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movie_image.jpg



조금 옛날 영화 중에 올리버 스톤이 감독한 '래리 플린트'라는 영화가 있다. '허슬러'라는 포르노 잡지의 발행인 래리 플린트의 일대기와 '미국 역사상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대단히 중요한 대법원 판결'에 관한 스토리의 영화이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면 여기를 (네이버 영화 - 링크) 방문하시길 바라고, 핵심만 이야기하자면, 허슬러지에 당시 미국민이 모두 존경하는 목사인 제리 포웰이 어린 시절 어머니와 근친상간을 했다는 내용의 정치 풍자 광고가 실린다. 제리 포웰은 래리 플린트를 고소하고 래리는 법정에 서게 된다.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래리를 변호하게 된 변호사 아이삭맨은 알면 알수록 돈과 섹스 외에 아무 관심도 없는 래리 플린트에 구역질하지만 어쨌든 의뢰인인 이상 재판의 승소를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을 짜낸다. 민사 소송으로 끌고 가서는 전혀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아이삭맨은 이 건을 유명인에 대한 풍자의 억압, 즉 표현의 자유 침해 사건으로 김기춘적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대법원에서 승소한다.


원래 판결문은 훨씬 정중하고 근엄하지만, 알아듣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자면, 래리 플린트, 나쁜놈 맞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가 고상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고 이런 놈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억압하기 시작하면, 부당한 권력은 곧 갖은 핑계를 대서 사람들에게 이런 저런 이유를 붙이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 할 것이다. 미국이 이런 놈에게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민주주의 국가임을 강력히 선포했을 때 비로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시도는 사라질 것이다.


이 원칙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흔히 나쁜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인권을 보장해야 할 필요가 무엇이냐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나쁜놈들의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는 다른 이들의 인권도 지켜지지 않는다. 마약상은 영장없이 총살하겠다고 공언한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이 당선되자 국제 사회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라고 마약상이 좋아서 우려했겠는가. 다만 마약상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총살해도 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면, 조만간 모든 범죄자로 그 범위가 확대될 것이고, 끝내는 두테르테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이 총살의 공포 속에 살아야 할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두테르테는 마약상 총살을 감행했고 이 극약처방은 성과를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우려하던 사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벌써 마약상이라는 누명을 쓰고 경찰에게 재산을 빼앗기고 희생된 한국인이 두 명이나 발생했다. 외국인이 이 정도라면 이런 식으로 피해를 입은 자국민은 얼마나 많을지 상상이 가고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은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고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다. 이 원칙에서 벗어나면 그 순간부터 진보라 부를 수 없다.


더러운 잠과 관련된 일련의 사태에 대해 글을 쓴 바 있다. <표창원, 더러운 잠, 더러운 좌파>(링크) 이 글을 올린 후에 인터넷을 뒤져보다가 상황이 내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누히 말하지만 어차피 새누리당, 박사모 쪽은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진보 진영의 한 축이라고 생각했던 일부 여성단체가 무비판적으로 표창원 의원에 대한 비난에 동참하는 것을 보며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물론 정당한 비판이라면 나는 얼마든지 용납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현재 일부 단체의 표창원 의원 비난의 수준은 딱 개그 콘서트 '세젤예' 수준이다. "여자를 벗겼다고요? 와! 여성혐오네!"


여성민우회에서 표창원 의원의 사과문에 이른바 첨삭지도를 한 내용을 인터넷에 올렸다.


민우회1.jpg


민우회2.jpg


민우회3.jpg


민우회4.jpg


이 첨삭자는 표창원 의원이 더러운 잠이 자신의 취향은 아니지만 예술의 자유 영역에 속한다고 판단했다는 해명에 대해 '취향의 문제 아님', '예술의 자유도 아님'이라고 단호하게 선언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왜 그런 것인지 설명은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앞에 '국회 전시 작품이 어떤 집단을 일반화, 비하, 차별하는 소지가 없는지 국회의원이 당연히 판단했어야 함'이라는 서술을 남긴 것으로 미루어보아, 더러운 잠을 '특정 집단을 일반화, 비하, 차별하는' 내용으로 판단한 것 같다. 이 문제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니 뒤에서 자세히 짚어보기로 하자. 굳이 이 문제가 아니더라도 이 서술에는 비웃음을 살 요소가 다분하다.


전시회를 열기 전에 비하, 차별의 소지가 없는지 국회의원이 당연히 판단했어야 한다는 주장은, 곧 표창원 의원이 전시 작품을 사전에 검토(내지는 검열)를 했어야 한다는 소리로 들린다. 블랙리스트 예술인들 앞에서 표창원 의원이 이러기라도 바랐던 모양이다. "여러분들,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사전 검열로 마음 고생이 크셨겠습니다. 이제 마음껏 전시회 하시고, 그 전에 혹시 문제가 될 만한 요소가 없을지 사전 검열이 있겠습니다." 사전 검열에 반대하는 전시회 작품을 사전 검열하라고? 장난 지금 장난하나?


그러면 이제 가장 중요한 문제, 이구영 작가의 더러운 잠이 예술의 자유마저도 인정되지 않을 심각한 여성혐오를 저질렀는가를 살펴보도록 하자. 첨삭자는 작품이 여성에 대한 일반화, 비하, 차별이라고만 일방적으로 선언했을 뿐, 어떤 요소가 여성혐오에 해당하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내가 엊그제 쓴 글에서도 지적했지만, 만약 이구영 작가가 박근혜를 희화하기 위해 몰카를 찍었다든지, 포르노 합성사진을 만들어서 배포했다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여성혐오이자 현행법 위반이다. 그러나 이구영 작가는 매우 잘 알려진 마네의 올랭피아에 박근혜의 얼굴을 덧 씌웠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여성혐오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 신문>의 기사를 읽어보자.


여성단체, 전문가들, '더러운 잠' 논란에 "여성혐오, 비하" 한 목소리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24일 성명을 통해 “‘더러운 잠’은 여성비하이자 인격모독, 저질적 성희롱”이라며 전시회를 주최한 표창원 의원의 중징계를 요구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이 그림은 우리 민족이 지켜온 인간애와 예의 등의 가치를 무참히 훼손했으며, 나아가 국민을 모욕한 잔인하고 비열한 행위”라며 “인격비하, 여성비하, 저질적 성희롱”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단체는 특히 “이는 표현의 자유로 포장될 수 없는 잔인한 인격살인이고, 여성과 국민의 분노를 자아내는 저질적인 범죄행위”라며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간의 기본권, 존엄과 가치, 사생활 보호 등의 헌법적 가치를 무참히 짓밟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스크린샷 2017-01-31 오후 11.24.11.png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국론의 장이자,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여성 인격을 심각하게 모독하는 행위가 자행된 것은 폭거이며 어떤 비판을 받아도 마땅하다”며 “65개 회원단체를 비롯해 500만 회원은 전시회의 즉각 중단과 표창원 의원의 중징계를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도 이날 “국정농단 등 헌정질서를 파괴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성적대상화나 여성혐오로 표현되는 것을 반대한다”며 “어떠한 비판이나 풍자도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를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여성연합은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가 성평등한 관점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성신문 - 원문 링크


이 기사에 인용된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성명 역시 민우회 첨삭자와 마찬가지로 더러운 잠이 '잔인한 인격 살인이고 저질적인 범죄행위'라는 점만 강조하고 있을 뿐, 구체적으로 작품의 어떤 요소가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밝히고 있지 않다. 잘못을 저질렀다고 주장을 하려면 왜 그런지는 설명을 해주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구체적으로 뭘 잘못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니리라 믿는다. 다행히 황진미 평론가가 더러운 잠이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는 힌트를 제공해 주셨으니 확인해보도록 하겠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많은 이들은 현실에 있는 것들을 나열, 재현하기만 하면 풍자가 된다고 생각한다”며 “그건 풍자를 단순한 조롱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풍자는 날카로운 통찰과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더러운 잠’은 게으른 미학의 전용이라는 지적이다.


황 평론가는 그림에 숨어있는 의미를 설명하며 날카로운 평가를 이어갔다. 그는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 ‘올랭피아’ 속 여성은 그림 밖 대중을 똑바로 쳐다본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시선을 그대로 되돌려주는 ‘시선의 역전’이 존재하는 것”이라며 “조르조네의 비너스는 대상화되는 관능적인 여성의 몸일 뿐이다. 따라서 ‘더러운 잠’은 소라넷에서 지인이나 유명인의 얼굴을 나체 사진에 합성한 것과 다를 바 없고, 성희롱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황 평론가는 이구영 작가가 그림의 구도는 올랭피아를 차용했지만, 그림 속 여체는 조르조네의 비너스를 빌렸다고 짚었다.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고, 남성의 시각에서 여성의 육체 그림 소비가 절정이던 시기에 반기를 든 그림이다. 반면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 속 여성의 시선과 자세는 ‘보여지는 존재인 여성’으로 소비되던 당시 누드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특히 황 평론가는 정치가의 악행은 ‘여성’의 악행으로 치환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여성의 악행은 반드시 섹슈얼리티적 의미를 지니는 요부로 재현된다”며 “여성 정치가의 사회적 악은 섹슈얼리티를 체현하는 여성의 몸으로 환원된다. 즉 박근혜의 정치적 악행을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여체로 환원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황진미 평론가에 의하면 이구영 작가는 현실에 있는 것들을 나열, 재현하기만 하면 풍자라고 생각하고 날카로운 통찰과 재해석 없이 게으른 풍자를 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인데, 작품성이 떨어지면 전시회하면 안 되나?


황 평론가는 더러운 잠이 올랭피아의 구도를 택하고는 있지만 그림 속 여체는 조르조네의 비너스를 빌렸다는 점을 지적하며, 올랭피아의 여성은 대중을 '그림 밖 대중을 똑바로 쳐다보지만' 조르조네의 비너스는 대상화되는 관능적인 여성의 몸일 뿐이기 때문에 더러운 잠은 소라넷 합성 사진에 불과하다는 논리적 비약을 한다.


올랭피아.jpg


조르조네비너스.jpg


위의 그림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시선을 그대로 되돌려주는 시선의 역전이 존재'한다는 올랭피아이고, 아래 그림은 '관능적인 대상화 되는' 조르조네의 비너스이다. 황진미 평론가에 의하면 두 여체가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조르조네의 비너스가 좀 더 매끄러운 몸이다 외에는 차이를 못 느끼겠다. 아무튼 황 평론가는 이구영 작가가 올랭피아의 구도를 차용하면서도 비너스의 여체를 빌린 이유가 여성을 대상화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물론 그랬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본인이 이구영 작가가 아닌 이상 단정 지을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엔 올랭피아의 여성은 잠이 들었다고 보기에는 좀 과하다 싶게 음부를 가린 손에 힘을 주고 있고, 실제로도 깨어 있는 모습이다. 그에 비해 비너스의 여성은 정말 잠 든 사람처럼 가리고 있는 손에 힘이 풀려 있다. 전반적인 구도는 올랭피아를 차용했지만, 세상 모르게 잠든 사람의 이미지를 표현하기에는 아무래도 비너스가 더 적합해 보인다. 그래서 이 그림을 차용했을 가능성도 충분하지 않을까? 본인이 이구영 작가가 아닌 이상 남의 의도를 재단해서 한쪽으로만 혐의를 몰고가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시선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올랭피아는 그림 속 여성이 그림 밖 대중을 똑바로 쳐다봄으로써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시선을 그대로 돌려주는 시선의 역전이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엊그제 쓴 글에서 내가 비판한 오마이뉴스의 최황의 기사에도 같은 주장이 있다. 이게 요즘 올랭피아의 시선에 대한 공통적인 해석인 것 같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에두아르 마네의 진정한 의도였는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황 평론가를 비롯한 여성주의적 미술계 인사들이 올랭피아의 시선에서 시선의 역전을 찾아낸 것은 물론 마네의 의도가 아니라 그들의 해석이다. 그렇다면 나 역시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할 자격이 있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 관계를 따져보자. 마네가 올랭피아를 발표한 것은 1865년도이나 실제 작업은 1863년도부터 진행되었다고 한다. 당시 마네는 번번히 미술전에 낙선하다가 겨우 미술계에 첫 발을 디딘 무명화가였다. 마네가 이 그림을 그린 시기는 무척 중요한 것이, 확인차 검색을 해보니 얼마전 영화로도 개봉한 그 유명한 서프러제트 행진이 1911년도에 열렸다고 한다. 즉, 마네가 올랭피아를 그린 시점은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참정권을 요구하기 반 세기 이전이라는 말이다.


11.png


만약 황진미 평론가를 비롯한 이들의 해석이 맞다면 이건 정말 세계 여성운동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다. 에두아르 마네는 이미 여성들의 참정권 운동이 시작되기 반세기 전부터 남성중심 사회에 대한 전복의 시선을 그림을 통해 표현했다는 것이다. 궁금해서 마네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지만, 여성운동에 어떤 족적을 남겼다는 사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시선처리가 예술작품과 음란물을 가르는 그토록 중요한 기준이라면, 이구영 작가가 박근혜의 시선처리를, 정면을 바라보게 했다면 문제가 없었다는 걸까? 어려운 일도 아니다. 레이저 눈빛으로 유명한 박근혜였으니 그 편이 훨씬 강렬한 인상을 남겼을지도 모르겠다. 앞뒤가 안 맞는 소리다. 황진미 평론가의 비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가 주장한 올랭피아 해석이 정설이어야 하지만, 보다시피 헛점이 많다. 그저 현대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그럼 이구영 작가가 굳이 전근대의 대상화된 여체를 선택함으로써 여성을 비하했다는 게 성립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논리 점프가 두 차례 발생한다. 이런 논리 점프로 다른 사람을 단죄할 수는 없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한다'라는 문장을 들으면 '너는 왜 총통을 사랑하지 않는가'라고 사람을 기소할 수 있다고 자랑했던 괴벨스도 한 수 아래로 느껴진다.


일부 여성단체의 반발은 그저 나체화에 합성을 했다는 원초적인 반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러면 너무 유치하게 보이니까 안 유치한 것처럼, 미술 작품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통해 수준 있는 문제 제기인 것처럼 포장을 했을 뿐이라 여겨진다.


다운로드.png


명견만리210_2M.MP4_000648931.jpg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이전에도 몇 차례 일부 여성단체가 보여준 뻘짓거리 때문이다. 지난 대선, 일부 여성단체에서는 지금 한국의 최우선 과제는 여성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라는 명분을 내걸고 박근혜를 지지했다. 차라리 이정희 전 통진당 대표가 그들이 생각하는 여성상에 가까웠겠지만, 그들은 여성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국사회가 변화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틀린 주장은 아니다. 4년 동안 한국 사회에 이토록 드라마틱한 변화를 가져온 대통령은 박근혜가 유일하니까.


대선 기간 중에 황상민 전 연세대 교수가 채널A에서 여성 대통령으로서의 박근혜라는 소리를 듣자 발끈해서 박근혜가 생식기만 여성이지 어떻게 여성으로 취급될 수 있냐는 발언을 했다가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당시 일부 여성단체는 황교수의 여성폄훼 발언이라며 사과와 교수직 사퇴를 요구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 제일 처음 배우는 것이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 성(gender)의 구별이다. 생물학적 성 특징의 차이를 절대적인 것처럼 간주해서 사회적 차별을 가져온다는 것이 핵심인데, 그렇다면 황교수의 발언은 정확히 그것과 일치한다. 다만 박근혜의 경우는 사회적 성이 여성이라기 보다는 마초적 남성에 가깝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작가들에게 전시공간을 마련해주러 더러운 잠의 전시를 보장해준 표창원 의원이 여성혐오자인가, 네 마누라도 똑같이 벗겨주겠다고 외치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여성혐오자인가. 무엇보다도 본인이 여성대통령이라 이런 박해를 받는다는 박근혜야말로 우리 사회에 여성혐오를 급속히 퍼뜨리는 장본인이 아닐까. 








도비공


편집 : 꾸물

Profile