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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멀리 돌아왔다. 일본 경제에 관해 할 이야기가 많은 이유는, 일본이 그동안 거시경제학자들의 실험실로 불려왔기 때문이다. 일본의 초장기 불황은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깊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처방법 역시 다양했었다.


기존 경제학 서적에서 제시하는 해답, 제로금리가 실패하자 가장 최근엔 일본에서는 아베노믹스란 이름으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병행하여 팽창 추진하는 케인즈경제학적인 방안이 시도되어 왔다. 이 분야의 석학으로 꼽히는 폴 크루그만이 다녀간 이후 일본정부는 더욱 과감하게 양적완화를 단행했고, 재정정책 또한 확대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처음 의도했던 2%인플레이션 달성이라는 목표가 아직까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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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선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그 규모가 아직 부족하다는 것. 20년이면 한 세대가 평생을 불황만 듣고 보고 자랐을 텐데, 이러한 분위기를 돈 조금 푼다고 걷어내기란 쉽지않다. 지속적으로, 그리고 더욱 더 과감하게 더 많은 규모의 돈을 시장에 풀어야 한다는 게 케인즈학파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오늘 발표될(이 글은 한국시간으로 금요일 새벽에 작성된 글이다), 일본 중앙은행의 정책은 아마도 이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양적완화의 규모를 늘리던가, 질적 완화를하던가(소극적으로 국채를 매입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중앙은행 자금으로 주식이나 부동산펀드들을 사주는 식으로 돈을 직접 투하하는방식)하는 대책이 나올 것이다.


아주 낮은 확률이지만 일본은행이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있다. 이렇게 시장의 기대가 높고, 아베총리가 압박하지만, 은행총재 구로다에겐 고민이 깊다. 이러한 양적완화가 서서히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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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일본 중앙은행이 사들이는 일본국채 규모는 80조 엔에 달한다. 일본국채 전체 발행량의 3분의 1을 중앙은행이 이미 들고 있는 셈이다. 의무적으로 일본 국채를 사주고 있는 연기금을 제외하면, 사실상 일본 국채는 씨가 말라가고있다. 애초에 '시장에 돌아다니는 국채를 사줘서 시장에 돌아다니는 통화량을 늘린다'라는 계획이었는데, 이제는 일본은행이 더 이상 사줄 국채마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양적완화를 늘려봐야, 국채 고갈에 도달하는 속도만 빨라질 뿐이다.


구로다와 일본 중앙은행은 그래서 고민중 일거다. 이제 늘릴 수 있는 양적완화는 거의 남아있지 않은데, 시장은 이에 면역이 돼서 웬만한 규모가 아니고선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런 배경에서 구로다가 올 초에 날린 회심의 일격이 바로 마이너스 기준금리였다. 최초였고, 뭔가 큰 변화를 주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이 실험은 한달도 안돼 실패로 돌아갔고,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방법 자체가 잘못된 것인가라는 고민을 해볼 수 있다. 케인즈적인 정책이 실패한다면? 이런 배경에서 등장한 게 버냉키다.


버냉키는 미국 연준 의장시절 버냉키 효과라는 단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카리스마적 언사로 시장을 쥐락펴락했던 인물이다. 그가 지금 주목을 받는 건, 잊혀졌던 헬리콥터 머니라는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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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us suppose now that one day a helicopter flies over this community and drops an additional $1,000 in bills from the sky, which is, of course, hastily collected by members of the community. Let us suppose further that everyone is convinced that this is a unique event which will never be repeated." (Milton Friedman, “The Optimum Quantity of Money,” 1969)


"자, 어느날 동네에 갑자기 헬리콥터가 하늘에 떠서 백 만원을 뿌린다고 가정해보자. 동네 사람들은 당연히 나와서 허겁지겁 이 돈을 주울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이게 진짜 다시 반복되지 않을 특이할 상황임을 인지한다고 추가적으로 가정해보자."



전설적인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만의 가정에서 구상된 이 개념은, 그 후 버냉키가 종종 사용하면서 급속히 대중화되었다. 버냉키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기준금리가 제로인 현 상황에서 만약 또 다른 경제 위기가 닥친다면 미국 연준이 어떤 대응을 할 수 있을까란 포스팅을 했다. (링크)


경제 위기가 발생해서, 정부가 갑자기 예산을 늘린다고 가정해보자. 통 크게 한 100조. 이걸로 경제를 살린다고 4대강도 파고 자원외교도 한다 쳐보자. 그럼 이 돈은 어디서 나오나? 원래는 이걸 세금으로 메꿔야한다. 근데 전제에서,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예산을 갑자기 늘려야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했다. 급박한 상황에서, 예산을 늘릴만큼의 세금이 있을리가 없다(우리나라는 IMF이후부터 계속 적자상태이다).


그래서 각국 중앙정부들은 이 적자를 메꾸기 위해 국채라는 것을 발행한다. 국채는 보통 재무부가 발행하는데, 당연히 공짜로 빌리는 게 아니라 이자까지 꼬박꼬박 주면서 원금을 갚아야한다. 그래야 시장사람들이 이 국채를 사줄 테니까.


근데, 버냉키가 주장하는 헬리콥터머니 상에서는, 국채발행이라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중앙은행한테 직접 돈을 빌린다. 재무부가 중앙은행한테 시켜서 돈 찍어서 바로 빌리든지, 영구채를 찍어내게 하고 이자를 돌려받는 식이든지간에 핵심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돈을 찍어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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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중요한 거라, 다시 한 번 강조해서 적겠다. 헬리콥터 머니의 경우, 정부가 돈을 빌리지 않고, 중앙은행에서 돈을 그냥 찍어내서 쓰는 거다. 당연히 이자도 내지 않고, 국가 부채에도 잡히지 않는다.무에서 유(돈)을 창조해내서, 그돈을 시장에다가 들이붓기 때문에 마치 국가가 헬리콥터 위에서 국민들에게 돈을 뿌리는 것 같은 형태가 된다. 이렇게 뿌려진 돈은, 찍어내는 족족 시장에 바로 풀리게 되니 그만큼 인플레이션 등의 효과도 확실하다.


문제는 이게 그만큼 부작용도 크다는 점이다. 화폐의 가치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때만 가치를 갖는다. 이렇게 국가가 나서서 꽁돈을 뿌려대면, 스스로 화폐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보니, 화폐의 가치가 곤두박질 칠 위험이 있다. 짐바브웨이에서와 같은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벌어질 수 있고, 일단 한 번 터지면, 상황은 중앙은행의 통제를 벗어날 우려가 있다. 


그래서 구로다가, 버냉키 방문의 의의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재빨리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결합은 선진국사이에서는 금지된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헬리콥터 머니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럼에도 헬리콥터 머니 썰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건, 그만큼 일본 경제의 현재 상황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기존의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각각 해 볼 만큼 해봤고, 더 이상 강하게 밀어붙히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뭔가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미 GDP대비 국가부채는 245%를 넘어섰고, 이렇게 경기부양을 위한 추가 예산을 남발하다간 300%가 넘는 것도 시간문제다.


이미 조세수입 4분의 1 이상이 국채이자를 갚는 데 쓰여지고 있다. 국채금리가 역대급으로 낮고, 중앙은행이 이걸 열심히 사주는 데도 이 정도면, 사실상 일본은 오래전부터 이 국채 갚을 능력을 상실했다. 카일 배스가 말한 대로, 설사 경기가 지금보다 나아져서 인플레이션이 2%를 달성했다간, 조세 수입의 전부를 국채이자 갚는 데 써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 사이 일본의 노동인구는 점점 더 감소하고있다.


요약하면,


● 이미 국가채무가 갚을 수 없는 수준으로 쌓였고
● 이자 갚기도 버거우며
● 경제성장률과 노동 인구는 점점 떨어져간다


이런 조건 속에서 일본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재정정책은 당연히 제한적이다. 여기에, 위에서 다룬 대로 중앙은행이 양적완화를 통해 사줄 수 있는 국채 자체도 거의 다 사라져간다. 곧 일본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다.


이런 난국에서 유일하게 남은 최종병기가 바로 헬리콥터 머니다. 국가채무를 늘리지 않은 상태에서 경기부양책을 마음껏 쏟아낼 수 있으니까. 그 결과가 하이퍼인프레이션 같이 통제를 벗어날지는 모를지언정, 그 효과 만큼은 확실할 테니까.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정책이 '핵폭탄 옵션'이다. 중앙은행에서 언급되지도, 언급되어서도 안 될 이 방법은, 지금 일본에 존재하는 모든 국채를 영구채로 덮어버리는 것이다. 지금 일본 국채시장의 절대다수를 일본 은행과, 일본 연기금등이 들고 있는 상태에서, 일본 은행이 이걸 사서 빚을 아예 없애버리는 거다. 조금 복잡한 개념인데 요약하면,


○ 일본은행이 이자율 0%, 만기가 없는 영구채를 발행한다

○ 여기서 나온 대금으로 일본 국채를 모두 사버린다
○ 이 국채들을 영원히 봉인시킨다.


이렇게 돼 버리면 일본은 빚이 245%였던 나라에서 하루아침에 빚이 0%인 상태로 재출발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빚을 다 폭발시켜버리는 방법인데, 일본 국채가 갚을 수 없는 만큼 늘어난 데다가, 주 투자자들이 대부분 일본 연기금과 일본중앙 은행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방법이다. 안 그러면 외국인 투자자들 소송 걸고 난리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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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채 예상 시뮬레이션


헬리콥터 머니 그리고 핵폭탄 옵션이 실제로 일어날까? 또 일어나야 할까? 난 모르겠다. 이게 지나치게 급진적인 사안이고, 아직 구상에 머문 상태라 실제로 정책화 될 가능성은 지금으로썬 매우 희박하다. 또, 너무나 강력한 방안이기 때문에 예상 결과도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런 정책들이 계속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것은, 그 만큼 지금 일본경제가 답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기존 이론과 정책들이 통용되지 않기 때문에 대안이 끊임 없이 제기되는 상태이고, 우경화 같은 정치적인 목적이 가미된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높은 지지도를 바탕으로 과감한 정책을 추진해온 아베정권이라면. 정말 희박하지만,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높은 상태랄까.


다시 최근 이슈로 돌아와서, 오늘 발표될 일본의 통화정책에 이런 논의가 포함될 가능성 역시 대단히 낮다. 그럼에도 시장이 지금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영구채는 아니더라도 초 장기채(만기일이 무려 50년이다. 보통 국채는 장기채가 30년으로 발행된다) 발행 같은 중간 대안들이 논의되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 중앙은행은 최근 50년채 국채 발행 가능성을 이미 거부한 바 있다.


근데 이런 것까지 배제하고 나면, 일본 중앙은행이 취할 수 있는 정책은 사실 거의 남지 않는다. 그 와중에 아베 총리는 28조 엔짜리 경기부양책을 내놓으면서, 중앙은행을 압박하고 있다. 시장역시, 웬만한 카드에는 코웃음을 치면서 더 강력한 한 방을 요구하고 있다.


과연 일본은행은 이런 외압에 굴복하여, 금단의 정책에 손을 뻗을까? 당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고려하고 있다는식으로 밑밥이라도 깔까? 그도 아니면 아무것도 안 하고, 상황이 나아지길 무작정 기다릴까?


그리고, 일본은행이 앞으로 취하는 정책은 과연 맹독으로 중병을 다스리는 신의 한 수가 될 것인가 아니면 즉사 시키는 희대의 병크가 될 것인가? 이번 회의가 아니더라도 향후 6개월 간 일본은행의 대응에 따라, 일본경제는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거대한 전환점을 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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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현지시각 12시 45분경 일본은행은 통화정책을 발표했다. 주식 매입규모를 기존 3조 엔에서 6조 엔 수준으로 올린다는 발표를했다. 양적완화 확대나 기준금리인하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일종의 질적완화이나 시장이 기대하던 수준을 한참 밑도는 발표다.


이제 공은 다시 구로다에서 아베에게 넘어갔다. 아베는 이런 원하지 않는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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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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