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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7.월요일

필독

 

 

 

 

 

 

 

 

 

 

 

 

 

 

 

 

 

 

옛날 옛적에 어느 왕국이 있었습니다. 그 왕국엔 나쁜 왕이 살고 있었어요. 나쁜 왕은 매일 늦잠을 자는 데다가 브런치를 반주 삼아 낮술을 즐기고, 밤에는 어떻게 성은을 입어볼까 안달이 난 팔등신 베이글녀 삼천 궁녀 중 한 명을 간택했어요. 물론 한 번에 두 명, 혹은 세 명일 수도 있지만요. 그러고도 남는 시간엔 아유, 뭘 하셨겠어요. 백성들을 괴롭혔어요. 그러니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왕국은 먹고 살기가 더럽게 힘들어졌어요. 권영길 아저씨가 지팡이 들고 나타나 백성 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하고 일갈해도 왕 이새끼가 내시 얼굴에 재떨이 함 던지면 그냥 목 떨어지는 거에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요.

 

 

 

 

 

 

 

 

 

어느날 GDP 엇비슷한 이웃 나라의 겁나 잘생긴 왕자가 백마를 타고 쳐들어와서 나팔을 불어요. 늬덜이 자세한 이유는 알 거 없고 여튼 내가 다 아는데, 저 왕 저새끼 저거 왕이 아니라 왕으로 분장한 새빨간 마녀다!

 

 

 

 

 

 

 

 

 

 

 

 

 

 

 

 

 

 

왕자는 궁궐로 난입하더니 드래곤사시미로 다짜고짜 왕을 막 담가요. 왕은 잠시 저항하는 듯 했으나, 수십 번의 칼빵을 이기지 못하고 옥좌 앞 카페트에 힘없이 널브러져요. 경비병들이 달려왔을 땐 이미 상황 끝나 있었죠. 왕자는 자기가 죽인 이웃 나라 국가 수반의 살 껍데기를 벗겨요. 아니 그런데 세상에, 정말로 그 안에서 새빨간 마녀의 시체가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알고 보니 진짜 임금님은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던 거예요. 아 물론 왕자도 남의 나라에 공짜로 좋은 일 해줄 리는 없으므로, 임금님이 갇혀 있던 옆방엔 삼천 궁녀보다 훨씬 섹시한 무남독녀 공주님이 포로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잘 세탁된 비단옷을 입고 품위 있게 미싱을 박고 있었어요. 공주도 철없는 애는 아니어서, 연애 과정을 생략하고 왕자의 청혼을 받아들일 만한 상도의는 있었어요.

 

 

 

 

 

 

 

 

 

그래서 왕자와 공주는 알콩달콩 잘 살았답니다. 왕자의 저돌성과 공주의 순종적인 성격을 보건대 부부생활도 큰 트러블은 없었을 듯해요. 공주는 모든 면이 훌륭하지만 한 가지가 특별히 훌륭한데, 그건 바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점이거든요. 더불어 임금님이 암이나 당뇨 같은 지병으로 승하하시면 왕자가 나라를 상속 받을 것이란 현실적인 계산도 우린 잠시 잊기로 해요.

 

 

 

 

 

 

 

 

 

 

 

 

 

 

 

 

 

 

지하 감옥에서 해방된 임금님은 빨간 마녀의 시체를 토막내 전국에 순회 공연을 한 바퀴 돌린 후, 옛날처럼 왕국을 통치합니다. 백성들은 살림살이가 매우 나아졌어요. 왜냐구요? 임금님은 아주 착한 분이었거든요. 착한 왕이 통치하는데 어떻게 백성들이 행복하지 않을 리 있겠어요. 이것은 전래 동화의 신성한 규칙입니다. 수학과 같아요. 1 더하기 1은 당연히 2가 되는 것과 같죠. 권선징악의 세계관엔 에누리가 없는 겁니다.

 

 

 

 

 

 

 

 

 

 

 

 

 

 

 

 

 

 


 

 

 

 

 

 

 

자, 동화는 끝났습니다. 우리 어른의 세계도 저렇게 명징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아쉬움과 함께. 임금님은 물론 착한 분일 거에요. 옛날 인도의 어느 왕자님처럼 잠자리가 죽는 모습에 눈물을 흘릴 수도 있죠. 그건 그거고, 착한 통치를 하는 건 또 별개잖아요.

 

 

 

 

 

 

 

 

 

물론 빨간 마녀는 일주일에 두세 명의 백성을 사냥해 싱싱한 생피를 즐겼으므로, 임금님이 컴백한 것만으로도 딱 그 만큼의 생명은 구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백성들의 삶은 그 정도로 해결해줄 만한 수준이 아니에요. 국가의 농지는 한정돼 있죠, 모두 배불리 먹어야 하죠, 그러려면 가진 사람들이 조금 희생해야 하는데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요. 그 사람들은 마녀가 집권했든 임금님이 집권했든 정권과 상관없이 더 열심히 일했거나, 아님 더 운이 좋았던 사람이란 말이죠.

 

 

 

 

 

 

 

 

 

그니까 진짜 공평한 왕이라면 잘사는 인간들한테 무작정 세금을 때려 내릴 수는 없단 말입니다. 물론 잘 살게 된 인간들이 마녀의 정책에 힘입어, 혹은 기생해 부를 축적한 경우가 많긴 해요. 그래서 임금님은 이 냥반들이 ‘친마녀부역자’인지, 일반 생활자들인지부터 결정하고 기준을 정해야 해요.

 

 

 

 

 

 

 

 

 

 

 

 

 

 

 

 

 

 

그건 그렇고 피폐해진 농지의 생산성을 높이려면 국고를 털어야 하는데 마녀가 망쳐 놓은 게 너무 심해서 일년치 국고로는 택도 없어요. 외채를 끌어오려니 외국 자본에 잠식당할 판이고, 결국은 백성들이 각출해서 희생해야 하는데 이럴 때 꼭 부자 몇 놈은 반칙을 해서 쏙 빠지거든요. 생산성이 회복되면 가장 많이 돈을 벌 그놈들 말이에요. 그걸 뻔히 알고도 가난한 백성들을 고생시킬 우리 임금님 맘은 어떻겠어요...

 

 

 

 

 

 

 

 

 

게다가 마녀도 두고두고 영원히 백성의 고혈을 빨고 싶었으므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나름 잘 한 정책이 있어요. 이건 또 계승해야지요. 물론 그러려면 대체 마녀와 달라진 게 뭐냐고 데모하는 백성도 있을 거고, 그러면 진압 과정에서 머리통 깨지는 이들도 있을 거에요. 그 뿐이겠어요. 왕자가 마녀 죽일 때 같이 죽인 경비병 그 유족들 어쩔 거에요. 그 경비병이 자기가 지키는 게 마녀인 줄 뭐 알았나요. 공무원으로서 국가에 충성했을 뿐이에요. 국립 묘지에 모셔야지요. 어떤 백성은 빡쳐요. 사위놈은 더 빡쳐요. 다 우리 임금님이 해결할 몫입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임금님 리턴즈에 환호했던 백성들이 파가 갈립니다. 언론 자유를 허용하자니 자길 욕하고, 탄압하자니 독재자가 돼요. 더 골때리는 건 임금님을 결사 옹위하자는 오른손파와 임금님 오케이지만 그래도 개혁하자는 왼손파 백성들 모두 애국자라는 거죠.

 

 

 

 

 

 

 

 

 

생각해 봐요. 내시한테 구멍이 뻥 뚫린 국고 재무재표 듣느라 잠도 못 자고 있는데 개혁파가 창당을 해서 지금 전당대회를 열고 있다는 뉴스를 들으면 우리 착한 임금님도 토 나오지 않겠어요. 아, 물론 보수파와 개혁파의 수뇌부에는 정치꾼들이 들러붙어서 백성들의 애국심을 이용하고 있고요. 그 정치꾼들 뒤엔 부자들이 있지요. 이 부자새끼들을 조지면 또 국가 기간 산업노하우가 없어져요. 그래서 임금님은 형평성 문제를 떠나 급하게 비리 하나 찾아내 부자놈 하나를 감방 보내요. 그 때문에 여기저기서 욕 먹는 건 덤이구요.

 

 

 

 

 

 

 

 

 

농지는 한정됐는데 젊은 것들 머릿수는 많다 보니 취업난이 생겨가지구 새파란 애덜이 돈을 못 벌고 빌빌대요. 세대간 계급 갈등이 생기고 난리도 아니에요. 힘내라, 너네는 할 수 있다 연설을 해도 뭐 씨알이 먹히나요. 경제 구조를 바꿔야 하는데. 그런데 그걸 임금님이 삼년 만에 어떻게 바꾸냐구요. 그러잖아도 지병에 시달리고 있는데 혈압이 치밀어올라 실신해요. 일어나 보니 귀족 놈들은 미래의 왕인 옆나라 왕자한테 가서 아부 떨어요. 그 와중에 맑스 사돈의 팔촌 쯤 되는 넘이 나타나 젊은 애덜을 선동해요.

 

 

 

 

 

 

 

 

 

임금님이 잘하고 못하고가 문제가 아니다. 군주제 자체를 뒤엎어야 한다...!

 

 

 

 

 

 

 

 

 

 

 

 

 

 

 

 

 

 

임금님의 멘탈은 와르르 붕괴하고 맙니다. 그냥 다 내려놓고 은퇴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요. 임금님은 착하거든요. 지금 사위네 나라의 국방력이 우리나라를 앞서고 있는데, 정권이 바뀌면 가만 냅두겠어요. 지 혼수인데. 그러면 백성들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고통에 시달릴 거예요. 어쩔 수 없이 맑스 사돈의 팔촌을 공개처형해요. 그랬더니 책 좀 읽어봤다는 젊은놈들이 지하조직을 결성해서 군주제 폐지 운동을 펼쳐요. 여기서 중요한 건 젊은놈들도 자신의 입장에서 옳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타협해야 할까요. 앓아 눞자마자 옆나라 사위한테 달려간 귀족놈들을 싹 정리하고 이참에 신분제를 폐지할까요. 근데 생각해보면 궁정을 지키던 그 귀족놈들, 아부지 뒷목 잡고 쓰러졌을 때 다 자기한테 몰려온 놈들이에요. 빡칠 순 있어도 응징할 순 없다는 거죠. 게다가 귀족층을 없앤다고 쳐요. 그럼 거기 딸린 평민들은 해방되겠죠. 근데 말이죠, 그게 장기적으로 보면 해방이고 역사발전이 맞는데, 당장엔 그 평민들 다 굶어 죽어요. 안 그래도 다들 먹고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인 나라인데, 여기서 실업률 더 튀면 국가 부도 사태란 말이죠.

 

 

 

 

 

 

 

 

 

절충안으로 입헌 군주제를 추진해서 국회란 걸 세팅해갖구 늬덜이 알아서 하고, 난 국가 공식 행사에나 불러... 하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아요. 근데 그러면 위와 같은 난리통의 백 배가 파노라마로 펼쳐질 거에요.

 

 

 

 

 

 

 

 

 

에휴... 이러나 저러나 오늘도 왕국은 굴러갑니다.

 

 

 

 

 

 

 

 

 

 

 

 

 

 

 

 

 

 

 

 

 

 

 


 

 

 

 

 

 

 

유아용과 성인용을 비교해봤어요. 우리는 세상이 유아용이 아니란 걸 압니다. 사실 현실의 느와르에 비하면 위의 성인 버전도 텔레토비 동산이죠. 우리는 저 중에 마녀 빼고, 욕심 많은 부자 몇 빼고, 너무 엑스트라라 등장하지 않은 강도 도둑 어린이 성추행범 빼고 나면 사실 나쁜 놈이 놀랍도록 적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다를 순 있어요. 그게 틀린 건 아니죠. 틀릴 순 있어요. 그게 곧바로 부도덕을 의미하진 않죠. 다 자기 진심이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일컬어 머리에 피가 말랐다고 하는 거에요. 어른이 됐다는 거죠.

 

 

 

 

 

 

 

 

 

 

 

 

 

 

 

 

 

 

얼라는 엄마가 카트에 과자 안 넣어주면 이마트 바닥에 누워서 배 까뒤집고 울면서 소유욕의 존재증명을 하는 나이를 지나, 동화의 권선징악을 배웁니다. 나쁘면 안 된다는 것, 착한 편이 이겼으면 좋겠다는 도덕을 배웁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한계가 있어요.

 

 

 

 

 

 

 

 

 

나는 착하니까 착한 편이에요. 착한 편은 이겨요. 이기는 편 우리 편, 이기는 편 착한 편이에요. 독수리 오형제를 볼 때와 골목끼리 패 갈라서 눈싸움 할 때 유용한 사고방식입니다. 생각해봐요. 눈덩이에 연탄재 넣은 넘들은 꼭 싸가지 없는 상대편이잖아요. 우리는 권선징악의 인과율에 따라 그넘들을 응징하기 위해 연탄재 대신 돌을 넣었던 거구요.

 

 

 

 

 

 

 

 

 

 

 

 

 

 

 

 

 

 

그래서 우리는 이 시궁창 같은 세상이 어린아이의 순수함이 아니라 어른의 지성 덕에 유지된다는 사실을 압니다. 나랑 다른 생각이 틀렸다손 치더라도, 그게 비록 무지 때문이라 할 지라도 의도가 선량할 수 있다는 거. 아무리 바보 같은 말을 싸질러도 나름의 진심일 수 있다는 거. 그래서 사람의 인격 만은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거. 병신이나 악당의 낙인을 찍고 싶은 충동을 참는 거.

 

 

 

 

 

 

 

 

 

그걸 인정하면서 우리는 마음의 나이를 먹습니다. 정신줄 챙긴 양반들이 국민 개새끼론 까는 건 그 이유일 겁니다. 우리는 51%가 박근혜에게 투영한 기대와 욕망을 존중해야 하니까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것과 별개로 말이죠. 싸움이야 당연한 거지만, 어른의 싸움을 해야죠.

 

 

 

 

 

 

 

 

 

함께 사는 건 끼리끼리를 즐기는 게 아니라 우후죽순을 견디는 겁니다. 식물도 숲을 이룰 땐 비좁은 공간을 서로 양보하며 가지를 뻗어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세상은 아름답지 않아서 성장을 단호히 거부한 어른아이들이 있습니다.

 

 

 

 

 

 

 

 

 

이기는 편 우리 편이고, 정의는 승리하는 법이죠. 아래는 순수한 동화의 세계에서 반드시 없어져야 할, 어느 타락한 왕의 모습입니다.

 

 

 

 

 

 

 

 

 

 

 

 

 

 

 

 

 

 

아무리 봐도 그저 방문객과 놀아주는 할아버지 같은데, 불법 선거운동 적발 현장의 주인공 윤정훈 목사는 분노합니다. 그의 눈에 강원도 화천군 감성마을은 타락한 이류작가가 국민의 혈세를 빨아내 호의호식하는 아방궁입니다. 가난한 작가들은 굶어 죽는 판에 말입니다. 베스트셀러를 여럿 팔아 치운 분이지만, 어느새 사회주의자가 된 목사님은 진심으로 분노합니다. 값 나가는 가구와 전자 제품 따위에 말이죠. 거기에 듣보잡이라는 별명에 비해서는 유명한 변희재라는 논객도 가담했습니다. 작가에게 필요한 공간은 5평이라는 구체적인 측량까지 해주면서 말이죠(아래는 중앙일보 기사 캡쳐).

 

 

 

 


 

 

 

 

 

 


 

 

 

이 문제의 핵심은 뭘까요? 핵심은 없습니다. 애초에 문제 자체가 없기 때문이죠.

 

 

 

 

 

 

 

 

만약 문제가 있다면 그건 감성마을이 아니라 윤정훈 목사의 불타는 정의감일 겁니다. 왜냐면요, 감성마을 그거 이미 이외수옹 본인이 방송과 지면에서 다 한 이야기거든요. 그 얘길 난데없이 재활용하면서 마치 대단한 불의를 고발한다고 믿는 게 문제겠지요.

 

 

 

 

 

 

 

 

 

 

 

 

 

 

이외수옹의 감성마을 입주는 간단히 말해, 아니 요체 자체가 간단해서 굳이 더 간단히 말할 필요도 없이, 한 지자체와 한 개인의 계약입니다. 걍 기브 앤 테이크죠. 화천군은 지역 홍보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이외수라는 네임밸류 있는 상품을 유치합니다. 이외수 옹은 그 대가로 화천군 지역사회의 이익에 상당히 신경 씁니다. 이게 자본주의 사회의 계약이란 걸 가장 잘 아는 게 이외수옹 본인이에요. 자기가 그렇게 말했거든요.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게 예의라고.

 

 

 

 

 

 

 

 

 

그래서 화천군도 이외수옹도 윈윈했답니다. 끝.

 

 

 

 

 

 

 

 

 

그러니 윤정훈 목사와 변희재, 뉴데일리 등 지조있는 언론의 분노에 맞닥뜨린 화천 군수는 화가 나기 이전에 어이가 없었을 거에요. 아니 이외수옹의 감성마을 퇴거를 왜 계약 주체가 아닌 지들이 촉구해요. 윤정훈 목사님이 사무실을 전세 냈는데, 제가 집주인에게 윤목사는 이 정도 사무실을 쓸 자격이 없으니 정의의 이름으로 계약 파기하라고 하면 어떻겠어요. 화를 내기에도 아깝다는 생각 들지 않겠어요.

 

 

 

 

 

 

 

 

 

 

 

 

 

 

 

 

 

 

화천군과 이외수옹에게 투덜대는 덴 수십 가지 방법이 있을 겁니다.

 

 

 

 

 

 

 

 

 

작품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마케팅하는 작가가 과연 후배들에게 바람직한 모델인가를 따지고 들어갈 수도 있겠죠. 문화를 내용이 아니라 간판으로 해석한 화천군의 세련됨을 아쉬워할 수도 있어요. 화천군은 컨텐츠가 아니라, 아이콘을 영입하는 데 돈을 썼으니까요. 이외수옹이 사회에서 받는 대접과 가난한 문학가들의 생활을 비교하면서 승자 독식 현상이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에 씁쓸해 할 수도 있겠죠. 지자체의 문화 기금이 지나친 시장의 논리로 투자된 것도 마음이 좀 그렇긴 해요. 그냥 간단히 이외수옹의 작품을 가혹하게 평론할 수도 있어요.

 

 

 

 

 

 

 

 

 

근데 낯 뜨겁게 집 평수가 뭐예요, 집 평수가.

 

 

 

 

 

 

 

 

 

자본주의 냄새 물씬 풍기는, 목사님 치곤 놀랍도록 화려한 프로필을 보고 놀랐어요.

 

 

 

 

 

 

 

 

 

 

 

 

 

 

 

 

 

 

‘CEO’, ‘컨설턴트’, ‘매니저’라는 분이 어쩌다 사회주의자가 돼서 이외수옹을 욕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아뇨, 사실은 알 것 같습니다.

 

 

 

 

 

 

 

 

 

빨갱이가 돼서 이외수옹을 욕하는 게 아니라, 이외수옹을 욕하기 위해 얼마든지 빨갱이가 될 수 있는 거겠죠. 생각이 다른 이를 기꺼이 적으로 설정하는 사람에게 세상은 단순합니다. 우리 편은 착한 편, 상대 편 나쁜 편이에요. 그러니까 목사님이 싫어하는 이외수는 악당이 분명하죠.

 

 

 

 

 

 

 

 

 

문제될 게 없는 감성마을이 문제가 된 건 그 때문이에요. 목사님에게 이외수는 나쁜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결론을 정해 놓고 증거를 수집하니, 세상이 이미 다 아는 사실을 혼자서 분연히 폭로하게 되는 거죠. 목사님에게 분노는 상대를 판단할 때 남겨 놓는 최후의 감정이 아니라 기본 전제 같아요. 목사님과 진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요.

 

 

 

 

 

 

 

 

 

불법선거운동 혐의로 고발된 본인보다 지자체와 문제될 거 없는 계약을 한 이외수가 나쁜 이유도 “저쪽이니까”가 아닐런지요. 그래선지 목사님은 자칭 ‘트위터 분석가’, ‘트위터 마스터’면서 돼도 않는 말씀을 합니다.

 

 

 

 

 

 

 

 

 

 

 

 

 

 

 

 

 

 

 

 

 

 

 

 

 

 

공개지지가 선거 개입이면 불법 선거운동은 뭔가요, 난입인가요. 블락은 개인의 자유고 타인의 계정을 폭파하는 건 트위터 운영 방침상 절대 불가능하다는 걸 목사님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래요, 다들 논리가 먼저인 척 하지만, 사실 논리는 감정을 정당화하는 수단이죠. 그건 어쩌면 모두가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감정이, 어른의 감정이어야죠.

 

 

 

 

 

 

 

 

 

변희재는 작가에겐 5평의 공간이면 충분하다고 해요. 자기는 2평에서 글을 썼다는데요, 변희재가 글 쓰는데 2평을 쓰든 5평을 쓰든 백평을 쓰든 그건 지 맘이에요. 제가 문제 삼는 건 그의 작업 환경이 아니라, 작업 결과의 수준이거든요. 한없이 치졸하고 한심한 그 언변을 위해선 고시원 옥상도 아까워요.

 

 

 

 

 

 

 

 

 

 

 

 

 

 

 

 

 

 

목사님, 논객 변씨. 타인을 문제 삼을 땐 기본적인 수준을 지키는 게 인간에 대한 예의입니다. 여기서 인간이란 말엔 본인도 포함되어 있어요. 성장을 지체시키는 건 자기 자신입니다. 적이니까 나빠야 하고, 나빠야 하니까 문제가 아닌 게 문제가 되어야 하는 순수한 세계관은 어른한테 어울리지 않아요. 애덜은 애니까 귀여워서 봐주는 거에요.

 

 

 

 

 

 

 

 

 

존재하지도 않는 국내 수백만 빨갱이와 성전을 벌이는 뉴데일리의 기사도 안드로메다로 가 있습니다. 이외수옹의 가구와 전자기기 값을 정밀 분석해 놀라는 척을 합니다(링크).

 

 

 

 

 

 

 

 

 

 

 

 

 

 

 

 

 

 

그래 놓고 그건 뭐 문제 없다고 치자는 식으로 나름 퇴로를 만들어 놨는데, 언론사 간판 달고 남의 소비 생활을 공개한다는 거 자체가 더럽게 유치한 거예요. 저는 기사 페이지의 마지막에서 크게 웃고 말았답니다.

 

 

 

 

 

 

 

 

 

 

 

 

 

 

 

 

 

 

시장경제를 수호한다는 분들이 남이 합법적으로 벌어 쓴 돈과 자유 계약에 왜 도끼눈을 뜰까요. 뭘 왜 그래요. 뻔하죠. 우리 편은 착한 편이고 남의 편은 나빠야 하니까 그런 거겠죠.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가득 차 있어요. 세상을 살 만한 시궁창에서 방사능 폐기장으로 만드는 건 어른아이의 순진함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한 작가의 사생활에 놀라 자빠진 모든 분들이 성장 지체를 졸업할 수 있길 바랍니다. 아, 욕하는 거 아닙니다. 언제 어떻게든 바뀔 수 있는 게 사람이란 동물이잖아요. 현실의 시궁창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지켜온 거니까요.

 

 

 

 

 

 

 

 

 

이상은 저와 생각이 다른 분들이 사기꾼, 악당, 거짓말쟁이, 장사꾼이 아니라고 가정하고 쓴 글입니다. 저도 그러한 가정의 관용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요.

 

 

 

 

 

 

 

 

 

 

 

 

 

 

딴지 구전문학보존협회장

필독

 

 

 

 

트위터 : @ddanzifieldd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