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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간단하게 ‘국정을 사유화한 사건’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이 거대한 촛불 민심을 보인 것도 국가의 주인인 국민을 무시한, 권력의 ‘사유화’라는 단어로 대답할 수 있다.

 

그렇다. 나랏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부분에 대한 책임감이 투철해야 한다. 직위의 권위는 국민들로부터 잠시 이양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나마 갖게 된 지위와 권한을 심사숙고하여 적법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이행하는 것이 공직자의 최우선 덕목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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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국빈방문 행사에 대한 보도(링크)가 나간 후, 많은 분들이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 주셨다. 특히 “내가 낸 세금이 저렇게?”라는 메시지가 많이 보였고, 분노도 읽혔다. 국민으로부터 이양 받은 권력으로 세금을 사유화 하고 국가의 재산을 사유화 한 것에 대한 분노가 핵심이었다.

 

국빈방문 당시의 일정을 되짚어 보면, 불합리하고 무리한 의전 요구에 대한 기억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러한 일들이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 주요 관계자들에게서 이러한 특징들이 그대로 나타난다. 아래 링크된 황교안 국무총리의 행보만 보더라도, 과잉 의전이 반복되고 있지만 당사자나 비서진들이 이를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의전뿐이겠는가. 각종 인사비리에서 부터 시작된 ‘국정의 사유화’는 오랜 기간 퇴적되어온 습관이 되었다. 사실, 보도가 되지 않아 자세한 내막을 모를 뿐, 각 조직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상은 아마 더 심각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한 사례를 소개한다.

 

각국에 주재하는 우리나라 대사관은 ‘작은 대한민국’이라고도 불린다.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파견된 공직자들로 구성된 대사관은 그 자체가 나라의 얼굴이자 상징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특히 ‘대사’라고 줄여서 부르는 ‘특명전권대사’는 국가를 대표해서 외국에 파견되는 최고 직위의 외교사절이다.

 

이러한 고위 공직자들에게도 권력의 ‘사유화’라는 측면에서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자신이 가진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는 게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지도자가 대통령으로 앉아 있으니, 아랫물이 맑을 리 만무한 것일까.

 

해외에서 운영되는 대사관의 특성상 ‘공관장의 재량’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해외에 주재한 조직이 한국법에 적용을 받기 때문에 때로는 타지의 현실과 본국의 규정 사이에 틈새가 생기기도 한다. 그 틈을 유연성 있게 보완하기 위해서는 상황에 맞게 ‘재량껏’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게 현실에서는 마음 놓고 권력을 휘두르기에도 딱 좋은 명분이 되기도 한다. ‘재량껏’이라는 애매함이 자칫 잘못하면 조직 운영의 기본을 무시하는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링크).

 

주영국대사관의 경우도 ‘사유화’된 조직 운영의 예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첫 번째로는 인사 전횡이다. 전공이나 경력을 무시한 인사이동과 함께 밉보이면 가장 힘든, 소위 ‘빡 센’ 곳으로 보직을 이동 시키는 경우가 있다.

 

뿐만 아니라,

 

1. 대사가 자신의 비서로 일한 직원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인사위원회 없이 해당 직원의 보직 변경을 명령하기도 하고,

 

2. 육아로 정시에 퇴근할 수밖에 없는 직원(비서)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녀가 없고 출산 계획도 없는 직원을 비서로 보직을 변경하려는 등 입맛에 맞는 인사 운영을 한다.

 

대사관에서 일하는 많은 행정직원들은 체류비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부당 대우에도 제대로 된 항변 한 번 하기 힘들다. 누군가의 입맛에 맞춰 직원들의 보직이 변경되고, 밉보이면 원하지 않는 자리로 가야 하지만, 어느 누구도 쉽게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구조 또한 권력의 사유화로 인한 피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두 번째는 대사의 의전과 관련한 것이다. 출퇴근 시 단계별로 이뤄지는 일들은 과거 왕정시대에서 볼법한 광경이다. 대략적인 대사의 출퇴근 사이클링은 이러하다.

 

1. 대사가 관저에서 출발함과 동시에 관용차량 기사와 비서가 암호화된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2. 비서는 대사 직무실 문을 개방해 놓고, 냉/난방기 작동 및 커피 등을 준비를 한다.

 

3. 대사관의 안전요원은 지문인식기를 해제하고, 입구 문을 열어 고정시키고, 엘리베이터도 1층에 위치시켜 대사가 기다리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도록 한다.

 

4. 퇴근 시 공관 차량을 대기시킨다. 골목으로 차를 타러 가는 것을 할 수 없다 하여 대로변에 차를 주차해 놓고 기다려야 한다. 2차선의 좁은 도로에서 뒤에 차가 밀리든지 말든지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5. 대사가 퇴근 후, 비서는 냉/난방기와 전등을 끄고 문을 닫고 모든 뒷정리를 한다.

 

비서가 일찍 퇴근하면 직접 불을 끄고 문을 닫는 게 귀찮아서였을까. 정시에 퇴근해야 하는 비서는 사절이라고 한 이유가 여기 있을지 모른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국민을 대신해서 타국에 업무를 수행하러 온 대사가, 제왕적인 통치를 하듯 손 하나 까닥 안 하려는 게 무슨 처사인지 모를 일이다. ‘이정도 위치라면 이정도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특권의식이라도 있는 걸까. 본인에게 부여된 직위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지를 안다면, 이와 같은 제왕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업무 지원용으로 쓰이는 관용 차량(의전 차량)에 관한 사례다. 대사관에는 전담 기사가 운행하는 대사의 관용 차량이 있고, 이는 대사의 공무수행을 지원하기 위해 운행된다. 하지만 대사의 가족들도 언제든 쉽게 사용한다. 국가의 예산으로 구입하여 운영되고 차량 유지비를 세금으로 관리하는 관용차량을 개인 승용차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현 정부가 비판 받고 있는, 국가 재산의 사유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대사 가족이 관용 차량을 마치 개인 승용차를 이용하듯이 주문/사용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기저에는 권력의 사유화라는 원리가 깔려있다. “그 정도야 어디나 있는 일이지”라고 받아들인다는 건 우리의 사고도 시시비비를 가리지 못할 정도로 잘못된 관습에 흠뻑 젖어 있다는 방증이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해왔던 관습 때문일까? 대부분은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 못한다. 설사 거부감을 느낀다 하더라도 별 도리는 없다. 수직상하 관계가 매우 강한 한국 조직 안에서 일개 직원이 관습을 바꾸려고 저항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부당한 관습과 비합리적인 관행은 그렇게 조직에 내면화되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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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같은 맥락에서 위의 기사도 직위를 사유화한 전형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영사라는 직분이 사용된 이번 허위 비자 남발 사건은 조직 안에 내면화된 쓴 뿌리에서 뻗어 나온 열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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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뿐만 아니라 기타 공직자들에게 있어서 이는 단순한 의전이나 인사 같은 문제가 아니라 의식의 문제다. 자신의 직위가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개인의 노력을 통해 얻어졌다 하더라도, 직위를 통해 얻은 권위는 개인의 것이 될 수 없다. 그것은 국민들에게 잠시 이양 받은 한시적은 권한일 뿐이다. 따라서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국가의 무언가를 사유화 하는 행위는 반드시 중단되어야 한다. 그 대상이 돈이든, 사람이든, 물건이든 관계없이, 설사 그것이 아주 작은 것일 지라도 말이다.

 

덧. 공직자에게 겸손이라는 의미는 고운 말을 사용하고 허리를 굽혀 몸을 조아리는 외형적인 모습을 뜻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지위와 권한이 국민으로부터 온 것임을 늘 인지하고 있는 자세와 태도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겸손이다. 겸손의 외형만을 흉내 내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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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