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3.01.07.월요일

 

 

이동현

 

 

 

 

 

 

 

 

 

 

 

 

 

 

 

 

 

 

 

 

 

 

 

 

 

 

 

 

1.

 

 

 

 

 

 

 

 

 

검찰의 성충동 약물치료명령(일명 ‘화학적 거세’) 청구가 법원에서 수용되었다. 2012년 7월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뒤, 법원이 성범죄자에 대한 성충동 억제 약물치료인 이른바 ‘화학적 거세’를 명령하는 첫 판결이 나온 것이다. 문제의 성범죄자 표아무개(31)씨는 미성년자 5명을 성폭행하고 사진과 동영상을 인터넷으로 유포하겠다며 협박한 성도착증 환자라고 한다.

 

 

 

 

 

 

 

 

 

성범죄, 특히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악질적인 성범죄 소식을 들으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본능적인 공포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때로는 어떠한 처벌이 이 잔인한 성범죄자에게 적당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물리적인 거세를 시행해야 한다든지, 그 수술 과정을 전국에 생중계해야 한다든지, 아니라면 피해자들의 손에 메스를 쥐어주어야 한다든지. 여성으로서 나는 공포와 분노를 해결하기 위해 이런 상상을 해본다. 그러나 나의 공포와 분노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신체가 훼손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2.

 

 

 

 

 

 

 

 

 

‘화학적 거세’는 이와 같은 사적 복수심을 부추기거나 만족시키기 위한 반인권적 타협의 결과물이다. 이 형벌의 집행 방법은 이렇다.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의 생성을 억제하는 성샘자극호르몬 길항제(GnRH)라는 약물을 투여해 성충동과 성적 환상을 줄이고 발기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최초로 성충동 약물치료 대상자로 결정된 표아무개씨의 경우 (가석방되지 않는다면) 징역 15년 형을 살고 석방되기 전 2개월 안에 약물치료를 시작해서 3년 동안, 3개월에 한 번 씩 약물을 투여 받을 것이다.

 

 

 

 

 

 

 

 

 

고작 약물치료를 시행하면서 ‘거세’라는 공포스러운 단어를 사용하여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가 개인의 성을 존중하여 성범죄를 예방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기는 어렵지만, 이렇게 자극적인 표현으로 개인의 공포심을 극대화하기는 쉽기 때문이다. 또한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정부(또는 여성부)가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요식행위는 성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근본적인 문제, 즉 여성성의 왜곡과 성별권력의 문제를 외면할 수 있는 손쉬운 방편이 된다.

 

 

 

 

 

 

 

 

 

그러나 과연 국가가 개인에게 약물치료를 강제할 권한이 있을까? 독일과 스웨덴 등 유럽의 몇몇 국가에서도 성범죄자에게 약물을 투여하고 있다. 전제는 범죄자의 동의하에 실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법원의 명령에 따라 범죄자의 동의 없이 강제로 약물을 투여할 수 있다. 만약 약물치료가 성충동을 조절하는 효과가 있다면, 본인의 의사에 따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개인과 사회의 건강을 위해 효과적일 것이다. 그러나 강압적 처벌은 결코 ‘치료’가 될 수 없다.

 

 

 

 

 

 

 

 

 

 

 

 

 

 

 

 

 

 

성충동 약물치료에 소모되는 비용은 1인 당 연간 500만원(약물비용 180만원, 호르몬수치 검사비용 50만원, 심리치료비용 270만원)에 달한다. 3년 동안의 약물치료라고 하면 1,500만원의 비용이 소모되는 것이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성충동을 억제하는 치료를 받는 것이 어떤 실효를 얻을 수 있는지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비용이 투자되어야 할까?

 

 

 

 

 

 

 

 

 

나는 이와 같은 비용이 성충동장애를 치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투자되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 성충동장애 환자나 재범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성범죄자가 치료를 원할 때 건강보험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성충동장애 환자들의 정신질환이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인 범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심리치료의 기회를 확대하고 적어도 치료비용의 부담은 덜어줄 수 있는 시스템을 확충하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

 

 

 

 

 

 

 

 

 

성범죄로 기소된 범죄자는 형법에 따라 구금형과 전자발찌 착용에 더해 약물치료까지 트리플 악셀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성범죄자가 약물치료를 받는 기간 동안 범죄를 100% 예방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고 할지라도 ‘범죄예방을 위한 처벌’은 어불성설이다. 우리가 법치주의를 인정한다면 범죄를 저질렀다는 과거의 사실에 대해서만 처벌할 수 있을 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에 대해 처벌할 수는 없다. 성범죄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예방조치로 화학적 거세가 허용된다면, 사회악을 일소하기 위해 설치한 삼청교육대 역시 합리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국민을 통제하는 보다 강력한 수단을 확보하기 위한 위정자의 변명일 뿐이다.

 

 

 

 

 

 

 

 

 

 

 

 

 

 

 

 

 

 

 

 

 

 

 

3.

 

 

 

 

 

 

 

 

 

딴지일보 편집부에서 이 문제에 대해 ‘여성의 시각에서’ 써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대체 국가에 의해 자행되는 인권침해에 대해 여성의 시각과 남성의 시각이 어떻게 다를 수 있는가 싶어 의아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남성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화학적 거세를 바라보는 여성의 시각은 과연 어떠할까.

 

무규칙 2종 매거진 [더딴지] 3호에서 확인하시라!

 

 

 

 

 

 

 

 

 

 

 

 

 

 

이동현

 

 

 

 

트위터 : @Leetree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