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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선수가 해방 후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땄던 21회 몬트리올 올림픽. 이 대회가 낳은 최고의 스타라면 단연 체조의 나디아 코마네치를 들 수 있을 거야. 당시 나이 14살. 국적은 루마니아. 당시 체조 점수 기록 전광판을 맡은 건 일본 회사 세이코였어. 세이코는 체조연맹에 문의를 했대. 점수판을 네 자리 수로 할까요, 세 자리 수로 할까요. 즉 최고 만점인 10점을 기록할 수 있게 할까요, 없게 할까요? 질문이었지. 답은 세 자리 수로 하라는 거였어, 어떻게 사람이 하는 체조에서 10점 만점이 나올 수 있느냐 하는 얘기였지.


1976년 7월 18일 체조 2단 평행봉에서 키 153센티미터 몸무게 39킬로그램의 작달막한 소녀가 2단 평행봉에서 그야말로 나비처럼 선녀처럼 허공을 너울너울 가로지르고 돌고 치오르고 뛰어내렸을 때 많은 사람들은 넋을 잃었다. 이건 점수를 매길 필요가 없는 1등이다. 그런데 나온 점수를 보고 관중들은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단다. 글쎄 1.00이 뜬 거야. 1점??? 성미 급하기로 이름났던 헝가리 출신의 루마니아 코치 벨라 카롤리가 벌떡 일어났어. “말도 안돼.” 그러자 심사위원 한 명이 다급하게 소리쳤어. 열 손가락을 번쩍 펴 보이면서. “10점이요 10점. 10점 만점에 10점!”


타임지가 '인간의 몸을 빌려 지상에 나타난 요정'이라고 찬양해 마지않은 체조 요정 나디아 코마네치가 화려하게 인간 세상에 데뷔하는 순간이었어. 노동자 아버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나디아 코마네치는 세계 체조계의 여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당연히 조국 루마니아의 영웅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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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루마니아가 당시 어떤 나라였는지 알아보자. 당시 루마니아 대통령은 차우셰스쿠였어. 견결한 반파쇼 투사였던 공산주의자. 바그는 1971년 동방의 어느 나라에서 몹쓸 것을 배워 오게 돼. 북한을 방문했다가 그 1인 숭배와 유일 사상에 크게 감화된 거야. 숭어가 뛰면 망둥이가 뛰고 원님보다는 아전이 더 요란하다고, 그는 북한보다 더한 유일 체제를 확립하려 들었어.


그의 생일은 당연히 국경일이 되었으며, 나중에는 부인 엘레나의 생일도 국경일로 정했고 그를 칭할 때마다 "정열적이고 총명하며 매력적인 인격의 영원한 우리의 지도자" 호칭이 덧붙여져야 했지. 인구 2천만이 좀 넘는 나라에 3백만 개가 넘는 도청기를 뿌려 국민 모두가 국민에게 감시역인 사회를 만들어 놨지.


코마네치는 이런 나라 정부가 사육하다시피 키운 체조 선수였어. 그녀는 이미 일곱 살 때쯤에 부모 곁을 떠나 “밥 먹고 체조만 한” 케이스였지. 그녀가 귀국하던 날 수만 명의 루마니아인들이 환호하며 공항으로 밀려들었고 차우셰스쿠는 그녀에게 노동 영웅 훈장과 황금의 낫과 망치 메달을 주며 노고를 치하한다. 하지만 이 요정도 사람이었나 봐. 벌써 그 해 12월쯤에 루마니아 스포츠 신문에서 코마네치 연습 안 한다고 마구 씹는 기사가 실렸으니까.


코마네치는 스트레스 겸 자포자기 겸해서 엄청나게 먹어대는 바람에 오동통한 농심 너구리 체형이 되기도 했었어. 하지만 가까스로 다시 몸을 만들고 모스크바 올림픽에 출전해서 금메달을 따지.


하지만 그녀 역시 공산주의 국가, 그것도 1당 독재에 대통령 가족이 거의 신격화된 나라의 국민으로서 많은 설움을 받는다. 벼락부자가 됐다는 오해도 있지만 그녀 역시 끼니를 걱정해야 하며 살아야 했고 그녀는 완강히 부인하고 있지만, 차유셰스쿠의 아들이 그녀를 정부로 삼았다거나 성폭행했다는 소문도 끊이지 않았어. 내막이야 아무도 모르지만 당시 루마니아로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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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차우셰스쿠가 권좌에서 쫓겨나 분노한 군인들의 총탄에 맞아 죽기 20일 전, 그녀는 루마니아를 탈출한다. 미국 사업가 콘스탄틴 페니의 도움을 받아서였지. 체조 요정 나디아 코마네치가 서방으로 망명했다는 소식은 대단한 뉴스였어. 그녀의 이름만으로 미국 대사관은 곧장 망명을 승인했고 심지어 비행기 1등석까지 대령해서 미국으로 보냈지. 하지만 그녀의 미국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어.


미국인들은 평행봉 사이를 나비처럼 날던 체조 요정을 기대했지만 이미 코마네치는 나이 서른에 가까운, 그리고 약간 펑퍼짐해진 아줌마였으니 환상은 곧 깨질 수밖에 없었지. 특히 그녀의 탈출을 도왔던 콘스탄틴 페니와의 스캔들은 그녀의 평판을 결정적으로 떨어뜨렸어. 페니는 네 아이의 아버지였거든. 그는 가정은 아랑곳없이 코마네치와 함께 있었지. 코마네치는 연인 사이가 아니라 매니저라고 항변했지만 페니의 아내가 방송에 나와 이렇게 흐느끼자 코마네치는 천하의 못된 여자가 되고 말았어.



“남편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내가 남편에게 선물한 목걸이를 코마네치가 하는 걸 보고 모든 걸 알았어요. 흑흑”



미국인들 이상한 심리 알지? 자기들도 할 거 다 하고 다니면서 유명인사의 스캔들에는 도덕군자가 되는 거 말이야. 코마네치도 그 희생양이 됐지. 체조의 요정이 아니라 체조의 요물이 된 거야.


이 콘스탄틴 페니라는 사람도 순수한 사람은 아니어서 코마네치를 이용해 돈을 벌 생각이 확고했어. 그리고 코마네치가 내미는 미국 내 지인들의 연락처조차 알려 주지 않았다고 해. 체조 요정 코마네치는 아주 천박한 속옷 모델로부터 서커스에 가까운 기묘한 체조 시범에 이르기까지 잡스러운 일로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가 됐어, 바르셀로나 올림픽 기간 바르셀로나의 선상 호텔에서 펼친 반라의 패션쇼는 그 하이라이트였지.


페니와도 헤어지고 점차 파탄으로 치닫던 그녀에게 혜성과 같이 나타난 게 미국 체조 선수 버트 코너였지. 미국 체조 대표 선수였고 역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그는 토크쇼의 깜짝 손님으로 선수 시절 항상 여신으로 동경해 왔던 코마네치를 만나게 된 거야.


버트 코너는 자신이 하는 스포츠 사업에 코마네치가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어. 체조의 요정이라는 상품으로 그녀를 바라봤던 페니와 처음에는 열광하다가 나중에는 야유와 경멸을 보낸 여느 미국 사람들과는 달리, 그녀의 미국사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빌미로 그녀를 이용해왔던 사람들과 달리 버트 코너는 동등하고 정당한 사업파트너로 그녀를 존중했어. 그리고 체조 자체에 진저리를 치고 다시는 체조 비슷한 것에도 가지 않으리라고 다짐한 코마네치에게 이렇게 설득했다고 하지.



“스포츠에는 메달을 넘어선 뭔가가 있어요.”



코마네치가 이후 지적 장애인들의 올림픽, 스페셜 올림픽에 헌신하게 된 것도 버트의 격려 때문이었다고 해.



“혼자 관중의 환호를 받는 것보다 나눔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더 충만감을 느끼게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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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bartandnadia>


체조 요정으로서 세계의 찬사를 받긴 했지만 어려서부터 부모와 격리돼 맹훈련을 받았던 운동 기계이기도 했던 코마네치, 독재 국가의 국민으로서 온갖 정치적 감시와 경제적 궁핍을 감당하다가 화려한 생활과 ‘자유’를 위해 자본주의 국가로 탈출했지만 거기에서 쓰디쓴 맛을 보며 헤매던 나락으로 떨어지던 코마네치는 인내심과 차분함이라는 백마를 탄 왕자를 만났고 왕자로부터 ‘나눔’의 기쁨의 반지를 선물 받는다.


둘은 루마니아 부쿠레시티, 왕년의 차우셰스쿠가 버티고 있던 대통령궁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그날 루마니아에는 공휴일이 선포됐고 루마니아 국민들은 뜨거운 박수로 자신들의 영웅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해 줬지. 혹독한 훈련 (소문에 따르면 차우셰스쿠 아들의 못된 짓 때문에)으로 불임에 가까웠던 그녀는 나이 마흔을 넘겨 아들도 낳았고 지금도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하니 이런 경우에 한해서 '여자 팔자는 남자 하기 나름'이라는 어색한 속담 바꿈도 성립할 수 있지 않을까.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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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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