며, 호불호가 갈릴 내 글의 위태로움을 무던히 걱정하셨다. 내심 당신이 밟지 못한 기자의 길을 대신 걷기를 기대하셨던 듯도 한데, 유감스럽게 난 평생 기자를 업으로 삼는 데 회의가 많았다.
기자를 선택지에서 뺀 것은(물론 일방적인 착각이다.ㅋ) 글쟁이의 무력함 때문이다. 삑사리 나게 외쳐대는, ‘글은 이루어내는 힘이 있다’는 호언들이, 내 보기엔 구석에서 자기네끼리만 숨어 왝왝거리는 무력하고 무력한 자기위무에 불과해 보였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을 갖고 싶었다.
시간이 바뀌고, 공간이 바뀌어, 그 때 그 은사님의 나이에 다가감에도 여전히 난 무력하고, 글만 내 친구다. 황망하고, 분하고, 답답하고, 어이없고, 억울하고, 참담한 이 뭐라 규정할 수 없는 갈피잡지 못할 내 안의 찌거기들을 갈무리해 게워낼 수 있는 자그마한 구멍.
이 글을 새로 써야 할 줄 꿈에도 몰랐다. 지난 17대 대선 때 대부분의 기자들이 한 명의 후보에 대한 기사만을 준비했다는 것처럼, 대선후기로 나도 단 하나의 글만 써 뒀다. 한 달이 넘게 요동치는 정국을 보면서,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걸 의심해 본 적이 없고, 역사의 물결에 역류는 있어도, 물줄기 자체가 바뀌는 일은 없을 거라 확신했었다. 아마. 내가 틀렸나 보다. 주위를 채 둘러보지 못해, 역류를 물줄기로 착각했을 수도.
진보(?)와 보수(?)가 가장 치열하게 대립한 요 1년간의 상황을 보며, 자주 공화정 말기 로마의 정치상황을 떠올렸다.
민중파의 거두로 회자되던 마리우스의 죽음 후, 술라를 낀 원로원파의 반격, 마리우스의 처조카이자 민중파의 신성이던 카이사르의 재반격 및 집정관 취임, 집정관 퇴임 후 원로원파의 재재반격과 카이사르의 갈리아 도피, 갈리아에서의 혁혁한 전공과 함께 루비콘을 건너면서 시작된 내전, 파르살루스 회전으로 폼페이우스를 누른 카이사르의 개선과 짧은 치세 그리고 뒤따른 암살, 그 적자인 옥타비아누스의 성장과 안토니우스와의 힘든 권력투쟁 끝에 다시 찾은 권력, 그리고 공화정의 최후.
<카이사르의 죽음. HBO 드라마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노무현의 신승과, 기구했던 노무현의 치세. 재벌, 보수언론, 기득권으로 대변되는 앙시엥레짐의 삼각동맹의 반격과 개혁실패, 이명박 정권의 등장, 노무현의 죽음, 문재인의 등장, 그리고 박근혜와의 경쟁.
박근혜 후보의 당선은 공화정 말의 주도권 다툼 중 위의 어디쯤에 해당할까.
무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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